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이원복 교수가 그린 "시관이와 병호의 모험"인가 하는 만화가 있었습니다.  거기 내용 중에, 이 두 꼬마가 지옥 구경을 하는 장면이 있었는데, 거기서 히틀러는 물론, 나폴레옹과 알렉산드로스 대왕도 사슬에 묶인 채 악마들에게 채찍질을 받으며 고통받는 모습이 그려져 있었습니다.  히틀러는 그렇다치고, 두 꼬마가 나폴레옹이나 알렉산드로스 같은 대영웅들이 왜 지옥에 있는지 놀라자, 안내자가 태연히 말합니다.  "자신의 야욕을 위해 전쟁을 일으켜 수많은 사람들을 파멸과 죽음으로 몰아넣은 장본인이기 때문"이라고요.





(저는 어린 시절 비행기는 못탔지만 세계 여행을 이렇게 만화책으로 했습니다. 제가 잘못 알고 있는 세계의 모습이 있다면 그건 모두 이원복 교수님 책임입니다.)



과연 나폴레옹은 지옥에 갈 만큼 악당이었을까요 ?  그래도 히틀러같은 괴물과 한묶음으로 비교하는 것은 너무 가혹한 처사가 아닐까요 ?




(어 ?  저 맨 왼쪽 인물은 누구죠 ?)


글쎄요, 최소한 히틀러는 가정사에 있어서 단정한 사람이었고, 아이들을 정말로 좋아했고, 성실한 사람이었다고들 하지요.  나폴레옹은 최소한 개인적인 사생활이 깨끗하거나 단정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나폴레옹은 정식 결혼 외에도 수많은 여성들과 놀아났습니다.  황제가 되기 전부터도 조세핀이 다른 방에서 자고 있는 같은 건물 내로 당시의 인기 여배우나 다른 귀부인들을 끌어들여 정사를 벌이곤 했고, 이 사실을 눈치챈 조세핀이 그 방 앞에 와서 난동을 부리면 벌컥 화를 내기도 했습니다.  한마디로 가정사는 개판이었지요.  자발적으로 권력자의 호감을 사기 위해 열심히들 달려든 그런 여자들은 그렇다치고, 나폴레옹과의 불륜을 전혀 원치 않았던 여자들도 거의 강제로 자기 여자로 만들기도 했습니다.  대표적인 케이스(사실 거의 유일한 케이스겠네요... 그 외의 여자들은 대개 스스로 원했다고들 하니까요)가 폴란드의 백작부인 마리아 발레프스카(Walewska)입니다.  20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 노년의 발레프스카 백작과 결혼했던 이 애국적인 여자는, 나폴레옹에게 폴란드의 독립을 호소하러 갔다가 나폴레옹의 눈에 들어 거의 강제로 그의 정부가 됩니다.  정작 슬픈 일은 나폴레옹 자신의 강제도 있었지만, 다른 폴란드 애국자들이 그녀의 등을 떠다 밀었다는 것이지요.  성경의 에스더도 그렇게 외국 왕에게 몸을 던져 유대민족을 구했다나 어쨌다나 하면서요.  사실 나라의 독립은 그렇게 외국 권력자에게 미녀를 갖다 바친다고 되는 것은 아니지요.  결국 폴란드는 독립은 하지 못합니다.  그래도 나폴레옹이 엘바섬에 귀양갔을 때, 나폴레옹을 찾아 온 유일한 여자는 그의 어머니와 여동생 폴린, 그리고 이 발레프스카 백작부인 뿐이었다고 합니다.




(미모도 미모지만, 다른 싸구려 여자들과는 달리 애국심과 기품이 있었기에 나폴레옹이 더욱 매혹되었던 여자 마리아 발레프스카...)



하지만 이 정도는 사실 당시에 누구나 다 저지르던 불륜 또는 로맨스에 불과합니다.  여자 문제에 있어서 나폴레옹은 정말 후안무치의 극을 달립니다.  나폴레옹이 이집트에 원정을 가서 카이로에 머물 때 이야기입니다.  현지 여자들에게는 별로 관심이 없었던 나폴레옹에게, 눈이 튀어 나올만큼 아름다운 프랑스 여자가 나타납니다.  폴린 푸르(Pauline Foures)라는 이름의 이 20대 초반의 여자는 장-노엘 푸르라는 젊은 경기병대의 중위의 부인이었는데, 신혼의 남편과 헤이지기 싫어 몰래 군복을 입고 남편의 배에 올라탄 여자였습니다.  (사실 이런 식으로 이집트에 따라온 여자들이 꽤 많았다고 합니다.)  나폴레옹은 당장 작업에 착수합니다.  부하들을 보내 이리저리 여자를 떠보던 나폴레옹은, '남편이 있는 곳에서 불륜을 저지를 수는 없다'는 답변을 받고는, 당장 푸르 중위를 전혀 중요치 않은 서신들을 파리에 전달하라는 명령과 함께, 영국 해군이 득실거리는 바다로 내몹니다.  단 몇 시간 만에 이렇게 남편을 처리하고는 바로 그 날 밤 폴린을 자기 여자로 만듭니다.




(이쯤에서 적절한 사진... 그레고리 펙 주연의 영화 '다윗과 밧세바')



그런데, 당혹스럽게도 얼마 안 있어 남편이 되돌아옵니다.  당연히 영국 해군에 나포된 남편을 조사한 영국은, 아무런 가치도 없는 서류들을 전달하려고 바다로 나왔다는 이 젊은 중위의 정체와 임무에 의심을 품다가, 결국 이집트로 되돌려보낸 것입니다.  한마디로 나폴레옹 엿먹으라는 이야기였지요.  나폴레옹은 이에 굴하지 않고, 이 중위를 이혼시킨 뒤 그것도 모자라 최전선으로 배치시켜 풍토병으로 죽거나 전사할 때까지 카이로로 되돌아오지 못하도록 조치합니다.  결국 이 불행한 중위의 결말이 어땠는지는 기록에 남아있지 않습니다.  이렇게까지 해놓고, 나중에 나폴레옹이 심복들과 함께 이집트에서 몰래 빠져나갈 때, 폴린에게조차 프랑스로 귀환한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고 비밀에 붙입니다.  나중에 프랑스로 돌아온 폴린을 만나려고 하지도 않았던 것은 물론이고요.  (대신 집과 상당한 금액의 현금을 선물로 주었다고 합니다.)


이런 류의 치정관계는 그냥 개인적인 일이고, 영웅호색이라는 말로 간단히 덮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나폴레옹의 진짜 범죄는 상당히 무시무시합니다.




(자파 포위전에 대해서는 나폴레옹이 페스트 환자들을 방문하는 인도적인 그림만 그려졌습니다.  당연하지요. Gros가 그린 이 그림의 발주자가 바로 나폴레옹이었으니까요.)



1799년, 팔레스타인의 자파(Jaffa)를 공략한 나폴레옹은, 항복하면 목숨은 살려주겠다는 약속으로 내성에서 농성 중이던 투르크 군의 항복을 받아냅니다.  이들의 수는 4,000명에 달했습니다.  이들은 손을 등 뒤로 묶인 채 3일 정도 가혹한 대우를 받았는데, 나폴레옹은 이들을 계속 먹이고 감시하는 것이 어렵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결론은 대학살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총살을 하다가, 나중에는 탄약이 아깝다고 총검으로 끝장을 냅니다.  이건 변명의 여지가 없는 전형적인 전범 행위입니다.  나폴레옹을 위한 변명을 들어보면, 이들을 풀어줄 경우 결국 적군에게 붙어 적군을 더 강화시키는 결과를 낳았을 것이라고 합니다만, 그렇다면 애초에 적의 항복을 그런 거짓 약속으로 받아내면 안되는 것이지요.  포로 학살은 정말 저질 범죄 행위입니다.


이뿐만 아닙니다.  나폴레옹은 인종 청소의 혐의도 받고 있습니다. 


이 끔찍한 이야기는 아이티(당시 프랑스 이름은 Saint Domingue였습니다)에서 시작됩니다.  당시 아이티는 프랑스와 스페인이 나눠 가지고 있었는데, 특히 프랑스가 점거한 서부 지역(바로 생 도밍그)은 당시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식민지였습니다.  세계 커피 생산량의 2/3, 설탕 생산량의 1/2이 거기서 나왔다고 합니다.  이 모든 것은 아프리카에서 데려온 흑인 노예들을 가혹하게 착취함으로써 가능했던 것입니다. 




(영국에 인도가 있었다면, 프랑스에는 생 도밍그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꿀단지에서 변이 생깁니다.  투생 루베르튀르(Toussaint L'ouverture)라고 하는 흑인 영웅이 나타나 프랑스인과 스페인인, 영국인들을 내쫓고 반(半) 독립 국가를 세운 것입니다.  루베르튀르는 프랑스 혁명 정신에 입각하여 노예제를 폐지하고 모든 사람이 자유와 평등을 누리도록 했고, 또 나폴레옹이 이끄는 프랑스 통령 정부에 대한 지지도 다짐했습니다.  그러나, 아이티에서 쫓겨난 플랜트 농장주들의 주장, 즉 노예제 없이는 설탕도 커피도 없다는 말에 설득된 나폴레옹은, 겉으로는 노예제를 부활시킬 생각은 없다면서 자신의 여동생 폴린의 남편 르클레르(Leclerc)를 1802년 아이티로 파견합니다.  ( 나폴레옹의 여동생과 파리 영국 대사관저에 얽힌 이야기 http://blog.daum.net/nasica/6862387 참조)




(아이티 섬의 잔혹한 반란 전쟁)



르클레르는 루베르튀르의 군대를 격파하고, 결국 '노예제를 부활하지 않는다'는 조건 하에 루베르튀르와 평화 조약을 맺습니다.  그리고나서는 시골로 은퇴한 루베르튀르와 그 가족을 전격 납치하여 프랑스의 감옥으로 압송해버립니다.  루베르튀르는 결국 감옥에서 혹독한 대우를 받다가 폐렴으로 죽습니다.




(루베르튀르의 별명은 '검은 자코뱅'입니다.)


르클레르는 아이티에서 노예제를 다시 세우기 위해 끔찍한 계획을 진행시킵니다.  그가 나폴레옹에게 쓴 편지 내용을 보면, "산 속의 (자유) 흑인들을 모두 죽여야 한다... 12세 이상의 흑인은 남겨둬서는 안된다"고 되어 있습니다.  즉, 나폴레옹과 르클레르는 이미 프랑스 혁명 정신과 자유를 맛 본 꼬장꼬장한 아이티 흑인들을 멸종시킨 뒤에, 아프리카에서 좀더 고분고분한 신규 노예를 들여와 다시 설탕과 커피를 생산할 작정이었던 것입니다. 


이를 위해 진행된 인종 청소는 히틀러의 유태인 살해와 거의 유사했습니다.  목을 자르거나 발에 쇳덩이를 매달아 바다에 던지는 것 뿐만 아니라, 나중에는 특수한 형태의 배를 고안하여, 그 선창에 흑인 남녀들을 가득 채운 뒤 황을 태워 이산화황으로 그들을 질식사시키는 방법도 사용되었습니다.  이 끔찍한 만행에 프랑스 해군 장교들이 질겁을 하여 '차라리 군법 회의에 회부되더라도 이런 짓은 못하겠다'라고 항의할 정도였습니다.   이런 '가스실'이 아닌 '가스선(船)'은 대량 인종 청소의 비용을 줄이려는 '창의적인' 노력 중 하나였습니다.  이런 배를 etouffier (영어로는 choker, 즉 질식하게 만드는 것입니다)라고 불렀습니다.  프랑스 해군 장교들의 항의에도 불구하고, 이런 etouffier는 계속 부지런히 흑인들을 싣고 바다로 나가서, 빈 배로 되돌아오곤 했다고 합니다.  이런 인종 청소 행위는 당시로서도 충격적인 것이었으므로 주로 밤에 수행되었습니다만, 바닷가에는 수많은 시체들이 떠내려와 섬뜩한 장면을 연출했습니다.  이런 식으로 살해된 사람의 숫자는 약 10만에 이른다고 하네요.


제2차 세계대전 때, 1940년 파리 함락 3일 뒤, 히틀러는 파리에 입성합니다.  바로 그날, 그는 불시에 레젱밸리드(Les Invalides)를 방문합니다.  히틀러는 바로 나폴레옹의 무덤을 방문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거기서 그는 모자를 벗고, 한참 동안 그 무덤을 내려다보며 고인에 대해 경의를 표했고, 나중에 그 순간이 '자신의 일생 중 가장 자랑스러운 순간'이었다고 회고했습니다.  또한 전쟁 내내 나폴레옹의 무덤이 있는 레쟁밸리드의 대리석 바닥이 독일군 군화발에 손상되지 않도록 나무 판자를 전체 대리석 위에 덮도록 하는 등, 많은 신경을 썼습니다.




(히총통 인생 최고의 순간)


히틀러는 정말로 나폴레옹을 존경했다고 합니다.  나폴레옹도 히틀러를 그다지 싫어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면, 나폴레옹에 대한 지나친 실례일까요 ?  (나폴레옹와 히틀러의 유사점에 대해서는 나폴레옹 전쟁과 제2차 세계대전, 그 놀라운 유사성 http://blog.daum.net/nasica/6862358  을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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