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론부터 말하자면 다녀와 온몸의 뻐근함을 경험해야 했다.

최근 운동 부족인 이유도 있었다.

 

동서울터미널에서 아침 6시 첫차로 전주에 내려가

전주에서 9시 버스를 타고 순창에 간다.

순창에서 10시 15분 강천사 가는 버스를 탈수 있었다.다음 차는 10시 50분에 있었다.

 

 

 

 

산행코스 : 강천사 주차장~강천사~황우제골정상~신선봉~광덕산~시루봉~운대봉~산성산 연대봉~

               강천제2호수~구장군폭포~현수교~강천산~주차장(약 15~16km)

               (초반 러셀 안된 곳에서 왔다갔다 체력소모를 많이 했고

                하산했다가 다시 정상에 오르는 바람에 힘든 산행이 되었다.)

 

 

 

 

순창에서 팔덕과 구림행 버스를 타고 강천사 주차장에서 도착하니

이미 산악회 버스들이 여러대 와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산으로 향하고 있었다.

건물들도 새로 생겼고 어디 리조트라도 온듯한 기분이다.

내가 강천산을 그동안 잊고 있었나 보다.

그저 단풍철이나 몰리는 산으로 인지하고 있었던건 나의 무지이기도 했다.

 

 

 

 

나야 교통편이 용이하지 않아 그랬지만,

입장료 3천원이 있어 산악회에서는 주로 다른곳을 들머리로 삼곤 하는데

많은 단체객들이 이곳 강천사 입구를 이용하는것이 의아하게도 느껴졌다.

하기야 강천사와 구장군폭포를 중심으로 좌우 어느쪽으로든 짧게 또는 

길게도 산행할수 있어 용이한 입구인 것은 확실할 것이다.

입구에서 만난 여산우님도 반가웠답니다.

 

 

 

 

 

관리차원에서 받고 있다는 입장료 3천원을 내고 들어서면

처음 병풍폭포를 만난다.

인공폭포라는 이미지가 있어 받아들이기 나름이겠지만 그래도 한여름,

쏟아지는 폭포수 소리는 이곳을 찾는 이들에게 청량감을 전해주기 충분하겠다.

강천산은 더 안쪽에 있는 구장군폭포와 함께 인공폭포로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산객들은 보통 이곳에서 우측으로 깃대봉과 강천산을 향해 오르는게 일반적이다.

물론 구장군폭포까지 가서 산성산으로 오르기도 한다.

강천산에서는 바로 구장군폭포로 내려서거나

강천산을 지나 북문 거쳐 금성산성으로 가거나, 길게는 광덕산까지 돌던지~

 

나도 처음엔 이곳에서 오르려고 했다. 컨디션이나 시간봐서 짧게 돌던지 조금 더 길게 돌던지~

그런데 모든 산객들이 깃대봉과 강천산 방향으로 오르니 갑자기 마음이 바뀐다.

이왕이면 좀 한산한 곳으로 오르고 싶다.

 

 

 

 

 

그래서 강천사 방향으로 임도따라 걸었다.

구장군폭포와 현수교에 다녀오는 분들이 간간이 보일뿐

산행객들은 보이질 않는다.

 

 

 

 

 

887년 진성여왕 1년에 도선국사가 창건하였다는 강천사에 잠시 들러본다.

불교전파를 위해 전국을 다니던 도선국사가 이곳 전북 순창군 팔덕면 청계리

광덕산 줄기에 터를 잡고 천태만상의 기암절벽과

사계절 맑은 계곡물이 흐르니

천고의 빼어난 절경에 감탄해 강천사(옛이름 복천사)를 세우게 된다.

 

옛 유명한 고승들은 발길 닿는데마다 사찰을 세우고 그의 이야기들이 끊이질 않으니

인터넷 없던 세상에도 그들의 명성은 천리를 퍼졌어라~

 

 

 

 

강천사를 나와 오늘 나의 고행은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

전망대와 광덕산을 오르려면 굳이 이곳이 아닌 구장군폭포쪽으로 가다가 현수교쪽에서 오르면 되었을텐데

삼인대 앞에서 광덕산과 전망대 오르는 이정표가 보이고 발자국이 보여

누군가는 오른줄 알고 이 길로 들어서게 된다.

 

*삼인대는 이곳 삼인대 앞에서 조선 중종때 폐위된 신비(훗날 단경왕후로 복위) 복위 상소를 올렸던 삼인의

  충위를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곳이다.*

*봄이 되면 300년 된 모과나무도 둘러보면 좋겠다.*

 

 

 

 

 

처음에 나있던 발자국 하나는 삼인대에서 되돌아간 흔적이었고

이 황우제골 갈림길에서 나는 여러차례 이쪽으로 갔다 저쪽으로 갔다

그냥 되돌아 내려갈까 갈등을 해야 했다.

광덕산과 전망대로 가려면 우측으로 가야하고 계속 직진은 황우제골 정상 들렀다가

신선봉 들러 광덕산으로 가는 길이다.

우측 전망대 방향으로 해서 광덕산을 가려 하다

가보지 못한 황우제골정상으로 오르기로 한다.

 

쌓인 눈이 많지 않아 보이지만 없는길을 만들어 간다는 것은

길인지 아닌지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불신

체력적인 한계에 부딪치기도 한다.

 

 

 

 

황우제골 정상으로 오르며 뒤돌아 보니 한번씩 눈보라가 몰아친다.

무난하기만 한 길이지만

게다가 겨우 강천사에서 황우제골 정상까진 1km 남짓 짧은 거리지만

확신이 없는 상태에서 러셀 안된 처음 오르는 길은 너무도 길게 느껴졌다.

눈으로 덮혀 알수없던 얼음길에 넘어지기도 여러번을 해야했고

이 짧은 거리에서 체력을 너무 소진해 버렸다.

 

 

 

 

그렇게 황우제골 정상 이정목을 만난다.

다른 계절도 이쪽으론 그리 왕래가 많은 곳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저기 옥호봉쪽에서 넘어오는 사람들도 있었을테다.

아까 강천사 입구 초반부터 옥호봉 코스는 모두 통제가 되어 있던터라

이 길은 특히나 더 사람이 지나지 않았으리라.

 

어쨌든 다시 이곳에서 0.65km쯤 더 진행하니 신선봉이 나온다.

신선봉에서도 강천사 갈림길이 있으니 황우제골 말고

강천사에서 전망대로~전망대에서 신선봉으로 올랐어도 된단 뜻이었다.

어쨌든 나중에 전체적인 것을 보면 알수 있겠다.

 

 

 

 

다행히 신선봉 막 지나면서 조망터가 하나 나오니

이제야 한숨을 돌릴수 있겠다.

구장군폭포로 이어지는 장군봉 능선과 그 뒤로 산성산 연대봉도 보인다.

 

 

 

 

 

강천사계곡 저 아래로는 구장군폭포와 현수교가 있을 것이고

우측 나즈막한 봉우리에 전망대 팔각정도 보인다.

계곡 건너편에 보이는 가운데 봉우리가 강천산 최고봉인 왕자봉이다.

왕자봉 우측으론 깃대봉,좌측으론 형제봉이~

 

사람들 많이 올라 잘 다져진 저 길을 놔두고

반대편 이곳으로 올라 사서 고생을 한 것이다.

 

 

 

 

그런데 후회 같은건 하지 않는다.

산이란게 어디 편하자고만 오르는 것이었던가.

이왕이면 새로움을 덧입히고 싶음이고

걸어보지 못한 곳으로의 호기심과 열의를 보태고 싶음이다.

 

 

 

 

 

게다가 어떤 산행이 본인에게 힐링이 되어주는지를

자기 자신은 잘 알고 있지 않던가~

사람 많은 길보다는 사색할수 있는 좀 조용한 길을 걷고 싶었다.

그래서 택한 길,육체가 조금 힘들다고 마음마저 힘들진 않다.

소나무숲과 단풍이 함께하는 길~ 이미 보상은 충분히 되고 있었다.

 

 

 

 

 

그렇게 전북 순창군 팔덕면과 전남 담양군 금성면에 걸쳐 있는

563.9봉 광덕산에 올라서니 제법 발자국이 많아졌다.

전망대인 삼선대에서 올랐거나 구장군폭포에서 임도따라 올랐거나

아님 금성산성 내려와 이곳 광덕산 들러 하산했거나..

 

여기 광덕산은 강천산, 산성산 연대봉과 더불어 호남정맥이 지나는 길이다.

몇년전 호남정맥을 걸으며 이곳에 섰던 감회 또한 새롭기만 하다.

광덕산은 이미 두번 밟아봤지만 아까 황우제골과 신선봉쪽을 가보지 못해 한 초반의 결정이기도 했다.

 

 

 

 

이곳 광덕산에서

사진 가운데서 우측 뫼봉과 덕진봉으로 호남정맥은 이어진다.

 

이곳에 서면 지리산과 무등산까지 훤히 볼수 있는 곳인데 아쉽게도 순창 일대만이 들어온다.

왼쪽 뾰족 솟은 산이 아미산이다.

그 뒤로 곡성 동악산과 최악산 형제봉이 일자를 긋는 곳인데 희미할 뿐이고

더 왼쪽으론 문덕봉과 고리봉,지리산이 너울을 그릴텐데

오늘은 그저 예전에 봤던 모습들을 대신 그려볼 뿐이다.

 

 

 

 

 

이제 계단을 내려가 임도를 만나고

저 능선을 따라 시루봉과 금성산성으로 진입할 것이다.

담양 들판 뒤로 보일 조망 좋은 모후산과 무등산,병풍산은 어디메로 사라졌느뇨.

 

 

 

 

 

광덕산을 내려오면 헬기장이 있는 적우재와 만난다.

우측 계단은 내가 내려온 광덕산과 신선봉 방향,

뒤로는 구장군폭포와 강천사로 이어지는 임도길이다.

많은 발자국 대부분은 구장군폭포와 강천사로 나 있었다.

 

 

 

 

 

금성산성 시루봉으로 가는 길~

잘 나있는 길이란 이렇게 편한 것이었다.

처음 신선봉까지 오를때와 비교하니 그저 트레킹이고 편한 산책이었다.

발자국만이 어디로 진행했는지 가늠할뿐~ 

아직 사람 한명을 만나지 못했다.

 

 

 

 

그러니 지금 이 순간, 이 숲의 공기와 나무들은 모두 나만을 위한 것~

친구가 되었다가, 감싸주는 포용자가 되었다가, 리드해주는 안내자가 되었다가~

 

 

 

 

 

 

이제 우측 시루봉 바위가 가까워졌다.

저 시루봉을 올라서면 본격적으로 금성산성으로 진입하는 것이다.

다음엔 저 뒤 금성산성 주차장 방향에서 올라봐도 좋을것 같다.

담양에서 담양온천쪽으로 다니는 교통편이 있었다.

 

 

 

 

비스듬한 바위에 얹혀진 눈 때문인지

마치 여인네 누워있는 옆모습처럼 보인다.

머리에서 이마로 나즈막한 콧등으로~

앵두같은 입술로 그 차가우면서도 신선한 솜사탕이 흘러내린다.

 

 

 

 

 

아무도 없는 이 길에 손짓하던 쥐똥나무도

이제 새 봄을 기다리겠다.

 

 

 

 

 

휴~

그렇게 시루봉에 올라서니 이제 산성권에 접어든 것이고

조금 마음도 편해졌다.

이제 가야할 가운데서 좌측으로 운대봉(북바위)과 연대봉으로 금성산성이 시작된다.

우측으로 점 하나 찍힌듯 눈이 더 많이 쌓인곳이 강천산 정상 왕자봉이다.

 

 

 

 

 

내가 걸어온 가운데 신선봉 능선에서부터 우측 광덕산으로~

그 아래 구장군폭포로 이어지는 임도길도 보인다.

왼쪽 뒤 강천산 왕자봉도 강천산계곡으로 흘러든다.

 

 

 

 

 

왼쪽 광덕산에서부터 빙 둘러 걸어온 길이다.

오른쪽 뒤 삼단 크기로 늘어서 있는듯한 아미산도 보인다.(가장 큰 봉우리가 아미산)

가운데 뒤가 지리산권인 문덕봉~고리봉 라인이고

그 뒷줄이 지리산인데 잘 드러나질 않는다.

 

 

 

 

 

성곽길 따라 가운데 뾰족한 철마봉이 보이고

바로 뒤로는 담양호와 추월산과 우측 뒤론 내장산도 보일텐데

저쪽 방향으론 특히나 안개가 쉬 걷히질 않는다.

 

 

 

 

 

잠시 올랐다 내려온 까칠한 시루봉은

무등산과 병풍산쪽이 보이질 않으니 조망이 그닥 잘 트이진 않는다 느껴졌다.

위험하기도 해서 겨울엔 굳이 오르지 않아도 되겠다 싶었다.

 

 

 

 

 

벚나무로 기억하는 두 구루도 여전히 멋스럽게 있었네~

4월,벚꽃이 필때 이곳을 지나는 그 황홀함은 어찌 견뎌낼지

벌써부터 꽃 피는 봄이 기다려지기도 한다.

 

 

 

 

 

금성산성 동문터 앞에 다다르니

건너편 강천산이 시원하게 다가온다.

금성산성은 광주리처럼 가장자리가 높고 중앙이 낮은 고로봉의 지형에 쌓아

풍부한 물과 넓은 활동공간을 갖는 장점이 있었다고 한다.

 

 

 

 

 

금성산성은 13세기 중반 고려시대에 처음 만들어진 것으로

조선 태종 10년(1440년)에 고쳐 쌓았다.

원래 4개의 성문이 있었는데

남문과 북문은 복구가 되었고 동문과 서문은 성터만 남아있다.

 

금성산성은 산성산(603m)을 주봉으로 운대봉과 시루봉,철마봉 등의

가파른 능선과 깍아지른 암벽을 이용하여 골짜기를 이용하여 쌓은 포곡식 산성으로

임진왜란 의병의 거점지기도 했고

동학혁명군의 전봉준이 주둔하기도 하였고 농민군의 안타까운 전투와 희생이 있던 곳이었다 한다.

 

 

 

 

동문터는 성벽을 따라 옹성이 형성되어 있고

그 끝부분엔 높게 쌓은 망대의 형태로 되어 있다.

 

*옹성이란 성의 문을 보호하고 성의 방비를 위해 튼튼히 하기 위해

  성문 밖으로 반원형이나 방형 등으로 쌓은 작은 성을 말하고

*망대란 적의 동정을 살피기 위하여 세운 높은 대로 금성산성에서는 이 동문이 유일하고

  특히 동문은 다른 문지보다 성벽이 높고 특이한 옹성 형태를 가지고 있다 한다.

 

 

 

 

 

마치 한바퀴 휘몰아치는 듯한 강천산과 산성산,광덕산의 형세답게

모든 산자락은 가운데 강천계곡으로 흘러든다.

좌 강천산 정상 왕자봉과 가운데서 살짝 우측 뒤로 무이산과

우측으론 옥호봉과 장군봉 능선으로 한바퀴를 돌아 굽이친다.

 

 

 

 

 

왼쪽 뾰족한 광덕산을 거쳐 우측으로 오늘 걸어온 길이다.

그 뒷라인 내 머리 뒤로 뾰족한 아미산이 있고

아미산 뒤쪽으로 영화 곡성으로 더 유명해진 동악산 최악산 라인도 알아볼수 있겠다.

 

가운데서 좌측으론 지리산권인 고리봉~문덕봉이다.

희미하지만 그 뒷줄 천왕봉부터 반야봉 왕시루봉으로 이어지는 지리산도 보인다.

시계 좋은 날 다시 서보고 싶다.

지리산이며 무등산,병풍산,모후산,추월산,내장산 등이 거침없이 펼쳐질 것이다.

 

 

 

 

동문터에서 바라 본 산성길과 소나무와 북바위가 아주 멋드러진다.

사진 찍고 조망 감상하고 있을때

드디어 대여섯명의 산객을 처음으로 만나게 된다.

초반에 그렇게 많던 사람들은 모두 마치고서 내려간 것인지

여튼 방향을 조금 달리했을 뿐인데 주말 산중은 조용하기 그지 없었다.

 

 

 

 

 

이러고 놀고 있어도 되는건지

생각했던 것보다 시간은 많이 지체되었다.

처음 러셀하면서 왔다갔다 갈팡질팡하다가 체력소모를 많이 하였고

곳곳에서 많이도 쉬며 놀며 늑장도 부리고 왔다.

 

 

 

 

 

곳곳엔 강천사와 구장군폭포로 빠지는 갈림길들이 있어

정 힘들면 바로 하산을 하려 한다.

이젠 정말 걸어보자.

멋진 소나무와 함께 북바위로 간다.

 

 

 

 

 

아까 만났던 대여섯분은 동문삼거리에서 강천사로 빠지고

한분만이 북바위로 힘겨운 걸음을 떼고 있었다.

내가 늑장을 부리는 사이 잠시후 저분마저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북바위에 도착해 지나온 길과 우측으로 시루봉을 본다.

시루봉 뒤쪽으로 담양의 병풍산 삼인산 불태산은

여전히 안개속에 오락가락 영 시원치가 않다.

병풍산~삼인산도 조망 좋은 겨울산으로 기억에 남았다.

 

 

 

 

우측 끝이 북바위 위쪽이다.

북바위와 운대봉을 같이 표기하고 있지만

운대봉은 북바위 지나 산성산 정상인 연대봉 사이에 삼각점이 따로 있는걸로 알고 있다.

오늘은 쌓인 눈으로 보진 못했다.

 

 

 

 

 

신선봉과 장군봉 능선, 그리고 광덕산으로~

그 아래 길게 구장군폭포로 이어지는 임도도 보인다.

좌측 끝 맨 뒤가 순창 무량산,우측 끝은 아미산과 그 뒤가 동악산.

 

 

 

 

 

저 위로 산성산 정상인 연대봉이 보인다.

넓게는 이 전체를 강천산으로 부르기도 하지만

엄밀히는 금성산성 한바퀴 성곽을 따라 있는 봉우리들을 산성산으로 봐야할것 같다.

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에도 시루봉을 산성산이라 칭하는데

그 중에 저기 최고봉인 연대봉에 담양측에서 산성산이란 정상석을 세운 것이다.

강천산 최고봉인 왕자봉(584m)보다 저 연대봉(603m)이 해발도 높다.

 

 

 

 

연대봉에서 뻗어내린 바로 앞 송낙바위능선은 아래 강천저수지에 닿고

오른쪽 위가 강천산.

강천산 왼쪽 뒤론 용추봉과 여분산 회문산 일대가 시원스럽게 자리한다.

이쪽보다 눈이 더 내린듯 하다.

눈 쌓인 겨울 산줄기는 어디라도 아름답다.

 

 

 

 

이곳에서 강천계곡을 향해 내려다 보면

이제야 정확히 딱 반을 돌아온 것을 알수 있다.

좌측은 강천산 왕자봉,저 뒤 가운데서 살짝 오른쪽은 무이산.우측은 옥호봉과 전망대인 삼선대가~

아래 강천사계곡엔 뾰족 솟은 암벽에 구장군폭포가 보인다.

 

 

 

 

 

좌측 봉우리가 무이산,

그 우측 뒤로 보이는 산이 순창의 용궐산과 무량산쯤 되겠다.

무이산 앞 우측으로 툭 튀어나온 옥호봉과

정확히 가운데 전망대인 삼선대 정각도 보인다.

 

 

 

 

산성산 연대봉(603m)에 도착.

강천산부터 올랐다면 쉬 밟을수 있었던 연대봉을

참 오랫동안 돌아온 느낌이다.

어쨌든 줄 서 남겨야 했을 정상 인증도 내 맘대로 실컷 날려본다.

 

 

 

 

왼쪽 광덕산에서 헬기장 임도로 내려와 다시 시루봉으로 올라

북바위를 거쳐 연대봉에 이르른 길이 한눈에 펼쳐진다.

금성산성은 장성 입암산성과 무주 적상산성과 함께 호남의 3대 산성중 하나로

산성의 미학도 살펴보면서

금성산성만을 한바퀴 돌아보는 것도 좋은 코스가 될것으로 보인다.

 

 

 

 

이젠 왼쪽 아래 제2 강천호수(강천저수지)도 보이고

우측 위론 삼선대 전망대가~

전망대와 연결된 그 아래 구장군폭포도 위에서 보니 바위형태 예사롭지 않다.

그 계곡따라 조금 내려가면 가운데 조그맣게 보이는 주황색 현수교도 찾아보자.

 

 

 

 

 

벌써 오후 3시가 되었다.

겨울산행치곤 늦은 시간이다.

산객들 사라진 산중엔 까마귀들의 비행만이 정적을 깨트리고 있었다.

이젠 좀 서둘러 하산해야겠다.

 

 

 

 

연대봉에서 내려서는 이 길을 나는 참 좋아한다.

시야는 탁 트였고 산성길은 험하지 않아 좋고~

가운데 형제봉과 왕자봉으로 이어지는 강천산 능선 왼쪽 뒤로

여분산,회문산 능선도 이 풍경에 빠지면 안되겠다.

 

 

 

 

 

송낙바위가 있는 강천저수지 갈림길에서

오늘 두번째 갈팡질팡 하는라 시간을 좀 많이 까먹게 된다.

바로 구장군폭포로 하산하자니 조금 아쉽고

그렇다고 북문 돌아 강천산으로 가자니 시간이 좀 늦은감이 있고

 

 

 

 

 

아쉬운 마음에 북문쪽으로 100m쯤 갔다가 다시 삼거리로 돌아왔다.

아무래도 시간이 늦어질것 같다.

강천산과 북문쪽으론 많이 가봤으니 그냥 접기로 하고 구장군폭포로 하산 시작한다.

 

 

 

 

 

제2 강천호수로 내려서니 호수는 마치

운해가 떠도는 것처럼 몽롱함이 느껴졌다.

좌측 송낙바위에서 우측 뒤로 보이는 저 능선을 따라 돌면 강천산 형제봉과 왕자봉으로 이어진다.

 

 

 

 

 

수량이 부족하니 물을 끌어와 폭포를 만들었다 뿐이지

저 암벽과 기암들은 원래 이 산의 주인들이다.

인공폭포라는 오명이 좀 아쉽지만

근처의 선운산이나 내변산의 그 암봉들처럼 웅장함은 어디에 내놔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구장군폭포의 겨울 근엄함이다.

 

 

 

 

 

 

구장군폭포는 아홉명의 장수가 죽기를 결의하고 전장에 나가

승리를 얻었다는데서 이름이 붙여졌다.

고드름과 빙벽으로 변한 구장군폭포는 이 자체로 웅장함이 느껴진다.

 

 

 

 

 

계곡을 따라 강천사와 주차장으로 나가는 길.

구장군폭포까지 가볍게 거닐다 가시는 분들도 종종 보인다.

가을 단풍철이면 인파로 미어지던 곳이 또 다른

운치있는 겨울길이 되어 있었다.

 

저기 구멍이 쑹 뚫린곳은

옛날에 뇌암과 설담이라는 수도승이 저 굴에서 도통했다는 수좌굴이란다.

 

 

 

 

현수교를 그냥 지나치려니 아쉬워 잠시 올라본다.

1980년에 설치된 강천산 현수교는

길이 78m에 높이 50m, 폭 1m로 예전엔 참 높고 길다 느꼈는데

요즘엔 경쟁이라도 하듯 산중에 워낙 높고 긴 다리들이 생겨나니

그저 강천산 현수교는 이제 아담함으로 승부를 걸어야 할 판이다~^^

 

아무리 크고 높은 다리들이 생겨난들

40년 가까운 시간,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었으니

그 세월을 어찌 헛된 것이라 가벼이 여기겠는가.

다리 건너 저기 목책 따라 올라가면 전망대로 오를수 있다.

 

 

 

 

산중에 다리가 생겨나면 한동안 구름처럼 인파가 몰려든다.

진안 구봉산도 그랬고,최장거리였다는 파주 감악산도 그랬고

이제는 최장거리가 또 바뀐 원주 소금산도 그렇다.

 

나는 유행에 민감하지 못한 사람이다.

특히 산에 대한건 더더욱 그러하다.

예전에 다녀온 곳들이지만 정작 다리가 생긴 뒤론 아직 가보지 않았다.

조금 잠잠해질때~조금 잊혀져갈때 고즈넉한 길을 걷고 싶음이다.

 

어쨌든 마무리해야 하는 시간인데 얼굴빛이 그닥 좋지만은 않다.

서운함이 남아서다.

안되겠다.

여기서라도 다시 강천산에 올라봐야겠다.

 

 

 

 

이런 내가 황당하지만 어쩔수 없다.

몇번의 버스를 갈아타고 오가는 대중교통으로의 여정,

서울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그 아쉬움을 가득 안을바엔 차라리 다녀오는게 낫다.

바닥까지 내려왔다가 다시 깔딱을 치고 올라가야 하는 1km는

더 이상 1km가 아니었다.

이럴바면 아까 하산하지 말고 그냥 북문으로 돌아왔어야 했다.

어디 이럴줄 알았는가 말이다.

 

체력은 이미 고갈된 상태,

아무리 천천히 오른다해도 숨은 턱까지 차오르고

발은 천근만근~이렇게도 1km가 길수 있는 것인지~

짧은 거리로 정상을 밟자면 급한 경사가 이어지는건 당연한 이치 아니던가.

지리산 천왕봉을 중산리에서 오르는거나,설악산 대청봉을 오색에서 가파르게 오르는것처럼 말이다.

 

 

 

 

정상인가 싶어 올라오니 전망대다.

다리가 풀리려 한다.

잠시 목책앞에 주저앉아 내가 오늘 처음 올랐던 곳이 어디인지를 짚어본다.

 

 

 

 

 

아래 방금전 올라왔던 현수교가 보이고

현수교 건너 목책 따라 오르면 전망대 삼선대가 있고

삼선대 뒤쪽으로 신선봉과 가운데 뒤 뾰족 솟은 광덕산이 보인다.우측이 장군봉 능선.

현수교에서 목책 따라 전망대 들렀다가 광덕산으로 갔더라면 쉬웠을텐데

나는 좌측 끝 황우제골로 올라 신선봉~광덕산으로 걸은 것이다.

 

아주 편안한 길이었는데

처음 황우제골에서 신선봉 가는 길에 우왕좌왕하다 힘을 너무 들인 것이다.

 

 

 

 

왼쪽 무이산과 가운데 앞은 옥호봉.

옥호봉 아래에도 산책로처럼 목책길이 조성되어 있었는데

옥호봉과 그 길은 겨울이라 그런지 통제가 되어 있었다.

 

 

 

 

 

아~드디어 끝을 본다.

강천산 정상 왕자봉(584m)이다.

전북 순창군 팔덕면과 전남 담양군의 경게에 위치한 강천산은

용이 꼬리를 치며 승천하는 모습과 닮았다 하여 용천산이라 불렸었다.

강천사를 용천사로 하였듯이 대동여지도를 포함한 조선시대 각종 지도에도

강천산은 용천산으로 표기되어 있다.

조선 선조때 송익필이란 사람이 지은 숙강천사라는 시에서 비롯된 것이라 한다.

 

호남정맥은 강천산 뒤쪽 오정자재에서 산행들머리를 삼아 강천산에 오르게 된다.

 

 

 

 

 

강천산은 1981년 1월,우리나라 최초의 군립공원에 지정되었다 하니

그 시절 관광지나 지자체 행사며 활동이 많지 않았을때의 군립공원 지정은

발 빠르던 일이 아닐수 없다.

 

뭐니뭐니해도 강천산의 백미는 가을 단풍에 있겠다.

저 아래 계곡을 수놓는 붉디 붉은 단풍과 계곡에 흐르는 수정같이 맑은 물.

그 위를 거니는 현수교의 사람들과 어우러져 가을 강천산은 형형색색 화사하기 그지없을 것이다.

물론 4월의 벚꽃 마중도 볼만할 것이다.

 

 

 

 

어렵게 다시 오른 강천산이니 밀려오는 뿌듯함과 더불어

온몸이 후들거리는 느낌도 어쩌질 못하겠다.

지난주 그 지난주 계속 산행다운 산행을 하지 못했으니 몸이 반응한 것이다.

 

나는 일주일에 한번 산이 아니라면 운동이란 전무한 사람이다.

그러니 일주일에 하루 산에 오르는 것은 내 유일한 운동이자 취미인 것이다.

운동을 집 앞 공원에서 하는지, 헬스장에서 하는지

산에서 하는지의 차이일 뿐, 그저 좋아하는 산을 택한 것 뿐이다.

 

산행블로그.

당연히 산행기만 올라오니 늘 산만 다니며 사는줄 착각하시는 분들도 계신다.

그렇지 않답니다~^^

그저 산에 들었을땐 이 산에 충실하려 노력할 뿐~

 

 

 

 

오후 5시가 넘어선 시간.

내려서야 하는데 넋놓고 앉아 발길이 떨어지질 않는다.

 

좌측 삼인대 입구 황우제골에서 황우제골정상과 신선봉,광덕산 거쳐 우측 시루봉 오르기까지~

가운데 뾰족봉이 경기도 포천 천문대가 있는 광덕산과 이름이 같은 광덕산이다.

광덕산은 천안 광덕사 호두나무로 유명한 광덕산도 있다.

왼쪽 뒤로 바위봉이 멋진 순창의 아미산도 보인다.

 

 

 

 

가운데 시루봉과 운대봉(북바위)을 지나 우측 산성산 정상인 연대봉으로

오늘 걸어온 길들도 벅찬 마음으로 마지막을 바라볼수 있었다.

 

하산해 주차장에 도착하니 5시 50분.

다행히 6시에 순창 나가는 버스를 탈수 있었다.순창 경유해 광주로 가는 버스였다.

오후엔 4시 20분,5시,6시로 교통편도 이만하면 나쁘지 않은 편이고

잊고 있던 강천산은 단풍철이 아니어도 겨울산의 매력 가득했다.

 

 

 

 

 

무려 7시간이나 결려 산행이 마무리 되었다.

세상에 쉬운 산이란 없다는 걸 다시 한번 느끼는 날,

순창에서 전주로 나가 다시 전주에서 서울로 돌아오는 버스 안~

아주 오랜만에 온 몸이 뻑적지근하고 여기저기 근육통이 생겼다.

몸은 힘들고 지쳤지만 돌아오는 마음만은 가벼워졌다.

스스로에게 치하해주고 싶은 날이었다.참 했고 애썼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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