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향하여~~

[스크랩] Re:구역조직을 가정교회로 - 최영기 목사-

작성일 작성자 겨울여행

차 례
1. 이 책을 쓰게 된 까닭
2. 평신도 목사가 있는 교회
3. 회의주의자가 예수님을 믿기까지
4. 보람있던 평신도 사역
5, 목사가 꼭 되어야 하나?
6. 되고 싶지 않은 사모
7. 투명 인간
8. 침체에서 성장으로
9. 하나 되는 것을 막는 것
10. 목사의 적
11. 평신도 훈련
12. 목사의 생명은 기도
13. 교회의 존재 목적은 구령(救靈)사업
14. 평신도 사역의 문제점
15. 목회는 신뢰이다
16. 가정교회 시작
17. 서울침례교회 가정교회에 관한 자평
18. 목자 이야기
19. 목원 이야기


<저자 소개>
최영기 목사는 서울대학교 전자공학과를 졸업한 후 도미해서 예수님을 영접했다. 오하이오 주립 대학에서 전자공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캘리포니아 소재 Varian중앙 연구실에서 근무하다가 골든메이트 신학대학원을 졸업, 산호세 제일침례교회에서 교육전도사 및 교육목사로 시무했다. 현재는 미국 텍사스 주에 있는 휴스턴 서울침례교회 담임목사로서 큰 부흥을 일으키고 있다.
1. 이 책을 쓰게 된 까닭
제 나이가 금년에 만으로 쉰둘입니다. 그 동안의 신앙 이력을 살펴보면, 30년 동안은 교회를 안 다녔거나 다녔어도 형식적으로 교회 문턱만 밟거나 했습니다. 그러다가 30세에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한 후 10년 동안 꽤 열심히 평신도 사역을 했습니다. 그러던 중 주님께서 평신도 사역을 그만하고 평신도 사역자를 키우는 사역을 해보라고 명하셨습니다. 그 명령에 순종하여 신학교에 입학한 것이 1985년, 그 후 전도사 생활을 3년, 교육 목사 생활을 4년, 담임 목사 생활을 3년 했습니다. 이제 평신도 사역을 한 햇수보다 목회자로서 사역한 햇수가 더 많아져 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 마음은 아직도 평신도의 마음입니다. 목사가 되어서도 그냥 평신도 사역의 연장인 것처럼 목회를 해 왔던 것입니다. 제가 평신도였을 때 목회자들이 이렇게 해주기를 바랐던 바램과 하지 말았으면 하고 바랐던 바램을 저 자신이 목회자가 된 지금 그 바램을 실천에 옮기고자 애쓰고 있습니다. 제가 섬기는 서울침례교회는 미국 텍사스 주의 휴스턴에 소재하고 있습니다. 휴스턴에 거주하는 한인 인구를 8천에서 2만까지 보지만 제가 볼 때는 1만 5천 명이 가장 근사치가 아닐까 합니다. 저는 휴스턴 서울침례교회에 1993년 1월 1일에 부임했습니다. 그 동안 교회가 성장하여 주일 예배 때 장년이 약120명 모이던 교회가 이제는 300명이 모이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재정적으로도 성장, 헌금액수도 3년전에 비해 2배가 훨씬 넘게 증가했습니다. 우리 교회는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만일 자랑할 것을 굳이 들라면 이 자그마한 성장이라는 것이 평신도 사역자들을 통하여 이루어졌다는 것뿐입니다. 저희 교회는 31명의 “목자”라고 불리우는 평신도 “목사”들이 있습니다. 교회가 성장한 것은 저 때문이 아니라 이 분들 때문입니다. 글을 쓸 만한 위인도 못되고 그렇다고 저희교회가 책의 소재가 될 만큼 대단한 교회도 아니라는 생각에 나침판 출판사의 제의를 거절했지만 결국 다음과 같은 두가지 이유로 책을 쓰게 되었습니다.
첫째로, 최근 들어 평신도 사역에 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고 합니다.
둘째로, 저희 교회 이야기가 도움이 되는 교회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입니다. 저에게는 “교회 성장을 위해서는 이렇게 하십시오”라고 권유할 만한 경험도, 자격도 없습니다. 그러나 소망은 언제나 평신도 사역에 있습니다. 그 때문에 평신도 사역을 하든, 목회자로 사역을 하든 항상 평신도 사역을 해왔던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책을 통하여 저 자신이 어떻게 평신도로서 사역을 했으며 목회자가 된 후에는 어떻게 평신도 사역을 키웠는지에 대해 간증하겠습니다.
2. “평신도 목사”가 있는 교회

가정교회란 무엇인가?
저희 교회에는 32개의 “가정교회”가 있습니다. 가정에서 모이기 때문에 그렇게 부릅니다. “구역”이라고 부르지 않는 이유는, 그것들 하나하나가 다 독립된 교회의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가정교회와 구역은 두 가지 점에서 눈에 띄는 차이를 보입니다.
첫째 / 조직 방법
구역은 같은 지역에 사는 사람을 묶어 조직되지만 가정교회는 가정교회 회원들의 선택에 따라 결성됩니다. 가정교회를 시작하면서 우선 목자들을 임명한 후, 교인들 스스로 소속하고 싶은 목장의 목자를 선택하도록 하였더니 어떤 목장에는 나이가 비슷한 사람들이, 어떤 목장에는 같은 지역사람들이, 어떤 목장에는 같은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그러나 대개는 나이, 지역, 직업은 달라도 서로 편하게 교제할 수 있는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둘째 / 역할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구역 모임은 친교와 서로를 돕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는 반면, 가정교회에서는 예배, 성경공부, 제자 훈련, 선교, 전도, 친교 등 교회가 하는 모든 역할을 다 합니다. 주력 활동도 목원들의 정신적인 문제나 생활에서 오는 문제에 대해 서로 돕고 도움을 받는, 목원 상호간의 사역이 주활동을 이룹니다. 그러므로 가정교회는 구역보다는 중국의 처소교회에 더 가깝습니다. 자그마한 개척교회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가 좀더 쉬울 겁니다. 차이가 있다면 개척교회에서는 신학교를 졸업한 전문 사역자를 모셔 오지만 우리 가정교회에서는 평신도가 목사의 일을 계속한다는 것입니다.

가정교회의 역할 : 내적 치유
가정 교회는 1주일에 한번 저녁 시간에 개인 집에서 모입니다. 목장마다 사정이 다르다 보니 다른 날에 모이는 목장도 있지만 대개는 금요일 저녁에 모입니다. 보통은 모여서 저녁을 함께 먹습니다. 장소를 제공하는 분에게 드리는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 한 가정이 한 접시씩 준비해 와서 같이 나눠 먹습니다. 저녁을 들고 나면 설겆이는 뒤로 미루고 예배를 정시에 드립니다.
예배순서는 찬송가를 약 20분쯤 부릅니다. 그 다음 약 2,3분 동안 목원 각자 일주일간의 생활 나눔이 있고, 20분 정도 교재를 가지고 성경공부, 15분 정도 간식과 휴식, 다음에는 오늘 공부한 성경 구절 중 요절을 뽑아 어떻게 생활에 적용할 것인지를 토의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목원들의 문제 해결을 받고 실제적인 도움을 얻을 수 있는 시간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 시간이 끝나면 15분 동안 기도 제목을 나누고 서로를 위해 중보기도를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15분 동안 선교사와 선교지, 전도 대상자를 위하여 기도한 후 모임을 끝냅니다. 미국에서 황금 시간대라 할 수 있는 금요일 밤에, 주일 아침 예배의 참석 인원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한 주일도 거르지 않고 모여서 자정이 넘도록 모임을 가지면서도 헤어지기를 아쉬워하는 이유는 마음과 마음을 나누는 사귐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목장 모임을 말씀에 대한 지적 토론을 벌이는 곳이 아닙니다. 마음과 마음이 만나고 마음에 있는 상처가 치료받고 구체적인 도움을 얻는 장소입니다. 목장 모임에는 다음과 같은 세가지 운영 규칙을 적용합니다.
첫째, 피상적인 답을 주지 않습니다.
둘째, 다른 이에게 조언을 할 때에는 질문이나 간증만을 사용합니다.
셋째, 목장 모임에서 나온 얘기는 절대 비밀에 부칩니다.
자신을 노출하는 만큼 내적 치유는 일어납니다. 교회에 다니는 많은 분들이 마음에 깊은 상처를 안고 살면서도 치유받지 못하는 이유는 그 문제를 얘기할 상대도, 기회도 없기 때문입니다. 신체적 장애가 있는 사람이 정상적인 사람과 같이 생활하기가 힘든 것처럼 내적 상처를 치유받지 못한 사람은 정상적인 신앙생활을 하기가 힘듭니다. 가정교회는 이러한 상처를 치유받는 곳입니다. 자신의 문제를 이야기함으로써 치유를 불러일으키고, 목원들의 중보기도를 통해 치유를 체험하기도 합니다. 치유는 즉시 일어나는 수도 있지만 보통은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에 목원들은 치유가 끝날 때까지 지속적으로 도와주어야 합니다. 가정 교회를 시작하게 된 여러 동기 중 하나가 바로 이 내적 치유였습니다. 가정교회 같은 모임에서만 참된 만남과 내적 치유가 가능하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가정교회의 모태
캘리포니아 주 산호제에 소재한 제일침례교회에서 평신도로, 전도사, 교육 목사로 11년을 섬기면서 평신도로 있을 때에 담임 목사님의 위임을 받아 장년 주일학교를 10년동안 운영을 하면서 많은 성장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본의 아니게 장년 주일학교를 잘 운영하는 교회로 소문이나 전국적으로 초청을 받아 세미나를 인도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와중에 장년 주일학교를 통한 평신도 사역에 세 가지 한계가 있음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첫째, 장년 주일학교에서는 참된 사귐이 어렵습니다.
주일학교의 우선 목적이 성경 공부인 만큼 참된 사귐을 맛본다는 것이 쉽지가 않았습니다.
둘째, 장년 주일학교에서는 성도들 모두가 그리스도의 지체역할을 할 수 없습니다.
집사, 교사, 구역장에서 찬양대원, 안내 위원까지 아무리 작은 사역이라 할지라도 교회 사역을 하나라도 맡아 하고 있는 분을 다 적어보았더니 전체 교인의 30%만이 활동하고, 나머지 70%는 아무 사역에도 참여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고 성도 하나하나가 그리스도의 지체라면 70%의 지체가 무력증에 빠져 있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전통적인 교회 구조로는 무슨 수를 쓴다해도 이러한 무력증을 극복할 수 없습니다. 모든 교인이 다 사역할 수 있는 여건 조성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셋째, 장년 주일학교에서는 전도하기가 어렵습니다.
이러한 한계들을 절감하면서, 교회가 참된 성장을 하자면 새로운 교회 구조가 필요하다고 느꼈습니다. 이런 한계를 극복할 방법을 모색하면서 성경을 새로운 눈으로 보기 시작했습니다. 신약 교회의 엄청난 능력은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개인 소유가 하나도없이 물질까지 공유하는 깊은 사귐의 힘은 대체 어디서 나왔으며, 짧은 기간 안에 수만 명이 모이게 하는 예루살렘 교회의 전도 능력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그 해답은 말할 것도 없이 “성령”입니다. 초대교회의 성장은 성령의 힘을 제한하지 않는 교회 구조가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전통적인 교회 구조는 성령의 역동적인 역사를 제한합니다. 평신도를 무력화시키기 때문입니다. 신약 시대에는 한 도시에 교회가 하나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그 밑에는 가정이 중심이 된 수많은 교회가 있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바울이 매번 편지의 끄트머리에 썼던 문안 인사가 그 증거입니다. 예를 들어 로마서 16장 3-5절에서 바울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집에 모이는 교회에 문안하라고 말합니다. 이렇게 볼때 10,11절의 권속이라는 말도 가정교회를 얘기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어쨌든 저는 신약 교회가 성령께서 마음껏 역사 하실 수 있는 조직, 즉 가정교회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이를 통하여 폭발적인 능력이 나오게 되었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중국의 문화혁명의 모진 물결속에서 선교사들조차 모두 철수된 뒤에도 중국땅에 그리스도인들이 더욱 확산 될수 있었던 것도 처소교회를 통하여 가능했었다는 이야기는 저에게 더욱 확신을 주었습니다.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능력있는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전통적인 교회 구조에서 탈피하여 신약성경의 가정교회가 중국의 처소교회처럼 집집에서 모이는 가정교회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생각만 있었지 구체적으로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를때, 북가주 버클랜드 침례교회에서 시무하는 이남하 목사님과 식사중 랄프 네이버라는 사람이 쓴 『교회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라는 책을 소개받았는데 이책에서 가정교회가 왜 필요한지, 그리고 어떻게 조직하고 운영하는지 등을 상세히 다루고 있었습니다. 이 책이 저에게 가정교회에 대한 구체적인 꿈을 심어 주었습니다. 그러던 중 휴스턴 서울침례교회에서 담임 목사로 와 달라는 초청을 받았고, 가정 교회를 통한 평신도 사역을 해보라는 주님의 뜻이 아닌가 싶어 승락을 하고 당시 평판이 그다지 좋지 않았던 휴스턴 서울침례교회로 여러 여건을 물리치고 부임하게 되었습니다.


3. 회의주의자가 예수님을 믿기까지

세상 속으로
저는 원래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고1때 세례를 받았지만 믿음은 없었습니다. 이웃에게 해만 끼치지 않으며 살려고 애쓰기 때문에 스스로는 그리스도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가 대학에 가면서부터 교회와 점점 멀어지기 시작했고, 1967년 서울공대 전자과 졸업 후 해군 장교로 임관하여 진해에서 근무하면서는 더욱 방탕한 생활을 하게되었습니다. 1970년 제대후 저는 오하이오 주립대학에서 박사 과정을 밟기 위해 유학길에 올라 대학원에서 공부한 지 5년째 되던 해에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많은 분들은 극한 상황 중에 예수님을 만났지만, 제게는 그런 극적인 계기는 없었습니다. 단지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세가지 불안이 있었을 뿐입니다.
첫째 / 인생의 의미에 대한 불안
단기적인 목표 - 학교, 졸업, 군대, 유학, 결혼, 직장, 아이들 교육등 - 는 있었지만 인생 전체를 꿰뚫어 흐르는 일관성 있는 목표가 없다는 사실이 저를 불안하게 만들었습니다.
둘째 / 가치관에 대한 불안
그 당시 히피라는 사람들이 학교 주변에 많았는데 그런 그들을 보면서 저는 미국에서 자녀를 낳아 키울 자신이 없었습니다. 만약 나의 자녀들이 그런 길로 빠져있을 때 충고를 하면 자신의 인생이니 참견하지 말라고 항의한다면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를 생각하다가 내게 절대적인 가치관이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셋째 / 초자연적인 세계에 대한 불안
과학을 전공한 저는 당시 과학적으로 측정될 수 있는 것만이 실체의 전부라고 믿었습니다. 그러다가 다시 베스트셀러가 되었던 소설 『무당』(Exorcist)를 읽었습니다. 우습게도 저는 이 소설을 통해 초자연적 세계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할 때 길에서 성경을 나눠 주는 미국인 전도 대원들에게서 공짜로 성경을 얻어 연구 논문이 쓰는 중이라 시간적 여유가 있어 성경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성경과의 씨름
성경을 읽으면서 은혜 받았다는 분들이 많지만 제 반응은 완전히 달랐습니다. 무엇보다 예수라는 사람에 대한 엄청난 반감을 느꼈습니다. 별 볼일 없는 집안에서 태어나 정규 교육도 받지 못하고 신통치 않은 직업의 30세 청년 예수. 이 청년은 너무나도 상식에 벗어난 말을 많이해서 저를 불편하게 만들었습니다. 자신이 진리라는 등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는 등 이 구절은 작은 예에 지나지 않습니다. 또 거기에 기록된 기적의 사건들은 저를 더욱 황당하게 만들었습니다. 물로 포도주를 만들었다, 물위를 어정어정 걸어갔다든지, 오병이어의 기적등등. 과학을 공부한 저로서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신화이지만 성경을 과감히 던져 버리지 못하는 두가지 이유가 있었습니다.
첫째, 성경은 그 곳에 기록된 사건이 일어났던 때와 거의 동시대에 기록되었다는 사실 때문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예수를 만났고, 그분의 행적을 보았고, 그분의 말을 직접 들었던 사람들이 대부분 살아 있을 때에 성경이 씌어졌다는 것입니다.
둘째, 성경을 기록한 사람들이 인격적으로 결함이 없는 사람들이라는 것 때문이었습니다.
성경을 기록한 사람들 가운데 어느 한 사람도 그 책 덕분에 부자가 되었다든지 높은 자리를 차지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오히려 대부분이 목숨을 바쳐 순교했습니다. 만일 이들의 기록이 거짓이라면 이들은 거짓을 위해 이렇게 목숨을 바칠 수 있었을까?
믿을 수도 안 믿을 수도 없는 성경의 기록 때문에 답답해 하던 제게 결정적인 해결의 계기를 마련해 준 것이 부활 사건이었습니다. 별 볼일 없던 예수라는 사람이, 별 볼일 없는 청년들 몇을 제자랍시고 데리고 다니면서,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정신 나간 소리나 하다가, 결국 당국에 체포되어 처형당하고, 몇 안되는 제자마저 다 뺑소니쳤다면 예수가 일으킨 종교 운동은 예수의 죽음과 함께 끝났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가 체포되어 처형되던 그 날 그를 버리고 뺑소니쳤던 제자들이 두 달도 채 안되어 갑자기 두려움을 모르는 사람들도 변해 예수의 적이 우글대는 예루살렘 한복판에서 전도를 시작했습니다. “너희가 잡아 죽인 예수가 하나님이 보낸 분이라는 증거로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고, 우리는 살아난 예수님을 만나 봤다” 고 주장했습니다. 더구나 관원들의 태도는 담대하게 포교 활동을 하는 제자들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몰라 쩔쩔맸습니다. 다시는 포교 활동을 하지 못하도록 부활했다는 예수의 시체를 무덤에서 꺼내 군중앞에 내보이면 그만인데 관원들은 그렇게 하지 않고 그저 거짓 소문만 나도록 하였던 것입니다. 오랜 갈등과 고민 끝에 그 당시의 상황을 기술한 여러 책을 읽으면서 예수의 부활이 역사적 사실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는 많은 성인 중의 한 분이 아니라 인간의 몸으로 오신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지적으로나마 힘들게 받아들였지만 그것으로 해결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머리로는 이해가 되었지만 아직 그리스도인이 된 것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인생의 주인으로 영접해야 한다는데 저는 이 결단을 내릴 수 없었습니다. 이유는 두 가지였습니다.
첫째, 예수를 주님으로 영접하고 그리스도인이 됨으로써 받게 될 여러 제약들이 싫었습니다. 둘째, 참된 그리스도인이 될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영접을 못한 채 엉거주춤한 상태로 시간을 끌고 있을 때 요한복음 10장 10절을 통해 첫번째 문제를 해결받았습니다. “내가 온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또한 두번째 문제도 어느날 하나님께서 이런 음성을 들려주셨습니다. “영기야 시간이 흐르다 보면 그리스도인답게 살 힘이 네 안에서 저절로 생겨날 것 같으냐? 그럴 힘도 내가 주는 것이 아니냐? 우선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영접해라. 그러면 내가 그리스도인답게 살 수있게 해주겠다.”저는 이 음성 앞에 무릎을 꿇고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이 때가 30세 되던 1974년 가을이었습니다.

4. 보람있던 평신도 사역

교회 사역의 주체 : 평신도
신앙 생활을 하면서부터 저는 교회 사역의 주체는 평신도여야 한다고 항상 생각해 왔습니다. 실질적 차원에서 평신도 사역이 효과적인 경우가 많음을 알 수 있습니다.
목회자가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는 점, 같은 평신도이기 때문에 더욱 설득력 있게 다가갈 수 있다는 점, 초신자에게 성도의 삶을 구체적으로 보여 줄 수 있다는 점, 또 사례를 받지 않으니까 교회에 재정적인 부담을 주지 않아도 된다는 점 등을 장점으로 꼽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평신도 사역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이러한 소원을 아셨는지 주님께서는 영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저에게 다양한 평신도 사역의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그것은 목회자로서는 할 수 없는 평신도만의 사역이었고 열매도 있는 사역이었습니다.
주님을 영접한 후 받은 은혜를 다른 사람에게 간증하고 싶은 마음은 간절했지만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함께 사는 조모님을 교회까지 차로 모셔다 드리면서 겸사겸사 예배에 참석하긴 하지만 사람들은 제가 “날나리 신자”라는 걸 다들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오하이오 주에 있는 가장 큰 도시인 콜럼버스, 씬씨내티, 데이튼에서 연합 수양회가 있을 예정인데 간증을 하기로 한 평신도 한 분이 사정이 있어 못하게 되었으니 저더러 간증을 해보라는 것이었습니다. 지금도 전 그 분이 왜 그 많은 사람 중에 제게 간증을 부탁했는지 그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그 간증 시간이 제가 가짜 신자가 아니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한 진짜 신자라는 것을 공표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평신도 사역을 시작하다
간증을 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국제 결혼하신 자매 두 분이 찾아와 주위에 국제 결혼한 친구들이 많은데 미국인 교회도, 한인 교회도 적응이 되지 않으니 이런 분들을 모아 줄테니 성경공부를 인도해 줄수 있겠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홍문공 형제와 팀을 이뤄 정기적으로 성경 공부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성경 공부 모임은 많이 모일 때는 20명까지도 모이는 모임으로 성장했습니다. 또한 콜럼버스의 한인 교회에 기도 모임이 생겨 홍문공 형제가 인도하고 제가 돕는 역할을 했습니다.
교회 일들에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담임 목사님께 부담이 되지 않도록 많은 애를 쓴 결과, 빤질거리던 대학원생들이 많이 예수님께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1976년 학위를 마친 저는 그 다음 해부터 캘리포니아 주 팔로 알토라는 도시에 있는 베리언사에 중앙 연구실에서 근무하게 되었습니다. 이사하면서 장로교회에 출석하게 되었는데 기도 모임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 생기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던 중 한 청년과 식사도중 서로의 뜻이 상통함을 알게 되었고 청년들을 모아 성경공부와 기도 모임을 제가 살던 아파트를 모임 장소로 삼아 고등학생과 대학생 6명을 놓고 시작했습니다. 이 모임이 자라서 나중에는 매주 50명씩 모이는 큰 모임이 되었습니다.

장년 주일학교와의 만남
그러던 중 신앙적인 이유로 침례교회로 옮기게 되었습니다. 제가 교적을 옮기기로 한 한호제 제일침례교회는 한국에서 공대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와서 박사학위를 받은 후 미국 대학에서 가르치다가 목사가 되신 이지춘 목사님이 개척한 약10개월 된 교회였습니다. 이목사님도 평신도 사역자 노릇을 오래 하셨기 때문에 평신도 사역의 중요성을 알고, 저를 동역자로 대해 주셨습니다. 이목사님의 배려로 미국 남침례회에서 주관하는 장년 주일학교 세미나에 참석하여 강의를 들으면서 내가 원해왔던 사역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장년 주일학교는 평신도가 주체가 되어 움직이는 조직이면서도 교회 안에 그 뿌리를 박고 있어 제가 원하는 두가지 조건을 다 만족시킬 수 있는 조직이었던 셈입니다. 저는 열정적으로 뛰어들어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교사를 발굴하여 훈련시키고 조직을 정비하면서 백여명의 장년 성도를 일곱 개 반으로 나누어 주일학교를 구성하고, 훈련된 평신도 사역자의 중요성을 잘 아는 만큼 교사 훈련을 꼭 제가 시켰습니다. 아직 가정교회를 시작할 여건이 안 되는 교회에는 평신도가 운영하고 평신도가 사역하는 장년 주일학교를 차선책으로 추천하고 싶습니다.

평신도 사역의 최대 난적 : 목회자와의 갈등
평신도 사역에는 장점도 많지만 어려움도 따릅니다. 우선 생업에 종사하면서 사역을 하기 때문에 사역에 많은 시간을 들일 수 없다는 점도 있지만 가장 큰 어려움은 담임목사와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기가 힘들다는 것입니다.
담임목사의 개성과 목회 방침에 자신을 맞춰 가는 것이 평신도 사역자들에게는 제일 힘든 일입니다. 저는 평신도 사역을 하면서 궁극적인 사역 목표를 담임 목사를 성공적인 목회자로 만드는 것에 두었습니다. 또한 평신도 사역의 성공 여부는 담임 목사와의 관계에 달려 있습니다. 평신도 사역자와 담임 목사 사이에 신뢰가 깨지면 그 평신도 사역 때문에 교회가 분열되고 맙니다. 그러므로 평신도 사역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다음 두가지 조건이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첫째, 평신도 사역자와 담임 목사 사이에 절대 신뢰가 있어야 합니다.
둘째, 담임 목사와 화평을 누려야 합니다.
담임 목사와 정 안 맞을 경우엔 어떻게 해야 합니까? 평신도가 교회를 떠나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교회를 찾을 때에는 사역을 많이 할 수 있는 교회를 찾지 말고 존경하고 배울 수 있는 목사님이 계신 교회를 찾으십시오. 목사님과의 관계가 좋으면 사역은 저절로 주어집니다. 그러나 사역 가능성만 보고 정한 교회에서는 조만간 목사님과의 충돌이 반드시 있을 것입니다. 담임 목사에게는 자신의 목회 꿈을 펴 보는 재미와 보람이 있지만, 평신도에게는 그런 것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에 대한 사랑이 없으면 평신도 사역은 지속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바로 이 이유 때문에 평신도 사역은 순수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나중에 하나님 앞에 섰을때 평신도 사역자들 가운데는 많은 분들이 이런 칭찬을 들을 것입니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마25:21)



5. 목사가 꼭 되어야 하나?

교육 목사로의 부르심
평신도 사역을 열심히 하다가 신학교에 가기로 결심하기까지는 엄청난 내적 투쟁이 있었습니다. 그 당시 저의 연구생활을 성공적이었고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기까지 했습니다. 연구생활이 성공적일때 희생할 수 있다는 것은 기쁜일이었습니다. 여러 일에 실패를 하여 신학교에 가는 것이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증표로 생각하는 풍조가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저의 갈등은 희생에 관한 것이 아니라 소명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목사가 되어야겠다는 이 마음의 소원이 과연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일까? 왜 나를 부르시는 걸까? 어디에 쓰시려고 하시는 걸까? 이런 갈등이었습니다. 특히 마지막 질문이 저를 괴롭혔습니다. 그러한 때 하나님께서는 저를 교육 목사로 부르신다는 것을 알 수있었고, 신학교에 가기로 결정했습니다.

목사가 되려는 평신도에게
교육 목사가 되기로 결정하는 과정에서 소명(召命)에 대해 많이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결론은, 아무나 목사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가능하면 평신도 사역자로 머물러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목사가 되지 않으면 죽을 것 같은 사람만 목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업을 버리고 목회자가 되어야만 온전한 헌신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온전한 헌신은 목사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평신도도 얼마든지 온전한 헌신을 할 수 있고 또 해야만 합니다. 중요한 것은 주님께서 주신 자리를 굳건히 지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평신도 사역자로 불러 주셨으면 평신도 사역자로, 목사로 불러 주셨으면 목사가 되는 것입니다. 그럼 하나님께서 목사로 부르시는지는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예언의 은사를 받은 분을 통해 하나님의 부르심을 깨달은 분도 있지만, 가장 확실한 방법은 사역의 열매를 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목사로 부르신 분들은 평신도 때에 이미 목회의 열매가 있습니다. 평신도 때에 이미 목사로서의 재질을 보이며 목사로서의 일을 합니다. 이런 분들만이 목사가 되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요즈음 너무나도 많은 신학생이 쏟아져 나온다고 염려들입니다. 더 큰 문제는 훌륭한 평신도 사역자들이 목사가 되려고 하기 때문에 유능한 평신도 사역자가 줄어든다는 것입니다. 목회자가 되기 위해서는 두가지 조건이 맞아야 합니다. 나의 소원과 성도의 필요를 균형있게 살펴야 합니다. 목사가 안 되면 죽을 것 같은 강한 소원과 성도들의 필요를 채워 줄 수 있는 지도력과 은사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는 게 제 소견입니다.





6. 되고 싶지 않은 사모

제가 신학교에 가기로 결정했을 때 제일 힘들어 했던 사람이 제 아내였습니다. 아내는 예수님도 첫 아이를 낳은 후 젖을 먹이는 동안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성경을 읽다가 예수님을 영접했는데 그후 제가 직장을 잡아 캘리포니아로 이사 온 후에도 교회 사역에 직접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제 사역에는 잘 협조해 주었습니다. 그러면서 9년이 흘렀을 때 하나님의 부르심을 제가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목사로 부르신다는 확신이 점점 굳어지면서 아내의 의중을 떠보았더니 아내는 안색이 싹 바뀌면서 단호히 말했습니다. “그럼 난 당신하고 안 살아요.” 그러나 신학교 문제를 입 밖에 내면서부터 출근하기가 싫어지고 심지어는 앓아눕기까지 했습니다. 연구생활 자체가 힘들어서 출근하는게 싫어졌다면 직장이라도 바꿔 보겠지만 연구 생활에는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결국 아내는 고민 끝에 신학교에 가는 것을 허락했습니다. 그러나 조건이 있었습니다. 신학교를 졸업한 후에 다른 지역에 가서 목회를 하나는 것이었습니다. 자기는 목사 사모 노릇을 하고 싶지도 않고 해낼 자신도 없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시작한 신학교 생활 3년은 마치 지옥과 같았습니다. 학교가 멀기 때문에 주중에는 기숙사에, 주말에는 교회 전도사로 사역을 했기 때문에 가족과 보낼 수 있는 시간이 거의 없었고, 그나마 짧은 만남의 시간도 대부분 다투었는데 아내가 주로 화를 내고 저는 주눅이 들어 듣기만 하는 입장이었습니다. 제가 신학교에 간 것을 아내가 이처럼 못견뎌하며 분노를 표출한데는 어릴 적 환경 탓이 컸습니다. 아내는 무척 가난하게 자랐습니다. 월남하면서 몸만 달랑 내려와 어렵게 살게되었는데 자인 어른은 보성전문을 나온 인텔리였는데 남의 밑에서 오래 일하지 못했기 때문에 일정한 직업이 없이 세상을 원망하며 술만 드시다가 결국은 젊어서 돌아가시고 말았습니다. 가정이 궁핍해서 어렵게 어렵게 대학까지 졸업한 아내는 자라면서 두가지 두려움이 생겼는데 하나는 구질구질하게 사는 데 대한 두려움이었고, 다른 하나는 가장이 가정을 돌보지 못하여 아내인 자신이 생활을 책임져야하는 상황에 대한 두려움이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신학교에 가기로 결정함으로써 아내가 두려워했던 상황이 벌어지고 만 것입니다. 그런 중에도 저의 기도와 성도들의 뜨거운 사랑과 배려가 아내가 두려워했던 것처럼 생활이 구질구질할 필요가 없다는 것도 알았고, 목사가 되는 것이 인생의 낭비가 아니라 사역의 열매가 있음도 보게 되었습니다.
평신도 사역자로 있다가 목사가 되었을 때 가장 고생하는 사람이 아내입니다. 그러므로 평신도 사역자가 목사가 되자면 아내의 전적인 동의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자원함이 없이 억지로 사모가 된 분은 내적으로 서서히 죽어 가기 때문입니다. 아내의 전적인 동의없이 목사가 될 수도 있지만, 그럴 경우에는 하나님께서 절대적으로 자신을 목사로 부르고 계시며, 사역의 결과가 아내의 희생을 보상할 만큼 충분히 크다고 믿을 만한 근거가 있어야 합니다.


7. 투명 인간
평신도 사역이 성공하려면 평신도와 담임 목사 사이에 절대적인 신뢰가 있어야 합니다. 신뢰 관계를 구축하려면 우선 목회자와 교인들 사이에 원활한 의사 소통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서울침례교회에 부임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주보를 4면에서 6면으로 늘이고 『목회자 코너』라는 칼럼을 매주 쓰기 시작했습니다. 이 칼럼을 통해 자신을 투명하게 보여 줌으로써 교인들이 저를 알고 신뢰하기를 원했습니다. 저는 목회자 코너를 통해 저 자신의 실수와 약점까지를 내보이고 싶었습니다. 한번은 연합집회를 인도하기 위해 본교회 예배가 끝나자마자 부지런히 비행장에 갔다가 집회 날짜가 이번주가 아닌 다음주임을 발견하고 쑥스러운 표정으로 돌아왔던 내용을 썼더니 교인들이 얼마나 좋아하던지, 목사가 실수를 했다는 것이 재미있어 하는 표정들을 지었습니다. 그외에도 여성 공포증과 숫자개념에 대한 건망증 등등으로 교인들에게 저의 약점을 표출했습니다. 이와같이 자신의 약점을 노출시키는 정직성이 평신도들의 신뢰를 얻는 것 같습니다.


8 침체에서 성장으로

상처입은 교회
조지 바너(George Barna)가 쓴 「교회를 일으키라」는 책을 보면 퇴락하던 교회가 다시 성장하는 경우는 열 교회 중 하나꼴밖에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퇴락하는 교회를 성장하는 교회로 바꾸는 것이 쉽지 않다는 뜻이지요.
또한 한 목사가 퇴락하는 교회를 성장하는 교회로 전환시킬 수 있는 것은 일생에 한 두번 할 수 있을까 말까 한 큰 일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서울침례교회에 부임하여 제게 주어진 과업이 바로 침체해 있는 교회를 성장하는 교회로 만들라는 것이었습니다.
부임 당시 교회는 깊은 상처를 안고 있었습니다. 담임 목사님이 떠난지 수개월이었고, 부목사님 역시 제가 부임하기 전에 사임하셨습니다. 저를 청빙하는 과정에서 성도들간에 의견대립이 생겨 불편한 관계를 갖고 계신 성도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교회 지도자들인 열분의 안수집사님들 마저 마음의 깊은 상처들이 있었고, 한 집사님은 여러 갈등 때문에 시무직을 쉬고 계셨고, 또 한 집사님은 제가 부임하자마자 사직서를 갖고 왔습니다. 교인들에게 이미 사직을 선포했기 때문에 사직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교회가 살려면 먼저 지도자가 살아서 한 팀을 이뤄야 하는데 이 상황을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 것인가? 그래서 부임하자마자, 집사님들을 존경받는 집사님들로 만들어 드리는 것이 제 사역의 목표라고 집사회의에서 선언했습니다. 그래서 우선 집사님들의 위상을 높여드리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교회에 새로 부임하다 보니 우선 교인들 가정을 심방하는 일이 주어진 과제였습니다. 그 때에 제가 어느 집을 심방할지를 집사님들이 정하시도록 하고, 또 교인들에게도 심방이 필요하면 집사님들을 통해 신청하도록 했습니다. 집사님들이 저의 동역자이며 교회에서 특별한 위치를 가지신 분들이라는 숨은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와 동시에 집사님들의 관계회복이 필요하다고 느껴 집사님 부부들과 수양관에 가서 하룻밤을 지내며 같이 예배드리고 말씀을 상고하면서 집사님들을 향한 저의 기대를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수양회 기간의 대부분을 서로를 이해하는 시간으로 보냈습니다. 그 동안 어려웠던 상황 탓에 비난의 소리들만 하고 듣다가 서로를 이해하는 말들이 오가자 자신들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는 시간이 되고 말았습니다.
부임 직후부터 지금까지 토요일 새벽 기도가 끝나면 집사님들과 함께 간이 식당에서 식사를 하면서 지난 1주일 동안 했던 사역도 보고하고 앞으로 일주일 동안 할 사역에 대해서도 의논합니다. 이와 같이 자주 만나 관계를 형성하고나니 신뢰가 싹트기 시작했다는 증표가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부임초기에는 제가 의제를 제시하고 집사님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종합하는 식으로 진행하였는데, 이제는 목사인 안건과 더불어 의견을 말씀드리면 별 무리없이 동의를 해주시며 수용해 주셨습니다. 또한 재정에 대해서도 제게 최대의 재량권을 허락해주셔서 큰일이 아닌 이상에는 재량껏 사용할 수 있도록 해주셨습니다.
이제는 집사님들이 교회에서 가장 존경받는 분들이 되었습니다. 청년들도 집사님들을 존경하며 잘 따르게 되었습니다. 마침내 집사님들과 성도님들 사이에 신뢰관계가 형성되어 하나가 되어 가는 모습을 보게되었을 때의 기쁨이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9. 하나가 되는 것을 막는 것

회의(會議)
교회에 분열을 가져오고 교인들이 하나 되는 것을 방해하는 것 중의 하나가 회의입니다. 서울침례교회에 부임해서 보니 한 달에 한번있는 시무회의가 안건아닌 안건으로 필요이상 길어지는 것을 보게되었습니다. 그래서 회의의 빈도수를 줄이는 동시에 회의가 대결의 장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궁리 끝에 다음과 같은 네가지 방안을 생각해 냈습니다.
첫째, 빈속으로는 회의를 하지 않습니다. 배가 고프면 짜증이 납니다. 그래서 언성을 높이지 않아도 될 일에도 괜스레 언성을 높입니다.
둘째, 될 수 있는대로 가정집에서 모입니다. 경직된 분위기의 사무실이나 회의실 보다는 가정집이 사람의 마음을 푸근하게 하며 언성이 높아지는 것을 막아 줍니다.
셋째, 예배의 연장으로서 회의를 진행합니다. 저는 교회 회의가 예배드리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찾는 모임이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월말 정기 교회협의회때는 찬송과 지난주에 받았던 은혜에 대해 돌아가며 간증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한 덕인지 부임 이후 지금까지 회의 도중 의견 충돌로 언성이 높아진 적이 없습니다.
넷째, 의견을 낸 분이 통과된 의견을 집행하도록 했습니다. 어떤 의견이든 통과되면 의견 낸 분이 책임 지고 집행하도록 했습니다.
지도자 선출
성도들간에 분열을 가져오는 또다른 경우는 지도자 선출 과정입니다.
그래서 다음 두가지 방법을 택하기로 했습니다.
첫째, 회중이 후보를 추천합니다. 우선 안수집사(또는 장로, 권사)를 몇 명 뽑을 것인지를 집사회에서 결정합니다(장로교에서는 당회). 다음에는 회중에게 필요한 집사의 인원수만큼 각자 추천하도록 합니다.
둘째, 복수제로 공천 후보를 정합니다. 추천이 끝나면 추천을 가장 많이 받은 순 서대로 필요 인원의 두배를 선정, 집사 후보직 수락 여부를 묻습니다. 공천 받은 분들 가운데 사퇴하는 분이 있더라도 보충은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후보직을 허락한 분을 놓고 선출할 집사수 만큼 기표하도록 합니다. 그래서 2/3이상 득표한 분을 세우는 것입니다.



10 목사의 적(敵)

세가지 적
목사가 경계할 세 가지 적이 있다고 합니다. 이 세가지 적은 다 영어 알파벳 “G"로 시작합니다. 첫째가 돈(gold), 둘째가 명예(glory), 셋째가 여자(girl)입니다. 저도 이 세가지 분야에서 정결을 유지함으로 성도들과 신뢰의 관계를 구축해 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돈에 관해서는 초연해 보려고 애썼습니다. 그리고 목회하면서 금전 문제에 비교적 초연할 수 있었던 것은 약사로 일하며 생활비를 벌고 있는 아내 덕입니다. 그리고 가능하면 제 사례 인상에 대해서는 거부하지만 저와 함께 일하는 동역자들의 사례는 후히 주려합니다. 부목사나 전도사님들의 사례가 담임 목사 보다 적다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느낍니다. 일단 목회자로 모셨으면 생활을 할 만큼 충분한 사례를 드리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외부 강사료로 받는 사례는 작은 교회면 그 교회의 감사헌금으로 큰 교회인 경우는 저희 교회의 감사헌금으로 전액 다 드리고 있습니다. 저 나름대로 금전 문제에 깨끗하려고 애쓰니까 좋은 점도 많고 축복도 많습니다.
우선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셔서 경제적인 어려움을 별로 느끼지 않고, 또 제가 솔선해서 헌금을 많이 내니까 성도들도 물질을 바치는 데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금전에 관해 깨끗하려고 애쓸 때 얻어지는 가장 큰 수확은 평신도 사역자들과의 신뢰 관계가 공고해진다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이제는 제가 외부 집회를 나가든, 어디에 돈을 보내자고 하든, 제 동기가 순수하다는 것을 믿어 주시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자유롭습니다. 뿐만 아니라 아무리 거절을 해도 여러 구실로 저희 가정을 재정적으로 돕고자 애쓰십니다.

명예
명예에 관해서는 다음과 같이 하고 있습니다. 우선 단체에서 감투 쓸일을 피하고 있습니다. 저는 명예에 대한 유혹을 특히 경계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유명하다는 것이 어떤 맛인지 이미 맛본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연구실 근무를 할 때 남에게 알려진다는 것, 유명한 사람이 되어 다른 이들의 방문을 받는다는 것이 얼마나 큰 만족을 주고 큰 유혹이 되는지 알기 때문에 목사가 된 다음부터 감투 쓰는 자리는 극력 피해오고 있습니다.

여자
저는 일곱살 때 부모님을 잃은 탓인지 모성적인 것에 마음이 끌리는 성향이 있습니다. 웬일인지 몰라도 옛날부터 여성들과 있는 것이 편했고 여성들도 저를 편하게 생각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이성에 대해 특히 조심하는 편입니다. 여성 상담은 반드시 교회에서 하고, 여신도와 단둘이 밖에서 식사하는 것은 물론 여신도를 제 차에 태우는 것도 삼갑니다. 특히 아내가 집에 없을 때는 여신도 중 누구도 집에 찾아오지 못하게 합니다. 이렇게 조심하는 것은 혹시 여신도가 저를 유혹하고 제가 그 유혹에 넘어가지 않을까 싶어서가 아니라 둘이 아무런 관계가 아니라 할지라도 혹시 이상한 소문이라도 나서 목회에 지장을 받을까 싶어서입니다.





11. 평신도 훈련

평신도 훈련 과정
평신도 사역자를 훈련시키기 위해 저희 교회에서는 다음 다섯 가지 과목을 기초 필수 과목으로 정했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모든 교인들에게 권장하고 있습니다. 저희 교회에서는 월요일과 화요일 저녁 7시부터 9시 반까지를 성경공부 시간으로 책정하고 있습니다.
첫째 / 생명의 삶
교재로는 침례교 진흥원에서 나오는 「새신자 총서」를 사용하고 있는데 하루에 두 과씩 떼면 13주에 마칠 수가 있습니다. 저희 교회에서 사역을 하려면 아무리 작은 사역이라도 반드시 이 과목을 수료해야만 합니다. “생명의 삶”을 공부하는 목적은 신앙생활에 관한 기초적인 것을 총괄적으로 훑어봄으로써 신앙생활의 뼈대를 세우는 데 있습니다.
둘째 / 제자의 삶
“제자의 삶”은 삼위일체라든가, 기도하는 법,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는 법 등의 중요한 주제를 몇개 뽑아 깊이있게 다루는 과정입니다.
셋째 / 경건의 삶
리차드 포스터의 「영적 성장과 훈련」이라는 책을 교재로 사용합니다. 퀘이커 출신 목사인 포스터는 이 책에서 기도, 금식, 묵상, 예배 등 신앙 생활에 꼭 필요한 훈련을 간결하면서도 심도 있게 다루고 있습니다. “경건의 삶”을 듣는 13주 동안 반원들은 기도, 금식, 묵상등의 영성훈련과 소각식, 세족식등을 직접 행합니다. 무엇보다 반을 여러개 만들고 각 반마다 6-8명씩 두어 토의, 간증, 기도를 통한 심령치유에 힘쓰고 있습니다.
이 외에 두가지 과목이 더 있는데 이 두 과목은 모두 일대일 양육 과목들입니다. 둘다 침례교 진흥원에서 번역 출간한 교재를 쓰고 있는데 하나가 「영적 성장의 기본진리」이고, 다른 하나가 「하나님을 경험하는 삶」입니다. 둘 다 13주에 마치며 단 둘이 만나 가르치고 배우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습니다.
평신도 훈련을 정착시키기 위해
교회에 신도 훈련 프로그램이 성공적으로 정착하려면 다음 일곱가지 조건들이 충족되어야 합니다.
첫째, 담임 목사에게 평신도 사역자를 키우겠다는 의지가 있어야 합니다.
둘째, 담임 목사가 평신도 훈련에 참여해야 합니다. 담임 목사가 평신도 훈련 과정을 직접 인도할 경우 성도들에게 평신도 훈련이 중요하다는 인식을 심어 줄 수 있지만, 다른 사역자에게 일임할 경우엔 해도 좋고 안해도 좋은 것으로 인식하기 쉽습니다. 한 과목이라도 반드시 맡아 가르쳐야 합니다.
셋째, 훈련기간이 짧아야 합니다.
넷째, 책임감을 강조해야 합니다. 성도들에게 책임감을 심어 주기 위해서는 목회자 자신이 책임감 있게 임해야 합니다. 훈련과정을 시작할 때 진도표를 나눠 주고 휴강해야 할 일이 있으면 수강표에 미리 날짜를 명기해야 합니다. 그리고 가능하면 휴강을 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그리고 적게 나마 등록금을 받는 것이 좋습니다. 그리고 결석도 세번이상 하게되면 탈락시켜 다음학기에 듣도록 해야 합니다.
다섯째, 토의식 성경공부를 해야 합니다.
여섯째, 홍보를 잘해야 합니다.
일곱째, 탁아 시설을 마련해야 합니다.

12 목사의 생명은 기도
평신도 사역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동기 부여입니다. 목회자가 아무리 평신도 사역을 하고 싶어해도 평신도 자신이 사역의 필요성을 못 느끼고, 하고 싶은 마음이 없으면 평신도 사역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평신도에게 이러한 욕구를 불어넣기 위해 목회자가 해야 할 일이 세가지 있다고 봅니다.
첫째, 목회자 자신이 평신도 사역이 꼭 이루어져야 한다는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둘째, 평신도 사역의 중요성을 기회가 있을 때마다 강조해야 합니다.
셋째, 목사 자신이 사역의 본을 보여야 합니다.
목사가 아무리 애를 쓴다 해도 결국 동기를 유발시키실 수 있는 분은 하나님뿐이십니다. 그러므로 동기 유발을 위해서는 반드시 기도해야 합니다. 성공적인 평신도 사역에는 기도가 절대적인 역할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성도들이 기도하는 성도가 되기를 원하면 목사가 먼저 기도하는 목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목사가 해야 할 일은 딱 세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성도를 준비시켜 봉사 활동을 하게 하는것”, 즉 신도 훈련(엡4:11,12)과 “말씀 전하고” “기도하는 것”(행 6:4)입니다. 그래서 저는 기도를 제 사역의 가장 중요한 것으로 삼았습니다. 저는 중보 기도를 많이 합니다. 성도들 하나하나의 얼굴을 떠올리며 기도합니다. 저는 네 가지 명단을 놓고 기도합니다.
첫째, 신년초에 성도들의 1년 기도 제목을 받습니다.
둘째, 매주일 수시로 기도제목을 받습니다. 한 주일에 열 가정을 위해 특별 집중 기도를 하기 때문입니다. 4주 안에 응답받아야 할 기도 제목을 적어 내라는 부탁과 함께, 열 가정의 주보함에 기도 신청서를 넣습니다. 이 제목을 놓고 하루에 두 가정을 집중적으로 기도합니다.
셋째, 긴급 기도 명단을 놓고 기도합니다. 이 명단에는 긴급 상황에 처한 성도님 일곱 분의 성함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긴급 상황이 해결되면 다른 사람의 이름을 새로이 적어 항상 일곱분을 놓고 기도할 수 있도록 합니다.
넷째, 아직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 안 한 분들의 명단을 놓고 매일 아침마다 기도합니다. 그러다가 예수님을 영접하면 영접한 날짜를 이름 옆에 적어넣고 기도를 멈춥니다.



13. 교회의 존재 목적은 구령(救靈) 사업

교회의 가장 큰 사명은 구령 사업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뻔한 사실이 자주 잊혀지곤 합니다. 더 안타까운 것은 구령 사역을 위해 밖으로 분출되어야 할 에너지가 자꾸 안으로만 분출되고 있는 현실입니다. 그것이 목회자와 성도간의 갈등을 초래하고 교회분열을 일으킨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의도적으로 목회 초점을 구령 사역에 맞추어 전도와 선교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전도하는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우선, 이미 믿는 성도들을 우리 교회로 끌어오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믿는 분들을 끌어 모아서 교인 숫자가 증가하면 교회가 성장하는 것 같은 착각을 심어 주기 때문입니다.
저희 교회의 전도 방법은 “관계에 기초한 전도”입니다. 이것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각 가정교회가 관계에 기초한 전도기지가 되기를 원했습니다. 불신자와 접촉하여 친구가 되고 이 분들을 가정교회에 초청하여 관계를 맺는 가운데 예수님을 믿도록 하는 방법을 택했습니다. 그리고 가정교회의 존재 목적이 전도임을 계속 강조했습니다.
그래서 목장마다 전도 대상자 다섯 명을 놓고 매주 기도합니다. 또한 전도의 목표가 제자화를 포함하고 있지 않으면 참된 전도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지상 명령은 궁극적으로 제자를 만들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1년에 한 사람이 예수님을 영접하고, 침례받고, 13주짜리 기초 공부를 마치도록 돕는 것을 목장의 전도 목표로 세웠습니다. 이 세가지 단계를 다 밟고 나면 예배 시간에 대상자를 앞으로 나오도록 해서 목원 대표가 장미꽃을 선물하고 목원들이 다 나와서 포옹을 해주는 포옹식을 합니다. 그리고 전도하는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새로 믿거나 안 믿는 분들이 불편을 느끼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희 교회를 방문하신 분들은 본인이 원치 않으시면 소개를 않습니다. 또 매주일 다른 찬송을 부르면 쫒아오지 못할 것 같아서 찬송도 10-15개를 골라 1년동안 같은 것을 반복해서 부르며 헌금에 대한 마음의 부담을 고려하여 아직 영접하지 않으신 분은 헌금에 대한 의무가 없음을 써놓았고, 찬송 성경도 등록하면 찬송가를 선물로, 성경은 그 주일 본문을 미리 복사하여 주보에 끼워 드립니다.


14. 평신도 사역의 문제점

목회 방침에 대한 저항
평신도 사역을 하고자 할 때에는 반드시 저항이 따르기 마련입니다. 특히 교회를 개척한 것이 아니고 저처럼 기존 교회에 부임해 와서, 목회자 중심의 사역을 평신도 중심의 사역으로 바꾸려고 할 때는 반드시 저항이 있습니다. 전통적인 목회 방식에 익숙해져 있고 그것을 선호하는 분들이 주로 이런 저항을 보입니다. 제가 부인하기 저부터 저를 반대했던 분들이 있었습니다. 이 분들은 저를 청빙하는 투표 과정에서 부표를 던지신 분들로 교인의 약 10%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반대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었지만 저의 학력이 높다는 것도 반대 이유 중 하나였습니다. 서울침례교회에 부임하기 위해 휴스턴에 도착한 첫날, 그날이 수요일이었고 제가 공항에 도착한 시간은 수요 저녁 예배 한두시간 전이었습니다. 마침 휴스턴에 계신 집사님 한분이 위암 말기로 투병을 하고 계셨는데, 저는 그 분이 제가 부임하기도 전에 돌아가시면 어쩌나 하고 늘 염려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수요 예배를 드려야 할지 병문안을 가야 할지 고민하다 저는 병문안 쪽을 택했습니다.
수요예배는 당시 집사님들이 돌아가며 인도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편찮은 집사님을 찾아가 문안도 드리고 기도도 해드렸습니다. 그 집사님은 그후 얼마 안되어 소천 하셨습니다. 그런데 제가 휴스턴에 도착해 놓고도 수요 예배에 참석하지 않고 환자를 찾아갔다는 사실을 언짢게 생각하셨던 분이 기회만 있으면 이 사건을 들먹여 저를 비난했습니다. 그분은 결국 교회를 떠나셨는데 제 선택이 전통적인 목회자로서는 퍽 그릇된 것으로 보였던 모양입니다. 주일 저녁 예배를 폐지할 때도 비난을 받았습니다. 서울침례교회에 부임한 후 저는 제반 교회 모임을 재검토했습니다. 딴 모임은 다 존재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었는데 주일 저녁 예배만을 그저 예배 한번 더 드린다는 것 외에는 의미가 없어보여 저희 교회는 주중에 모임이 많으니까 주일 저녁은 가족들과 보내며 월요일을 예비하는 것이 좋겠다는 결론을 얻어, 가정 예배 재료를 제공해 주고 주일 저녁은 집에서 가정 예배를 드리도록 정했을 때도 전통적 교회 생활을 주장하는 분들의 반발을 샀습니다.
이렇게 불만하시던 10여 명의 성도들이 결국 자신들의 체질에 맞는 목사님과 교회를 만나 2년 만에 교회를 옮기셨습니다. 떠나신 분들이 그 교회에 적응을 잘해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신다는 소식은 저를 안심시켰고 교회는 교회대로 무엇인가 억누르고 있던 것이 사라진 것처럼 한결 밝아진 느낌이었습니다. 그러나 어떤 이유에서든 교인들이 교회를 떠난다는 것은 마음 아픈 일입니다.
전혀 다른 형태의 목회를 시도한다는 것은 힘이 드는 일입니다. 그러나 평신도 사역을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평신도 사역은 성경적인 사역이고 이 사역이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사명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무슨일이 있어도 평신도 사역을 정착시키고 성공시켜야 한다는 각오로 뛰고 있습니다.



15 목회는 신뢰이다

관계의 중요성
마태복음 22장에 보면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구약에서 가장 중요한 계명을 하나 대 보라며 도전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들의 의도는 예수님을 함정에 빠뜨리고자 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께서는 이러한 바리새인들의 의도를 잘 알면서도 답을 주셨습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이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마22:34-40). 예수님의 대답의 요지가 무엇입니까? 신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관계라는 것입니다. 종적으로는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고 횡적으로는 이웃들과 올바른 관계를 맺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가르침에 비추어 볼 때, 신앙의 척도는 관계 속에서 찾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성공적인 신앙 생활을 하고 있는지의 여부는 이웃과 성공적인 관계를 맺고 있느냐에 달려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웃과의 관계는 하나님과의 관계의 척도이기 때문입니다.
목회와 사역의 목표인 관계 회복
목회도 그렇고 사역도 그렇고 궁극적인 목표는 관계 회복에 두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목회자와 평신도, 평신도와 평신도 사이의 올바른 관계위에 교회 사역도 기초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특히 동역 관계는 신뢰의 관계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목회자의 목회 성공 여부는 성도들과 얼마만큼의 신뢰 관계를 형성했느냐에 두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주님께서는 신앙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관계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이삼십 명이 모이는 교회라 할지라도 목사가 성도들의 신뢰를 받으며 목회하고 있다면 목회에 성공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시는 일에 성공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16 가정 교회 시작

또 하나의 교회, 가정교회
현재 미국에서는 교회 부흥에 관해서 세 단어가 자주 언급되고 있습니다. “평신도 사역”, “소그룹”, “기도”가 바로 그것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가정교회를 통해 이 세가지가 다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가정교회는 구역이 아닙니다. 구역은 같은 지역에 있는 사람을 모은 것이지만 가정교회는 지역에 관계없이 관계성을 토대로 묶은 것입니다. 제자훈련을 주목적으로 하는 순모임도 아닙니다. 성경공부를 주로 하는 장년 주일학교도 아니며, 기도 모임은 더더군다나 아닙니다. 그렇다면 가정교회가 무엇입니까? 가정교회는 구역, 장년 주일학교, 순 모임, 기도회의 주 기능을 포괄적으로 다하면서 지역교회의 기능까지 완전히 해내는 교회입니다. 가정교회에는 절대적인 모델이 없습니다. 가정교회의 조직인 운영 방식, 모임의 순서 등은 교회 상황과 교인의 실정에 맞게 만들어 가야 합니다.
교육 목사에서 담임 목사로
서울침례교회에서 가정교회를 시작하게 된 배경과 그 동안의 운영 방식에 대해 처음부터 설명해 보고자 합니다. 이렇게 저의 경험을 쓰는 것은 평신도 사역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께 생각거리를 심어 주고 목회에 활용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제공해 드릴 수 있었으면 하는 소원이 있기 때문입니다.
서울침례교회에서 사역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주신 분은 평신도 때 섬기던 산호제 선교침례교회의 강밝내 목사님이십니다. 한번도 개인적인 만남을 가져 본 적이 없었는데 어느 날 강 목사님의 점심 제의에 자리를 함께 한 자리에서 서울침례교회를 소개해 주시며 목사님이 4개월간 기도해 보았더니 제가 그곳에 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확신이 든다며 저에게도 기도해 보라는 것이었습니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 같은 소리였지만 기도해 보겠노라 약속했습니다. 그 후 목사님이 배려로 서울침례교회에서 부흥회 강사로 초청이 와 부흥회도 인도하며 교인들도 만나보게 되었습니다. 저는 사흘간 집회를 인도하며 식사 때든지 어느 때든지 성도들을 만날 기회가 생기면 가정교회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그리고 한번 해 볼 의사가 있다면 나도 서울침례교회에 오는 것을 고려해 보겠다는 것이 얘기의 요지였습니다.

부임 두 달 만에 13주 훈련을 시작하다
부임 한 후 처음 석 주 동안은 가정 교회에 관해서 설교를 했습니다. 부임 후로도, 구역 모임을 포함하여 어떤 모임에 가든 가정교회에 관한 얘기를 했습니다. 그 때에 성도님들은 가정교회가 무엇인지 감은 잡히지 않지만, 목사님이 주장하시는 것을 보니 일단 시작하면 좋은 일이 생기겠다는 느낌이 들더랍니다. 가정교회를 시작하기 위해서는 목자 후보들에게 훈련이 필요하다고 느꼈습니다. 최소한 두개의 훈련 코스 “생명의 삶”과 “경건의 삶”은 마쳐야겠다는 생각에 부임한 지 두달이 지났을 때 우선 “경건의 삶”을 시작했습니다. 시작하면서 과연 몇명이나 신청을 할까 염려를 했는데 놀랍게도 80명이 넘는 분들이 신청을 하셔서 저를 깜짝 놀라게 했습니다.
성도들 마음에 성경을 배우고 싶은 욕구가 숨어 있었던 것입니다. 안수 집사님들도 기초과목인 것을 알면서도 기꺼이 전원이 수강신청을 해주신 것이 특히 고마웠습니다. 더군다나 그분들 중에는 “생명의 삶”에서 쓰는 것과 똑같은 교재로 남을 가르쳐 본 경험이 있는 집사님도 계셨는데 말입니다.

20개 목장을 세우다
13주짜리 “생명의 삶”이 끝날 때 즈음부터는 목자 되실 분을 놓고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안수 집사님 열분은 자동적으로 목자가 되는 것으로 했습니다. 교인 수를 고려하여 20개의 목장을 구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목자는 아무래도 자원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목자가 되기 위해서는 많은 희생을 치러야 하는데 자원하는 마음 없이는 희생적인 사역을 하기가 힘들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졸업 예정자 80여 명에게 설문지를 돌리고 원하는 사역에 표기하도록 했습니다. 설문지에는 목자 외에 두가지 직책을 더 명기했습니다.
첫째 / 교사
목양할 마음은 있으나 가르치는 것이 약한 목자들을 위해 가르치는 직책을 대신 맡아 줄 사람들입니다.
둘째 / 예비 목자
분가를 대비한 목자 후보로, 나중에 목원 수가 늘면 분가해서 목장을 꾸려나갈 사람입니다. 그 후 선정된 목자님들을 모시고 다음 단계 훈련인 “경건의 삶”을 시작했습니다. 드디어 8월 말에 목자 명단을 발표했습니다. 명단에는 목자의 성함, 연령, 거주 지역을 명기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교인들에게 원하는 목자를 선택하도록 했습니다. 일부 목자에게 성도들이 몰릴 것을 예상, 성도들이 선호하는 순서대로 세 분을 선정하여 신청서를 제출하도록 한 후 제가 직접 목장을 편성했습니다. 각 목장에 10명씩 배치되는 것을 원칙으로 했습니다. 한 목자를 여러명이 선택한 경우에는, 영접한 지 얼마 안 되신 분이나 저희 교외에 새로 나온 분들에게 우선권을 드렸습니다. 목장 배정이 끝난 후 목자님들에게는 배당된 목원과 접촉하도록 했습니다. 편지도 쓰고 만나기도 하면서 관계를 형성해 가도록 부탁을 드리고, 9월 중순쯤 목자들을 모시고 1박 2일 수련회를 가졌습니다. 수련회의 목적은 한 팀을 만드는데 있었습니다.

첫 목장 모임 : 국민학교 때 가장 기억나는 사건이 뭐지요?
10월의 첫 금요일을 목장 모임의 첫날로 잡았습니다. 첫 목장이 모이기 전 수요일 밤에는 목자들이 교회에 모여서 특별 금식 기도회를 가졌습니다. 이틀 후 첫 모임의 날이 왔습니다. 첫 모임은 서로를 알아 가는 시간으로 삼도록 했습니다. 그래서 간단한 것 같지만 꽤 생각을 해서 만들어 낸 위의 질문을 하도록 했습니다. 목원들로 하여금 자신을 내보이게 하려면 자기 얘기를 하게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질문에 대해 돌아가며 대답하도록 해야 하는데, 질문은 사적인 내용을 담고 있으면서도 부담을 주지 않는 것이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상기 질문은 누구에게도 부담을 주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누구에게나 단 몇 학년 만이라도 학교를 다닌 경험이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첫 번 목장 모임의 출석률은 90%를 상회했습니다. 더더구나 얼마 후부터는 가정교회 출석률이 주일 예배 참석률을 능가하기 시작했습니다. 교회에는 안 나와도 가정교회에는 참석하는 분들이 늘어났기 때문입니다. 목장이 시작할 때부터 목자와 목장교사는 매주일 예배 후에 평신도 한 분이 인도하는 교사 공부 모임을 갖도록 했습니다. 모이는 시간은 30분입니다. 교사들은 여기에서 배운것을 갖고 목장에 돌아가서 가르쳤습니다. 목자들도 주일마다 1시간 15분 동안 정기 모임을 갖는데 주로 초기에는 목장을 인도하면서 생기는 여러 문제를 토의하고 해결하는 데 시간을 많이 썼습니다. 목자 모임에서는 특별히 “자기 노출 연습”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목장 모임에서는 목원들이 자신을 노출시켜야 내적 치유를 받을 수 있습니다. 목원들이 자신을 노출시키기를 원하면 목자가 먼저 자신을 노출시켜야 합니다. 또한 가정교회의 현황을 파악하기 위해 목자들에게 금요일 모임이 끝날때마다 목장 보고서를 제출하도록 합니다. 저는 이 보고서를 통해 성도들의 상항을 파악하고 그들을 위해 구체적으로 기도합니다. 또한 담임 목사의 심방이 필요한 분이 있으면 목장 보고서를 통해 신청을 받아 목자와 함께 심방하고 있습니다.
목장을 시작한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전도입니다. 저희들이 추구하는 전도 방식은 관계에 기초한 전도입니다. 다시 말해, 신뢰 관계를 구축하여 친구가 된 후에 복음을 전하고, 목장 모임에 나와 친숙해진 후에 교회에 나오도록 권면하는 것입니다. 한 사람이 진실로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인의 삶 가운데 내주하여 역사하시는 그리스도의 실체를 목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안 믿는 분들로 하여금 목장에 나오게 해서 그리스도인들의 서로 사랑하는 모습을 보게 하는 것이 가장 확실한 전도 방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목장 모임의 좋은 점은 안 믿는 분들이 그리스도의 임재를 맛볼수 있는 따뜻한 분위기와 그리스도를 영접한 후 영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돌보아 줄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목장이 사역 목표를 다음과 같이 세웠습니다. “1년에 예수님 모르는 분 한분 이상이 예수님을 영접하고 침례받고, ‘생명의 삶’을 마치도록 하는 것.” 목장을 시작한지 몇 달도 안 되어 출석 인원이 15명을 넘는 목장들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분가할 때가 온것입니다. 분가할 때는 목장을 둘로 가르는 것보다, 기존 목장을 예비 목자에게 이양하고 목자 가정이 몇 명만 데리고 나와서 목장을 새로이 개척하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이렇게 하여 1995년 12월 현재 목장 수는 32개입니다. 약 2년 반 동안에 12개가 증가한 것입니다. 목장 출석 인원도 계속해서 주일 장년 예배 참석자 수를 웃돌고 있습니다.
목장 사역이 활성화되면서 목장 하나하나가 개교회의 역할을 감당하기 시작했습니다. 목원에게 문제가 생기면 목자에게 연락이 가고 목원들이 동원하여 돕습니다. 어떤 목장은 완전히 교회의 형태를 갖추어서 선교부장, 전도부장, 여선교회장, 남선교회장까지 임명해 사역을 합니다. 이러다 보니 직책을 맡지 않은 분이 없게 되고 자연스럽게 성도들이 모두 그리스도의 지체 노릇을 하게 되었습니다.

선교하는 가정교회
각 목장이 예배, 교육, 친교, 전도 등 지역교회가 할 일을 거의 다 하고 있는데 최후로 남은 것이 선교였습니다. 그래서 가정교회마다 선교사를 정하여 기도하도록 함으로써 선교 사역이 가정교회를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각 목자에게 6개월의 여유를 주고, 그 동안 기도 후원을 필요로 하는 선교사를 찾으라고 부탁했습니다. 선교사가 정해지면 이 분을 위해 목장 모임 때마다 기도하도록 했습니다. 목장 이름도 선교사가 사역하시는 선교지의 이름을 따서 붙이도록 했습니다. 30여개 목장이 모두 선교사를 정하기까지 1년이 걸렸지만, 후원하는 선교사 대부분이 목원과 관련이 있는 분이었기에 목원 전체에 “우리 선교사”라는 의식이 강해서 중보 기도도 훨씬 절실하게 할 수 있었습니다. 기도 뿐만이 아니라 재정적으로도 선교사를 돕고자 하는 목장에게는 목장에서 송금하는 액수와 같은 액수를 교회가 보조해 주기로 했습니다. 목원들이 선교 헌금을 많이 보내면 보낼수록 교회 보조가 비례적으로 증가하니까, 목원들의 열심도 날이 갈수록 더해졌습니다. 수요일 기도회 때는 목장마다 돌아가며 선교 보고를 합니다. 이 시간을 통해 보고하는 이나 듣는 이나 많은 은혜를 받습니다.
공동 목장
가정교회를 시작한 지 약 2년이 가까워 올 무렵, 같은 목장의 목원들이 형제 자매처럼 가까워진 것을 보며, 이제는 다른 목원들과도 교우 관계를 넓힐 필요가 있겟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매달 마지막 목장 모임을 합동 목장으로 모이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매달 새로운 목장의 목원들을 만나 서로 이해하고 도울 수 있는 시간을 갖고 있습니다.
가정 교회를 한국과 미국 전역에
요즈음 저희 교회 목장 모임이 한국으로도 퍼지고 있습니다. 휴스턴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암 센터인 앤더슨 병원이 있는데, 한국의 의대 교수들이 1년 혹은 2년 계약으로 연수차 이 곳에 오십니다. 이 분들 중 많은 분들이 한국보다는 한가한 생활과 술자리 덕에 교회에 오셔서 예수님을 영접하고, 목장 모임을 갖게 되면서 신앙의 활기를 얻게됩니다. 이런 분들이 계약 만기가 되어 귀국하셔도 목장 모임을 그리워하다가 휴스턴에 연수를 오셨던지 주재원으로 오셨던 분들끼리 가끔 모이셔서 휴스턴에서 하던 대로 목장 모임을 갖는다고 합니다. 서울에도 의사들을 중심으로 석 주에 한 번 모이며, 부산에도 의대 교수들을 중심으로 한 목장이 생겼습니다. 유공 주재원을 중심으로 한 가정교회가 서울에서 격주로 모인 지도 몇 달이 되었습니다. 저희 교회에서는 한국으로 귀국하는 분들께, 목장 모임이 정상적인 교회 생활을 대치하지 않도록 교회 생활을 열심히 할 것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저에게는 미국 전역에 가정교회 목자들을 파견하는 꿈이 있습니다. 1970년도에 시작된 이민의 물결을 타고 많은 한국인들이 미국으로 들어온 까닭에 지금은 한국인이 없는 마을이 없을 정도입니다. 한 마을에 10-30명 정도의 한국인이 거주하는 곳이 많은데 그러한 규모로는 목사님의 가정을 경제적으로 책임질 만한 여우가 되지 못하기 때문에 한인 교회가 세워질 수가 없습니다. 저는 우리 교회 성도들이 이러한 작은 마을에 직장을 얻든지 조그마한 가게를 차려 이주하기를 소원합니다. 그래서 교회생활을 할 수 없는 소수의 한인들을 모아 가정교회를 시작했으면 합니다.


17 서울침례교회 가정교회에 관한 자평
가정교회가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을 저는 두가지로 꼽습니다.
첫째 / 제가 부임했을 때에 이미 성경적으로 기초가 잘 닦인 평신도 지도자들이 있 었습니다.
둘째 / 평신도 지도자들이 가정교회 사역을 적극 지지해 주었습니다.
저희 교회에서는 가정교회를 최우선에 두고 모든 부서 활동을 가정교회 중심으로 재조정하였기 때문에 별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전통적인 구조에서 가정교회 구조로 전환할 때는 평신도 지도자들의 성숙도와 성도들의 반응에 따라 전환 속도가 조정되어야 합니다. 전통을 고수하는 교회일수록 전환 시간을 더 길게 잡아야 할 것입니다. 교인들의 의식을 바꾸는 데 많은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지도자 훈련이 안 되어 있는 교회도 시간을 길게 잡아야 할 것입니다. 지도자 개발에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전통적인 교회 구조에서 가정교회 구조로 옮겨갈 때 절대 필요한 것이 담임 목사의 절대 확신입니다. 가정교회가 아니고는 안된다는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이 확신을 혼자 간직해서는 안되고 설교나 성경 공부나 세미나를 통해 성도들에게 전달해야 합니다. 저희교회에서 가정교회가 일찍 정착할 수 있었던 것은 가정교회를 지지해 주었던 훌륭한 지도자들이 있었지만, 제 고집도 상당한 역할을 했습니다.
가정 교회의 정착 과정
가정교회는 정착하기까지 일정한 과정을 거칩니다. 저희 교회의 예를 보면 세 가지 단계를 거쳤습니다.
첫째 / 목원들끼리 친숙해지는 단계입니다.
둘째 / 내적인 상태를 나누는 단계입니다.
셋째 / 전도와 선교의 단계입니다.

가정교회 조직이 아니더라도 교회의 사명을 잘 감당하고 있는 교회가 많습니다. 한국에서는 여의도 순복음 교회가 그렇고, 미국에서는 시카고 근처에 있는 윌로우 크릭교회, 남가주에 있는 새들백교회가 그렇습니다. 이러한 교회들을 보면 공통적으로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첫째 / 교회사역의 목표를 불신자 전도에 두고 있습니다.
둘째 / 평신도들이 활성화되어 적극적으로 사역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셋째 / 어떤 형태로든 성도들이 섬길 수 있는 수많은 소그룹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18 목자 이야기
목장 사역의 어려움과 보람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있도록 목자들의 간증문을 이 곳에 실었습니다. 이 분들의 얘기는 특수한 얘기가 아니라 모든 목자들을 대표하는 얘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네분의 이름은 밝히지 않았지만 글 쓰신 분들의 배경 정도는 아시는 것이 도움이 될 것 같아 연령과 직업만은 밝혔습니다.

구두수선 (39세)
저는 평범한 시골 가정에서 다섯 남매 중 셋째로 태어나, 위로는 누나와 형에게 눌리고 밑으로는 동생과 막내에게 치여 항상 열등감 속에서 자라나다 보니 매사에 소심한 성격을 갖게 되었습니다. 지금의 아내를 만나서 미국에 온 후 하나님을 알게 되었으며 하나님께서는 항상 말씀으로 저를 깨우치려 하셨지만 저는 그것을 무시한 적이 많았습니다. 작은 사역을 하면서도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내 힘으로 해결하려 했고, 또 저 자신의 영광만을 생각했습니다. 그런 저에게 하나님께서는 그 동안 모아 둔 돈과 6개월 된 복중의 아이를 같은 시기에 거두어 가셨습니다. 그 때 저희 부부는 욥의 고난을 읽으면서 위로받고 회개하며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했습니다. 그후 하나님께서 저를 목자로 세워 주셔서 1년동안 사역하면서 어려운 일도 있었지만 많은 보람과 은혜 또한 경험했습니다. 처음엔 세 가정밖에 안 되던 것이 차츰 부흥하여 지금은 어른이 15명, 아이들이 13명입니다. 저희 목장의 가장 큰 문제는 믿음없는 남편들이었습니다. 이런 어려움을 놓고 남편들을 위한 집중 중보기도에 힘썼더니 요즘들어 안 믿는 남편들이 조금씩 변화되어 가는 모습에서 중보 기도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느낍니다. 저희 목장이 부흥하게 된 요인을 쓰라면 제가 한 것은 별로 생각나는 것이 없고 꼭 대라고 한다면 목장을 위해 열심히 기도했다는 것 하나뿐입니다. 또 하나를 들자면 목원들을 올바르게 인도할 수 있기 위해서는 제가 먼저 올바른 사람이 되어야 겠다는 생각에서 열심히 노력했다는 것뿐입니다. 저희 목장의 큰 자랑거리는 사랑입니다. 목원들끼리는 물론이고 자신들보다 못한 사람들에게까지도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해 나가고 있습니다. 그런 보람들과 더불어 저희 가정에도 하나님의 축복이 있어서, 하나님께서 2년 전에 데려 가신 아이 대신 다시 새로운 생명을 저희 가정에 보내 주셨습니다. 몸이 약한 아내를 위한 목사님과 목원들의 기도가 건강한 아들을 순산하는 기쁨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저는 복의 근원이며 사랑이신 주 하나님께서 우리 죄인들을 통해 역사하고 계시자는 것을 믿습니다. 또한 평신도 사역을 하면서 비로서 목사님의 노고가 얼마나 크신지 알 수 있었습니다.
미용원 경영(53세)
최영기 목사님을 뵙기 전까지 저의 믿음 생활은 뜨겁지도 차지도 않고 그저 덤덤했습니다. 오랫동안 습관처럼 교회 생활을 해 왔습니다. 그러던 중 최 목사님께서 부임하시면서 큰 변화가 생겼습니다. 3단계의 성경공부반이 시작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 무렵, 최 목사님의 목회 방침에 따라 가정교회라는 목장이 세워졌고 저는 뜻하지 않게 목자라는 책임을 맡아 목장 모임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아무도 가정교회가 무엇인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모임이 시작되었지만 1주일에 한 번씩 만난다는 그 자체로 그저 좋았습니다. 우리 목장은 네 가정으로, 목원들은 젊고 교육 수준이 높은 직업인들로 부족한 것 없는 안정된 생활을 누리고 있었으며, 영적으로도 노장들이었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차츰 영적으로 이처럼 부족한 사람이 목자 노릇을 하는 것이 부담스럽기 시작했습니다. 더 나아가 두려움과 열등감이 저를 방황케 했습니다. 목원들 역시 거부 반응을 많이 보이며, 말씀을 공부할 때마다 의문이나 반대 의견이 많아 성경 공부 시간이 토론장이 되기가 일쑤였고, 질문과 답이 범벅이 되어 아무런 해결책을 보지 못한 채 헤어질 때가 많았습니다. 그러다가도 믿지 않으시는 분들을 초대하면 그 분들 앞에서는 또 너무나 조용히 입을 다물어 버려 주고받을 만한 포근한 영적 대화거리도 줄어 들었습니다. 그래도 목장 모임은 특별한 교회 행사가 있을 때를 제외하고는 한번도 빼먹지 않고 모였습니다. 그러는 중에 최목사님께서는 특별히 저희 목장을 위해 열심히 기도해 주셨고, 저 역시 목원 한사람 한사람의 이름을 불러가며 기도에 매달렸습니다. 목장과 목원을 위해 하루에 세번씩 기도했고, 부흥하는 다른 목장의 예를 수시로 들려주고 또 목원들이 좋아 하건 안 하건 목장이 하나되게 해달라는 통성 기도를 모일 때마다 했습니다. 이렇게 반복되는 모임과 예배를 드린 지 1년이 가까워 오던 어느날 목원들이 다 함께 주님의 임재와 사랑을 느끼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면서 얼었던 얼음이 서서히 녹듯이 목장의 분위기도 차츰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이 목장과 목원들은 세상의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한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우리 목장은 찬양이 풍성한 목장입니다. 또한 말씀 공부를 통해 풍성한 영의 양식을 얻으며 가슴의 신앙을 회복하고 긍정적이고도 확실한 삶의 목표도 갖게 되었습니다. 간증의 시간을 통해 하나님의 크신 사랑에 대해 느끼고 배우는 바가 큽니다. 매번 늘어가는 간증도 저의 감사 제목입니다. 나눔의 시간을 통해서는 서로의 어려움과 기쁨을 나누면서 주님 안에서 가장 좋은 해결책을 찾으려 노력합니다.
또한 기도를 통해 주님을 만나며, 선교지를 위한 중보 기도를 통해 기도의 능력을 체험하게 해주시며 주님의 살아 계심을 증명해 주십니다. 저와 목원들은 초대 교회의 모습이 이 목장에서 이루어지길 소망하며 기도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인이 되시는 목장, 열심히 배우고 가르치는 목장, 기도하는 목장, 사랑이 넘치는 목장이 되길 기도하고 있습니다.

컴퓨터 그래픽 디자이너(38세)
저는 3대째 믿는 가정에서 30년 이상 교회 생활을 하면서 하나님의 일에 대해서만큼은 누구 못지 않게 충성해 왔다고 자부했습니다. 또한 한때는 주님의 일을 핑계로 아내에게 이혼하자고까지 했으며, 교회일을 할 때에도 제 의견에 반대하면 상대방을 헐뜯으며 그사람과는 상대하지 않는 바리새인이나 사두개인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최목사님께서 가르치는 성경 공부에 참여하면서 그 동안 자랑스럽게 생각했던 믿음 생활의 토대가 하나하나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그 후로 제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 계속되었고, 그 와중에 목자직을 임명받아 7명의 목원을 데리고 가정교회를 시작했습니다. 목원들과의 힘을 합한 기도와 토론을 통해 저와 하나님, 가정과 이웃과의 관계가 하나 둘씩 해결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저의 부족함에서 기인한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첫째 / 잘해 보려는 마음
목자직을 맡고 보니 또 옛 습성대로(내가 노력하여) 잘해 보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목장이 제일 먼저 분가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인원 동원에 급급하였고 칭찬 받기를 즐겨했습니다.
둘째 / 기도 방법
하나님께서 구체적으로 역사하시고자 하는 영역에 대해서는 추상적으로 기도하고, 인도 방식에 대해서만 열심을 내어 구체적으로 기도했습니다. 잘 인도해 보겠다는 부담감을 안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셋째 / 친교 방법
목장 모임을 친교가 우선이라는 생각에 처음부터 오락을 즐기는 쪽으로 인도했습니다. 모이면 속 깊은 이야기보다는 농담만 하고 헤어지니까, 새로 온 목원들이 모임에 부담을 느끼지 않았고 그러다 보니 분가하는 일까지 생겼습니다.

넷째 / 목원을 대하는 마음가짐
가정교회에서는 모든 목원이 사역에 동참하는 것이 원칙인데도 불구하고, 저는 목원 중에서 신앙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을 가려서, 신앙이 있겠다 싶은 사람에게는 가정교회의 사역을 같이하자고 권하면서 자주 만나서 더욱 친해지고, 그렇지 않은 목원에게는 전화 한 통화로만 관계를 유지해 왔습니다.
이 네가지 문제를 해결해 보려고 나름대로 애쓰는 동안 내적 갈등은 더 심해졌고, 누구에게 말도 못하고 혼자서만 괴로워하다 보니 영적, 정신적, 육체적으로도 피곤하고 힘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1년이 지나갈 무렵부터 첫번째 문제부터 해결해 주셨습니다. 첫번째 문제가 해결되니 다른 문제들도 자연스럽게 해결이 되어 이 목장의 주인은 내가 아니라 주님이시라는 사실을 확실히 알게 해주셨습니다. 목원들에게 있었던 여러가지 어려움들도 하나님의 은혜로 해결되는 역사들을 목도하면서 지난 30여 년간 주님의 일을 해 오며 느꼈던 보람보다는 2년 동안 목자의 직분으로 가정교회를 섬기며 하나님의 역사하심에 따라 순종하였을 때 얻은 기쁨과 보람이 훨씬 더 큽니다.
엔지니어(53세)
최목사님의 가정교회 운영에 대한 방침을 들었을 때 저는 다음 두가지 이유를 들어 선뜻 동의하는 편이 아니었습니다. 첫째는 가정교회가 사회적 공통분모가 있는 사람들로 구성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교회는 공통 분모가 없는 사람들이 모여야 하는 곳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런 취지가 위험할 수 있다고까지 보았습니다. 둘째는 가정교회가 요구하는 헌신을 감당할 자신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어쨌건 가정교회를 인도할 25명의 목자 주에 저도 그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 결과 저희 목장은 연령도 다르고 교육배경, 직업 심지어 사는 지역까지도 가깝지 않은 사람들로 목원이 구성되었습니다. 누가 일부러 조정한다해도 그처럼 완벽하게 공통분모가 없도록 짤 수는 없을 정도였습니다. 제가 인도하는 목장은 우려했던 대로 처음부터 비틀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젊은 20대 부부는 다른 목장으로 가고 싶다고 말했고, 60대 내외분께서는 자신들 때문에 목장이 이렇게 되었다 하시고, 다른 가정은 두세번 참석하고는 나오지를 않았습니다. 나는 도리없이 새벽마다 절박히 기도했습니다. 목사님은 물론 많은 분들이 저희 목장을 위해 기도해 주셨습니다. 그러던 중 하나님의 은혜로 서울에서 주재원들로 파견된 사람들을 알게 되면서부터 저희 목장은 활기를 되찾기 시작했습니다.
주재원 부부 세 쌍이 6명의 꼬마들과 함께 참석한 것입니다. 더 놀라운 것은 우리 목장의 연령 분포는 어린아이들까지 합치면 0대에서 60대까지 모두 모인, 문자 그대로의 가정교회였습니다. 목원들과 저는 목장 이름을 “와보라목장”이라 짓고 열심을 다해 목장을 운영해 갔습니다. 서로의 문제를 위해 기도하고 간증하며 찬송과 성경공부를 하면서 모임이 너무 좋아 밤 12시를 넘기고, 헤어지고 나면 다음 모임을 기다렸습니다. 목장에도 축복이 열매가 맺히기 시작하여 세분이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했고 저와 목원들의 기도는 감사와 찬양으로 가득찼고, 만나는 사람에게마다 우리 목장에 대한 자랑이 끊이질 않았습니다. 그러나 우리 목장의 천국 모임의 첫 장이 서서히 막을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주재원들이 임무를 마치고 귀국할 때가 된 것이었습니다. 서로 부둥켜 안고 헤어지기가 싫어 울고, 떠나는 사람에게 선물과 자신들이 좋아하는 성경구절을 선물하며 서로를 위해 간절히 기도하며 헤어졌습니다. 그러나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은 계획을 가지고 계속 일하시는 분이었습니다. 1995년 2월, 서울에서 저희 목장 앞으로 팩스가 왔는데 그곳에는 서울에 “와보라 목장 2호”가 탄생했다는 소식이 실려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해 6월 서울에서 또 팩스가 왔습니다. 울산으로 내려가신 한 형제님 가정이 “와보라 목장 3호”를 만들고 6월 17일에 첫 예배를 드렸다는 소식이 실려 있었습니다. 이 소식을 통해 우리는 우리 각자에게 특별한 계획과 소원을 가지고 쉬지 않고 일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발견합니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드립니다.


19 목원 이야기

가정교회의 가장 큰 목적은 전도입니다. 다음 글들을 쓰신 분들은 다 최근에 믿으셨거나 믿어 보려고 하는 분들입니다. 이 분들 눈에 가정교회가 어떻게 비춰지고 어떻게 도움이 되는지를 읽음으로, 가정교회가 어떻게 전도에 도움이 되는지를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꽃집 경영(52세)
저는 교인이 된 지 겨우 8개월 정도 밖에 안 된 걸음마 새신자 입니다. 저는 항상 나 중심적으로 살아온 상당히 이기적이고 교만한 사람이었고, 그리스도인이 될 것이라는 것을 꿈에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죄인이었습니다.
어떤 목장에서 놀러 오라고 해서 간 것이 목장과의 첫 만남이었는데, 그때는 성경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어찌나 듣기 싫었는지 모릅니다. 예수님을 영접한 후부터는 본격적으로 목장 모임에 참석하기 시작했습니다. 목장에 가서는 되도록 유익하고 도움이 될 수 있는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 제 모습을 봅니다. 1주일을 정신없이 바쁘게 지내다가도 목장에만 도착하면 피곤함도 잊어버리고 편안해진 마음으로 모임을 참석하게 됩니다. 요새는 말을 처음 배우는 어린애처럼 기도도 조금씩하고 있습니다. 교회만 왔다갔다 하는 것이 아니라 목장이라는 작은 그룹으로 모여서 실제적인 이야기들을 나누고 친형제보다도 친밀하게 지낼 수 있다는 것이 무한히 감사합니다. 이제 저도 남들을 위하여 기도하고 회개하며 감사할 줄 아는 것을 보면, 하나님께서 저를 선한 사람으로 또한 그리스도인으로 빚어 가고 계신 것 같습니다. 저도 모르게 벌써 8개월이 지났습니다. 남들이 저더러 많이 변했다고들 합니다. 기분 나쁘지 않은 이야기 입니다.
의사(43세)
그 동안 방황하고, 고민하며, 끝이 없는 욕심을 채우기 위해 정신없이 살아왔습니다. 미국에 연수차 온 지금도 더 많은 것, 더 나은 것을 바라고 추구하는 일에 몰두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일과 가족과 그리고 주위 사람에 대해, 지금까지 보아온 것과는 다른 각도에서 바라볼 수 있는 생각과 여유를 갖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한번도 깊이 생각해 보지 않고, 그저 항상 부정적으로만 여겨 왔던 성경과 교회에 대해 미약하나마 거부하지 않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이 가정교회를 통해 나타났습니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저와 제 아내는 목장 모임에 계속 참석하고 있습니다. 목자인 집사님은 이 모임을 통해 저를 포함한 우리 가족 모두가 하나님의 품으로 영원히, 그것도 빨리 들어오기를 매일 기도하신다고 합니다. 집사님이 바라시는 만큼의 진보와 발전을 거두지 못해 송구스럽기도 하지만 이 나마 변화된 것도 집사님과 목원들, 그리고 매주 갈 때마다 마음 속 깊이 와 닿는 설교를 해주시는 목사님의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까지는 앞과 위만 바라보며 남보다 먼저 뛰고 남보다 먼저 걷고 남보다 더 높이 날기 위해 애써 왔습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의학 분야의 무한성과 나 자신의 무지함을 보면서 마음이 자꾸 움츠러들고 매사에 의욕과 흥미를 잃고 있을 때쯤, 목장 모임은 전부터 알고 있던 성경의 명구를 다시 생각케 하는 자리를 마련해 주었고, 물질적인 세계와 영적, 정신적인 세계의 존재를 부인하면서 현실적인 전투의 승리에만 온 힘을 바쳐 온 저에게 새로운 안정을 제시하여 주었습니다. 휴스턴에 있을 동안 계속적인 목장 모임을 통해, 지적으로 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나 영적으로도 충만한 모습으로 귀국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스포츠스타 의류상(34세)
저는 1981년부터 이민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1987년 결혼 후 두아이의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눈만 뜨면 긴장속에 살아가는 남의 나라 생활인지라, 언젠가는 사랑하는 아이들도 저와 같이 긴장 아닌 불편함을 느끼며 살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착찹했습니다. 그들의 마음 고생을 최소한 줄여 주고자 머리를 짜던 차에 중학교 동창을 우연히 만났습니다. 미국 생활 수년 만에 처음으로 말을 틀 수 있는 친구를 만난 반가움에 우리는 서로의 가정을 여러 번 왕래했고, 그러는 사이에 자연스럽게 종교에 관해서도 이야기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서울침례교회와 가정교회에 대해 알게 되었고 매주 모임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평소 아내는 한국 사람과의 만남을 아쉬워하던 터라 모임 얘기를 듣고는 아주 좋아하며 선뜻 교회에 나가자고 말했지만 저는 이 문제를 놓고 여러 주 고심하다가 마음을 결정하고 교회에 참석하였습니다. 벌써 가정교회 모임에 참석한지 반년이 되었습니다. 수십년을 다른 환경 속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모임이라 항상 좋은 일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예수님을 본받아 서로들 허물을 덮어 주려하고 또 어려운 일이 있으면 중보기도를 통해 서로 도와주려고 해서 좋습니다. 그리고 아이들도 친구가 많이 생겨서 즐겁게 지내는 것을 보며 아내와 저는 너무 흐믓하고 이것이 사람 사는 것 같다고 느꼈습니다. 저희 목장은 지금 분가 문제로 과도기에 있지만 믿음이 크신 어른들과 우리 목장 식구들의 기도 속에 우리 목장이 더 새롭게 태어나리라 믿습니다.

미용재료상(36세)
이 곳 미국에서 생활한 지도 어느덧 6년을 넘어서고 있습니다. 그동안 항상 약간씩의 변화가 있었지만 지난 1년 반 만큼은 어느때도 경험도 보지 못한 많은 것을 체험한 시간이었습니다. 교회라는 곳은 저에게 멀고도 먼 곳이었습니다. 처음에는 학교 다닌다는 핑계로 다음에는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교회를 멀리하다가, 어느 때부터인가 아내와 세살박이 딸에게 좀더 많은 한국 사람 그리고 좀더 많은 대인 관계를 접하게 해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때 무엇 때문인지 나를 그리도 맘에 들어하며 열심히 전도하시던 분이 있었는데 그분을 따라 마지못해 간 곳이 가정교회였습니다. 처음에는 밤늦게 아내와 딸을 내보내고 집에 혼자 남아 맥주마시며 텔레비전을 보느니 운전사로 따라다니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으로 나선 것인데 이것이 목장 예배라 불리는 가정교회와 나와의 첫 만남이 되었습니다.
저는 낯선 장소에 가면 음식 먹는 것을 불편해 하는 성격인지라 가정교회 모임에 참석한 날부터 이것을 빌미로 아내에게 내가 얼마나 참고 있는지에 대해 세도를 부리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이곳 사람들은 왜 그리도 자존심이 없냐고, 왜 남 앞에서 안할 말 할 말 다하냐고 비난하면서, 제발 나에게는 아무것도 묻지 말고 운전사 노릇만 충실히 하게 해달라고 아내에게 말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저도 대화에 끼어 대답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도 교회 이야기만 나오면 자존심 때문에 듣지 않는 척하면서 내 마음을 꼭꼭 숨겼습니다. 그러나 사실 교회에 대해 무척 궁금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분들의 친절의 비결은 무엇일까? 왜 가정교회 내에서 서로를 위하고, 위로하며, 감싸주고, 나눠주고 있을까? 이왕 시작한 것이니 교회에 나가 봐야겠다는 생각을 이 때쯤 한 것 같습니다. 그러던 중 큰 사랑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사실 학교 다니랴, 직장 다니랴, 재인 사업하랴, 아내와 결혼식도 못 올린 채 살아왔습니다. 항상 이 문제는 제게 짐이었고, 남에게는 말하고 싶지 않은 비밀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우리 목장 목자님께 이 사정을 말씀드렸는데 이 사실을 목자님이 목사님께 알려 결혼식 허락을 받아 주셨고, 목장 목원들에게 알려 예식과 피로연 일체를 책임지게 해 주셨습니다. 저와 아내가 한 일이라곤 예복 준비하고 사진 찍고 목사님 앞에서 하나님께 서약한 것밖에는 없는 것 같습니다. 저희 결혼식을 치루어 주신 목원들은 우리부부는 우리 교회의 가정교회가 이뤄 낸 하나의 결실이라고 말씀들을 하십니다. 이제는 가정교회에 참석하는 것이 우리 가족에게 아주 중요한 일이 되었습니다. 나와 아내와 우리 딸은 어렵고 힘든 한 주를 지내면서도 가정교회 나가는 날만을 기다립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곳에서 휴스턴까지는 서울에서 대전 약간 못 미치는 거리입니다. 이렇게 먼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저는 저와 가족을 위해 진정한 운전사 노릇은 물론, 이 사랑을 나눠 갖고 싶은 다른 가족까지 인도하여 함께 다니고 있습니다.

출처 : 양무리마을 | 글쓴이 : 포커스 |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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