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빈, 길을 나서다 ~

입맛 돋궈주는 와인 한잔~

작성일 작성자 효빈

겨울이 되고 우리 아파트에서는 한달 넘게 양쪽 베란다 물 사용을 자제시켜 왔다.

그러다 일주일 정도 한파가 최절정을 맞았을때부턴 거의 수시로 하는 방송으로

생활이 불편하다 느꼈을 정도였다.

위에서 물을 쓰면 저층세대에 물이 역류한다는 것이다.

관리소에서 집집마다 노크해 세탁기 금지해달라 방문하기도 하고

프린트물을 문앞마다 붙이기도 했다.

아무리 방송을 하고 별 방법을 다 써봐도 여전히 사용하는 사람이 있는지

몇동 몇라인이라고까지 밝혀도 소용이 없었다.

아래층 사람들은 집안에 역류된 물 때문에 고충이 이만저만 아니었을거고

세탁기를 돌리지 못하는 윗세대 사람들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대부분 세대에서는 한파가 절정인 그 일주일에만 세탁기 사용을 하지 않았다 한다.

그럼 한달전 자제하라 했던때부터 세탁기를 쓰지 못한 사람들은

그 말을 그대로 따르다 이제와서 보니 황당한 일이 되어버린 것이다.

정말 추워졌을때 사용자제를 시켰어야 한다는 말들까지 이래저래 불만들이 터져나왔다.

 

공동주택에서의 남을 배려하며 사는건 기본중에 기본~어쨌든 너무 말을 잘 들은것도 문제였는지~ 

한달 넘게 세탁기안에~세탁바구니안에~여기저기 빨래거리는 꽉꽉 넘쳐났다.

근처에 빨래방이라도 있다면 좋겠지만 그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세탁소에 맡길만한 것들도 아니다.

더이상은 안되겠다.

 

휴일,모처럼 큰 냄비에 빨래도 삶고 총동원해 화장실에서 손빨래를 한다.

오랜만에 빨래 삶는 냄새도 참 좋다.

허리도 아프고 힘은 들었지만 속이 다 시원하다.빨래 끝~

산뜻한 기분으로 마트 들러서 와인도 몇병 사고 구워먹을 고기도 산다.

 

 

 

 

마트에 들러 모스카토 몇병을 사왔다.

도수는 5~7도 정도로 맥주보다 조금 높은 수준.

하나는 겨울시즌, 크리스마스를 모티브로 한 디자인으로

한병에 만원 초반대라 값비싼 와인들처럼 부담스럽지 않을뿐더러

모스카토 중에서도 톡 쏘는 스파클링에 빠져버린 것이다.

 

예전엔 모스카토 마시는 사람을 이해하지 못했다.

아니,술이 술다워야지.

달콤한게 그게 술이래~톡 쏘는게 그게 술이냐고.

 

 

 

 

한치앞도 내다보지 못하는게 사람이라더니

평생 나는 이런 스파클링 와인은 마시지 않을줄 알았다.

주로 가볍게 마실때는 맥주가 최고였는데 이 모스카토에 빠진 뒤론

왜 그렇게 맥주가 땡기질 않던지~

아마 갈증이 나지 않는 겨울인 점도 한몫했을 것이다.

 

 

 

 

 

많은 안주는 필요없다.

술을 위해 먹는 술이 아닌

그저 식사를 곁들이는 한잔이니 평소 식습관대로면 족하겠다.

 

 

 

 

 

나는 맥주든 와인이든 집에서 한잔할땐 무의식중에 김치를 볶는다.

볶은 김치를 좋아하기도 하지만 마땅한 안주가 없을땐 이만한게 없어서다.

물론 스파클링 와인 안주엔 가볍게 카나페나 샐러드,치즈 요리가 어울릴수 있지만

굳이 그 공식에 따를 필요는 없다.

 

쉬어가는 갓김치도 잘게 썰어 함께 볶아주니 풍미가 더해진다.

볶음김치는 이미 김장김치에 많은 양념이 들어있으니 다른걸 추가하진 않아도 되겠다.

돼지고기를 함께 볶아도 되겠지만 나는 그저 김치만 볶는걸 좋아한다.

불 끄기 직전에 들기름이나 참기름 둘러주면 고소한 맛이 배가 되겠고

원한다면 마법가루나 라면스프를 조금 추가한다면 누구라도 오케이하는 맛이 날 것이다~^^

 

 

 

 

 

작년 가을에 담근 양파절임도 꺼내 놓는다.가위로 대충 잘랐더니 영 어설프다.

음식을 못해도 이거 하나만큼은 참 쉬웠다.

간장,식초,설탕(올리고당이나 매실청 등도 가능)을 물과 함께 끓여 양파에 부어주면 끝.

시큼,상큼,달콤,짭쪼름한 맛까지.

원하는대로 식초,간장,설탕의 비율을 조절하면 되겠다.

다시마나 다른 재료를 넣어 끓이면 더 풍부한 맛이 난다고도 하고~

어쨌든 고기 먹을때 적격이다.

 

 

 

 

잔멸치도 좀 볶아둔다.

멸치볶음은 만든지 하루이틀이 지나면 처음보다 맛도 떨어지고 좀 눅눅해질수 있다.

이렇땐 접시에 조금 덜어 밀봉하지 않은채 전자렌즈에 3~40초만 돌리면

바삭바삭 맥주 안주나 가볍게 와인 한잔 할때 딱이다.

눅눅해진 김도 전자렌즈에 20초 정도 돌리면 바삭해졌다.(전자렌즈 시간은 양과 밑접시에 따라 달라질수 있다.)

 

 

 

 

 

소고기도 간단하게 후라이팬에 굽는다.

내가 어느 포스팅에선가 소고기란 표현을 썼더니

어느 님, 내가 무안해할까 조용히 비밀댓글에 남겨주셨다.

소고기가 아니라 쇠고기라고~~

그러나 소고기,쇠고기 둘 다 맞는 표현이다.

1988년 표준어 규정이 바뀌기 전에는 쇠고기만 표준어였지만 사람들이 소고기라 발음하는

단어들이 더 많아지니 모두를 인정하게 된 것이다.

소고기 국밥,소가죽,쇠가죽,소갈비,소머리,소뼈 등등..

 

말이란건 처음엔 사투리였거나 비표준어였다가도

사람들이 많이 사용하게 되면 표준어로 바뀌기도 한다.

 

 

 

 

소금과 후추를 조금 뿌려주고 가운데 질긴 심도 잘라준다.

 

 

 

 

 

 

 

지글지글 적당히 익어주었고

더 이상 구우면 좀 질겨지겠다.

직접 식탁에서 구워 먹으면 더 부드럽겠지만

그러자면 와인 한잔 마시는것도 좀 어수선해질 것이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윤기가 자르르~

제법 먹음직스러워졌다.

쌈장에 싸 먹거나 그냥 소금이나 참기름장에 찍어먹어도 좋겠다.

와인보단 소주가 땡기는 사람도 있겠다.

취향대로~

 

 

 

 

 

이제 시원하게 모스카토 한잔 해보자구요~

딱히 먹을건 없지만

와인 한잔에 고기 한점이면 부족하지도 않다.

고급진 레스토랑에서 잘 썰리는 스테이크와 좀 더 수준있는 와인이라면 좋겠지만

그런 날은 1년에 한두번이면 족하다.

집만큼 편한곳이 없음이다.

 

 

 

 

 

가볍게 식사를 마친뒤에 내 전용자리로 자릴 옮겼다.

편한 쇼파 놔두고 그렇다고 식탁도,책상도 아닌

때론 맥주 한잔도 하고,책도 보고

생각나는대로 끄적끄적 낚서도 하는 공간~나무는 약간씩 뒤틀어져 반듯하지 않지만

손으로 짜맞춘 이 투박한 탁자가 나는 좋다.

 

고기도 조금 더 굽고 냉장고 속 와인도 마저 꺼낸다.

편한 차림으로 TV보면서 마시는 한잔만큼 편할때도 없다.

 

 

 

 

 

나는 가전제품에는 크게 욕심도 관심도 없어

가구며 냉장고 텔레비젼 모두 15년전 그대로다.

가끔 TV는 녹색으로 변하기도 하지만 크게 개의치 않는다.

 

딱히 선호하는 프로가 있는건 아닌데 외국인들 나오는 방송은 종종 보게 된다.

한국에 사는 외국인이 자기 친구들을 초대해 한국을 경험하게 하는 내용인데

그중에서도 정감가는 친구들이 있기 마련이다.

케이블 방송임에도 KBS,MBC,SBS 등을 제치고

동시간대 최고시청률을 기록하고 특히나 여성들에게 가장 인기있던 나라편이 있었다.

찌들지 않은 순수함이 있었고 무엇보다 처음 접하는 막걸리며 우리나라 음식을

너무도 맛있게 잘 먹어주었던 친구들에게 3~50대 여성들의 관심이 쏟아졌고

최고시청률을 이끌어냈다.

 

음식이란 참 그런가보다.

맛있게 먹는 사람을 보면 괜히 기분이 좋아지고

같이 맛있는걸 먹다보면 절로 사람이 좋아지기도 하는~

음식엔 마력 같은 힘이 있었다.

 

 

 

 

남은 채소는 드레싱을 뿌려 샐러드를 만들었다.

이 드레싱 하나면 못먹을 채소가 없을만큼 입맛 돋구기 충분하다.

예전엔 드레싱 뿌린 샐러드가 먹고싶어

일부러 레스토랑을 간적도 있었다.

 

지금이야 마트에 가면 종류별로 드레싱도 넘쳐나고

없는게 없는 세상에 살고 있으니 격세지감이 아닐수 없다.

나는 요즘 흑임자 참깨드레싱에 빠져 있다.

견과류를 뿌려 먹어도 좋겠다.

 

 

 

 

 

사랑하는 사람도 가끔은 무덤덤해지듯 그 좋아하는 산도 가끔은 좀 놓아두고 싶다.

더 소중한 것들이 있다는 것을 잠시 잊고 살기도 한다.

모처럼 책장 정리도 하고

먼지 가득한 오래된 사진들과 손편지들도 닦아보았다.

풋풋했던 지난 추억과, 이제는 나이 먹어가는 나를 보고 있었다.

모스카토 한잔과 저무는 시간~

스르르 잠이 쏟아지려 한다.창문 밖으로 함박눈이라도 쏟아졌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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