김홍도의 ‘백로도’(조선시대)


오랜만에 옛 그림 이야기를 실어봅니다.

과거는 현재를 알려주는 중요한 실마리가 됩니다.

그림 또한, 옛 그림을 통해 과거를 알고 현재를 다시 바라보게 됩니다.

제 나름대로의 소견과 시각으로 옛 그림을 다시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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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일체유심조’를 말하지 않더라도, 이 세상의 모든 일은 마음먹기에 달려있음을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이지요.
자연이나 그림을 바라보는 시각(視覺) 또한 사람마다 자신의 마음에 따라 달라 보이는 것은 역시 당연한 현상일 테지요.
지금 제가 보고 있는 김홍도의 ‘백로도’는 왠지 쓸쓸해 보입니다.
두 마리 백로가 짝을 지어 날아오르고 있습니다.
같이 먹이 찾으며 놀다가 짝지어 떠나니까 남은 한 마리가 부러운 듯 쳐다보고 있네요.

조류 중에는 많은 종류가 ‘일부일처제’라고 하더군요.
그리고 새끼를 기르는 것도 사자나 호랑이처럼 암놈이 다 책임지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의 새는 암 수컷이 함께 공동으로 새끼를 키우더군요.
그리고 학은 한번 부부의 연을 맺으면 평생 같이 살고, 둘 중에 하나가 죽으면 다른 짝을 찾는 것이 아니라 외로이 혼자 산다고 합니다.
그래서 황새나 백로를 그릴 때 항상 짝을 지어서 그리는 데, 위의 그림은 짝이 하나 없네요.
아마 은연중에 홀로 남은 김홍도의 심정을 나타낸 것은 아닐까요?
글쎄요?
노년기에 김홍도가 아내 없이 홀로 살았는지 기록이 없어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그림 속에 홀로 남은 외로움이 담겨있습니다.

붓질 몇 번으로 논에서 날아오르는 백로를 별 어려움 없이 그렸습니다.
화폭 위쪽을 시원스럽게 여백으로 남겨두어서 하늘을 날아오르는 백로의 날갯짓을 가로막지 않네요.
그냥 툭툭 사선으로 가늘게 붓질 한 것이 이내 논이 되었고, 진하지도 연하지도 않는 연녹색의 색감이 한창 자라는 벼가 되었습니다.
하늘의 색감이 저녁 노을처럼 붉게 물들어 가고 있습니다.
화첩의 종이 색갈이 본래부터 연한 붉은 색을 띤 것인지 아니면 저녁 노을을 의도하여 연한 붉은 색갈을 칠한 것인지 분명하게 구분이 되지 않지만, 이제 곧 해가 서산마루에 질 듯한, 황혼이 다가오는 그 시각인 느낌이 듭니다.
저녁이 다가오는 무렵 짝지어 날아올라 둥지로 돌아가는 백로와, 그 백로 한 쌍을 부러운 듯 바라보는 또 다른 백로 한 마리를 슬쩍 남겨둠으로써 자신의 외로운 마음을 표현한 것이나, 산수화, 화조도, 풍속화, 인물화, 신선도 등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수준 높은 작품을 남긴 김홍도는 과히 그림에 천부적 재질을 가졌음이 틀림없습니다.







그리고 김홍도는 아예, 짝이 없는 한 마리의 백로가 날갯짓을 하며 외롭게 날아오르는 모습을 그리기도 했습니다.
한 마리의 해오라기 그림에 김홍도의 외로운 심정을 이입 시키는 것은 지나친 비약일까요?
날아오르는 백로 그림 속에 언 듯 가을이 보이는 듯합니다.
당신은 한창 벼가 자라는 더운 여름철이 보인다고요?
저는 날씨가 추워지기 전에 남쪽나라로 떠날 것을 채비하는 백로로 보입니다.
가을이라서 그러할 테지요.

그러면 학(鶴)인지 백로(白鷺)인지 어떻게 알았냐고요?
학(鶴)은 시베리아에서 겨울을 피해 남쪽으로 내려와 겨울 동안 우리나라에서 보내는 겨울 철새이고, 백로는 여름에는 우리나라에 머물다가 겨울이 다가오면 추위를 피해 남쪽 나라로 내려가는 여름 철새입니다.
그래서 학(鶴)은 겨울철에 볼 수 있고, 백로(白鷺)는 여름철에 볼 수 있는 철새입니다.
논에 벼가 한창 무르익는 계절인 것을 봐서 백로이네요.


(그림 김홍도. 글 박영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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