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왕산 시루봉과 학소대 (2019년 여름 박영오)






아래 글은 '박영오 옛그림 이야기'에서 2013.05.22. 쓴 글을 다시 옮겨왔음을 알립니다.



몇 년 전에, 한 번 꽃을 피우기 시작하면 팥알만 한 분홍색 작은 꽃을 끊임없이 피우는 ‘사랑초’라고 이름 하는 화초 몇 뿌리를 아는 사람에게 분양을 받아 아파트 베란다에서 키워왔습니다.
베란다 온도가 높아서 그런지 너무 웃자라서 이른 봄에 해병대 헤어스타일처럼 싹둑 잘라주었더니, 한참동안 꽃대가 보이지 않아 괜히 잘 자라고 있는 것을 무리하게 잘라주지 않았을까 걱정했습니다.
그런데 드디어 올해 처음으로 눈에 보일 듯 말 듯 한 가냘픈 꽃대를 올렸습니다.
처음에는 솜털처럼 보송보송한 새싹 속에 숨어있어 꽃인지 잎인지 구별할 수 없었는데 자세히 살펴보니 손톱만한 작은 꽃대를 품고 있더군요.
그 어린 것이 태어나서 처음 꽃을 피우려고 준비하는 것이 신기해, 집에만 가면 아내 하고 인사하는 것보다 베란다에 가장 먼저 나가서, ‘사랑초’를 살펴보았습니다.
아내가, 그런 나를 바라보며 이제는 꽃에게 먼저 인사를 하고 다닌다고 핀잔을 하더군요.
이제는 그런 내 모습에 익숙할 때도 되었는데 여전히 잔소리를 합니다.

며칠 전부터는 이 아이가 찬란히 꽃을 피워서, 혼자 바라보기 아깝기도 하고, 하루 종일 빈집을 지키는 사랑초 꽃이 외로울 듯해 아예 학교 교무실로 옮겨왔습니다.
옮겨올 때, 소리 내어 알리지 않고, 내 책상 바로 뒤 교무실 남쪽 창가에 슬며시 가져다 놓았더니, 집에서나 사람 많은 학교에서나 꽃을 바라보는 사람은 여전히 나 혼자입니다.
긴 겨울을 이겨내고 이 봄에 처음으로 찬란하게 꽃을 피워도 여전히 혼자인 사랑초 꽃에게 미안해, 내 곁에 있어 줘 고맙다고, 꽃을 피워 주어서 고맙다고 마음속으로 자주 말을 주고받습니다.

우리는 삶을 이어가며 숱한 만남의 인연을 맺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나무와 꽃도 사람처럼 만남의 인연이 있다면, 무슨 인연으로 이 꽃이 나와 인연을 맺게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소중한 만남이 틀림이 없기에 내 곁에 있는 동안만큼은 마음을 다해 보살펴주고 싶습니다.
어느 학급 담임 선생님이, 한 아이가 말썽을 자주 일으킨다고 걱정을 합니다.
모든 에너지가 그 학생에게만 집중된다고, 자기 반 아이들에게 골고루 나눠줘야 할 마음을 한 학생에게만 주고 있다고, 나머지 아이들에게 미안하다고 말을 합니다.
내가 불교를 믿어서 그런지, 모든 만남에는 우연은 없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아이와 담임선생님과의 만남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분명 필연적인 까닭이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어느 생에선가 그 아이에게 진 빚이 있었겠지요.
그 빚을 현생에서 갚지 못하면 다음 생에서 또 다른 만남으로 이어지리라 생각됩니다.
전생에 진 빚을 갚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 아이를 잘 보살펴주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만남과 헤어짐에는 우연이란 없습니다.
우주의 법칙 속에 만날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이유가 숨어있습니다.
올해 처음 꽃을 피운 사랑초 꽃 한 포기와도, 올해 새로 우연히 자기 학급에 입학한 학생과도 만날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이유가 있었을 테지요.

당신과 나의 만남 또한 그러하겠지요.
그래서 당신이 더욱 소중합니다. ♠




'박영오 옛그림 이야기'에서  2013.05.22. 쓴 글을 다시 옮겨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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