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향기] <27> '남경 건설론' 제기한 김위제(金謂磾)

 

최수문기자 chsm@sed.co.kr

사진제공=동아대학교박물관

입력시간 : 2013.10.16 17:26:19

 

지정학적 이유로 서울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이에 대한 이론적인 정리를 시도한 사람이 나타났다.

 

1096년 고려 위위승동정(衛尉丞同正) 벼슬에 있던 김위제의 '남경 건설론'이 그것이다.

 

위위승동정은 지금의 대통령 경호실과 유사한 조직인 위위시(衛尉寺)의 종6품 벼슬 '()'의 명예직(同正)을 말한다.

 

그는 당시 국왕인 숙종에게 도선의 지리도참설을 근거로 들면서 개경(개성)서경(평양) 수준의 '남경'건설을 제안했다.

 

주장의 논거는 '저울론'이다. 개경을 저울대(秤幹), 서경은 저울접시(極器)로 하면 남경은 저울추()가 된다고 봤다.

 

"삼각산(북한산) 남쪽과 목멱산(남산) 북쪽의 편편한 땅에 도성을 건립해 수시로 순행하고 머물도록 하자." 숙종은 그의 건의를 받아들여 1101년 궁궐 공사에 착수, 11045월 완성했다.

 

김위제는 고려시대 술수가(術數家)로 알려졌을 뿐 생몰연대는 전해지지 않는다. 다만 통일신라 말 사람인 도선의 지리도참설을 배우고 그 해석에 뛰어나 고려 귀족사회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고 한다.

 

 

사진은 김위제의 '남경 건설론'이 실려 있는 고려사 열전 '김위제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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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위제가 주장한 조선시대 오궁의 배치도

 

고려 숙종예종 때의 술수가(術數家)(?~?). 도선의 도참설을 들어 남경(南京)에 도읍을 옮기도록 숙종에게 주청(奏請)함으로써 왕이 몸소 남경의 지세를 보게 하고, 숙종 6(1101)에 남경개창도감(南京開創都監)을 두게 하여 공사를 시작하여, 숙종 9(1104)에 궁궐을 완성하였다.

 

고려 건국 후 160년쯤 지난 숙종 때, 김위제라는 풍수쟁이가 도선의 예언이라며 한양 명당론을 주장했다. 그는 나라에 근심이 끊이지 않는 것은 개경의 지기(地氣)가 쇠한 때문으로, 한양으로 천도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했다.

 

숙종도 솔깃해 한양에 별궁을 짓고 남경으로 승격시켰으며, 천도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실현되지 못했다. 오랜 시간 개경에 기반을 닦아 둔 문벌귀족들이 동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뒤로도 고려가 망할 때까지 여러 왕이 천도를 계획했지만, 매번 같은 이유로 좌절했다.

 

 

[북한산성]남경건도소(南京建都疏)// 김위제(金謂磾)

 

도선기(道詵記)에 이르기를 고려 땅에는 도읍이 세 곳이 있으니 송악(松嶽)은 중경이고, 목멱양(木覓壤)은 남경(南京)이며, 평양(平壤)은 서경(西京)인데, 11월에서 다음 해 2월까지 중경에 머물고, 3월에서 6월까지 남경에 머물며, 7월부터 10월까지 서경에 머물게 되면 36 나라가 조공을 해오게 된다.”고 하였고, 개국 후 160여 년이면 목멱양(木覓壤)에 도읍한다.”고 하였습니다. 신은 지금이 바로 새 도읍에 머물 때라고 봅니다.

 

()이 또 가만히 생각해 보니 도선의 답산가(踏山歌)에 이르기를 송성(松城) 떨어지면 어디로 갈꼬, 삼동(三冬)에 해뜨는 평양(平壤)이 있도다. 후대에 어진 이가 나와 대정(大井)을 여니, 한강어룡(漢江魚龍) 사해(四海)로 통하네라고 하였습니다. 삼동에 해가 뜬다는 것은 중동절(仲冬節)에 해가 동남쪽에서 뜬다는 것이니 목멱(木覓)의 송경(松京)의 동남쪽에 있기에 하는 말입니다. 답산가에서 또 이르기를 송악산은 진한(辰韓) 마한(馬韓)의 주산(主山)이로세. 오호! 어느 때나 그 시종(始終)을 알리. 꽃 뿌리는 가늘고 줄기와 잎도 그러하네. 겨우 백 년 기약인데 어찌 끝이 없으니, 그 후 새 꽃을 찾으려 해도, 양강(陽江)을 넘어서면 헛되이 맴돌고 말리. 사해신어(四海神魚)가 한강(漢江)에 내조(來朝)하니,국태민안(國泰民安)하여 태평성대 이루네.’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한강 북안(北岸)의 땅이 기업(基業)을 오래 보전하고 사해로부터 내조(來朝)가 있고 왕족은 창성할 곳이니 실로 큰 명당 자리라는 말입니다.

 

답산가에서는 또 이르기를 후대에 어진 이 있어 인수(人壽)를 아네. 한강 넘지 않으니 만대풍(萬代風) 이로다. 그 강 넘어 제경(帝京)을 만들면, 자리가 동강나서 한강을 두고 나뉘리.’라고 하였습니다.

 

삼각산명당기(三角山明堂記)에 이르기를 눈을 돌려 산 모양 살피니, 임좌병향(壬坐丙向) 선경(仙境)일세. 음양화(陰陽花)가 세 겹 네 겹으로 피었도다. 친단(親袒)은 산을 등에 지고 수호(守護)에 임하네. 안전(案前)에는 조산(朝山)이 다섯 겹 여섯 겹이로다. 고숙(姑叔)같고 부모(父母) 같은 산 솟고 또 솟았네. 내외(內外)에 문지기 개가 각 세 마리로다. 늘 용안(龍顔) 곁을 지키느라 여념 없네. 청룡 백호 서로 비슷하니 시비가 없도다. 내외에 상객(商客)들 각기 보배를 바치네. 이름을 파는 이웃이 자식같이 찾아들도다. 나라 지키고 왕 돕기에 모두 한마음일세. 임자년(壬子年) 중에 이 땅에 도읍을 열면, 정사년(丁巳年)에는 성자(聖子) 얻으리. 삼각산 의지해 제경(帝京) 세우니, 아홉 해 후에는 사해(四海)가 내조(來朝)하네.’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니 이는 명왕(明王)이 성덕(盛德)을 갖출 땅입니다.

 

또 신지(神誌)가 지은 비사(秘詞)에 이르기를 저울추 같고 극기(極器) 같으니라. 저울대 같은 부소(?)가 대들보니라. ()는 오덕지(五德地)니라. 극기(極器)는 백아강(百牙岡)이니라. 그 덕()에 의지하고 신정(神精)을 수호할 것이다. 머리와 꼬리가 평형을 이루니 나라가 흥하고 태평성대를 누리리다. 비유(比喩)해 준 땅 세 곳을 버리면, 왕업(王業)은 쇠퇴하고 기울리라.” 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세 도읍지를 저울에 비유한 것입니다. 저울에서 극기(極器)는 머리에 해당하고, ()는 꼬리에 해당합니다. 저울대는 한 가운데를 말합니다. 송악(松嶽)을 부소(?)라 하여 저울대에 비유하고, 서경(西京)을 백아강(百牙岡)이라 하여 저울머리에 비하였으며, 삼각산(三角山) 남쪽 땅을 오덕구(五德丘)라 하여 저울추에 비유한 것입니다.

 

오덕(五德)이라는 것은, 중앙의 면악(面嶽)이 둥그런 형상이라 토덕(土德)이 있고, 북쪽의 감악(紺嶽)이 구부러진 형상이라 수덕(水德)이 있으며, 남쪽의 관악(冠嶽)이 첨예한 형상이라 화덕(火德)이 있고, 동쪽의 양주(楊州) 남행산(南行山)이 꼿꼿한 형상이라 목덕(木德)이 있으며, 서쪽의 수주(樹州) 북악(北嶽)이 모난 형상이라 금덕(金德)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 역시 도선이 말한 삼경(三京)의 취지와 부합하는 말입니다.

 

지금 나라에는 중경과 서경은 있지만 남경은 없습니다. 엎드려 바라옵건대 삼각산(三角山) 남쪽 목멱(木覓) 북쪽의 평지에 도성을 건립하여 때에 따라 세 도읍에 돌아가서 머무소서. 이는 진정 사직의 흥쇠에 관련된 일인지라 함부로 올려서는 아니 될 말이지만 무릅쓰고 삼가 글로 써서 아뢰옵니다.

 

道詵記云 高麗之地有三京 松嶽爲中京 木覓壤爲南京 平壤爲西京 十一十二正二月住中京 三四五六月住南京 七八九十月住西京 則三十六國朝天 又云 開國後百六十餘年 都木覓壤 臣謂今時 正是巡駐新京之期 臣又竊觀 道詵踏山歌曰 松城落後向何處三冬日出有平壤 後代賢士開大井 漢江魚龍四海通 三冬日出者仲冬節 日出巽方 木覓在松京東南 故云然也 又曰 松嶽山爲辰馬主 嗚呼 誰代知始終 花根細劣枝葉然 ?百年期何不罷 爾後欲覓新花勢 出渡陽江空往還 四海神魚朝漢江 國泰人安致太平故漢江之陽 基業長遠 四海朝來 王族昌盛 實爲大明堂之地也又曰 後代賢士認人壽 不越漢江萬代風 若渡其江作帝京 一席中裂隔漢江 又三角山明堂記曰 擧目回頭審山貌 背壬向丙是鼇陰陽花發三四重 親袒負山臨守護 案前朝山五六重 姑叔父母山聳聳 內外門犬各三爾 常侍龍顔勿餘心 靑白相登勿是非 內外商客各獻珍 賣名隣客如子來 輔國匡君皆一心 壬子年中若開土 丁巳之歲得聖子 憑三角山作帝京 第九之年四海朝 故此明王盛德之地也 又神誌秘詞曰 如秤錘極器 秤幹扶?樑 錘者五德地 極器百牙岡 朝降七十國 賴德護神精 首尾均平位 興邦保太平若廢三諭地 王業有衰傾 此以秤諭三京也 極器者 首也 錘者尾也 秤幹者 提綱之處也 松嶽爲扶? 以諭秤幹 西京爲白牙岡 以諭秤首 三角山南爲五德丘 以諭秤錘 五德者 中有面嶽爲圓形土德也 北有紺嶽爲曲形 水德也 南有冠嶽尖銳 火德也 東有楊州南行山直形 木德也 西有樹州北嶽方形 金德也 此亦合於道詵三京之意也 今國家有中京西京 而南京闕焉 伏望於三角山南木覓北平建立都城 以時巡駐 此實關社稷興衰 臣干冒忌諱 謹錄申奏

 

<출처: 고려사(高麗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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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사 김위제전金謂燑傳 신지비사]

 

<<고려사>>에 이르기를 제 23세 고종(1213~1259) , 김위제(생졸년 미상. 고려 숙종예종 때의 술수가術數家)가 평양으로의 천도를 주장하며 올린 상소문에서 이 신지의 '서효사'를 인용하며, 그 출처가 <<신지비사>>라는 책의 서문이라고 밝혔다.

 

如秤錘極器 秤幹扶蘇樑 錘者五德地 極器百牙岡 朝降七十國

여칭추극기 칭간소밀랑 추자오덕지 극기백아강 조항칠십국

 

賴德護神精 首尾均平位 興邦保太平 若廢三諭地 王業有衰傾 :

뇌덕호신정 수미균평위 흥방보태평 약폐삼유지 왕업유흥륭

 

(또 신지비사에 말하기를) 저울추와 저울 그릇과 같도다. 저울대는 부소량, 저울추는 오덕지, 저울 그릇은 백아강이라. 70국이 조공하고 항복하리라. 덕을 신뢰하고 신정을 지키고 머리와 꼬리가 균형이 잡혀 나란히 있고 나라를 일으켜 태평을 보전하리라. 만약 삼유의 땅을 폐하면 왕업이 쇠하고 기울 것이니라 (하였으니 이는 저울로써 삼경(三京)을 비유함이라. 저울 그릇은 머리요 추는 꼬리요 저울대는 제강(提綱)의 곳이라......)

 

[고려사 김위제전金謂燑傳][환단고기 단군세기] 비교

 

如秤錘極器 秤幹扶蘇樑 錘者五德地 極器百牙岡 朝降七十國

여칭추극기 칭간소밀랑 추자오덕지 극기백아강 조항칠십국

 

賴德護神精 首尾均平位 興邦保太平 若廢三諭地 王業有衰傾 :

뇌덕호신정 수미균평위 흥방보태평 약폐삼유지 왕업유쇠경- 고려사 김위제전 신지비사 부분

 

如秤錘極器 極器白牙岡 秤榦蘇密郞 錘者安德鄕 首尾均平位

여칭추극기 극기백아강 칭간소밀랑 추자안덕향 수미균평위

 

賴德護神精 興邦保太平 朝降七十國 永保三韓義 王業有興隆

뇌덕호신정 흥방보태평 조항칠십국 영보삼한의 왕업유흥륭

 

興廢莫爲說 誠在事天神 흥폐막위설 성재사천신

 

- 단군세기 서효사 일부

 

# 칭간추극기秤榦錘極器란 것은 곧 저울의 원리로서, 칭간은 진한의 왕검성인 부소량을, 추는 번한의 왕검성인 오덕지를, 극기는 마한의 왕검성인 백아강을 각기 상징하는 바, 저울이 서로 균형을 이루어 번영을 구가하는 것을 뜻한다.

 

그동안 고려사의 신지비사를 잘못 해석하게 된 이유 : 신지비사를 모르니까

 

고려사의 신지비사에서는 원래의 신지비사 중 앞부분을 생략하고 특히 임금께서 신경에 행차하심은 저울추와 저울그릇과 같도다라는 부분을 생략함으로써 바로 뒷부분인 "칭간부소량 추자오덕지 극기백아강"을 해석함에 있어서 오류가 일어난다고 본다. "칭추, 극기, 칭간, 부소, 량추자가 오덕지와 같다. 극기를 백아강으로 하면"으로 하여 오덕지가 칭추, 극기, 칭간, 부소, 양추라고 해석해서는 안되며, "칭추, 극기와 같다", "칭간은 부소량, 추라는 것은 오덕지, 극기는 백아강이라"라고 해석해야 된다. 이렇게 해석하여야 뒷 문장과 문맥이 통하게 된다.

 

고려사 김위제 상소문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

 

첫째 고려사는 조선시대 심혈을 기울인 정사다. 고려사에는 신지비사가 언급되어있다. 이 신지비사의 본문 내용은 환단고기 단군세기에 나와 있으며 환단고기 태백일사를 통해서 신지비사의 설명이 자세히 나와있다. 이것만으로도 환단고기는 위서로 절대 치부할 수 없는 사료가치가 높은 사서임을 알 수 있다.

 

둘째 이를 통해서 고조선이 삼한관경으로 나라를 다스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주류사학계는 삼한관경제를 단재 신채호 선생이 처음 만들어낸 이론으로만 치부하고 있다. 또한 환단고기 전체에 걸쳐서 나오는 삼한관경을 단재신채호 선생의 이론을 베낀 것으로 몰고 있다. 그러나 고려사를 통해서 보면 고려 고종 때(13세기) 김위제가 [신지비사]를 인용하며 이미 고조선 삼경(세 수도)을 언급하고 있다. 고조선은 삼경이 있었다는 것이고 이 세 수도가 하나의 저울이 되는 것처럼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는 삼한관경 내용을 다룬 서효사의 내용을 그대로 얘기하고 있다.

 

저울

삼한

고려사

단군세기 서효사

태백일사 신지비사설명

칭간(저울대)

진한

소밀량

소밀량

부소량 = 하얼삔

(저울추)

번한

오덕지

안덕향

오덕지 = 탕지보

극기(저울판)

마한

백아강

백아강

백아강 = 대동강

 

*오덕지는 다른 말로 안덕향安德鄕이다. 오제설에 의하면 황제黃帝 왕검이 계신 곳을 일러 안덕천安德天이라 하였으니, 황제란 오행 중에서 토의 주재자를 상징함이니, 안덕이란 곧 중앙 토의 덕성을 상징하는 것이라 하겠다. 토는 숫자로 510이다.

 

 

고려사의 신지비사는 신지발리의 서효사(단군세기 )를 말한다.

 

한민족의 뿌리를 노래한 대서사시 서효사

 

달문단군의 재위 35년 임자(BCE 2049)년에 여러 왕을 상춘에 모아 구월산에서 삼신께 제사지내실 때 신지발리로 하여금 [서효사]를 짓게하시니 그 가사는 이러하다.

 

아침햇빛 먼저 받는 이 땅에

삼신께서 밝게 세상에 임하셨고

환인천제 먼저 법을 내셔서 덕을 심음에 크고도 깊사옵니다.

 

모든 신이 의논하여 환웅을 보내셔서 환인천제 조칙받들어 처음으로 나라여셨사옵니다. 치우천황 청구에서 일어나만고에 무용을 떨치셔서 회수태산 모두 천황께 귀순하니천하의 그 누구도 침범할 수 없었사옵니다. 단군왕검 하늘의 명을 받으시니 기쁨의 소리 구환에 울려퍼졌사옵니다.

 

물고기 물만난 듯 백성들이 소생하고풀잎에 부는 바람처럼 덕화가 새로워졌사옵니다. 원한맺힌자 원한먼저 풀어주고병든자 먼저 낫게 하셨사옵니다. 일심으로 인과 효를 행하시니 사해에 광명이 넘치옵니다.

 

진한이 나라 안을 진정시키니정치의 도는 모두 새로워졌사옵니다. 모한(: 마한,막한)은 왼쪽을 지키고 번한은 남쪽을 제압하옵니다.

 

깍아지른 바위가 사방 벽으로 둘러쌌는데

거룩하신 임금께서 새서울에 행차하셨사옵니다.

 

삼한형세 저울대 저울추 저울판같으니

저울판은 백아강이요 저울대는 소밀랑이요

 

저울추는 안덕향이라

머리와 꼬리가 서로 균형이루니

그 덕에 힘입어 삼신정기 보호하옵니다.

 

나라를 흥성케하여 태평세월 보존하니

일흔나라 조공하여 복종하였사옵니다.

 

길이 삼한관경제 보존해야

왕업이 흥하고 번성할 것이옵니다.

나라의 흥망을 말하지 말지니

천신(삼신상제)님 섬기는데 정성을 다하겠사옵니다.

 

번역출처 : 환단고기 역주본(상생출판 , 117)

 

* 진한의 위치에서 보면 마한은 왼쪽에 번한은 오른쪽에 위치한다. 진한을 보필하였다.

 

신지비사의 전래와 내용 (태백일사 소도경전본훈)

 

신지비사는 달문 단군때 사람인 신지 발리가 지은 것이다. 이것은 본래 옛적 삼신께 제사 지낼 때 서원하던 글이다. 무릇 상고시대에 하늘에 제사 지낸 근본 뜻은 백성을 위해 복을 빌고 나라가 잘 되도록 신에게 축원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오늘날 일을 벌이기 좋아하는 자들이 [신지비사]가 도참,성점과 서로 같은 뜻이 있고 다른 곳도 있음을 가지고 사리를 추측하고 설명을 덧붙여서 진단구변도라하고 또 감결과 예언의 처음이라 하는데 모두 잘못된 것이다.

 

[신지비사]에서 저울대 부소량이라 한 것은 진한의 옛 수도를 말한다. 그곳은 바로 단군조선이 도읍한 아사달이며 지금의 송화강 하얼빈이다. 저울추 오덕지라 한 것은 번한의 옛 수도를 말한다. 그곳은 지금의 개평부 동북쪽 70리에 있는 탕지보이다. 저울판 백아강이라 한 것은 마한의 옛 수도를 말한다. 지금의 대동강으로 마한의 웅백다가 하늘에 제사 지내던 마한산이 바로 그곳이다.

 

가만히 삼한의 지세를 저울에 비유해보면 부소량은 나라의 저울대와 같고 오덕지는나라의 저울추와 같고 백아강은 나라의 저울판과 같다. 이 셋 가운데 하나라도 없으면 저울이 물건을 달 수 없듯이 나라가 백성을 보호할 수 없다.

 

옛날 삼신상제님께 제사 지낼 때 서원한 것은 오직 삼한으로 나눈 영토를 잘 다스리는 것과 백성을 진실로 기쁘게 하는 것이었다. [신지비사]가 전하는 바도 여기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출처 : 환단고기 태백일사 소도경전본훈 (상생출판 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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