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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도 아가씨-박재홍
1
사십 계단 층층대에
앉아 우는 나그네
울지 말고 속 시원히
말 좀 하세요
피난살이 처량스러 
동정하는 판자집에
경상도 아가씨가
애처로워 묻는 구나
그래도 대답 없이
슬피우는 이북 고향
언제 가려나
2
고향길이 틀 때까지
국제시장 거리에
담배 장사 하더라도 
살아보세요
정이 들면 부산항도
내가 살던 정든 산천
경상도 아가씨가
두 손목을 잡는 구나
그래도 뼈에 맺힌 
내 고장이 이북 고향
언제 가려나
3
영도다리 난간 위에
조각달이 뜨거든
안타까운 고향 애기
들려주세요
복사꽃이 피던 날 밤
옷소매를 부여잡는 
경상도 아가씨가
서러워서 우는 구나
그래도 잊지 못할 
가고 싶은 이북 고향 
언제 가려나

부산'40계단'테마거리  

  6.25에 생각나는 부산시내의 역사적 테마거리의 모습을 찾아가보고 싶었다.
  60년전의 처참했던 피난시절을 고스란히 되살려 볼 수 있는 중구 중앙동
  4가 "40계단" 주변을 둘러보면서 잊혀가는 역사를 들춰보고싶었다. 대구삼
  덕국민학교 5학년, 남침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일가들이 살고 있는 부산으로
  피난을 했다. 3개월 후 대구로 돌아오니 집에는 모르는 피난가족들이, 학교
  는 육군병원이 되어 있었다.






40계단은 부산시내 중심지였던 부산중구에 위치하여 많은 피난민들이 그 주위에 판잣집을 짓고 밀집해서 살았었고 바로 앞 부두에서 들어오는 구호 물자를 내다 파는 장터로, 헤어진 가족들의 상봉을 고대하던 장소로, 피난 살이의 애환이 깃던 곳으로 1951년 박재홍선생이 부른 "경상도아가씨”라는 곡의 소재로도 사용된 당시 영주동 산, 동광동, 보수동 일대에 모여 살았던 10만명이 넘는 피난민들에게는 가장 친근한 계단길이요. 약속과 고향소식을 기다리는 장소였다.

오늘의 40계단길




이 40계단을 기념하기 위해 부산시에서는 '40계단 문화관광 테마거리'를 조성. 6.25피난민의 애환과 향수가 담겨 있는 이 곳을 50~60년대 분위기에 맞도록 재현하여 추억을 회상할 수 있게 함으로써 새로운 관광명소로 조성 했다. 원래 영선산이 깎인 뒤 오늘날의 영주동에서 옛 부산역과 국제여객부두를 왕래하는 달동네 지름길 계단이다. 8.15 광복 귀환동포와 6.25 피난민들이 이 주위에 모여 살며 생계의 방편을 강구했고, 동광동과 영주동 판자촌으로 가려면 반드시 이 40개 계단을 헤아리면서 올랐다고 한다. 이 계단 근처에서 구호물자를 사고팔아 좌판노점과 요기꺼리 장터로 생계를 연명하던 곳이다. 1953년 11월 부산역 대화재 사건이후 주변의 집들이 불타 없어져 구호품시장과 암달러상들이 더 활성화 되었고 그 뒤 40 계단은 주거 지로 잠식되어 4미터 가량의 폭이 1미터 정도 밖에 되지 않는 좁은 계단으로 바뀌었다. 현 '40 계단'은 본래의 계단에서 남쪽으로 25m 쯤 떨어진 곳에 새로 축조한 것이다. 기찻길 모자이크한 옛 길에 희망찬 내일을 향한 등불을 형상화한 40 계단문화관광테마거리 상징 게이트인 평화의 문이 있다.




40계단에서 바라본 테마거리 40계단이 유명해진 것은 "40계단 층층대에 기대앉은 나그네.."라는 대중가요가 크게 유행하면서부터다. 원래의 자리에서 떨어져 있는 이곳에 1993년 8월 6일 가로 60㎝, 세로 180㎝, 폭 60㎝의『40계단기념비』를 세우고 그 뒤쪽에 대중 가요 "경상도 아가씨"의 노래 가사와 계단의 유래를 새겨 넣었다.






'아코디언 켜는 사람' 40 계단의 중앙에 아코디언을 연주하는 거리의 악사의 모습.뒤에는 음악을 듣고 돈을 넣어 달라는 돈 통도 있다. 그 어려웠던 시절에도 예술로서 삶에 조그마한 위안을 주었던, 힘든 생활 속에도 낭만을 간직했던 거리의 악사를 표현 하였으며 센서와 음향장치를 설치하여 관광객이 스쳐갈 때 1950년대의 경음악이 연주되어 옛 정취를 느낄 수 있도록 하고있다.




'어머님의 마음'

피난생활속에도 희생과 사랑으로 자식을 키우시던 어머니像.




'철도레일과 신호기' 부산역전 대 화재 전의 옛 부산역(현 중앙동 무역회관자리)을 상징하기 위해 기찻길이라는 주제로 40계단 앞쪽으로 40계단광장과 건널목광장을 설치하고 거리를 조성하였으며 총길이는 140m이다.


'물동이 진 형제간' 판자촌에 살면서 어린 나이에도 가사를 도우며 물을 길어 식수로 하던 그 시절, 큰언니의 몫이 집안에서는 대단한 살림꾼이었다. 그래서 '경상도아가씨' 그 시절 그 노래가 애창된 것이 아닐까.




'뻥튀기 아저씨' 기찻길에서 목탄을 주워오던 시절, 먹꺼리가 없던 그 시절, 펑! 소리와 함께 뽀얀 연기, 구수한 냄새를 풍기던 강냉이 박상튀기 아저씨의 모습과 엄청난 폭음소리에 귀를 막고 서 있는 아이는 바로 내 모습이었다.




'지개꾼의 휴식' 가족을 위해 힘든 노동을 하면서 지쳐, 잠시 휴식을 취하는 아버지像.




40계단 문화관



당시 생활상을 담은 사진과 생활용품 등이 전시되어 있고 6층에는 다양한 특별전시가 마련되고 있다. 피난학교 수업시간 모습이 새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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