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나라

연세대 윤동주기념관에 가다

작성일 작성자 봄뫼 정재환

  연대 안에 있는 윤동주시비 앞에 도착했을 때, 마침 견학 온 학생들이 모여 윤동주와 시비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었다. 뒤로 보이는 건물 오른쪽 끝이 연희전문 학생 윤동주의 방이었단다. 공부보다는 시 창작에 힘을 기울인 탓인지 성적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는... 




시비에는 1948년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처음 나왔을 때, 맨 앞에 실렸던 '서시'가 새겨져 있고, 시비 앞에 있는 동그란 돌은 윤동주를 좋아하는 모임 '짱구'가 꽃을 바치는 꽃병 모양으로 만들어 놓은 듯하다.




  윤동주가 재학할 때, 학생기숙사로 사용되었던 핀슨홀. 윤동주기념관이라는 팻말도 붙어있고, 3층 윤동주가 지내던 방 자리에 윤동주기념실이 마련돼 있다. 오른쪽 흰종이를 발라놓은 곳이다.








  방명록 위에 적혀 있는 윤동주의 글.

조선 독립의 선결 문제는 문화 향상에 있고...



재학 당시 연희전문학교의 사진을 바탕으로 재현해 놓은 '시인의 책상'이다.




윤동주의 대표작 중 하나인 '참회록' 원본 사진과 그에 대한 설명이다. 유학 가는 데 필요한 도항증을 받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히라누마 도우슈'로 창씨할 수밖에 없었던 시인의 고뇌가 담긴 시다.




연희전문 시절 윤동주가 존경한 선생님 중 한 분은 외솔 최현배였다. 외솔의 우리말본 강의를 들은 윤동주는 감격했다. 윤동주의 시가 한자를 거의 쓰지 않고 대부분 한글로 된 것은 외솔에게 영향 받은 바 컸을 것이다.





세계 각국의 언어로 번역된 윤동주의 시집들.






  27세의 젊은 나이로 일본 후쿠오카형무소에서 생을 마감한 윤동주는 한국인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시인 중 한 명이다. 많은 이들이 그의 시를 좋아하고 그를 사랑하고 존경한다. 시비 뒷면에는 "구슬 같은 시들은 암흑기 민족문학의 마지막 등불로서 겨레의 가슴을 울리니 그 메아리 하늘과 바람과 별과 더불어 길이 그치지 않는다"고 적혀 있다.


윤동주를 기억한다는 것은 역사를 기억하는 것이며, 그를 기리는 것은 역사가 주는 교훈을 가슴에 새기는 일일 것이다.





창 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육첩방(六疊房)은 남의 나라,

 
시인이란 슬픈 천명(天命)인 줄 알면서도
한 줄 시를 적어 볼까,


땀내와 사랑내 포근히 품긴
보내주신 학비 봉투를 받아

 
대학 노트를 끼고
늙은 교수의 강의 들으러 간다.

 
생각해 보면 어릴 때 동무들
하나, 둘, 죄다 잃어버리고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 홀로 침전(沈澱)하는 것일까?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육첩방(六疊房)은 남의 나라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
등불을 밝혀 어둠은 조금 내몰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
나는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

 

쉽게 씌어진 시 -윤동주








맨위로
통합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