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랑

정든 마을에서 늙어가기

작성일 작성자 만고강산

 

 

    <정든 마을에서 늙어가기>

   -고령자를 위한 지역복지시스템과 주거복지-


이노우에 유키코 지음/진홍규 남원석 김윤이 옮김


마을.커뮤니티.지역


집에서 마을로


고령자 시설은 수용의 공간에서 거주의 공간으로 변화하고 있다. 돌봄의 수법은 집단 돌봄에서 개별 돌봄으로 바뀌어 이에 따라 물리적인 측면도 변화해 왔다. 개별화의 효과는 다양하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사생활의 보장이다. 사생활이 보장되는 데도 노인이 방에만 틀어박혀 두문불출 할까? 물론 그렇지 않다. 안정적인 거처가 확보됨으로써 사람은 비로소 긍정적인 마음가짐을 갖고 주위에고 관심을 갖게 된다. ‘개별실화’의 최종적인 목표는 개방하여 타인과 소통하는 것에 있다.

여기서 타인이란 구체적으로 누구를 지칭하는 것일까? 주위의 입주자와 직원들을 가리키는 것일까? 주위의 입주자와 직원들뿐이라고 하기엔 시설의 내부에만 관심이 향해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개인이란 구체적으로 어떠한 개념일까?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는 가까운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정해진다. 그렇게 보자면 지금까지의 친분관계를 완전히 상실하고 시설에 입소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풍요로운 개인이라는 것이 성립될까? 그리고 개인은 어떻게 집단에 자리매김 되는 것일까?


‘홈home’과 커뮤니티


최근에 시설을 주거의 관점에서 접근하는 움직임이 활발해졌다. 물리적인 측면에서는 개별실과 유니트케어(시설을 몇 그룹으로 나누어 이들 각각을 생활의 단위로 하여 소수(10명 정도)의 가정적인 분위기 속에서 돌봄을 수행하는 형태)가 보급됨에 따라 시설 내의 생활감각이 회복되었지만 거기에는 지역이라는 무대가 없음을 인식하게 되었다. 시설이 주거라는 공간으로 새로운 생명을 얻게 되자 지역생활의 결핍을 깨닫게 된 것이다. 입주자들이 같은 시간에 함께 일어난다는 것은 어딘가에서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의미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4인용 방과 대규모 식당을 매개로 집단적으로 돌봄이 이루어지던 때에는 입주자들이 지역생활에 대해서 관심을 기울이는 경우는 좀처럼 드문 일이었다. 시설 내에 자신의 안정적인 거처가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는 미지의 일들이 펼쳐지는 지역으로 생활공간을 넓혀가려는 의욕은 생겨나지 않는 법이다.

홈과 외부 세계는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관계라고 할 수 있다. 외부 세계가 없으면 홈이라는 의식이 강화되지 않는다.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왔을 때의 느낌, 여행에서 돌아와 자택의 현관문을 열었을 때의 안도감, 이들 모두 외부 세계가 존재하기 때문에 생기는 감각이다. 홈의 외부에는 긴장과 불안이 엇갈린 세계가 펼쳐져 있다. 그러한 세계에 발을 내딛는 것은 경우에 따라서 다시 돌아올 수 있는 홈이 있기 때문이다.


시설 내의 생활환경이 크게 향상되어 육신의 거처로서의 원시적인 홈(개인 공간으로서의 개별실)을 확보하는 것이 가능해짐에 따라 ‘개별실-공용공간-시설 전체’라는 홈과 커뮤니티라는 한 쌍의 구조가 가동하게 된 것이다. 개별실이라는 홈의 외부에는 유니트라는 커뮤니티가 펼쳐지고 있고, 유니트라는 홈의 외부에는 시설 전체라는 커뮤니티가 확장되고 있다. 그렇다면 시설이라는 홈의 외부에는 무엇이 있을까? 이와 같은 연동은 아쉽게도 지역사회라는 커뮤니티까지 확장되지는 못했던 것 같다. 즉, 시설 속에서 모든 것이 완결되게끔 하는 체계가 이를 제약했던 것이다.


앞으로의 과제는 집에서 마을로 생활의 장을 맘껏 펼쳐갈 수 있게끔 하는 것이 아닐까? 마을이라는 커뮤니티를 갖게 됨으로써 시설에 대해 홈이라는 의식이 명확해지면, 보다 풍요로운 생활이 가능해질 터이다.

한편 홈이라는 용어는 어떤 장면에서 사용될까? ‘하우스house’가 물리적인 공간만을 가리킨다면 ‘홈home’이라는 용어는 그 공간에 대해 거주하는 이가 긍정적인 생각를 갖고 있을 때의 사용한다는 정도만 여기서 확인해 두자. 커뮤니티라는 용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말할 수 있겠다.


마을이란 무엇인가?


커뮤니티론 

‘일상생활권’이라는 용어가 있다. ‘마을’이라는 용어도 자주 사용한다. 이 용어들을 보다 친근하고 폭넓은 개념으로 표현한 것이 바로 ‘커뮤니티’이다.

커뮤니티는 중요한 용어이기 때문에 몇 가지 기초지식을 확인하고 지나가자.

일본에서 커뮤니티에 관한 이론은 사회학자 R. Maclver(1949) 등의 논의에서 출발한다. Maclver는 커뮤니티를 일정한 공간에서 주민 상호 간의 다양한 관계성과 상호작용을 통해 존재하는 공동생활체‘로 정의하고 있다. 이와 같은 이론을 발전시키고 그 중심적 역할을 한 것이 마츠바라 지로와 오쿠다 미치히로이며, 이들은 커뮤니티를 의식적으로 형성된 지역의 사회관계상으로 파악하여 주체적 행동체계에 근거한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커뮤니티가 주체적인 행동체계에 따라 형성된 지극히 동적인 것이라는 것을 강조해 두고자 한다.


현재 커뮤니티라는 용어는 다의적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일정한 정의를 부여하기가 상당히 곤란하다. 다만 공통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커뮤니티에는 두 가지 접근법이 있다는 것인데, 하나는 공간, 또 하나는 관심에 근거한 접근법이다. 예를 들어, 농촌과 어촌의 전통적인 공동체는 지극히 제한된 공간 내에서 밀접한 관계성을 갖고 있는데, 이는 관심에 근거한 관계성을 넘어 피할 수 없는 운명공동체적인 양상마저 띠고 있다. 공간을 근거로 하는 커뮤니티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인터넷상에는 공간으로부터 해방된 다양한 커뮤니티가 존재하고 잇는데, 이들은 관심에 근거한 커뮤니티의 전형이다. 이 두 가지 커뮤니티를 ‘로열 커뮤니티’와 ‘테마형 커뮤니티’라고 부르는 경우도 있다.

시대를 따라서 개관해보면 커뮤니티는 동심원同心圓적인 생활구조를 갖는 농촌사회에서 다심원多心圓적인 생활구조를 갖는 도시사회로의 이행에 따라, 자생적인 것(농촌마을적 공동체, 포괄적 지역집단, 세대단위형)에서 형성적인 것(참가형, 선택적 관계성, 개인 단위형)으로 변화하고 있다. 운명공동체적인 관계성을 선호하지 않는 도시생활자의 다수는 지리적인 공간에서 해방된 테마 커뮤니티를 개별적으로 성립시켜 종래의 로컬 커뮤니티와 거리를 두는 경향이 있다고도 한다.


고령기와 커뮤니티

도시화에 따른 생활구조가 다양화됨에 따라 사람들은 개인적인 네트워크를 통해 귀속 공간에 근거하지 않는 테마형 커뮤니티를 구축하게 된다. 이는 일을 통한 커뮤니티, 학교 동창과의 커뮤니티, 취미를 통한 커뮤니티, 학부형들의 커뮤니티 등 특정한 관심을 기반으로 형성된다. 각각의 커뮤니티 구성원이 서로 중첩되는 경우는 드물고, 또한 공간적으로도 같은 장소에서 교류가 이루어지는 경우도 없다. 이것이 도시에 있어서 커뮤니티의 전형적인 형태라고 생각된다. 이에 대해 전통적인 커뮤니티는 일을 통한 커뮤니티, 동창과의 커뮤니티, 취미를 통한 커뮤니티, 친족에 의한 커뮤니티, 학부형 커뮤니티 등 어느 경우나 동일한 공간에서 전개되는 경우가 많아 구성원 간에는 수많은 상호 중첩적인 영역을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당연하게도 다양한 제약이 발생하고 개개의 커뮤니티에 대한 의견 제시가 원활하지 않아 관심에 근거한 커뮤니티는 점점 쇠퇴해 간다.

화제를 도시에서의 커뮤니티로 돌려 보면, 고령기에는 심신기능의 저하와 직장 생활로부터의 은퇴, 역할 축소, 가족 기능의 변화 등이 생기며, 이에 따라 주거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커뮤니티의 의미가 상대적으로 증가한다.


직장생활로부터의 은퇴는 대체로 60대에 경험을 하게 되는데 이 시기에 심신기능은 그다지 저하되지 않는다. 여행을 즐기는 노인도 적지 않으며 취미에 근거한 커뮤니티와 친구들과의 커뮤니티 등이 일정한 공간적 확대를 수반하며 유지 된다. 하지만 유지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는 않다. 자녀들도 독립하고, 직장생활에서도 은퇴했으므로 이를 대신할 커뮤니티를 가꿔가는 것이 무엇보다도 필요하다.


주거를 중심으로 한 커뮤니티가 보다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은 고령의 노인들의 심신기능이 현저하게 저하되고 배우자와 벗들이 세상을 떠나면서 이들에 기반한 커뮤니티를 상실하면서부터이다. 개인차는 있겠지만 이 시기는 대체로 70세를 넘을 즈음부터가 아닐까 한다. 이 시기가 되면 취미를 통한 커뮤니티와 친구들과의 커뮤니티도 구성원 중에서 멀리 떨어져 사는 이는 참여하기 어렵게 되어 근린에 살고 있는 이들만으로 유지되는 것 같다.


이상과 같이 고령이 되면 다양한 이유로 주거를 중심으로 한 비교적 좁은 범위에서 일상적인 생활을 영위하게 된다. 도시에서 그 범위는 도보권 정도이며, 가장 가까운 공간적 범주는 초등학교권이다. 자녀가 초등학생이 되면 부모도 학교권역이라는 커뮤니티에 속하게 되어 이를 통해 지역활동을 시작하는 계기가 된다. 이는 중학교권에 대해서도 해당되겠지만 중학교권은 초등학교에 비해 범위가 넓고, 초등학교권에서의 교류를 기반으로 한다는 점에서 약간 차이가 있다.


요구되는 형태

고령이 되면 다양한 이유로 주거를 중심으로 한 비교적 좁은 범위에서 일상생활을 영위하게 된다. 물론 고령기가 되어도 지역에 구애받지 않고 테마형 커뮤니티를 추구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소수이기는 하지만 이사를 감수하고서라도 그와 같은 생활을 추구하는 사람들도 있다. 공동거주 등은 그 전형적인 사례가 될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정든 지역에서 쌓아온 관계를 포기하면서까지 새로운 생활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활동적인 고령기라면 한 사람 한 사람이 만들어가는 커뮤니티는 일정한 공간적 확장을 수반하며, 주거를 중심으로 한 만남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경우도 많다. 어느 정도 먼 거리가 아닌 한 이사를 가더라도 그 사람이 소중히 여기는 관계 속에서 생활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 하지만 심신기능이 현저하게 저하된 경우라면 일상적인 관계의 대부분은 자신이 거주하는 주거의 주변에서 형성되므로 이주에 따라 그간 유지해온 커뮤니티는 상실되어 버린다.


전통적 커뮤니티는 도시에 존재하지 않으며, 앞으로 고령기를 맞을 이들도 이러한 커뮤니티를 바랄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많은 고령자들은 정든 지역사회에서 테마형 커뮤니티를 느끼고자 하는 게 아닐까? 다른 말로 하면 이른바 일상생활권이라 불리는 범위 내에서 관심과 지향을 같이 하는 사람들로 구성된 집합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베이비붐 세대가 고령기로 이행해 감에 따라 이러한 움직임은 더욱 가속화되리라 생각한다.


마을에서 늙어가기


개호의 필요성을 어떻게 파악할까

테마형 커뮤니티라는 용어에서 의미하는 테마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을 의미할까? 우선 떠오르는 것으로 교육, 보육, 환경, 개호, 마을만들기, 상점가 활성화, 지역 토착형 축제 등을 들 수 있다. 이들 주제는 어느 것이나 보다 나은 지역을 만들어 간다는 의미에서 사회참여의 성격이 강하다고 할 수 있다. 일을 통해 만족을 얻는 것과 마찬가지로 테마 커뮤니티에 적극적으로 참가함으로써 커다란 만족이 얻어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일과 사회활동의 경계는 희박해져 간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이와는 별개로 동일한 취미를 갖는 동료, 이웃, 그리고 테마형 커뮤니티를 계기로 만들어진 그룹 등 사회성이 덜하지만 나름대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도 사실이다. 이 두 가지 종류는 구성원이 중첩되면서도 밀접한 지역 네트워크를 통해 확장되어 간다. 또한 공익적인 사회활동과 교우관계가 겹쳐지기 때문에 오히려 암묵적이긴 하지만 지역 전체로부터 이해를 얻기 쉽고 상호이해를 통한 신뢰에 근거하게 된다.


테마 커뮤니티의 구체적인 예로서 돌봄(介護)을 들 수 있다. 즉, 주민들이 삶의 보람을 찾는 데 중점을 둔 주간이용 서비스day service, 시장경제와는 적잖게 거리를 두고서 한정된 범위를 대상으로 서비스를 상호 제공하는 체계, 주민참여를 통해 만들어 가는 주간이용 서비스, 그리고 자치회를 기반으로 한 독신고령자의 일상생활 지원 등이 머리에 떠오를 것이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지역주민들의 자발성에 기초하여 돌봄의 필요성을 상호 지지하는 체계이다. 이러한 활동은 종종 지면을 통해 소개되곤 하지만 어느 곳에서나 당연히 존재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와 같은 활동이 운영되고 있는 경우는 드물다.


그렇다면 우리는 평소 어떠한 형태로 돌봄 서비스와 만나고 있는 것일까? 돌봄이 필요한 상태가 되고서야 비로소 그 존재의 중요성을 알아차리게 된다는 것이 솔직한 말이 아닐까? 마을에 시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야에 들어오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돌봄이 필요해지고서야 비로소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복지 관련 종사자들이 현실 세계로 다가오는 느낌이랄까... . 매일 시설 앞을 지나다닌다고 할지라도 자신이 그 시설과 어떠한 접점도 갖고 있지 않다면 경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사정이 이래서야 시설에서 생활하는 노인들이 동네에서 생활하는 것을 기대하는 것은 더욱 더 어려운 일일 것이다.


돌봄은 단순하게 포장된 서비스의 물품이 아니라 새롭게 커뮤니티를 형성하게끔 촉진하기도 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예전부터 수많은 돌봄 서비스들이 이용자user와의 심정적인 연계를 갖지 못한 채 커뮤니티와 분리된 상태로 제공되어 왔음은 아쉬운 사실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커뮤니티를 육성하려는 가장 큰 목적이 지역주민들로 하여금 돌봄을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도록 하는 데 있다는 것도 쉽게 납득할 수 있는 말은 아닐 것이다. 중요한 것은 지역주민들이 서비스를 제공하는 입장에서 참여하고, 이를 통해 본인들 스스로가 만족감을 얻을 수 있게끔 하는 것이다. 한편 돌봄 서비스 이외의 서비스를 준비하여 돌봄의 대상층을 확대하고, 필요한 이는 언제든지 돌봄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환경을 정비하려는 노력이 앞으로는 더욱 필요해질 것이다.


마을이란 무엇일까? 이는 단순한 물리적인 공간이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이 만들어가는 지역 지도를 가리킨다. 집이란 무엇일까? 이것도 마찬가지이다. 물리적인 공간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안심하고 숨을 쉬며 할 수 있으며, 거처로서 기능할 수 있는 장소를 가리킨다. 자택이 집이 될 수 없는 경우도 있듯이, 시설이 집이 될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그리고 집이 있기 때문에 마을로 생활의 장을 확장해 갈 수 있는 것이다.


생활의 장을 집에서 마을로 확대해 가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공적인 서비스를 가반으로 입지와 건축이 어우러지는 것은 물론 중요하다. 소규모 다기능형 재택 돌봄(이하 소규모 다기능) 등은 그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한편 모든 것을 공적인 서비스에만 맡기지 않고 우리들 스스로 동네에서 필요에 부응한 서비스를 창출해가는 것 역시 중요하다.

‘마을에서 산다’는 것은 시설 혹은 자택이라는 이항대립적인 도식을 넘어선 차원의 문제이다. 필요로 하는 돌봄 서비스 중 일정 부분을 지역사회에서 담당할 경우, ‘마을에서 산다’는 것의 실현가능성은 더 높아질 것이다. 그렇게 되면 새로운 주거의 모습 역시 보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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