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스트 하우스에서 아침 식사를 마치고,
미리 섭외해놓은 봉고차 4대, 4명의 현지 기사들,
그리고 통역을 맡아줄 한국어에 능통한 현지인 두명과 함께
본격적인 여행길에 나섰다.
먼저 기름을 채우고 가야한다는데,
이곳 역시 기름값이 만만치 않다.
경유가 리터당 1320투그릭.
(그곳 화폐단위인 투그릭은 우리의 원화와 가치가 거의 같다
1320투그릭=1320원. 앞으로는 편의상 표기를 "원"으로 하겠음)
그나마 여긴 도시라 싼 편이고
지방으로 내려갈 수록 기름값은 비싸질거라고 한다,
게다가 정부에서 내일부턴 경유값을 1500원으로 올린다는 발표까지 있었다고 하니
차 한대에 10만원 가까이 들어가는 리터기를 보며 살짝 마음이 무거워진다.
첫 행선지는 울란바토르에서 동쪽으로 50k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테를지 국립공원!
몽골 최고의 휴양지란다.
화강암으로 된 암산이 풍화되어 형성된 높은 암벽과 낮은 계곡
그리고 푸른 초원이 하늘의 흰구름과 어울려 아름다운 풍경을 이루고 있다.
차를 세웠더니 기다렸다는 듯 어린 아이들이 말을 타고 다가온다.
"말"은 안 통하지만 "말"을 타겠냐고 물어보는 것 같다.
오늘 하루 일정이 빡빡하게 잡힌 우리는 아쉽게도 여기서 말을 탈 여유가 없었다.
풍경을 감상하고, 점심먹고 서둘러 출발해야 하는 상황!
이곳저곳 둘러보다 보니,
아까 말을 타고 다가왔던 아이가, 한쪽에서 기념품을 팔고 있다.
말 타는 것도 사양한터라,
기념품이라도 뭐 하나 사줄까 싶어 들여다봤더니, 구입하기엔 너무나 부담스러운 물건들 뿐이다.
학업의 스트레스가 전혀 없어보이는 아이들!
하지만 너무나 일찍 생업을 가진 아이들!
말이 통하지 않아, 마음으로 물었다.
'너희들은 행복하니?'
점심식사 하러 식당에 들어간다고 저 멀리서 부른다.
처음으로 현지에서 맛보는 몽골음식!
살짝 기대를 하며 식사를 기다렸다.
먼저 국 같은 것이 하나 나온다.
양고기 냄새가 확 풍긴다.
국이라고 해야할지, 스프라고 해야할지,
아마도 다른 음식들 보다 먼저 나오고, 먼저 먹으라는 걸 보니
"양고기 스프"라는 이름이 더 어울리려나 보다.
양고기와 감자, 당근 양배추가 들어가 있고, 약간 짭쪼름한 맛...
입에 맞진 않지만, 한그릇을 다 비웠다.
조금 기다리니, 튀김 만두 같은 것이 나온다.
웬 튀김만두지?? 하고 한입 베어 물었더니 그 안에서도 양고기가 나온다.
"포숏"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 음식은 쉽게 말하면 "양고기 만두" 인셈!
그렇게 "양고기 스프"와 "양고기 만두"로 점심을 먹고,
다소 니글니글해진 속을 달래며 차에 올라탔다.
그 흔한 후식용 커피도 이곳에선 없다.
밥 먹고 나선 커피 한잔 마셔줘야 식사에 마침표가 찍히는데..
그때 문득 이병률님의 산문집 "끌림"에서 봤던 한구절이 떠올랐다.
"취향 다리기"
여행을 가면, 평소에 자신이 갖고 있던 취향 따윈 말끔히 다림질 해서 펴야 한단다.
그래야 진정한 여행이 된다고...
밥 먹으면 꼭 커피를 마셔야 하는 나의 취향도, 이곳에선 다림질을 해야겠구나..싶다.
앞으로 남은 시간 동안 나의 습성, 고집 같은 것이 다림질 될거라 생각하니,
한편으론 또 흥미진진해진다.
차에 타자 마자 금방 내리란다.
무슨 영문인가 봤더니, 테를지의 명물인 거북바위 앞에서 사진 한장 찍고 가란다.
바위가, 정말 거북이 처럼 생겼다.
거북 바위 뿐만 아니라, 주위의 경관들을 사진기 속에 담았다.
새파란 하늘, 뽀송뽀송한 구름들,
푸르른 초원, 예술작품 같은 기암괴석들!
셔터를 누르면 그대로 작품이 나온다.
내가 무슨 사진작가라도 된양 괜히 우쭐해진다.
오후 2시쯤 출발!
오늘 우리가 가야할 목적지인 만달고비까지는 꽤 먼길을 달려야 한단다.
아마도 밤 12시나 되어야 도착할거라고...
그 전에 다른 마을이 나오면 거기서 숙박을 하는게 어떠냐고 통역하는 분이 우리에게 물어본다.
"으이그~ 계획한바가 있으면 그대로 밀고나가야지 수정은 무슨~~"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여행에의 열정을 보인다.
통역하는 현지인의 얼굴위로 스치는 불안감...그건 너무나 눈부신 햇살에 묻혔으리라.
어쨌거나 고비사막을 중심으로 하는 몽골 남부로의 여행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도로에는 우리 일행을 실은 봉고차 4대 외엔 차도 없다.
차가 막히는 것도 없다.
휴게소도 따로 없다.
가다가 서면 거기가 그냥 휴게소다.
주변엔 사람의 그림자도 없고,
화장실도 없고,
스낵바도 없다.
광활한 대지가 어디서든 쉬라고, 넉넉한 품을 내밀고 있을 뿐!
몇시간을 더 달렸을까?
열어두었던 창문을 닫지 않으면 안될 상황이 벌어졌다.
앞차가 남기고 간 먼지 때문에 일제히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비포장도로....
이제 우리는 마지막날까지 이런 비포장 도로를 달려야 한단다.
이정표도 없다.
여기가 어딘가 알아볼만한 주변 건물도 없다.
무엇보다....길도 없다.
그저 앞서간 차의 바퀴 자국만이 길이 되어주는 곳!
사방이 지평선이다.
빽빽하게 건물이 들어서 있는 도심에 살면서 하나도 제대로 보기 힘든 지평선!
그런데, 이곳은 어디다 눈을 돌려도 지평선이다.
비포장 도로를 열심히 달리다가 서면 그곳이 또 휴게소다.
차창밖으론 아무것도 없는데,
바깥 풍경 구경이 하나도 심심하지가 않다.
그야말로, 자연!
인간에 의해 가공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자연!
그 자연을 보며 난 몇번의 감탄사를 내질렀는지 모르겠다.
어느덧 해질무렵...
하늘이 석양으로 물든다.
그 석양에 또 감탄사를 내질렀다.
우리의 감탄사 속에 담긴 마음이 말 안통하는 몽골 기사에게 전해졌나보다.
기사가 차를 세운다.
그의 눈빛에는 얼른 사진을 찍고 오라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지평선을 배경으로 아름답게 물든 석양,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일몰 현장, 그곳에 내가 있었다.
대자연에 취해, 시선한번 주지 못했던 우리차의 기사!
말이 통하지 않아도 우리의 마음을 알아주고, 또 배려해주는 마음이 참 고마웠다.
다른 차의 기사들처럼 어설픈 한국말조차도 못하는 사람!
하지만, 묵묵함 속에서 느껴지는 성실함이 좋았다.
날이 어두워지자 주변은 그야말로 암흑천지로 변했다.
가로등도 없다.
인적도 없다.
무조건 앞으로 앞으로 나아갈뿐.
우리가 가고 있는 길이 맞는 걸까...하는 것마저도 확신을 못하는 분위기!
12시쯤 도착할거라고 했던 마을 "만달고비"는 새벽 1시가 넘어도 나타나지 않았다.
낮에, 통역하는 분의 얼굴에 스쳤던 그 불안한 기색만이 자꾸만 눈앞에 아른거렸다.
앞서 가던 차가 섰다.
사람들이 내린다.
무슨 일인가, 내려 물어봤더니,
기사가 졸음운전을 하고 있단다.
옆에서 아무리 꼬집고, 음악을 크게 틀고, 물을 마시게 해도 잠시뿐...계속 꾸벅꾸벅 졸면서 운전한단다.
아찔하다.
졸면서 운전하는 기사를 보는 그 차 사람들은 얼마나 불안할까?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참 다행이다 싶다.
광활한 벌판을 달리고 있으니, 마주오는 차도 없고, 박을 난간도 없다.
그 기사에게 측은함과 미안함도 든다.
오늘 하루만 15시간을 넘게 운전했다. 지칠만도 하다.
그런데 뭐가 나와야 오늘 일정을 마무리 하지. 이 벌판 한가운데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마시던 물로 세수를 하고 오더니, 계속 운전을 할 수 있을 것 같단다.
다행스러우면서도, 미안하고, 또 고맙고, 하지만 불안하기도 하고...
여러가지 감정이 마구 교차한다.
그런데 또 청천벽력 같은 소리가 들린다.
우리 차 기사 왈 우리차에 기름이 거의 다 떨어졌다고 한다.
유일한 휘발유차인 탓에 유독 기름 소모가 많았나보다.
그런데 불빛 하나 보이지 않는 그 곳에서 언제 어디서 주유소가 나타날줄 알고...
여름 납량특집보다 더한 공포!
새벽2시, 어딘지 모르는 벌판 한가운데서 졸음운전하는 운전기사와 기름이 바닥난 자동차와 마주하고 있는 것!
진정한 공포란 이런 것이구나..하는 것을 뼛속 깊이 느꼈다.
일단 가는데까지 가보자 하고, 모두들 다시 차에 올랐다.
다행히 신은 우리를 버리지 않았다.
40분쯤 더 달렸을까??
작은 마을이 나타났다. 우리의 목적지인 "만달고비"였다
주유소도 있었다.
호텔도 있었다. 물론 호텔이라고 해봐야 우리가 알고 있는 여인숙보다도 못한 곳!
잠겨있는 문을 두드렸다.
주인이 부시시 눈비비며 나온다.
다행히 방은 비어있었다.
한방에 열명이 들어가야 하는 방이었지만,
그 순간 우리에겐 그조차도 너무나 감사한 것이었다.
주인이 한마디 덧붙인다.
저녁에 물이 끊겨서 물이 안나온단다.
우린 모두 "괜찮다"고 했다.
새벽 3시!
우린 아무런 옵션도 필요없었다.
그저 15시간 넘게 차를 타고 오며 지친 몸을 쉬게 할 내 몸만한 쉼터가 필요할 뿐!
얼굴은 물티슈로 닦아내고,
먹던 물로 양치질만 대충하고 누웠다.
그리고 생각한다.
'이 여행, 시작부터 울트라 캡숑 짱 흥미진진한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