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빈, 길을 나서다 ~

청량산 대중교통과 등산코스 축융봉~자소봉~장인봉

작성일 작성자 효빈

서울서 당일로 대중교통으로 맞춰 다녀오기엔 그리 쉽지만은 않은 곳.

청량산을 가기 위해선 봉화와 안동에서 버스를 이용할수 있는데

봉화보다 안동 교통편이 나은 편이다.

안동에서 청량산 가는 버스는 오전 5시 50분,8시 50분,11시 50분,오후 2시 50분..

 

터미널 앞에서 청량산 가는 버스를 타는게 아니라 시내로 나가야 하니

서울에서 첫차를 타고 내려와도 8시 50분차를 타기는 힘들다.

그 다음 차 11시 50분 버스를 타면 청량산엔 1시나 도착하게 된다.

간단히 돌아보자면 11시 50분차도 나쁘지 않다만 조금 아쉬움일수 있다.

 

 

 

 

산행코스 : 관리사무소~축융봉~밀성대~산성등산로입구~입석~응진전~자소봉~장인봉~금강굴~관리사무소(약 11.6km)

 

10시쯤 안동터미널에 도착해 무작정 시내버스를 타고

기사님께 청량산에 가려면 어디서 내려야 하는지 여쭤보니

교보생명에서 내리면 되지만 11시 50분차밖에 없으니 온내 가는 버스를 타고

차라리 그곳에서 택시를 타는게 낫다 하신다.

내가 못알아 들을까 몇번이고 온~내 가는 버스라 아주 친절히 말씀해 주신다.

나 역시 온내 또는 옷내 외우면서 감사인사를 하고 교보생명 앞에서 내렸다.

 

 

 

 

다른 곳의 시간표들은 다 붙어 있는데 유독 온내란 지명만 보이지 않아

시민분께 온내 버스표는 왜 없느냐 여쭤보니 ‘온내 거 있잖아요’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니

시상에나~~온혜였다.ㅎㅎ

기사님도 그 시민분도 온내라 부르던 곳은 온혜..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는 꼴이 된 것이다.다시 생각해도 웃음이 난다.

 

 

 

 

10시 40분 버스를 타고 온혜에 도착하니 택시가 보이지 않는다.

도산서원이며 퇴계종택,농암종택,청량산, 선비순례길,학가산휴양림 등등

역사의 고장답게 가볼만한 곳도 많다보니 조그만 마을의 택시들도 분주하긴 마찬가지였다.

 

 

 

 

마냥 기다릴수 없어 방향을 잡아 걷다가 다행히 환경청 소속의 낙동강환경지킴이 님께서

청량산 관리사무소 앞까지 태워주셔 바로 산행을 시작할수 있었다.

님~감사했답니다.

 

정작 정상부엔 마른 나뭇잎만이 나뒹굴고 있었지만

길가의 나즈막한 봉우리들엔 가을빛이 더욱이나 고왔다.

 

 

 

 

벌써 12시다.

청량지문,일주문에서 바로 우측 축융봉으로 길을 잡는다.

오늘의 주 목적은 청량산 주봉우리들이 아닌 건너편 축융봉에서 바라보는

청량산의 모습을 보고싶은 것이다.

 

 

 

 

산악회 따라 청량산을 두어번 와보고도

오고가는 시간 때문이 빠듯해 늘 건너편의 축융봉까지 돌아볼 시간은 주어지질 않았다.

오늘만큼은 정상 장인봉이나 자소봉은 둘러보지 못한다 하여도

축융봉에서의 청량산을 제대로 누려볼 생각이다.

 

 

 

 

이미 낙엽이 더 익숙한 시기가 되었지만

단풍보다 오히려 운치가 느껴지는 길이다.

 

 

 

 

 

10분쯤 올랐을까~

청량산 관리사무소와 상가지대가 보이고

우측 저 청량교를 건너오면 아까 초입의 청량지문이 있는 것이다.

가장 우측 건물의 관리사무소는 문을 닫았고 중앙의 청량산박물관에서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었다.

올라서 본 모습은 마치 일부러 지어 놓은 세트장 같다는 느낌도 들었다.

 

 

 

 

관리사무소와 청량산 사이론

낙동강이 유유히 흐르고 봉화 방향으로 구불구불 도로는 이어진다.

 

 

 

 

 

그렇게 숲길로 한시간쯤 걷다보니 축융봉 아래에 선다.

정상쪽으론 이미 휑해진 초겨울처럼 보였다.

 

 

 

 

 

축융봉(845m)에 올라서니 건너편 청량산 주봉우리들이 나란히 펼쳐지고

낙동강 줄기가 가장 먼저 시야에 들어온다.

 

이미 산중의 단풍이야 다 지고

쓸쓸함이 남은 계절이 되었지만

그저 갈빛의 청량산을 한눈에 다 담아볼수 있는 이 축융봉에 서고 싶었다.

정작 그 속에선 단편적인 모습만을 볼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청량산을 쉬 집어볼수 있게끔 안내도가 설치되어 있는것도 마음에 든다.

 

 

 

 

단풍이 절정이었을때는 얼마나 화려할지 또 눈 내린 겨울날의 청량산은 얼마나 아름다울지.

좌측 최고봉인 장인봉부터 하늘다리를 지나면

가운데 자소봉을 지나고 우측으론 경일봉과 탁립봉으로 이어지는 청량산.

가운데 자소봉 아래엔 청량사가 보이고 그 우측으로 절벽 아래 응진전도 보인다.

하늘다리 뒤로는 태백산에서부터 청옥산,우측으론 면산,비룡산과 울진 백병산으로 너울을 그려간다.

 

 

 

 

좌측 청량산 최고봉인 장인봉은 의상대사가 입산수도한 곳이라 하여

예전엔 의상봉이라 불렀었고 지도에도 그리 표기되어 있었다.

 

선학봉과 자란봉 협곡 위로 하늘다리가 놓여졌으니

더욱이나 이름을 알리게 된 계기도 되었다.

그 안에선 잘 모르겠다가 이렇게 떨어져 보니 선학봉과 자란봉 그 깊게 파인 협곡이

하늘다리를 부른게 아닌가 타당성을 부여해주고 있었다.

세번째 봉인 자란봉 맨 뒤로가 태백산이다.

 

 

 

 

가운데 바위봉이 자소봉,그 바로 좌측으로 더 조그마한 바위들이 탁필봉,연적봉이다.

우측 끝으로 경일봉 탁립봉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이따 산성 입구로 하산해 건너편으로도 올라보고 싶다만

시간이 여의치 않다면 응진전까지만 거닐다 올 것이다.

 

 

 

 

좌측으로 청량사,우측으로 응진전이다.

깍아지른 절벽 바로 아래 조그만 흙길을 다져 건물을 지었으니 응진전은 볼수록 신기함이다.

저 곳을 빙 둘러 길이 난 것도 신기한 일이니

거대 자연 아래 인간의 흔적이 남은 것이다.

멀리서 보니 더욱 그러하다.

 

청량사에서 응진전 가는 길에는 퇴계 이황과도 인연이 깊은 청량정사가 있다.

청량사에선 좀 더 쉽게 하늘다리나 정상으로 오를수 있고

우측 응진전에서 자소봉이나 경일봉 거쳐 하늘다리로 가도 된다.

 

 

 

 

낙동강 건너 왼쪽 산간 마을은

만리산 아래 경북 봉화군 명호면 관창리 남애마을이다.

아직 왼쪽 뒤론 선명하지 않지만 소백산이 맞을 것이고

우측 구룡산으로 이어지는 대간 능선이겠다.그렇다면 가운데 볼록볼록 올라온 곳은

문수산과 옥돌봉이 아닐까 싶다.우측 끝으론 태백산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내려설 산성길 방향과

가운데 뒤로 해와 달을 품은 산,영양의 일월산이 보인다.

조금만 당겨봐도 정상부 통신시설들이 보일 것이다.

 

 

 

 

산성길로 이어지는 길이다.

아까 안내소쪽에선 거리가 더 길고 조망이 트이지 않아서인지 

사람 한명을 볼수 없었지만 산성길은

가볍게 밀성대까지 산책 삼아 오르시는 분들도 자주 보였다.

 

 

 

 

안동호 방향이다.

시야가 깨끗하게 개이진 않았지만 우측 끝으로 학가산도 보인다.

안동에서 버스타고 오다보니 학가산 들어가는 초입도 볼수 있었다.

 

 

 

 

당겨 본 학가산(위)과 낙동강 줄기와 안동호 일대.(아래)

 

 

 

 

 

축융봉 정상은 쪼개진듯 두개의 암봉으로 이루어져 있다. 

건너편 암봉으로 건너와 정상부 한번 담아보고 산성길로 내려선다.

 

 

 

 

 

축융봉을 내려와 산성으로 가면서 뒤돌아 본 모습이다.

 

 

 

 


내려가는 길에도 장인봉과 하늘다리와 청량산의 전 모습이 따라온다.

속속들이 아름답지만 청량산을 제대로 보려면

이 축융봉에 올라보라 말하고 싶다.

 

 

 

 

한번 더 당겨 본 청량사와 응진전.

마치 돌려깍기 한 사과의 겉면처럼 어쩜 저런 모양이 나올수 있는지

봐도봐도 신비롭지 않을수가 없다.

좌측 청량사가 내청량이라면 우측 응진전은 외청량이라 할수 있겠다.

 

 

 

 

더 내려오면 산성길과 만난다.

낙엽마저 귀한 정상부와 달리

아래쪽으론 만추의 운치가 넘쳐나니 걷는 맛도 일품이다.

 

 

 

 

청량산은 예로부터 군사적 요새였다고 한다.

낙동강을 휘감는 험준한 바위산은 외부 침입을 방어하기에도 유리한 조건이었으니

삼국시대부터 신라와 고구려가 영토를 차지하기 위해 각축장이 되었을 것은 알만한 대목이다.

 

 

 

 

처음 산성이 축조된것은 삼국시대로 추정되고

고려 공민왕이 2차 홍건적의 난을 피해 청량산으로 들어와 개축하였다가

임진란 이후에 다시 보수하였다 전해진다.

공민왕은 이곳에 성을 쌓고 군사를 훈련시키며 대반격을 준비하고 있을때

명령을 따르지 않는 군졸이나 백성들을 절벽 끝으로 밀어 처형했다는 밀성대의 전설도 남아 있다.


 

 

 

지금이야 기암절벽이 아름다운 관광지가 되었지만

형벌로 밀어 처벌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오싹함마저 감도는 밀성대다.

 

 

 

 

 

내려선 밀성대.

이 길은 굳이 배낭 없이라도

담소 나누며 마치 도심속의 산성인듯 거니는 것도 좋아 보였다.


 

 

 

산성길을 마무리하고 도로따라 입석으로 내려오니 벌써 2시다.

청량산을 다 돌아보기엔 여유롭지 않지만 그렇다고 그냥 가는것은 더욱이나 하지 못할 일이다.

가볍게라도 돌아볼 생각이다.

청량사와 응진전 방향으로 오른다.



 


이미 낙엽으로 변한 길이 되었지만

늦가을을 느끼기엔 낙엽만한게 없다.

게다가 생강나무 노란 잎은 아직도 한창이니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단풍 든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습니다
몸이 하나니 두 길을 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하며

한참을 서서 낮은 수풀로 꺾여 내려가는 한쪽 길을
멀리 끝까지 바라다 보았습니다


그리고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 똑같이 아름답고,
아마 더 걸어야 될 길이라 생각했지요
풀이 무성하고 발길을 부르는 듯 했으니까요
그 길도 걷다 보면 지나간 자취가
두 길을 거의 같도록 하겠지만요


그 날 아침 두 길은 똑같이 놓여 있었고
낙엽 위로는 아무런 발자국도 없었습니다
아, 나는 한쪽 길은 훗날을 위해 남겨 놓았습니다
길이란 이어져 있어 계속 가야만 한다는 걸 알기에
다시 돌아올 수 없을 거라 여기면서요


오랜 세월이 지난 후 어디에선가
나는 한숨 지으며 이야길할 것입니다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고,나는

사람들이 적게 간 길을 택했다고

그리고 그것이 내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고

 

-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 -

 

 

 

 

살다보면 어느 선택점에서 망설일때가 생겨난다.

어느 길을 택하든 후회하고 아쉬워하는게 인간인지도 모른다.

그  가지 않은 길을 택했더라도 역시나 다른길에 대한

미련과 아쉬움으로 또 다시 한숨 지으며 이야기하고 있을지도~

 

 




훗날 되돌아 볼 것이다.

다른 사람 가지 않은 길을 택함이 두려움이었는지~

좁고 외로운 길이 자신의 길이었는지~


 


 

청량산 기암들과 절경 많고 많지만

금탑봉 아래 응진전이 가장 압권이기도 하다.

저 솟구쳐 오른 바위들 아래 터를 일구고 자리잡은 작은 암자가

오늘날 남아 있다는 것도 감사할 일이고

그곳을 지나간 선조 누군가들도 대단한 위인들처럼 느껴지니 말이다.

 

 

 

 

응진전 옆의 부속건물과 위로 보이는 거대 바위의 재질은

마치 진안 마이산 타포니지형처럼 구멍이 숭숭 뚫린것처럼도 보인다.

 

 

 

 

청량산은 중생대백악기에 퇴적된 역암,사암,이암층들이 풍화, 침식,융기 등의 작용으로 

다양한 지형으로 나타나고 있고

계곡 주변으로 수직 수평절리에 의한 풍화혈과 타포니가 발달하여 그로 인한 경관이 뛰어나니

그 학술적 가치야 말해 무엇하겠는가.


 

 

 

청량산 금탑봉 아래 자리잡은 응진전. 

응진전은 청량사와 같은 연대에 창건되었다 하고

원효대사가 수도를 위해 머물렀던 곳이라고도 전해진다.

전국 아니가본데 없고 자취 없는곳 없으니 원효대사는 진정 몸이 열개라도 모자랐을것만 같다.

 

응진전은 고려 말 노국공주가 16나한상을 모시고 기도 정진한 곳이라 하니

공민왕의 발자취를 대변해주기도 한다.

 

 

 

 

응진전에서 바라보이는 건너편 축융봉이다.

그 옛날 공기마저 청정했을 그 시절,

이 암자에 앉아 세상을 내려다보는 기분은 어떤 것이었을까.

득도를 하였든 적막감이 밀려오든 막연한 그리움은 있지 않았을까.


 

 

 

청량산 하면 역시 청량사를 빼놓을수 없다.

신라 문무왕 3년(663년) 원효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고

창건 당시 33개의 부속건물과 27개의 암자가 있던 대사찰로 신라 불교의 요람을 형성하기도 하였다.

 

원효대사가 청량사 창건을 준비하던 도중 시주로 받아 기르던 뿔이 셋 달린 소가

준공 하루 전날 죽었는데 소를 묻은 자리에 가지가 셋인 소나무가 자라나서

후세 사람들은 삼각우송이라 불렀다는 전설까지.

 

 

 


 

주 법당인 청량사유리보전(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47호)과 5층사리탑이 있고

공민왕이 친필로 쓴 현판 유리보전과

퇴계 이황의 흔적이 남은 청량정사도 둘러보면 좋겠다.

 

청량사는 길지중의 길지로 꼽힌다는데

육육봉(12봉우리)이 연꽃잎처럼 청량사를 둘러싸고 있고

청량사는 연꽃의 수술 자리에 속한다고 한다.

 

 

 

 

그 위로는 저리도 수려한 기암들이 솟구쳐 있으니

예로부터 우리나라 3대 기악 중 하나로 꼽혀왔고 소금강이라 불리던 것도 허튼 소리 아니었다.

저 위의 봉우리들은 직접 보는 것보다 아까 축융봉이나

이 응진전에서 보는 것이 더 아름답다 느껴졌다.

연적봉과 탁필봉과 자소봉이다.

 

 


 

청량사 위로 연화봉.

 

 

 

 

 

 

청량산은 예부터 수많은 거묵들 오간 증거

곳곳에서 알수 있을만큼 일화들도 많이 전해진다.

대문장가 최치원이 수도하던 풍혈대 근처로

최치원이 이 물을 마셔 더욱 총명해졌다고 전해지는 총명수가 있는 곳이다.

 

 

 

 

천길 절벽이 상하로 우뚝 솟은 그곳에

장마나 가뭄에도 일정하게 물이 솟아 난다하니

과거 준비하던 선비들과 이 곳을 지나던 수많은 이들의 발자취가 느껴지는것만 같다.


 



나도 총명수 한잔 해야 할랑가 봐요.

깜빡깜빡 잊기 일쑤고 요즘은 가끔씩 내 머리를 의심해 보기도 하니 말이다.

생각하는 글자 대신 다른 글자가 튀어나오기도 하고

누군가를 만나 당황해 아무말이나 뱉어놓고는 뒤돌아 오면서 내내 후회를 하고..

 

 

 

 

우측 위에서 내려다 보이는 바위 보이는가.

신전을 떠받드는 기둥 위에 마치 신전을 지키는 순둥이 신처럼

그 표정 참으로 귀엽기만 하다.

 

 

 

 

김생굴 앞이다.

 

 

 

 

 

신라의 명필 김생이란 사람이 이곳에서 글씨 공부를 하여 붙여진 이름 김생굴이다.

굴에서 공부한지 9년째 되는 어느날 봉녀라는 베 짜는 여인이 나타나 솜씨를 겨루자 제안하니

김생과 봉녀가 어두운 굴 안에서 글씨와 길쌈기술을 겨루었는데

김생 글씨는 들쭉날쭉한데 비해 봉녀의 베는 올 하나도 틀림이 없었으니

이는 더욱 정진하라는 신령님 계시임을 깨닫고 10년을 채워 드디어 명필이 되었다고 한다.

붓을 씻었다는 우물의 흔적도 남아 있고 김생의 친필이라 추정하는 글씨도 발견되었다 한다.




 

군데군데 파인 김생굴을 보면 해골이나 로봇의 얼굴같다 느끼곤 한다.

저 속 어딘가에서 태권V가 비상할 준비를 하고 있는건 아닌지.

이 청량산을 거쳐간 수많은 시인묵객들의 혼이 서린 곳은 아닐런지도~


 

 

 

그렇게 커다란 바위 봉 하나가 서 있는 자소봉(840m)에 오른다.

자소봉은 원래 보살봉으로 불리웠는데 조선 중기의 문신 주세붕이 자소봉으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 한다.

자소봉엔 무려 11개의 암자가 있었다 하니

그 당시 청량산 불심의 핵심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름에서 유가의 냄새가 나는 탁필봉도 지난다.

탁필봉은 살짜기만 만져도 바스러질것만 같고

흙에 시멘트를 섞어 바른것처럼도 느껴졌다.

깊은 심해에 사는 못난이 물고기처럼도 보였다.

 




저런걸 굳이 뭐하러 써놨을까 촌스럽다 생각한적도 있었는데

오늘 보니 누군가 나를 환영한다 하니 어~기분 나쁘지 않네~^^

가는 이 잡지 말고,오는 이 막지 말라 하였더니 오늘 내가 딱 그 기분이다.

환영해주니 고맙구만요~


선학봉과 자란봉 두 협곡 사이에 2008년 봉화군에서 설치한 하늘다리다.

요즘에야 워낙 긴 다리들이 경쟁하듯 많이 생겨나니

이젠 이 정도에 놀랄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산중 다리가 생기게 되면 큰 이슈가 되고 대중적인 산행지가 되는 것도 사실이다.


 

 

 

게다가 청량산 단풍이 한창일때는 단체 관광객이 몰리는 대표적인 산지이기도 하다.

이 거대 협곡과 주변 봉우리들의 수려함을 외면하지 못함이다.

 

늦은 오후,햇살이 지나치게 강렬하니 사진이 좋지 못하다.

지금 서 있는 곳이 자란봉,건너편이 선학봉이다.

 

 

 

 

선학봉으로 건너가면서 본 맞은편 우측의 축융봉과

그 좌측으로 두리봉이다.

두리봉은 축융봉과 연계해 전체를 한바퀴 돌아도 된다.

 

 

 

 

수직으로 뻗은 기암봉들을 거져 쉬 볼수는 없는 법.

선학봉에서 다시 장인봉 정상으로 가는 길에도 오르내림이 이어진다.

그러니 선학봉과 자란봉 사이에 놓인 하늘다리는 산행이 힘겨운 분들에겐

더욱 큰 디딤돌 같은 것이 되었을 것이다.

 

 

 

 

장인봉 갔다가 금강굴로 하산하는 것보단

다시 빽해 청량폭포로 하산할수 있는데 금강굴쪽보다 훨 수월할 것이다.

금강굴쪽은 좁은 철계단이 수없이 이어져 낙엽 떨어진 요즘은 더욱이나 주의해야 할 길이었다.

 


 

 

 

바위손이 덕지덕지 붙은 장인봉 정상에 오른다.

말라비틀어진 나뭇잎이라도 붙어 있을때가 그나마

덜 휑하다는걸 느끼게 되는 요즘이다.

아직 떨구지 않은 아이들이 있으니 그래~아직은 가을이다.

 

 

 

 

청량산의 최고봉인 장인봉(870m)에 오른다.

청량산이 옛적에는 수산으로 불리다가 조선시대에 와서 청량산으로 부르기 시작하였다 한다.

뛰어난 절경 중국 화엄종의 성스러운 산으로 간주되는 청량산의 영향이 있었으리라.

앞 자소봉에서도 언급되었던 풍기군수 주세봉이 청량산을 유람하다가 명명한

12봉우리(육육봉)가 주축이 되었을 것이다.

 

 

 

 

조망 없는 장인봉 대신 금강굴쪽으로 하산하다 보면

내려설 관리사무소와 상가가 있는 낙동강 줄기가 보이고 

 

 

 

 

 

만리산 아래 관창리 남애마을과

뒤로는 소백산도 이제 실금을 확실히 남겼다.

당겨보면 만리산 뒤로 좌 죽령부터 연화봉 비로봉 국망봉도 확실히 구별되겠다.

 

 

 

 

중국의 청량산 부럽지 않은 우리의 청량산이 예 있소이다.

내려선 장인봉 모습이다.

기암봉이 아름답고 날카로울수록 그 속엔 가파름도 숨겨져 있다는 것.

다 하산시까지 좁은 철계단이 많이도 이어졌다.

 

 

 

 

그래도 중간중간 이런 나무 계단길의

소소한 가을길이 함께하니 흥얼거림은 덤으로 따른다.

 

 

 

 

 

구멍이 숭숭 뚫린것도 같고

자갈을 붙여놓은것도 같은 금강대와 금강굴 옆을 지난다.

금강굴은 퇴계의 제자였던 성재 금난수가 한달간 공부한적이 있고

정안이라는 승려가 수도하며 머물렀다고도 한다.

 

안내문에 의하니 금강암이라는 암자도 있었다 하고 1579년 청량산을 유람하던 길봉 김득연의 기록에서

금강암과 금강굴의 모습을 가늠해볼수도 있겠다.

 

 

 

 

험로를 거듭 지나 마침내 금강굴에 도착하니

굴에 조그만 암자가 있고 암자 밑은 절벽이다.

시렁처럼 얹힌 바위가 곧 기와지붕을 대신하였고 층계구름이 고요히 일었다.

여기는 바로 정안이라는 승려의 거처였지만 돌아올 시간까지 있을수 없어 내려왔다.

바위 끝에서 지팡이에 의지하여 먼 곳을 바라보니 벼랑이 갈라진 곳에 한줄기

물이 철철 흘러 아래로 빙 둘러 내려가서 더욱 이 암자의 빼어난 경관을 도와주었다.(김득연,-유청량산록-)

 

 

 

 

계단이 생기고 등로가 다듬어진 지금도

아래로는 절벽의 아찔함과 가파름이 뒤따르는 곳이니 그 시절이야 오죽했겠는가. 

이 길을 지난 이들의 거친 숨소리가 그대로 들리는듯 하고

절경에 감탄하며 힘듦을 잊었을 갓 쓴 선비의 모습도 아른거린다.

 

그 기록 하나가 후세에 와서까지 그날들을 더듬어 볼 수 있는

귀한 자료가 되었다.

늘 느끼는거지만 기록이란 인류의 위대한 자산이 아닐수 없다.

 

 

 

 

그렇게 들머리였던 일주문 청량지문 앞으로 내려선다.

청량지문을 사이로 축융봉과 금강문 오름길로 갈라지는 것이다.

 

 

 

 

 

청량교를 건너와 일주문과 초입 모습을 뒤돌아보니

좌측 방금 전 내려온 금강대와 금강굴 절벽이 보이고

우측이 처음 들머리였던 축융봉 오름길이었다.

가운데 청량지문 도로따라 올라가면 응진전 올랐던 입석과 산성길이 나오는 것이다.

 

청량산은 산정도 아름답지만

초입에 낙동강을 낀 이 기암절벽 청량곡 빼놓을수가 없다.

 

 

 

 

5시 20분이 넘어서고 벌써 어둑해지려 한다.

시간이 애매하다.

청량산에서 안동 나가는 버스는 오후 4시 20분,그 다음이 7시 30분이었다.

행히 막 청량사에서 나오시는 분께서 태워주셔 온혜로 나갈수 있었다.

 

온혜에서 버스를 타고 안동 종점인 교보생명에서 내려

터미널 가는 시내버스를 타니 기사님 어찌나 반가워 하시던지

이 동네는 기사님들이 다 친절하신가보다 했다.

버스는 잘 탔느냐 택시비는 얼마나 나오더냐 왜 이리 늦게 왔느냐 등등을 물으신다.

 

 

 

 

아~그제서야 오전에 온혜(온내~^^)를 가르쳐주신 그 기사님이란걸 알았다.

아는 이 없는 낯선 지역에서 잘 다녀왔는지 반가워 해주고

안부를 물어주시는 분이 있다는게 너무도 감사하게 느껴졌다.

오고 가며 만난 분들의 온화한 미소와

기암 절경이 어우러진 청량산의 늦가을은 그 자체로 아름다움이었다.

 

내 산행의 힐링 포인트지만 교통편이 좋지 못한 곳을 다니다보면

대중교통으로의 여정을 그만 두어야 할지 고민도 하게 된다.

그럼에도 늘 도움주신 분들이 있어 다시금 나서게 되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수월치 않았던 교통을 대신해 도움주신 경북의 님들 감사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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