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0706_아파트 문화사

오늘의 집 | 반포아파트

강남아파드 시대의 서막을 열다..

 

반포아파트는 처음으로 한강 남쪽에 건설된 대단지 아파트다. 1970년대, 55만여㎡(16만7000평)부지에 242억원이 투입된 이 대규모 공사를 사람들은 ‘남서울건설사업’이라고 불렀다.

 

 

 

1973 79일 아침. 관악구 동작동(현 서초구 반포동) 한강변에는 양산을 쓴 사람들이 장사진을 쳤다. ()의 상징이던 승용차도 100여대나 몰려들어 발디딜 틈이 없었다. 반포차관아파트(현 반포1단지 중 일부) 입주자를 은행나무 열매를 이용한 추첨으로 뽑는 날이었다. 1490가구 모집에 수천명의 사람이 몰렸고 경쟁률은 5.61로 치솟았다. 당시 이 아파트의 72( 22) 주택형은 360만원. 무주택자만 신청할 수 있었지만 편법이 성행했다. 친척 이름을 빌려 두 채 이상 당첨된 사람, 입주 전에 웃돈을 받고 아파트를 팔아버린 사람, 집이 있는데도 동사무소 직원에게 뒷돈으로 3000~5000원을 주고 다른 집에 세든 척 서류를 꾸민 사람들이 나중에 적발돼 노량진경찰서가 한동안 북적였다.

 

 

강남아파트 시대의 시작

반포1단지는 최초로 '강남'의 서막을 열었다. 72~138(22~42) 3786가구로 구성된 반포아파트는 처음으로 한강 남쪽에 건설된 대단지 아파트였다. 55만여㎡(167000)부지에 242억원을 들여 만든 당시 최대 규모의 공사로 `남서울건설사업'이라고 불릴 정도였다. 1970년대에는 아파트에 대한 수요가 늘어났고 중동에서 벌어들이는 돈이 넘쳐났다. 정부는 전국 각 지역에 동시다발적으로 아파트를 지어댔지만 한계가 있었다. 사업지가 늘어나면서 공사기간은 길어졌고 수요가 많은 서울에서는 아파트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반포차관아파트는 임대아파트라 팔거나 임대할 수 없었는데도 아파트가격(360만원) 25%나 웃돈이 붙어 최고 450만원을 호가했다.

 

 

 

최초의 복층 설계 아파트

반포1단지가 단순히 덩치로 승부했던 것은 아니다. 주택 내부에는 주택공사가 처음으로 복층 설계를 도입했다. 1,2층 연결주택이라고 불렸던 이 설계는 1호당 2개층을 사용했다. 아파트는 6층 높이지만 1,3,5층에만 현관이 있었고 내부에 계단을 놓아 2,4,6층으로 이동할 수 있었다. 105(32C)주택형에는 아래층에 부부침실과 식당을 겸한 13평의 넓은 거실을 뒀고 손님을 위한 화장실도 별도로 마련했다. 부엌 옆에는 가정부방, 위층에는 서재와 가족실, 아동전용욕실이 있는 중상류층을 위한 집이었다. 단지 내에서 벗어나지 않고 생활할 수 있도록 다양한 시설을 갖춘 것도 빼 놓을 수 없다. 단지 앞에는 상가점포 238개가 죽 늘어섰고 유치원, 동사무소, 전화국, 은행, 학교도 모두 단지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위치했다. 또 단지 내로 노선버스가 통과하기도 했다. 이런 점에서 마포, 한강아파트와 확실하게 차별성을 뒀다.

 

이전에 없었던 새로운 단지를 만들면서 소소한 부작용도 나타났다. 노선버스가 단지를 관통하면서 보수공을 가장한 좀도둑이 늘었다. 주차장에 세워 둔 차에서 물건이 없어지는 일도 빈번했다. 도난사고가 잦아지자 요즘처럼 경비원을 두고 드나드는 사람을 통제하는 바람에 단지 앞에서는 주민과 경비원 간의 실랑이도 벌어졌다. 뜨거운 물을 이용한 지역난방시설을 설치했지만 1973년말 석유파동이 일어나 난방을 제대로 가동하지 못하는 일도 있었다. 석유절약정책에 따라 실내온도를 기존 23도에서 18도로 낮추자 입주자의 항의가 쏟아졌다. 결국 난방에 쓸 석유를 구하기 위해 직원이 석유공사 인천급유소까지 갔다가 허탕을 치고 돌아왔다. 소형평형 임대주택과 중대형 분양주택이 한 단지로 묶이면서 예상치 못하게 입주자 간의 위화감 문제가 불거진 것도 반포아파트가 처음이었다. 단지를 동서로 관통하는 도로(현 신반포로) 남쪽에는 AID차관을 받아 지은 임대주택 1490가구, 북쪽에는 105~138㎡ 중대형 아파트 2296가구가 배치됐다. 중대형 아파트는 입주 전 집값을 모두 내야 해 경제력을 갖춘 사람들이 많이 입주했고 차관아파트는 봉급생활자가 많았다. 이 때문에 AID아파트 쪽 단지 경비나 청소업무를 더 소홀히 한다며 관리실에 항의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반포1단지는 1981 8월 입주자자치관리운영위원회에 관리권을 넘길 때까지 주택공사에서 관리를 맡았다.

 

반포1단지, 그 이후

반포1단지 건설 후 1977년에는 반포2, 3단지 아파트가 착공한다. 반포1단지만한 규모(대지13만평, 263억원) 5층 아파트 4120가구를 건설하는 난공사였다. 고속터미널 근처라 공사장 주변이 혼잡해 공사차량이 교통법규위반 딱지를 수차례 뗐고 공사 인력도 부족했다. 결국 완공이 되지 않은 채로 8월 입주가 이루어졌지만 한달 만인 9, 가스폭발사고가 발생한다. 입주자 6명이 숨진 이 사고 이후 결국 어린이 놀이터가 있던 자리에 건물을 다시 지어 재입주하는 일이 있기도 했다. 1단지에 비해 더 늦게 지어진 2,3단지가 재건축은 먼저 이루어졌다. 3단지가 있던 자리엔 반포자이가 올라섰고, 2단지 자리엔 래미안퍼스티지가 들어서 이제 입주를 앞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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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아파드 시대의 서막을 열다..

옮김|seorabeol_T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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