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계절 어느때라도 감탄하며 경외하며 걷는 길, 〈설악산의 사계와 야생화〉을 책으로 담게 되었답니다.

뒤늦게서야 시작되는 설악의 봄은 이제 막 깨어난 생명들이 산객들을 맞이하고

기암과 녹음이 어우러진 여름의 설악은 희귀 식생들의 절정을 이루게 된다.

그 속에선 언제나처럼 구름바다 두둥실 떠올라 있었으니

선계인지 설악인지 잠시 숨을 멈추고 셔터소리만이 정적을 깰 뿐이었다.

계절의 지표이고 단풍의 시작점인 가을 설악이야 말해 무엇할 것이고

춥다 못해 통증으로 다가오는 겨울 설악의 매서운 바람은 또 어떠할 것인가.

 

앞으론 이보다 더 나은 글을 쓸 자신은 조금도 없다.

이보다 더 열정적으로 야생화 사진을 담으며 시간과 정성을 투자해 글을 덧붙일 자신도 없다.

하루 산행에 천장 이상을 담아올만큼 나는 늘 설악에 충실했고

그 사진들을 일일이 정리하는데 많은 에너지를 들여야 했다.

내가 할수 있는 최대치를 모두 설악에게 쏟은 것이다. 그런 설악의 사계를 책으로 담게 되었다.

 

늘 그것 같은 일상에 답답함을 느끼거나 어딘가 떠나보고 싶지만 선뜻 길을 나서지 못하는 분들께,

새로운 도전 앞에 계신 분께라면 더욱이나 추천하구요.

자연과 대화하며 걷는 오색찬란 설악 이야기에 새로운 세상을 만날수 있을 것이고

조금 지쳐있던 일상에 힘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저의 경험이기도 하니요.

 

첫 출간의 부족함도 있겠지만 오르고 또 오르고 담아낸 오색찬란 설악 이야기에 한권쯤 소장할 가치 있을거랍니다.

설악산의 사게와 야생화 검색해 보세요~.인터넷 주문이 10% 저렴하답니다.  (2020년 1월 효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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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등산은 원효사보다 증심사지구에서 들날머리로 삼는 경우가 많다.

물론 모든 코스는 연결이 가능해 어디로든 다양하게 즐길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오늘은 증심사 대신 원효사로 간다.

광주종합터미널 앞에서 1187번 버스를 타고 종점에서 내리면 된다.

 

 

원효분소 주차장에서 잠시 무등산을 올려다 본 뒤 산행을 시작한다. 

원효분소에서 꼬막재를 거쳐 장불재로 갈 것이다.

원효분소에서 규봉암까진 5.5km, 장불재까진 7.4km

물론 이곳에서도 규봉암 거치지 않고 토끼등,서석대,장불재로 갈수도 있다.

규봉암 방향으로 가는것이 산허리를 조금 돌아가는 것이긴 하지만

슬슬 걷기엔 좋은 길이다.

 

 

 

그렇게 꼬막재를 지나고 완만한 능선 따라 오르다 보면 신선대 억새평전길이 시작되고

신선대 갈림길이 나온다.

신선대가 있는 저 길을 따라가다 보면 북산도 만날수 있을 것이다.

 

 

 

좌측 신선대와 북산, 우측에 있는 산은 화순 백아산으로 보인다.

높이 올라서면 백아산 뒤쪽으로 지리산도 가까이 잡힐 것이다.

 

 

 

너덜 건너편으로 우측으로 보이는 산은 풍력발전기가 있는 별산이겠다.

규봉암 가기전까지 너덜길을 좀 지나야 했다.

우리가 무등산은 통칭해 광주라고 많이 부르지만 규봉암으로 오르는 이 일대는 화순에 속하게 된다.

 

 

 

그렇게 규봉암 갈림길에서 0.1km 따라 올라가면

성벽처럼 높다란 담장부터가 심상치가 않다.

일주문을 따라 들어가는 길은 깊은 무림의 세계로 향하는것만 같았다.

 

 

 

마치 규봉암의 수호신처럼 새의 부리 형상을 한 바위(삼존석)가 먼저 맞아주고

규봉암과 뒤로는 광석대가 병풍을 두른 듯 펼쳐지는데

한 겨울,휑한 계절이라고 느끼기 어려울만큼 그 색이 너무도 아름답게 다가왔다.

 

무등산에서 규봉암을 보지 않고 무등산을 올랐다 말하지 말라는 말이 있을만큼

빼어난 경관을 자랑하는 곳이다.

설경이 없어도,녹음으로 덮히지 않아도,화려한 단풍이 아니어도

규봉암과 규봉 절리는 환상의 짝처럼 그 어우러짐이 가히 수려하기 이를데 없다.

 

 

 

규봉암은 신라시대 의상대사가 서석과 규봉을 보고 정사를 세웠다고 한다.

조선초기 문신 권극화는 「광산의 진산을 무등산 또는 서석산이라 하는데

그 형세가 웅장하고 모든 산에 비길바가 아니다. 산 동쪽에 암자가 있어 이를 규암이라 하고

그 곁에 서석이 겹겹이 서 있는데 의상대사가 이를 보고 기이하게 여겨

비로소 정사를 세우고 보조와 진각이 공부하여 도를 얻어 아직도 그 자취가 남아 있다..」라는 기록을 남겼다.

권극화가 말하는 규봉암은 암자와 함께 서석(瑞石)을 통틀어 이야기 하고 있다.

 

세월의 풍파 속에서 암자는 창건되고 페사되고 재건되고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다시 재건되면서 현재에 이르렀지만 규봉암의 서석은 오랜세월 그 자리를 지키며

더욱 빛을 발하고 있었던 것이다.

 

 

 

광석대(규봉 주상절리)는 입석대 서석대와 함꼐 무등산을 대표하는 3대 주상절리대다.

해발 약 950m로 무등산 정상에서 남동쪽으로 약 800m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사찰인 규봉암을 중심으로 늘어선 수 십여 개의 주상절리대는 화산 폭발시 분출된

화성쇄설물이 퇴적되어 만들어진 것이다.

이 곳의 암석은 안산암질 응회암으로 이루어졌다 한다.

 

형상이 기이하여 이름 짓기 정녕 어려운데

올라와 바라보니 세상이 눈 아래에 있네.

돌 모양은 비단을 잘라 빚은 듯하고 산 형세는 옥을 깍아 이룬 것 같네.

좋은 곳에 오니 세속의 더러움 끊었고 그윽히 사니 도정이 더하네.

어찌 세상 일 버리고 부좌하여 무생불법을 배우지 않으리.

 

-김극기의 규봉사에서-

 

 

 

그래~비단을 잘라 빚은듯 하고 옥을 깍아 이룬것 같네.

가을의 산이라 해도 믿을만큼

규봉암과 절리대 사이사이에 피어 난 붉음들도 빛을 내거니와

하늘마저 깨끗하게 도와주고 있으니 더욱이나 조화로움이 돋보이는 날이었다.

 

 

 

규봉암에서 맞는 일출이며 운해도 아주 아름답다 한다.

앞마당에서 바라보이는 조망도 아주 훌룡하고 멀리멀리로 드넓게 펼쳐지고 있었다.

그러나 오늘은 규봉 절리대에 취해 그닥 멀리의 조망에 눈길이 가지 않았다.

 

 

 

암자 뒤켠도 정스럽다.

 

 

 

 

갖가지 바위들을 뒤로 하고 규봉암을 내려와 석불암으로 간다.

 

 

 

 

장불재에서 규봉에 이르기까지 약 3km로 이 길엔 지공너덜이 길게 이어지는데

인도의 승려 지공대사에게 설법을 듣던 라옹선사가 이곳에서 수도하면서

지공너덜이라 명명하였고 지공대사가 여기에 석실을 만들어 좌선수도하면서

그 법력으로 억만개의 돌을 깔았다고 전해져 온다.

보조국사가 송광사를 창건하기 전에 좌선한 곳이라 하여 보조석굴이라고 부른다 한다.

 

 

 

역시나 저기 정상부엔 흰 눈을 탐스럽게 이고 있는 모습도 보인다.

그러나 오늘은 정상으로 오르진 않으려 한다.

입석대 서석대야 자주 접하는 곳이기도 하거니와 오늘은 사실

광주에 일이 있어 내려왔다가 마음이 동해 갑자기 단화를 신고라도 이 길을 오른 것이다.

단화 신고 미끄러운 길을 어떻게 오른다고~정말 미쳤구나 혼자 투덜거리며 나서긴 하였지만

아주 곱게 천천히 걸으니 오를만은 하였다.

 

 

 

장불재에서 안양산으로 이어지는 백마능선이다.

가을 억새가 바람에 유혹할때면 저곳으로 달려가고 싶을 것이고

봄날,철쭉이 피어날때도 저 유순한 능선을 넘고 싶을 것이다.

고산 초원지대의 매력을 가득 품고 있는 곳이다.

 

 

 

오래된 민가처럼 곧 쓰러질듯한 석불암을 뒤로 하고 장불재로 간다.

마애여래좌상이 있는 곳은 문이 잠겨 있고

관계자 분인지 나와 계시니 괜히 사진 찍기가 머쓱해 가까이는 담질 않았다.

 

 

 

너덜이 끝나고 장불재로 가는 길,

이 길을 오를때 어찌나 기분이 묘하던지

이 겨울에 어울리지 않게 센티함이 쏟아져 내렸다.

누군가에게 전화해 지금의 기분을 마구 얘기해 주고도 싶었다.

 

 

 

뒤돌아 본 길,

백마능선과 풍차가 있는 별산 방향이다.

 

 

 

그렇게 입석대와 서석대가 드러나고

하늘은 왜 그리도 푸르고 청명하던지.

온통 다 설경으로 덮힌 모습도 아름답겠지만

나는 이 깨끗한 하늘과 갈빛의 조화로움에 더욱이나 마음을 빼앗겨 버렸다.

 

 

 

좌측이 서석대고,우측이 입석대다.

입석대 서석대는 많이 접해보았기도 하고, 오늘은 단화를 신고 오른지라

저 정상부 눈길까진 오르기 힘들것 같다.

 

 

 

(서석대 입석대는 다른 해에 담았던 사진들이다.)

기술좋은 석공이 일부러 잘라 올려놓지 않고서야 이 어찌 이런 형상이 생겨날수 있었을까.

자연의 위대함을 논하자니 그저 경외롭다는 표현밖에는 할 말이 없어진다. 입석대다.

입석대는 한 면이 1~2m인 5~6각이나 7~8각의 돌기둥 30여개가

수직으로 솟아 40여m 동서로 줄지어 섰다.

선 돌이라는 뜻의 입석은 고대 선돌 숭배신앙의 중요한 표상이었다.

서석대와 입석대의 주상절리대는 2005년 12월 16일 천연기념물 제 465호로 지정되었다.

 

 

 

설화까지 더해진 서석대는 그야말로 석화의 결정체다.

입석대와 더불어 천연기념물 제 465호로 지정된 서석대.

무등산을 대표하기에도,천연기념물 명패를 단 것도

국립공원으로 내세움에도 조금의 부족함이 없는 서석대다.

 

입석대와 규봉은 풍화가 많이 진행되어 기둥모양이지만

서석대는 상대적으로 풍화가 덜 진행되어 병풍모양을 하고 있다.

정상을 중심으로 산비탈에 있는 너덜겅은 이러한 돌기둥이 무너져 쌓인 것이다.

서 있는 바위나 너덜겅들은 암석의 생성과 풍화작용을 살펴볼수 있는 귀한 유산이 아닐수 없다.

 

서석대에 노을이 비칠때면 수정처럼 반짝인다 하여 수정병풍이란 이름도 얻었다.

얼마나 아름다울지 상상만으로도 그림이 그려진다.

언젠가 꼭 보고 말거야~

앞으로 우리가 보호하고 후손에게 물려주어야 할 귀한 자연유산임에 틀림없다.

 

 

 

무등산 아래쪽으론 눈이 많지 않아 실망을 하였다가도 정상부에 올라서는 순간은

늘 환상적인 설경에 감탄사를 내뱉지 않을수가 없다.

무등산 정상은 군부대가 주둔하고 있어 서석대가 정상을 대신하고 있지만

1년에 한두번 개방을 맞게 된다. 물론 천왕봉이 아닌 인왕봉 지왕봉까지로 군부대를 통과하는 코스다.

언젠가 무등산에도 정상이 개방을 맞는 날을 기대해보고 싶다.

절대 열리지 않을것 같던 규제 지역들도 하나둘 출입이 되는것을 보면

세상에 절대란 것은 없었고 그 시대 흐름에 따라 달라지게 되니 말이다.

 

 

 

하던 일을 모두 정리하고 본격적으로 산에 다니기 시작했던 2012년은

무등산을 여러번 찾았었는데 그때는 한창 국립공원 추진과 승격이 확정된 해라서

광주 시민들의 자부심을 느낄수 있었고

그래서인지 만나는 시민들은 더 친절하고 따뜻하게 느껴졌었다.

많이 힘들었던 2012년, 누구에게도 받지 못했던 위안

산이 가장 큰 위로자가 되어주었다는걸 알게 되었다.

그 한번의 경험은 두고두고 산으로 이끌게 된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사통팔달이란 표현이 어울리는 장불재다.

원효사와 증심사, 서석대와 광석대, 안양산과 중머리재를 이어주는 곳이고

고개라고는 하지만 사방으로 넓게 뚫려 그런지 장쾌한 느낌을 받을수 있고

정상부의 입석대 서석대를 한 눈에 볼수 있어 더욱이나 가슴 시원함을 느낄수 있는 곳이다.

우측으로 오르면 입석대와 서석대,

임도따라 직진해 가면 중봉이나 원효사,증심사, 또는 서석대로도 오를수 있다.

어디로든 다 연결은 되어 있었다.

 

 

 

나는 중봉과 중머리재 거쳐 증심사로 가는 길을 택했다.

평일이라 붐비지 않아 좋았다.

하늘은 더없이 맑고 그저 터벅터벅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걸어내려간다.

 

 

 

 

배낭도 없이 등산화도 아니 신고,

우리 동네 뒷산인듯 그저 잠시 마실 나온 사람처럼 무등산을 올랐다.

등산이 아닌듯한 기분 때문인지 마음도 편안했고, 오히려 새로운 무등산을 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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