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빈, 길을 나서다 ~

북한산 보현봉과 문수봉~비봉능선

작성일 작성자 효빈

꼭 한번 가보고 싶었지만

비탐이라는 족쇄가 부담스러워 가고픈 맘 꾹 누르고 있었던 곳.

북한산에서 기가 가장 세다는 곳~보현봉 이야기다.

 

 


산행코스 : 평창공원지킴터~청담샘~보현봉~대남문~문수봉~비봉능선~불광공원지킴터~버스정류장(약 10km.)

                (자주 접하는 비봉능선은 간단하게, 처음 포스팅하는 보현봉과 문수봉 위주로 정리해 볼 생각이다.)

 

주말엔 이래저래 바쁜 일들이 있어 산에 가지 못하니 금요일 짬을 내본다.

지하철 3호선 불광역 2번 출구로 나와 녹번파출소쪽으로 길을 건너 7211번 버스를 타면 된다.

서울예술고등학교 앞에서 내려 길을 건너 06번 마을 버스를 탄다.             

 

 

 

06번 마을 버스를 타니 평창동 언덕 높은 마을을 돌고돌아 평창공원지킴터 앞에 이른다.

예전 주말연속극이나 드라마속의 부잣집으로 많이 나오던 그 동네.

대문 넓고 담장 높은 주택가를 따라 한바퀴 돌아보는 것도 색다른 여행처럼 느껴졌다.

버스에서 알아보시구 인사 건네주신 일산의 님도 반가웠답니다.

 

 


12시가 다 된 시간.

초입에서 일선사까지는 1.7km

일선사로 바로 가기도 하지만 그 전에 청담샘쪽으로 빠지는 길을 택할 것이다.

그동안 한번도 걸어보지 못했던 평창동길.

새로운 기분으로 새로운 북한산을 만나러 가는 길에 봄 햇살 같은 따사로움이 퍼져든다.

 

 


벌써부터 보현봉이 올려다 보이니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

길은 잘 찾을수 있을지 기대 반 걱정 반으로 가슴은 이미 두근두근.

한가지 확실한 것은 늘 다니는 길의 무덤덤함이나 권태로움은 찾아볼수 없다는 것이다.

 

 


반대편 주요 봉우리들에서만 보던 보현봉을

내 오늘 만나러 가요~

얼마나 기가 세다는 것인지 내 오늘 확인해 보겠어요~

 

 

 

일선사로 가지 않고 청담샘쪽으로 빠져 오른다.

보현봉 기가 샘물까지 전해진다 하니 나도 한잔 맛을 보고.

 

 

 

청담샘에서 겨우 10여분 올랐을까.

조망처 바위에 이르기까지 까칠할거라 생각했던 것과 달리 오솔길이지만 길은 잘 나 있었고

이미 어디에선가 기도문 소리인지 정체모를 소리 울려퍼지고 있었다.

 



나는 중간의 평창계곡을 따라 올라온 것이고

좌측은 형제봉 능선,우측은 구기동에서 시작하는 사자능선으로

모두 보현봉을 오를수 있는 주요 능선들이다.


가운데 뒤로는 청와대를 발 아래 두고 있는 뾰족 북악산과

그 우측으로는 북악산과 연계산행들 많이 하는 인왕산과 안산이다.

세 봉우리가 언제나 한 세트처럼 한양도성의 중심에 서 있는 것이다.

시야가 활짝 개이진 못해 뒤로 북악산 뒤로 남산만이 희미하게 보일 뿐,

청계산이며 관악산 수리산 광교산 등은 뚜렷하지가 않다.

 

 

 

길다란 용마산과 아차산 능선 뒤로 흐릿하게 예봉산 자락도 들어온다.

흐릿함에도 우측 길쭉히 솟은 잠실제2롯데는 알아볼수 있겠다. 
 

 

 

당겨 본 용마산 아차산과 그 뒤로 좌 예봉산 예빈산과 가운데서 우측으론 하남의 검단산이다.

그러니까 저 가운데 뒤론 팔당댐이 있겠고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두물머리 일대겠다.

며칠전 한강에 나가 바라보니 예봉산에 공사중이던 강우레이더가 완공된 것인지 아직인지

없던 둥근 볼 형태가 멀리서도 보여졌다.

 

 

 

바위 조망처에서 혹시나 해서 내려와 보니 일선사였고

일선사 바로 옆으로 기도처가 하나 있는데

바위 모양이 마치 포춘쿠키 같다 느껴졌다.

 

 


보현봉이 비탐이 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

바로 기가 좋다는 이유로 무속인이며 다양한 분들의 기도처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 흔적들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일선사에서 지척인 보현봉에 오르는 길.

사뿐 조용히 다녀오길 바랬지만

정상엔 큰 소리로 무엇인지를 외고 있는 남녀 두분이 계셨는데 조금 무섭게까지 느껴졌다.

 

 

 

가장 높은 바위 위에서 외고 또 외고도 모자랐던지

내려와서도 한동안 자릴 뜨지 않으셨다.

이분들이 내려가고 다른 한분이 올라와 이야기 하시길

서로 저 바위를 차지하려 다툼이 나기도 하고 조용히 하라 싸우기도 여러번을 하였다 했다.

 

종교에 무지한 나야 그저 그런가보다 하지만

그 소음 등에는 다툼의 소지가 충분해 보였다.

 

  

 

안테나가 세워져 있는 보현봉 정상 모습과

그 아래로는 부자 동네의 대명사였던 평창동이 산 중턱까지도 구불구불 이어져 있었다.

대사관이며 마당 넓은 집,대문과 담이 높은 집,

그 언덕배기 마을에서만의 건축과 구조도 마을버스를 타고 보는 즐거움이었다.

 

 


 

조용해진 정상,이젠 내 차지가 되었다.

요즘 기운이 딸린답니다. 저에게도 기 좀 나눠주시와요~

 

 

 

좋은 기가 뭔지 그런건 잘 모르겠다.

그저 한가지,

이렇게 사방으로 막힘이 없고 가슴 시원함이 전해지니 이것이야말로 좋은 기운 아니겠는가.


보현봉 가장 높은 바위에 올라서면

먼저 북한산 수뇌부에게 인사를 고하는게 예의.

좌측으로 백운대와 인수봉 만경대 노적봉이 그 수뇌부임을 말해주고

백운대 우측 뒤로 도봉산과 아파트 단지 건너 우측으로 수락산도 만날수가 있다.

 



수락산 있는 곳에 불암산이 빠질순 없겠다.

좌측이 수락산,우측이 불암산이다.

뒤로는 천마산 주금산 축령산 운악산 국망봉 화악산까지 드넓게 펼쳐지는 곳인데

요즘 같은 날엔 수락 불암산이 제대로 보여지는 것에도 감사할 뿐이다.

 


우측 인수봉과 노적봉 만경대 백운대가 있는 북한산 수뇌부.

가운데 문수사 위로 있는 봉우리가 문수봉이다.

보통은 저 건너편을 통틀어 문수봉이라 하지만

좌측 개구리바위 있는 곳을 연화봉,가장 높은 봉을 칠성봉,그 우측 나즈막한 봉우리를 문수봉이라 따로 칭하기도 한다.

문수봉 정상목이 세워져 있는 곳은 문수사 위 나즈막한 봉우리다.

문수봉 우측 아래로 대남문도 보인다.

 

 

당겨 본 칠성봉과 문수봉.그리고 문수사.

문수봉에 세워진 가느다란 정상목도 보인다.

 

북한산엔 사찰이 참 많은데 북한산성 축조와 관련이 있다.북한산성의 수비와 관리는 병사들과 승군이 함께 맡았는데

그 승군의 주둔을 위해 11개의 사찰과 2개의 암자를 새로 지었다 한다.

용암사,보국사,보광사,국녕사,태고사,상운사,문수사 등등..

 

 


우측 문수봉을 내려서면 비봉능선으로 연결되는데

가운데서 좌측으로 승가봉부터 사모바위 비봉으로 이어진다.

가운데 뾰족 올라온 바위가 사모바위, 왼쪽 뒤로 족두리봉도 보인다.

 

우측의 문수봉 바위군에서

우회하지 않고 철난간 타고 내려서는 길도 암봉이 아주 멋스러운 곳이다.

 

 

 

처음 계획은 저기 구기동에서 이 사자능선을 타려 했었지만

초행길,길을 잘 모르는데다 눈길을 지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이따가 보현봉에서 대남문 넘어가는 길에도 발자국이 전혀 없었으니

저 사자능선을 밟지 않은게 다행이라 생각하기도 했다.

다른 계절에 다시 한번 찾아보리라.

 

 

아까 일산사 조망바위에서도 기도를 하던 한 남자분.

바로 내려가실 생각이 없으신듯

아무도 없는 시간을 기다렸다 기도를 할 생각인듯 했다.

그렇다면 내가 그만 다음 봉우리로 넘어가야겠다.

 

 

 

작은보현봉이라 불리기도 하는 암봉도 바위가 아주 실하다.

숲 좋고 나무 좋은것도 한계가 있지.

산이라는 곳에 바위가 없었다면 얼마나 허전하고 밋밋하였을까.

 

사람은 간사하기가 이루 말할수가 없어 수시로 권태로움에 빠질지도 모른다.

가을이 좋다 그러면서도 겨울을 그리워하고 또 다시 봄을 기다리는 마음처럼 말이다.

둥글고 뾰족하고 기묘함으로 솟아오른 바위들은 그야말로 새로운 신세계가 된 것이다.

 

 

 

 

아닌듯 하지만 우리들 마음속에는

돌봐줘야 할 연약함이 아닌 강인한 매력을 원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바위처럼~

나도 누군가에겐 바위 같은 든든함이면 좋겠다.

 

 

 

대남문 앞에서도,문수봉에서도, 지척에 두고도 발길을 돌려야 했던 곳.

늘 북한산 어디메쯤에서 막연히 바라만 보던 곳.

올해의 작은 바램 중 하나였다면 이 보현봉에 올라보고 싶었던 것이었다.

자주 북한산에 오르면서도 갈증 하나가 풀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주저주저하다가 큰 결심을 하고 나선 길.

행여 오늘이 마지막 산행이 된다 하여도 더이상 바랄건 없을것 같았다.

작은 보현봉에 앉아 이런저런 생각으로 한동안 자릴 뜨지 못했다.

 

 

 

보기만 하여도 기분 좋아지는 백운대와

그 앞으로 민머리 노적봉이 겹쳐 보인다.

백운대 우측으로는 만경대가 자리하고 좌측 끝으로는 염초봉.

아래로는 북한산성을 이어가는 대남문이 호위하듯 서 있으니

조선의 화가 누구였더라면 이런 산수화 하나 그리지 않았겠는가.

 

 

 

좌측 대남문에서부터 대성문,보국문,대동문,용암문으로

북한산성의 성문들이 이어진다.

처음에 북한산을 알았을땐 바위보다는 산성길 따라 성문을 주로 돌아보곤 했었다.

역사 이야기와 안내문 읽어보며 12성문 종주도 의미가 있을 것이고

요즘은 확장판 14성문 종주들도 한다.

 

 

 

뒤돌아 본 보현봉엔 아까 그 분

앉았다 일어섰다 다양한 포즈를 취하며 기도를 하고 있었다.

내가 문수봉 개구리바위에 가서 놀때까지도 저 자리 계셨으니 그 간절함이 크신 것인지.

 

보현봉이 진짜 기가 좋으냐 물으니 가정사 이야기를 해주셨다.

집안에 아픈 사람이 많았고 그때마다 이곳에서 기도를 하면서 나아졌다고.

꼭 이곳의 기운이 아니더라도 님의 그 정성이면 원하는 일들 모두 이뤄지리라 믿는답니다.

 

 

 

어제 오전에 내린 눈이 녹지 않아 바윗길은 미끄럽다.

그래도 철난간이 설치되어 있으니 조심만 한다면 크게 위험하진 않았다.

 

 

 

저마다의 표정이 살아 있는 바위들.

관심을 가지고 들여다보면 어느 하나 얼굴 아닌것이 없다.

가운데 이 바위는 귀가 큰 어느 멍멍이를 닮기도 했지만

마치 고흐의 자화상처럼도 보였다.

눈이며 표정이며 턱수염까지도 불안과 초조함에 휩쌓여 있던 그의 표정이 살아난것만 같았다.

 

 

 

왼쪽 아래의 바위가 이 길의 유명한 천사날개바위라는데 음~천사날개.

아래로 내려가 보면 달라져 보일수도 있겠다.

나는 오히려 우측의 흐믈흐믈 길다란 생명체들이

위를 향해 올라가려는 몸부림에 더 눈길이 갔다.

맨 아래 아이들은 바로 위까지만 가겠다 하고 위칸에 있는 아이들은 맨 꼭대기로 올라가겠다 발버둥을 하고.

 

 

 

천사날개바위 주변의 바위군.

착한 사람 눈에만 뭐가 보인다는 말도 있으니

선한 마음을 하고 다시 함 들여다 보자구요~

 

 

 

천사의 한쪽 날개라는구만요.

그리 보면 그리 보일수도 있겠다. 어느 분들은 썬바위라 하기도 한다.

흑..내가 선하지 못한가벼..

내 눈엔 뼈밖에 안 남아 볼은 쑥 꺼치고 눈은 뀅해진 어느 짐승의 애처로운 눈빛처럼 보였다.

 

 

 

썬바위든 천사날개든 이름을 불러주는 이들이 있으니

이 아이도 생명체가 되어 이 길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안쓰러운 눈빛이라는 나만의 이름을 남기고 자릴 뜬다.

 

 

 

아무도 밟지 않은 길,

겉으론 다 녹은듯 보였지만 보현봉 깊숙이 안쪽으로는 아직 그대로 쌓여 있었다.

길이 맞는 것인지,그래도 대충 그 라인이 느껴져 길이라 짐작하고 밟아 나간다.

 

 

 

그렇게 비탈진 산길을 조금 더 걸어내려오니 대남문에 이른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은 뒤 유사시에 대비해 1711년(숙종 37년) 만들어진 북한산성은

지형에 따라 적절히 축성방식을 달리해 성벽을 쌓았으니

현대의 그 고급진 기술과도 바꿀수 없는 귀한 유산이 되었다.

 

군사 지휘소인 장대를 세곳(동장대,북장대,남장대)에 두었고

성문 6개소(북문,대동문,보국문,대성문,대남문,대서문,)

암문 6개소와 수문 1개소를 두었고 식수는 우물 99개를 파 해결하였다 하고 26개의 저수지와 8개의 창고까지.

승군을 주둔시키기 위한 사찰을 만들었고

숙종 38년에는 130칸 규모의 행궁과 140칸에 이르는 군창까지 지었다 하니

그 규모면에서도 놀랍지 않을수가 없다.

 

 

 

대남문은 북한산성의 가장 남쪽에 있는 성문으로 산성이 축성된 해에 지어졌다.

소남문이라고도 불린 대남문은 비봉능선을 통해 도성의 탕춘대성과 연결되는

전략상 중요 성문이었다 한다.상부의 소실되었던 문루는 1991년 복원한 것이란다.

 

 

 

대남문 바로 위 문수봉으로 오른다.

일대를 통틀어 문수봉이라 하기도 하고,

저 건너편 더 높은 바위를 따로이 칠성봉이라 칭하기도 한다. 

저 칠성봉은 우측으로 돌아가보면 올라갈수도 있지만 통제해 놓은 곳이다.

 

 

 

곧 아래로 빨려들어갈것 같은 문수봉의 바위 형태도 아주 독특하다.

 

 

 

 

지나 온 보현봉과 아래로는 문수사 지붕이 보인다.

늘 이곳에서 바라보기만 하던 보현봉이

이제야 하나하나 제대로 보이는것만 같다.

 

 

 

개구리바위가 있는 연화봉과 뒤로는 비봉능선이다.

오랜만에 저기 왼쪽 개구리바위에 들러보기로 한다.

 

 

 

 

내려선 문수봉은 마치 눈 내리깔은 바둑이 한마리처럼 보이지 않는가.

 

 

 

 

무엇보다 압권은 파란하늘을 등진 이 칠성봉이다.

혀를 내민 두꺼비 한마리 웅크리고 있는것만 같고

맨 위 바위는 만화속의 운동화 한켤레 같다.

보는 각도에 따라 바위는 수시로 달라지니 바위의 매력이 아닐수 없다.

 

 

 

조금 더 지나서 보니 칠성봉은 그야말로 작품 그대로였다.

칠성봉이 이리도 아름다웠던지 왜 그전엔 제대로 느끼지 못했던건지.

하기야 같은 산을 다니고 같은 바위를 봐도 수없이 달라지지 않았던가.

그 변화가 없었다면 어찌 수백번 수천번 북한산에 올랐다는 사람들이 나왔을까 말이다.

 

 

 

좌측 칠성봉과 우측 문수봉.

 

 

 

 

진행방향 우측으로는 의상능선 나한봉과 715봉을 옆에 끼고

두 봉우리 사이로 북한산 조망처이기도 한 노고산도 보여라.

715봉은 장군봉이라고도 칭하는것 같다.

장군봉은 파랑새능선에도 있다.

 

 

 

좌측에서 두번째 바위를 개구리바위라 하는데 오히려 성화 모양에 더 가까워 보였다.

경주 남산 자락, 부처님 머리가 사라지고 없는 어느 좌상을 보는 느낌도 들었다.

오히려 오른쪽 바위가 옆으로 비스듬히 누워 포즈 취하고 있는

눈이 튀어나온 개구리 아가씨처럼도 느껴졌다.

 

 

 

가까이 다가가보니 뒤태는 개구리를 닮기도 하였네.

종이로 만든 개구리를 뒤에서 누르면 폴짝 뛰던 그 모습처럼도 생겼다.

손 빠른 장인이 후딱 만들어 낸 딤섬을 보는것도 같다.

 

 

 

아래로 내려와 뒤돌아보니

개구리와 딤섬은 어디로 사라지고 커다란 발바닥만이 남아 있었다.

그 위로는 마치 해마 한마리 엎드려 있는 것 같고

발바닥은 아치 없이 두툼한 것이 꼭 내 평발을 닮았어라.

 

 

 

닮을게 없어 아버지 평발을 닮았나

어릴때 아버지가 미울땐 그런 사소한 것마저도 원망스러울때가 있었다.

그게 뭐 미워할 대상이라고 그저 핑계를 찾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연세가 드시니 그저 다 안쓰러울 뿐이다.

테니스 공이나 봉을 밟아 지압하는 습관을 들이니 조금이지만 아치가 생겨났다

 

 

 

개구리바위 아래쪽으로는 오뚜기 같기도 하고

청설모를 닮은 바위도 있고 꽈배기 소나무도 있다.

 

 

 

 

문수봉 아래 자리 잡은 문수사는 아늑하기가

명당이 예 아닌가 싶을만큼 너른 바위에서 앉아 바라보는 맛이 아주 좋았다.

문수사 위쪽으로 대남문이다.

 

 

 

바닥에 눈이 다 녹아 내리는 동안

시간 가는줄 모르고 원없이 누려볼수 있었다.

 

 

 

 

비봉능선이다.

중간에 길쭉 올라온 바위가 사모바위고 그 좌측으로 가장 높이 올라온 비봉도 보이고

사모바위 아래로 둥글게 보이는 바위 거기가 승가봉이다.석문이 있는 곳이다.

 

 

 

비봉능선을 축으로

삼천사 계곡으로도, 응봉능선으로도,진관사계곡,심화사와 웨딩바위,기자촌능선으로도

다양한 줄기들이 아래로 아래로 뻗어내리고 있다.

이 한장만으로도 북한산 코스가 아주 다양하다는 하나의 증거가 될 것이다.

 

그냥 대남문으로 돌아가 구기동으로 하산할까 하다가

이왕 온김에 비봉능선도 밟아보려 한다.

주로 반대편에서 많이 올라왔던지라

이 문수봉 거대 암봉 내림길도 처음인듯 새롭게 느껴졌다.

 

 

 

올록볼록 엄지와 검지 사이로 동그란 어묵을 쉴새없이 뽑아내던

달인의 한장면이 떠오르는 문수봉 바위들이다.

 

이 길을 내려가려 하니

어느 분께서 우회하는 길 있으니 되돌아가라 하신다.

그러니 다른 한 분께선 괜찮다.위험하지 않다 하신다.

 

 

 

비탐로도 아니고 철난간이 있으니 늘 전제 조건,조심만 한다면 위험하진 않다.

스릴은 덤으로 따라주니 암벽코스로도 손색이 없는 문수봉이다.

물론 팔의 힘은 좀 필요하겠다.

 

 

 

오늘은 내내 문수봉의 재발견이다.

파란 하늘에 암봉 하나, 그 자체만으로 이리 아름다울수가 없다.

올라갈때 보지 못한 꽃,내려갈때 보았다듯 바위는 더욱이나 그러했다.

같은 길을 걷고도 오갈때 풍경은 너무도 달라지니

마치 이 길이 처음인 것처럼 수없이 뒤돌아보게 된다.

 

 

 

문수봉 아래로 내려오면

쉬운 코스와 어려운 코스를 나뉘어 가리켜주는 이정목을 만날수 있을 것이다.

바위 타기가 힘들다면 우회해 진행하면 좋겠다.대신 계단을 만날 것이다.

 

 

 

승가봉 오르다 뒤돌아보니

좌측 내려온 문수봉(엄밀히는 칠성봉 그 아래로는 연화봉)과 우측으로는 보현봉이

빽빽히 카메라안에 가득 들어차고

 

 

 

 

문수봉처럼 거대 암봉은 아니지만

승가봉 오름길의 바윗길도 꽤나 재미난 곳이다.

어설피 어중간하니 아이젠을 하지 않았더니

팔에 힘이 잔뜩 들어간다.간만의 뻐근함이 기분 좋다.

 

 

 

그 끝에 석문을 통과하면 

다 올라왔니라 애썼다 말해주는듯 하고. 

 

 

 

 

그렇게 승가봉에 올라서면 늦은 오후시간,

그림자가 너무 깊고 정작 봉우리들은 눈이 부시니 봉우리들 위주로만 잘라본다.

위 오른쪽부터 사자능선의 사자봉과 보현봉, 문수봉, 715봉.

아래는 우측 715봉부터 나한봉,나월봉,증취봉,용혈봉,용출봉,의상봉으로 의상능선이 이어지고

 

 

 

의상능선 뒤로는 그 자태만으로도 빛이 나는

북한산의 백운대 인수봉 만경대 노적봉이 저리도 당당할수가 없다.

백운대에 오르면 늘 가까이 둘러쳐져 있던 봉우리들이 한몸인듯 집결한 모습이다.

왼쪽은 염초봉,우측 앞 봉우리는 의상능선의 나월봉이다.

 

 

 

사모바위를 지나며 보니,오늘은 사각 종이봉투를 뒤집어 쓴 것처럼 보였다.

원래는 조선시대 백관이 쓰던 사모를 닮아 붙여진 이름이다.

사모관대할때 그 사모~

그 사모가 오늘은 임자를 잘못 만나 군고구마 담는 종이봉투가 되었으니 미안하군만요.

사모바위 아래쪽으론 무장공비가 숨어 있었다는 굴도 남아 있다.

 

시간이 늦었다.

이제부터는 조금 서둘러 걸어야겠다.

 

 

 

비봉을 올라갈까 하다가 코뿔소바위와 그 아래 웃고 있는 삼각김밥 같은 바위만

잠시 올려다 보다 우회하기로 한다.

통제된 곳이거니와 눈이 없는 평소에도 그리 오르기 만만한 봉우리는 아니다.

 

 

 

비봉 위에는 진흥왕순수비 복제비가 세워져 있는데

진흥왕순수비는 진흥왕(540~576)이 영토확장을 한 뒤 그 지역들을 두루 살피고

돌아다닌것을 기념하여 세운 비석이다.

 

지금은 중앙국립박물관에 국보 제3호로 모셔져 있고

순수비가 있던 자리는 사적 제228호로 지정되었고 2006년 복제비가 세워졌다.

우리나라엔 지금 창녕 진흥왕척경비(국보 제33호)와 북한산의 진흥왕순수비가 남아있고

나머지 두 점은 북한에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

왼쪽이 비봉,우측이 잉어바위다.

 

 

 

향로봉 암봉 모습이다.

 

 

 

 

아~갈길은 아직도 한참 남았는데

벌써 족두리봉 위로 해가 내려서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늦었는데 향로봉을 지나면서 잠시 딴 생각을 하다가

정신없이 그냥 탕춘대능선으로 내려서고 있었다.

탐방객수 체크하는 그곳에 이르러서야 탕춘대로 잘못 내려간걸 알아챘으니 휴~

그냥 내려설까 아님 다시 올라설까 몇번을 갈팡질팡하다가

죽을듯 뛰어 다시 올라서며 담은 사진이다.

 

 

 

그러니까 저기 향로봉에서 좌측(직진)으로 내려왔어야 하는데

우측 길따라 탕춘대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되돌아 온 것이다.

 

 

 

 

20대는 20km로 시간이 가고 60대는 60km로 간다 하더니만

시간이 늦어지니 저 해도 아주 순식간에 넘어가고 있었다.

가운데 백련산, 우측이 족두리봉이다.

 

 

 

좌 인왕산과 가운데가 안산,우측으론 백련산.

북악산까지 합쳐 네 산을 연계하기도 하고

서대문형무소가 있는 안산과 인왕산 산행만도 하루 일정으로 좋은 코스가 될 것이다.

나즈막하지만 조망이 아주 좋은 곳들이다.

 

 

 

숨이 찰만큼 뛰어오르니 그래도 다행히

족두리봉과 서해쪽으로 해가 넘어가는 순간을 만날수 있었다.

오늘 처음으로 땀도 꽤나 흘렸다.

이제 되었다. 이곳에서 일몰을 보고 가자.

 

 

 

이 시간만큼 아름다운 순간도 없다.

아침의 일출을 환호하며 바라본다면

이런 해넘이 순간에 서면 감탄의 말보다는 그냥 숨죽여 바라보는 것 외에 무어라 할말이 사라져 버린다.

 

 

 

호들갑 떨지 않아도 그 형용할수 없는 기분과 울렁거리는 가슴을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음이다.

뒤로 나즈막한 산줄기들은 좌측부터 증산,가운데 봉산,우측 끝으로 짤린 곳은 효경산(효경봉)으로 연결된다.

 

 

 

 

좌측이 봉산,가운데는 서오릉이 있는 효경산(앵봉산).

대동여지도에 효경산은 효경봉으로 표기되어 있고

봉산(봉령산)은 봉수대가 있어 그리 불렀다 한다.

우측 뒤로는 마니산이 슬쩍 보이니 강화 방향이겠다.

 

 

 

하나의 색으로만은 이 다양하고 다이내믹한 하루를 넘길수 없었을까.

블루톤과 붉음의 경계를 없애려는듯한 저 막바지 분주함들도 그저 경외스러울 뿐이다.

우측으로 인천 계양산이 보이고

그 앞으로 흐르는 한강도 노을만큼이나 빛이 나고 있었다.

 

 

 

좌측 인왕산과 안산 뒤로 이제 관악산도 보인다.

이제야 산봉우리들도 더 화사하게 깨어나는듯 했다.

저 족두리봉에서 맞는 일몰이라면 더욱이나 아름다웠겠지만

예까지 달려올수 있던 것으로도 충분히 감사한 날이 되었다.

 

 

 

해가 넘어가고도 한동안은 남은 빛으로 걸을만 하다.

족두리봉에 와서 지나온 가운데 향로봉과 그 우측으로 비봉과 보현봉을 마지막으로 담아본다.(위 사진)

의상능선과 기자촌능선 방향(아래 왼쪽), 족두리봉(아래 오른쪽 사진)

 

 

 

그저 노을빛 하나가 선을 그었을 뿐인데 이토록 아름다운 밤을 맞이한 것이다.

도심엔 하나둘 불빛들이 켜지고 집으로들 돌아가야 할 시간.

돌아가야 할 곳이 있다는 것이 또한 얼마나 큰 행복이던지.

그 실체가 무언지 모르겠지만 괜시리 감사한 밤, 잊고 있던 사소한 것들에 행복을 느끼는 밤이다.

 

 

 

그렇게 불광공원지킴터에 내려서니 완전한 어둠이 깔렸다.

족두리봉에서 하산길이 1.1km로 길지 않으니

해가 넘어간 뒤에도 부담없이 내려설수 있었다.

 

 

 

버스정류장으로 내려가는 길.

부침개에 막걸리 한잔이 간절하지만 식당들도 너무 조용한데다 귀가하려던 시간보다 좀 늦어졌다.

아쉬운 마음에 버섯전,꼬치전,두부전,동그랑땡,동태전,고추전 등등

전 모듬을 포장해 집으로 돌아간다. 만원어치가 아주 푸짐했다.

 

기다려라.

개운하게 샤워하고 그 션한 첫잔과 고소한 지짐으로

갈증도 배고픔도 싹 날려주리라.

 

 

 

         한번쯤은 꼭 가보고 싶었던 보현봉과 문수봉 암릉미의 재발견이었다.

         밟아보지 못한 북한산은 아직도 무궁무진,가야할 곳이 남아 있다는 것 또한 즐거움이다.

         늘 새로움을 덧입히는 도심속의 안식처 북한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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