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빈, 길을 나서다 ~

설악산 한계령과 주전골

작성일 작성자 효빈

3월.

그 첫 시작은 남도일거라 생각했는데

가는 겨울을 잡고 싶던 마음에 설악이 꿈틀거리고 있었나 보다.

 

올 겨울 유독 가물었던 강원도에 모처럼 눈소식이 들려왔지만 폭설.

오대산과 설악산 전면통제란 소식을 들었지만

혹시나 하는 기대 하나로 무작정 한계령을 넘어가 본다.

 

 

 

한계령에 도착해보니 와우~눈이 많이 내리긴 했다.

중청과 대청쪽으론 70cm가 넘게 내렸다 하니

역시나 한계령이나 오색에서 대청봉 오르는 모든 길이 통제.

 

오전 9시 30분이 넘어서면서 저지대인 주전골과 용소폭포,비선대는 

막 통제가 풀렸다는 소식이 그나마 위로가 되어 주었다.

 

 

 

 

여기까지 와서 그냥 돌아갈수는 없는 일,주전골 입구로 왔다.

오색약수 앞을 지나는데 눈이 쌓여 약수터는 흔적마저 찾아볼수가 없다.

그래도 아까 한계령 내려올때와 비교해보니 여긴 눈이 덜 내렸고

따뜻한 날씨에 빠르게 녹고 있었다.

 

어쩌다보니 통제가 풀리고 첫 산객이 되었다.

서울 모 산악회서들은 무박으로 설악산 오는 일정도

폭설과 강풍으로  모두 취소가 되었으니 오늘 설악 주변은 그야말로 조용한 3월을 시작하고 있었다.

 

 

 

 

등로엔 발자국 하나가 있었는데 국공 직원분께서 점검하러 오르셨고

용소폭포 가까이 갔을땐 반대편 용소탐방센터에서 길 정비하고 내려오시는

두분의 국공분들을 만날수 있었다.

그분들은 아직 통제가 풀린지 모르고 계셨다.

 

 

 

 

 

어쨌든 통째로 전세낸듯한 주전골로 고고 해봅시다요~

천불동계곡의 축소판이라는 주전골에 들어서면

언제나처럼 독주암이라는 멋드러진 바위 하나가 우뚝 섰다.

정상부엔 겨우 한사람 앉을 정도로 좁다하여 독좌암이라 하다가

현재는 독주암이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주전골은 가을 단풍이 물들었을때 가장 아름답고

가장 사람들이 몰리는 시기이기도 하다.

그 화려하던 단풍들 다 사라지고 없지만

이런 고요한 겨울 산수화는 또 어떠한가.

보는 사람마저 마음이 다 평온해지는것만 같다.

 

 

 

 

무릉도원이란게 별거였겠는가.

1447년(세종 29년) 무릉도원의 꿈을 꾼 안평대군이

그 모습을 설명해 안견에게 그리게 했던 몽유도원도.

그 꿈속의 무릉도원을 안견은 비단에 수묵담채화로 그려냈다.

 

 

 

 

 

복숭아밭이 없으면 어떠하고

비단이 아니면 또 어떠하랴~

이 자연 자체가 비단이고 화단인것을 말이다.

 

높이 올라서야만 설악은 아니었다.

대청봉이나 주능선에 오를수 있는 사람은 제한적이고 일부인지라

이렇게 나즈막하면서도 웅장하고 듬직한 바위들을 보며 걸을수 있는

이곳 주전골은 큰 장점이 아닐수 없다.

 

 

 

 

 

당연한 듯 높은곳에서 바라볼때만이 전부라 생각했었다.

그곳에 선 자만이 모든걸 누렸다 생각했었다.

설악은 특히나 그랬다.

정말 오만함이었다.

 

작년 11월 늦가을의 주전골을 거닐다

이렇게 아름다운 길을 그동안 너무 외면했다 싶은 생각을 했었다.

물론 저지대엔 인파가 크게 몰리는지라 내가 기피한 이유가 되었을 것이다.

 

 

 

 

 

그 가을날의 붐빔도 이제는 다 사라지고

저 천연가루 뿌려놓은 기암들의 도열만이 이 길을 반기고 있었다.

이런 길을 걷게 되면 절로 크게 쉼호흡을 해보게 된다.

이렇게 신선하고 상쾌할수가 없다.

 

 

 

 

 

주전골의 유래야 이제 많이들 아시겠지만 한번 더 옮겨보자면~

옛날 강원 관찰사가 한계령을 넘다가 이곳을 지날 무렵

어디선가 쇠붙이 두들이는 소리가 들려

하인을 시켜 쇳소리 나는 곳을 찾아 살펴보게 하였다.

 

 

 

 

 

하인은 10명의 무리들이 동굴 속에서 위조엽전을 만드는걸 보고

이 사실을 보고하니 관찰사는 대노하여 그 무리들과 동굴을 없애버렸다.

그 이후로 이 골짜기는 위조엽전을 만들었던 곳이라 하여

쇠를 부어 만들 주,돈 전 자를 써서 주전골이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그 위조지폐의 소굴 주전골이 오늘날

기암들과 어우러져 아름다운 단풍명소가 되었고

이 눈내린 날의 마음 저미는 한폭의 수채화가 되었다.

 

 

 

 

 

  

사람들은 왜 첫눈이 오면

만나자고 약속을 하는 것일까~

..

..

 

나도 한때는 그런 생각을 한적이 있었다.

첫눈이 오는 날 돌다방에서 만나자고

첫눈이 오면 하루 종일이라도 기다려서

꼭 만나야 한다고 약속한 적이 있다.

 

그리고 하루 종일 기다렸다가 첫눈이 내린 밤거리를

밤늦게까지 팔짱을 끼고 걸어본 적이 있다.

너무 많이 걸어 배가 고프면

눈 내린 거리에 카바이드 불을 밝히고 있는

군밤장수한테 다가가 군밤을 사 먹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약속을 할 사람이 없다.

그런 약속이 없어지면서 나는 늙기 시작했다.

약속은 없지만 지금도 첫눈이 오면

누구를 만나고 싶어 서성거린다.

 

다시 첫눈이 오는 날 만날 약속을 할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첫눈이 오는 날 만나고 싶은 사람

단 한 사람만 있었으면 좋겠다.

 

 

-정호승의 첫 눈 오는 날 만나자-

 

 

 

 

 

남도엔 이미 한참전에 시작된 봄.

첫눈이 아닌 거의 마지막 눈을 보는 지금에

문득 이 구절이 마음에 들어왔다.

 

약속이 없어지면 늙기 시작한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설렘.

그 설렘이란게 사라지기 시작하면 사람은 늙기 시작했고

의욕이 사라지고 무덤덤한 하루하루가 이어지는~

 

 

 

 

그 대상이 사람이든 사물이든 누군가를 기다릴수 있다는 건 행복이다.

다시 돌아올 이번 겨울엔 첫 눈 오는 날 꼭 누군가를 만나보고 싶다.

 

첫사랑이어도 좋고

존경하던 분이어도 좋고

미안했고 감사했던 분이어도 좋겠다.

 

 

 

 

 

그저 소담스런 첫눈 오는 날

요즘은 점점 사라지고 없는 조금 눅눅한 카페에 찾아 들어가

창밖으로 내리는 눈을 바라보며 얘기해주고 싶다.

고마웠노라고~

미안했노라고~

 

 

 

 

 

막상 다시금 첫눈 내리겨울이 돌아온다면

현실은 그저 현실로 돌아갈지도 모른다.

그래~첫 눈 내릴때가 되었지.잠깐은 좋아 그런데

내일 아침 차가 좀 막힐 것이고

질척거리는 길 걸어나갈려면 참 꺽정스럽겠다~^^

첫눈 오는 날 만나자던 스무살의 감성 충만은 온간데없고 다시금 현실..

 

 

 

 

 

그렇다고 꿈마저 꾸지 않는다면 삶이 너무 삭막하지 않겠는가.

가끔은 현실로 이루어질수 없는 상상의 나래도 삶의 활력이 되주기도 한다.

돌아오는 이번 겨울엔 나를 깨워주는 누구라도 만나고 싶다.

내리는 눈송이들을 바라보며 따뜻한 커피 한잔과 살아있음을 느끼고 싶다.

 

 

 

 

 

이 길엔 저 우람한 바위 하나가 어찌나 듬직한지

사계절 늘 시선을 압도해 버리곤 한다.

단순히 큰 바윗덩어리 같지만 저 안엔 수만가지 표정들이 있었다.

웃고 있는 코믹한 표정도 있고,새침한 아이도

토라져 곧 울것 같은 사람도,부끄러워 하면서도 밀회를 나누는 연인도..

 

 

 

 

 

이렇게 무표정한 사람이었나

가끔 내 표정에 깜짝깜짝 놀랄때가 있다.

짜증을 낼때 자신의 얼굴을 거울로 보라 했다.그 거울속에 누가 있던지를..

억지웃음도 웃는 효과를 만들어 낸다하니

오늘부터라도 스마일~한번 해보자구요~

 

 

 

 

 

겨울산은 포근한듯 그러면서도 고독이란 것이

스멀스멀 엄습해 오기도 한다.

그 고독과 외로움이라는 감정은

혼자 걷는 길을 방해하려 할지도 모른다.

 

 

 

 

 

 

완전히 혼자일때

완전한 자유가 찾아온다.

쓸쓸한 고독 속으로 들어가라.

아무도 없는 곳을 혼자 걸어 가라.

 

아무런 기대도 하지 말고

누가 알아주기를 바라지도 말고

나 자신만이 알수 있고 느낄수 있도록

완전한 혼자로 걸어라.

 

기대를 하고 혼자 걷는 길은 혼자가 아니라

도리어 혼자의 충만한 기운을 약화시킨다.

완벽하지 않은 고독은 고독이 아니다.

홀로 있음을 연습하라.

 

외롭다는 느낌,고독하다는 생각이

모처럼의 홀로 있음을 방해하려 들 것이지만

결코 그 느낌이나 생각에 속을 필요는 없다.

그 느낌이 바로 깨어있음의 신호탄이다.

 

외로움!

그 깊은 뜰 속에

우리가 찾고 있던 그 아름다움이 숨쉬고 있다.

홀로 있음이란 나 자신과의 온전한 대면이다.

 

자꾸 바깥 세계에만 마주하고 살면

온전한 나 자신과 마주할 시간을 읽고 만다.

도리어 그것은 얼마나 큰 외로움이고 고독인가.

 

 

-법정 님의 혼자 걸어라 중에-

 

 

 

 

 

그래~ 그랬다.

아무런 기대도~누군가 알아주기를 바라는 마음도 아닌

그저 나 자신만이 느낄수 있고 알수 있는 이 주체할수 없는 충만함과 희열.

그래서 어디든 떠날수 있는 원동력이 되어줄 것이고

온전히 자연과 대면할수 있는 시간이 되어줄 것이다.

 

 

 

 

 

날이 너무 푹해

눈꽃이 급하게 녹고 있는건 아쉬움이다.

늘 느끼는거지만 겨울산은 좀 차가운게 좋다.

 

하지만 3월 아니던가.

설악이라고 겨울속에서 꽁꽁 숨어 있어야 한다는 법이 어디에 있단가.

그저 3월의 설경이라곤 믿기지 않을만큼 눈이 부실 뿐이다.

 

 

 

 

어디 남도의 꽃만이 꽃이었겠는가.

너무 진하지 않게 흘러가는 구름은 부드럽기 이를데 없고

저 송이송이들은 3월의 설악꽃이 되었다.

 

 

 

 

 

용소출렁교를 지나면 뒤쪽 용소폭포에 이른다.

설경과 어우러지니 인공구조물인들

아름답지 않은것이 없다.

 

 

 

 

 

이 길의 핵심이기도 한 용소폭포다.

그저 구덩이 하나와 주변에 내린 눈과 호흡하고 있을뿐

가을날의 그 화려함은 사라지고 없었다.

그곳이 맞나싶을만큼 소소하기 이를데가 없다.

 

그러나 담담한듯 차분함은 겨울이 주는 매력 아니던가.

이때만 느낄수 있는 이 편안함이 좋다.

 

 

 

 

용이란 이름이 들어간 폭포들이 그러하듯

이곳에도 용이 되려던 이무기 이야기가 전해진다.

옛날에 이 물못에서 천년을 살던 이무기 두마리가 하늘에 오르려 했으나

암놈 이무기가 준비가 안되어 하늘에 오를 시기를 놓쳐

폭포 옆에 바위가 되었다는~

 

 

 

 

 

이 곳을 지날때면 늘 궁금해진다.

그렇다면 수놈 이무기 혼자서 하늘에 올라간 것인지.

정말 그랬다면 의리 없는 수놈 이무기 같으니라구~

암놈 이무기~그래서 친구를 잘 사귀란 말이 있잖여.

너가 사람을 잘 못 본거라구~아니,그노무 이무기 시끼를(^^)~

 

 

 

 

 

3월의 설산,주변의 화사함들 다 사라지고 없지만

그 바위 형태 어딜 가지 않았다.

절묘하게 패인 구뎅이며 세월의 흔적으로 패이고 물결진 바위는

자체로 아름다움이고 위대함이다.

세월을 이겨먹을건 세상에 없었다.자연에 있어서는 특히나 말이다.

 

 

 

 

 

작은 씨앗 하나가 굳은 땅을 뚫고 나와

해마다 이 혹독한 겨울을 이기며 키 큰 나무로 성장해가고

봄이면 연초록의 싱그러움을~

여름이면 시원한 그늘을 내어주고

가을의 단풍과 한겨울 순백으로 뒤덮히는 숲.

 

수천 수만년 시간을 거쳤을 저 바위들이야 말해 무엇하겠는가.

자연은 언제나처럼 그저 올려다보고 경외스런 마음만을 전할뿐.

 

 

 

 

용소폭포를 오르면 이제 용소탐방센터가 지척이다.

잘 있거래이.

이젠 발길도 좀 뜸해질 3월.

조금은 쉼을 가져봐도 좋겠다.

 

물론 우리에게 보이지 않을뿐~

눈길 깊숙히 새 생명을 만드느라 분주한 몸짓들을 하고 있을 터~

그 노고로 다져진 봄날에도 우린 이 길을 걷고 있을 것이다.

 

 

 

 

 

44번 국도가 지나는 용소탐방센터에 오르니 주변 눈길을 넓게 쓸어 놓으셨다.

그런데 입구 문이 잠겨 있어 직원분을 불러야 했다.

 

 

 

 

 

 

이제야 탐방로를 활짝 열어놓으시는 국공직원분.

아직 해제통보를 못받으셔 여전히 통제중이라 생각하셨단다.

그리고 누군가 올라올거라 생각하지 못하신거다.

바람이 아침보다 가히 심해졌다.

 

 

 

 

 

다시 한계령으로 올라오니

오랜만에 내린 폭설을 취재하러 방송국 차량들이 여러대 와 있었고

제설차량과 작업하시는 분들이 곳곳에 보인다.

 

 

 

 

 

그런데 최근에 보도 듣도 못한 최강 바람이 휘몰아친다.

대청봉 정상에서 맞는 바람 그 이상으로 말그대로 강풍이란 이런거란걸 보여주고 있었다.

 

이곳 한계령은 굳이 산에 오르지 않더라도

구불구불 한계령을 넘다 멈춰 사진 찍는 명소이기도 하고

드라이브 코스로도 손색없는 곳이다.

 

 

 

 

눈 소식에 이런 휴일이라면 당연 사람들로 북적이기도 할터인데

어찌나 바람이 거세던지 저 전망대 어디에도 서 있을수가 없었다.

정말 날아간다는건 그런거였다.

뭔가에 의지하지 않고선 서 있을수 없는 바람.

 

물론 한계령에서 오색 방향으로는 사진 찍는 사람들이 곳곳에 멈춰 있었다.

한계령 정상보단 바람이 덜했고 

슬슬 내려가며 일대를 담아보는것도 좋은 그림이 나올 것이다.

 

 

 

 

 

폭설.

강원도 폭설이 어디 신기한 일이었겠느냐만

이번 겨울은 사정이 달랐다.

많이 가물었고 호서(충청도)와 호남의 서해쪽과 달리 눈도 많이 내리지 않았다.

 

그러다 다 저물어가는 겨울~

3월에 들어 맞는 눈소식이니 그 반가움이야~

물론 이 폭설과 강풍으로 기대하던 능선에 오르지 못함은 못내 아쉬움이었지만

어디 꼭 높이 올라야만 맛이었겠는가.

 

 

 

 

설악산은 대청봉을 기준으로 전 구간이 이제 통제에 들어간다.

물론 비선대와 신흥사,울산바위,토왕성폭포,오색약수 등 저지대는 예외다.

해마다 그랬듯 2월 중순부터가 산방기간이라 생각할수도 있었겠지만

올해는 3월 2일부터 5월 15일까지 산방기간(산불방지 및 자연자원보호기간)에 들어갔다.

3월 1일 격정적인 폭설과 눈보라를 남기고

깊은 수면에 들어간 것이다.

 

 

 

 

 

그대들 세상일은 이제 모르겠다.

마치 그 메시지 하나만을 남기고 속세를 떠나는 이처럼

거센 바람에도 그저 고요할 뿐. 평화롭다.

 

 

 

 

 

 

그래~한해동안 수고 많았어요~

산솜다리,바람꽃,솔체꽃,금강초롱,참기생꽃을 비롯 온갖 귀하신 몸짓들 키워주시고

그 바위 하나하나마다에 새 생명을 불어 넣어 주셨으니

그대는 진정 우리의 자부심이고, 온갖 미사여구 넣지 않아도 될 그 이름 설악이십니다.

너른 포용과 인내로 만들어낼 5월의 설악을 기다리며~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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