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서 온 엽서 (1989 년)



Hi 지아!

I’m now sitting the first floor of Tour Eiffel.
Our trip to Paris very fun, we don’t have enough
time to rest. I tell you more when I get back.

Canhang (난 황으로 불렀는데?)




미국와서 두 번째로 사귄 학교 친구이며 영어 수업이 끝난 후 그녀는
월남 소설책을 나는 한국 소설책을 찾아 다니며 운전으로 갈 수 있는 거리의
도서관은 죄다 뒤비고 다녔었다, 한번은 그녀 자동차로 다음은 내 차로.




‘황’ 하얀 얼굴 솜털이 아직 보일 정도의 스물 한 살 미스 코리아 (?)
보다 더 예뻤던 어린 새댁, 아버지가 프랑스 대사관 (대사?) 에서 일 하신다고
했고 방학때마다 가족이 있는 프랑스로 날아갔던 그녀의 남편은 스무살 초
어린나이에도 그 당시 꽤 비쌌던 Jaguar 스포츠카를 몰고 다녔다.




400 권이 넘는 한글 소설책들 찾아 읽느라 얘써지 말고 영어 공부나
좀더 열심히 했더라면 블방에서 영어로 뭐 좀 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도
있긴 하지만 햄버거집 가서 말 못해 그냥 돌아서 굶고 나올 정도는 아니니..




학교 가까운 곳에 신혼집이 있던 그녀는 점심을 가져오지 않는 날이
거의 였는데 내가 싸간 도시락으로 함께 먹고 그녀집으로 가서 뭔가를 만들어 주는
것으로 먹거나 전화를 하면 그녀 짝꿍이 어디선가 동화속 왕자처럼 오다를 해서
갖다 주고는 휑하니 나가곤 했는데 늘 인사가 ‘하이~ 바이~’ 로 끝났다.




해마다 방학때면 그녀는 프랑스로 나는 한국으로 몇 년간을 서로 다른
학교로 옮겨간 후에도 연락을 하고 살았는데 언제 어떻게 끊어졌는지도 모르겠다.
살아만 있다면 어딘가에서 다시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다.




석류들이 조금 더 두고 제대로 여물게 하고 싶었는데 지난 여름이
얼마나 지겨웠으면 발랑까진 것들이 벌써 돼바라져서 ‘날 좀 보소’ 하고 있다.
아직은 속이 빨갛지 않아서 숙성된 맛도 향도 없어 시기만 했다.




말도 글도 않 통하던 사람들과도 마음을 주고 받으며 그런대로
나쁜 소리 않듣고 잘해 나온 것 같은데 요즘 블방에서 아무래도 글줄이 많이
길고 내가 너무 가볍게 처신을 하는가 보다. 글을 좀더 짧게 써야겠네.
글 제대로 안읽은 님들 더러는 오해를 하시는 것 같기도 하고..


비말 飛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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