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내 인생의 주인이십니다.

                                                          성경본문: 4:17-22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면 나를 만드신 분이 누구신지를, 내 인생의 주인이 누구인줄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의 신분과 위치를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만나기 전에는 자신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몰라서 자신이 주인인 것처럼 착각하고 살아갑니다. 세상과 마귀는 우리를 향하여 끊임없이 유혹합니다. “네 인생의 주인은 너 자신이다, 네 생각대로 살아가라, 네 마음대로 살라고 달콤한 유혹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생을 살다가 보면 자신이 주인이 아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정말로 내 인생의 주인이 자신이라면 자기의 생명, 시간, 재능을 마음대로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내 생명을 내 마음대로 좌지우지 할 수 있습니까? 그럴 수가 없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이 오라고 하면 언제든지 모든 것을 내려놓고 가야만 합니다. 하나님이 내게 허락하신 시간에 잠시 청지기로 살아갈 뿐입니다. 나의 시간을 내 마음대로 좌지우지 할 수 있습니까? 그렇다면 늙거나 병들지도 않아야 합니다. 흘러가는 세월을 어떻게 막을 수 있습니까? 불가능합니다. 만약 흘러가는 세월을 어찌할 수 없다면 시간의 주인이 내 자신이 아니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주 말하는 주여, 주님이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퀴리어스라고 합니다. 이 당시에 퀴리어스라는 단어는 로마 황제에게 사용되었던 단어입니다. 황제가 바로 나의 주인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고 나니 나의 주인은 황제가 아니라 예수님이 나의 주인이시며 모든 만물의 주인이시다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신앙의 출발은 내 삶과 모든 만물의 주인이 예수 그리스도라고 선언하는 것입니다. 이 고백을 통하여 구원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는 것입니다. 성경은 오직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나의 구원주로 믿고 입으로 고백하는 자만이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선언합니다. 내 인생의 주인이 자신에서 예수님으로 바뀌는 것이 신앙의 핵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회생활을 할 때 예수님의 주인됨을 인정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직장과 가정의 주인이 주님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교회의 주인도 주님이신 것입니다. 이런 주되심의 영역은 나의 삶 전체뿐만 아니라 만물로까지 확대되어져 가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로 말미암아 거룩한 부분과 세속적인 모든 영역이 하나가 된 것입니다. 모든 만물을 예수님이 다스리십니다. 나의 시간과 물질, 건강 그리고 이 세상 모든 것의 주인이 예수님이십니다. 그때에 하나님의 평화가 찾아오게 되며, 하나님이 나의 모든 것을 책임져주시고 풍성한 삶이 열려지게 되는 것입니다.

몇년 전에 어느 기자가 100명의 사람들에게 요즘 어떻게 사십니까?” 라고 질문을 해보았습니다. 그때에 1등은 그럭저럭 삽니다.” 2등은 마지 못해 삽니다” 3등은 죽지 못해 삽니다라는 답변이 나왔다고 합니다. 우리 사회가 이처럼 어렵고 힘들다는 것을 잘 반영해 주고 있습니다. “혹시 여러분은 어떻게 사십니까?” 어떤 답변을 하시겠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힘들어 하며, 어려움을 호소하는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사람들마다 약간씩 차이가 있지만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경제적인 문제에 있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좀더 깊이 생각해 보면 사람들이 힘들어 하고 고통스러운 것은 경제적인 이유보다는 마음의 평강과 기쁨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즉 창조주 하나님을 잃어버리고 자신이 주인이 되었기 때문에 경쟁과 두려움과 고통이 찾아오신 것입니다. 인생은 누구나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내 마음의 주인으로 모시기 전에는 진정한 평안과 기쁨이 없습니다.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품안으로 들어가지 않으면 좋은 차가 있어도, 큰 집이 있어도, 사회적으로 성공과 출세를 해도 인생의 공허감을 채울 수가 없습니다. 세상의 인기, , 지식, 명예, 성공을 다 가져도 만족함이 없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예수님께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광야에 나가서 40일동안 금식기도를 하신 후 갈릴리 바닷가에서 말씀을 전하시다가 베드로와 안드레와 요한과 야고보를 보시고 제자로 부르시는 말씀입니다. 목수 출신이 어부를 선택해서 제자를 삼은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인간적으로 생각할 때 세상에서 가장 큰 도박이고 모험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아버지의 업을 따라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예수님께서 '나를 따르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들은 예수님의 명령에 따라 자기들의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의 뒤를 따랐습니다. 이것은 정말로 대단한 결단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를 따르는 것은 참된 회개가 무엇인지를 보여주며, 새로운 사람으로 변화된 회개의 열매를 분명히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본문의 말씀을 중심으로 성경에서 말하는 회개가 무엇입니까? 또한 마태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고 말씀하신 후에 어부들을 부르신 사건을 기록한 목적이 무엇입니까?

1. 예수님의 첫 메시지는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사역을 시작하시면서 첫 메시지가 무엇입니까? 17절에 보면 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서 전파하여 이르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시더라예수님이 공생애에 처음 들어서시면서 제일 먼저 외친 복음의 메시지는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는 말씀입니다. 지금도 우리가 전할 메시지의 첫 외침은 주님과 같은 내용의 메시지여야 할 것입니다. 천국은 누구에게나 가까이 있습니다. 그리고 가까이 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천국이 가까워도 아무나 그 곳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회개하는 사람만이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천국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에는 천국에 들어갈 자와 천국을 소유할 수 있는 자의 자격을 분명히 명시해 주고 있습니다.

회개하는 자가 천국에 들어갈 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 그러면 회개란 무엇을 의미하는 말입니까? 회개란 말은 메타노에오(μετανοω)란 말을 번역한 것인데 생각이나 목표를 바꾼다는 뜻입니다. 명사로는 메타노이아로 숙고하여 생각을 바꾼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죄에 대한 자신의 태도를 바꿀 뿐 아니라 죄악된 자기 행위까지 포기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목표를 바꾸는 일이나 생각을 바꾸는 일은 자신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람들이 자신의 죄에 대하여 뉘우치고 슬퍼하는 태도를 보이지만 그리고 때로는 그 죄를 버리고 새로운 생애를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지만 하나님께로 목표와 그 생애를 돌이키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 회개한 사람으로 인정을 받지 못합니다. 자신의 죄를 회개한다는 말은 "죄송합니다, 미안합니다" 가 아니라 회개의 본래의 의미는 "돌아서다, 지금까지 가던 방향을 돌이키다"는 것입니다. 즉 내가 주인 된 삶에서 돌아서서 이제는 주님이 주인 된 삶을 사는 것입니다. 1)자신의 죄와 잘못을 깨닫고 인정하고 돌이키는 것입니다. 2)하나님이 본래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대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3)네 인생의 주인을 바꾸라는 것입니다. 4)하나님을 신뢰하고 범사에 하나님을 주인으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내게 있는 무엇을 받기 원하시는 분이 아니라 를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주님, 저 여기 있습니다. 저는 주님의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오해하는 것 중에 주님은 마치 우리가 뭘 좀 가지고 있는 꼴을 못 보시고, 강요하듯 무언가를 끊임없이 요구하는 분으로 여긴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실상 주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우리의 무언가가 아니라 우리 자신을 원하십니다. 즉 주님은 우리의 주인이기를 원하십니다. 이전에 내가 주인되어 내가 원하는 삶을 살던 우리에게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회개하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에게 천국을 주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천국은 누가 들어갑니까? 천국은 의인이 들어가는 곳인 줄로 알았는데 이 세상에서 의인이란 이름 붙은 사람은 한 사람도 들어가지 못하고 오직 회개한 죄인들만 들어가는 곳임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은 나는 의인을 구하려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고 하셨습니다. 의인이라는 사람들은 율법적인 사람들을 말합니다. 양심적으로 자기 생애를 살아간다고 인정받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그러나 율법이나 양심은 실인즉 자신의 죄를 정죄 할뿐 그것이 자신을 의인으로 인정해 주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는 하나님이 인정해 주시는 의인이 존재치 않기 때문에 천국의 소유자는 존재치 않는 것입니다. 의인이 아니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이 성경의 증거이며 하나님의 선언입니다. 그러면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했는데 누가 천국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이냐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의인의 기준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에게 두셨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표준의 의인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을 것입니까? 그러므로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의인은 예수님 한 분뿐이십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에게 이 예수님의 의를 주셨습니다. 이 하나님의 의에는 조건이 없습니다. 자기 의로는 천국에 절대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양심의 의도 율법의 의도 구원에 들어갈 수 없는 것입니다. 오직 믿음으로만 천국에 들어갈 수 있고,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습니다. 누구든지 예수를 믿으면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어 하나님 앞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동일한 의인의 법적 자격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2. 예수님은 회개에 합당한 삶의 변화가 일어난 모델로 고기잡다가 부르심을 받은 어부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수많은 무리들에게 무엇을 강조하고 수없이 교훈하셨습니까? 하나님 앞에 회개하라는 것을 강조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35절에 보면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같이 망하리라라고 거듭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이 왜 바벨론에게 멸망을 당하였습니까? 유대인들이 A.D 70년 로마 디도에 의해 예루살렘 성의 멸망을 당하였습니까? 진정으로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너희가 만일 회개치 않으면 망하게 되리라, 죽게 되리라는 말씀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철저히 회개해야 합니다. 이 세상에 누구든지 회개치 않고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천국 문을 열 수 있는 열쇠는 오직 회개임을 알아야 합니다. 회개는 전적 하나님의 은혜가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철저히 회개한 자는 회개의 합당한 열매를 맺고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진정한 회개는 반드시 그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열매를 보면 그들을 알지니라는 말씀을 깊이 새겨들어야 합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회개의 삶은 오히려 더 철저히 죄악을 단절하고 회개한 자로서 영적 순례 길을 철저히 걸어가야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진정으로 회개하고 돌아온 사람들이 누구입니까? 베드로와 안드레와 요안과 야고보입니다. 20절에 보면 그들이 곧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를 따르니라오늘 본문에서 4명의 제자들을 통하여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만난 후에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예수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합니다. 즉 그들은 자신의 주인이 자리에서 내려와서 예수님을 주인으로, 나의 구원주로 모시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갈릴리 바다가에서 고기를 잡는 어부출신들입니다. 그런데 그들에게 나사렛 예수님이 찾아 오셨고, 그들의 일하는 모습을 보셨습니다. 여기서 '지나가시다' '보셨다'는 두 동사가 중요합니다. '보셨다''관심을 갖고 주목하여 응시하셨다'는 뜻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시몬과 안드레 곁을 지나갔습니다. 또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일 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들을 주목하시고 응시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때에 시몬과 안드레는 무엇을 하고 있었습니까? 그들은 바다에 그물을 던지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지난밤에 밤새도록 그물을 던졌으나 고기를 잡지 못하자 아침이 되어 해가 떠오르기 시작했지만 계속 그물을 던지고 있었습니다(5:4). 밤에 고기잡이에 실패하면 누구나 기분도 그렇지 않고 해서 집에 돌아가 막걸리 한 잔 걸치고 잠을 자는 것이 상례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계속하여 그물을 던지고 있는 것을 보니 매우 성실한 사람들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들을 주목하여 보셨다는 말씀은 예수님이 일부러 시몬과 안드레와 같은 사람을 찾으러 바닷가에 나오셨음을 말해 줍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향하여 무슨 말씀을 하셨습니까? 17절을 보면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예수님은 애정 어린 음성으로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시몬과 안드레는 성실하고 책임감이 강한 청년들이었지만 지금까지의 그들의 삶은 고기잡은 생활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들의 소원은 고기를 많이 잡아서 자가용 통통배라도 한척 마련하는 것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다가 더 큰 배를 마련하고, 그 후에는 장가들고 40대에는 '내 집'을 마련하고, 50대에는 갈릴리 수산 협동조합 조합장이 되고, 60대에는 잘하면 지방의회의원이 되는 것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들에게 찾아가서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나의 제자가 되라는 말씀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그리하면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로 만들어 주겠다'는 놀라운 약속을 주셨습니다.

여기서 '사람을 낚는 어부'란 무엇입니까? 죄와 사망의 바다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사람을 건져내어 구원하는 자입니다. 사람의 영혼을 구원하는 사역자입니다. 예수님께서 시몬과 안드레를 부르신 것은 고기를 더 잘 잡는 기술을 가르쳐주고자 하심이 아닙니다. 이들을 사람을 낚는 어부로 만들기 위함이십니다. 즉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이 본래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을 되찾게 하십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1:18) ”내가 너로 큰 민적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12:2) 예수님의 부르심은 그들을 위대한 사람을 만들기 위함입니다. 심지어는 그 인생의 목표까지도 변화시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제자로 부르심을 받는 것은 가장 가치 있는 일이며, 그 자체가 말할 수 없는 축복입니다.

3.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고 그들은 자신의 모든 배와 그물과 부친까지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고 그들은 어떻게 반응하였습니까? 22절에 보면 그들이 곧 배와 아버지를 버려두고 예수를 따르니라여기서 배와 부친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는 것은 정말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사람의 생각이나 정으로는 도저히 이렇게 버릴 수가 없습니다. 자신의 인생 전부를 예수님에게 건 헌신입니다. 여기서 버렸다는 것은 자신이 더 이상 주인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알고 자신의 가치관, 인생관이 새롭게 바뀌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살아온 자신의 기치관, 욕망을 내려놓은 것이며, 눈에 보이는 물질과 돈에 대한 욕심을 다 포기한 것입니다. 이것은 오직 성령의 역사하심이 아니면 정말로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들은 자신의 주인의 자리를 내려놓고 오직 예수님을 나의 주님으로, 나의 구원주로 모셨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그들이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는 것이 무슨 의미입니까? 여기서 따르다라는 말에는 자기를 포기하고 내려놓는 행위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자기 생각과 계획을 고집하면서 동시에 주님을 따를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살아왔던 과거의 욕망, 목표, 비전,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예수님을 향한 새로운 인생의 출발입니다. 아브라함처럼 갈대아 우르를 떠나 하나님이 지시는 곳으로 과감하게 출발하는 것입니다. 베드로와 야고보처럼 자신의 배와 그물을 버리고 주님께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그 분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적든 많든 자신의 소유를 타인을 위해 포기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주의 제자가 되고자 하는 자들은 자신의 것을 내려놓는 일은 불가피한 선택입니다.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는 주님의 말씀을 듣고 베드로와 안드레는 곧 그물을 버려두고 따랐습니다. 또한 세배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은 자기의 아버지와 품꾼들도 배에 버려두고 예수를 따라갔습니다. 이는 예수님을 믿는 자의 마음과 자세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들이 지금까지는 자신들이 설정한 방향대로 살아왔으나 이제부터는 예수의 뒤를 따르겠다는 삶의 결단을 나타내주고 있습니다. 이처럼 자신의 삶을 포기하고 예수의 뒤를 따르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예수님의 부르심에 대한 이들의 즉각적이고 신속한 응답은 그냥 따르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모든 과거와 생업을 포기하는 그야말로 희생과 헌신을 포함한 과감한 결단이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그물과 배가 필수적인 생존 수단이었음에도 과감하게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른 것입니다.

성경이 우리에게 지속적으로 강조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성경 곳곳에서 자기를 내려 놓으라고 명령하십니다. 마태복음 11장에서는 멍에라는 단어를 사용하셔서 내려놓고 따르는 행동을 마치 그림을 그리듯 뚜렷하게 설명해주십니다. 주님과 함께 멍에를 매고 주님께서 이끌어 가시는 대로 따라오라는 것입니다. 그때에 주님께서 우리를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어주시겠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6장에서는 자기 부인이라는 표현을 사용십니다 .자기의 생각과 계획과 뜻을 전적으로 부정하라는 것입니다. 동시에 오직 주님의 말씀과 뜻과 계획만이 100% 옳다고 믿고 주님 뒤를 따르라는 것입니다. 그럴 때 주님께서 우리를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어주신다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1-2장은 성령 충만함을 통해 내려놓음과 따름을 가르쳐주십니다. 성령님께서 나의 삶을 주관하시고 인도해 주실 때 사람 낚는 어부가 될 수 있습니다.

그들이 배와 부친까지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는 장면을 통하여 우리에게 무슨 메시지를 주려고 합니까? 참된 회개가 무엇인지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첫째, 그들의 생각, 가치관이 변화되어졌다는 것입니다. 둘째, 그들의 주인이 예수님으로 바뀐 것입니다. 셋째, 자신의 인생의 비전과 목표를 예수님에게 두고 따라갔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단순히 포기하는 것 이상으로 그 모든 것들을 예수님보다 더 사랑하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인간이 실패하는 이유는 그 마음에 하나님을 두기 싫어하고 스스로 주인되어 살려고 하기 때문에 죄를 짓고 망하는 것입니다. 인간 스스로 주인 되려고 하는 것은 마귀에게 속은 것입니다. 이런 속임은 첫 인간 아담 때부터 시작 되었습니다. 아담이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을 주인으로 섬기고 살면 에덴의 복을 누릴 수 있는데 선악과를 따 먹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한 것입니다. 이것은 뱀으로 위장한 사단에게 속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너희가 그 나무 열매를 먹으면 너희의 눈이 밝아지고 하나님처럼 되어서 선과 악을 알게 된다는 것을 아시고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다”(3:5). 이때부터 인간은 자신이 주인이 되고 싶은 마음이 생기게 되는데 이것은 사단이 준 마음입니다. 아담의 죄가 인간에게 유전되어 모든 사람이 다 주인 되어 살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런 삶은 실패합니다. 내 인생의 주인을 바꾸어야 합니다. 예수 믿는 것은 인생의 주인을 바꾸는 것입니다. 내 인생의 주인을 마귀에서 하나님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은 베드로와 안드레 그리고 야고보와 요한이 자기들의 생계 수단이던 배와 낚시 도구들을 다 버리고 주님을 따랐듯이 우리의 삶의 방향을 완전히 바꾼 것입니다. 이제는 고기를 잡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사람의 영혼을 구원하는 것이 목표로 변화된 것입니다. 그들이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르기 시작할 때 그 순간부터 사람 낚는 어부로 빚어가기 시작하셨습니다. 그들은 이 땅에서 사람 낚는 어부의 소명을 충성스럽게 감당할 뿐만 아니라 그 이름이 성경에 기록되고, 12사도가 되는 영광의 주역이 되었습니다



맨위로
통합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