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곤파스는 밤새도록 문을 두드렸지만,
난 절대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그 모습이 궁금해 문을 열어볼까 생각도 했지만,
혹시라도 이 섬에 좀 더 머무르려 할까봐
문을 꼭 꼭 닫고 얼른 가라 했다.
보길도를 집어삼킬 듯 비바람이 몰아쳤다.
이곳 보길도에 영원히 갇히는 건 아닌지 밤새 걱정했다.
다음 날, 태양이 눈부신 햇살로 날 깨운다.
벌떡 일어나 창을 여니 민박 집 아주머니가 미소를 지으신다.
오늘은 배가 뜰테니 염려말라는 듯...
이틀밤을 묵었던 그곳은 예송리 해수욕장 근처였다.
보길도의 명소 중 하나로 꼽히는 예송리 해수욕장...
평화로운 마음으로 해변가를 거닐어 본다.
해변에 모래 대신 동글동글한 조약돌이 가득하다.
샤르르~ 샤르르~ 파도와 자갈이 부딪히는 소리가 귀를 간지럽힌다.
어쩜 이렇게 한치의 모남도 허용치 않고 완벽하게 동글동글할 수 있는지....
바다가, 그리고 파도가 만들어놓은 작품이리라...
그런데 간밤 태풍의 난리부르스에 파도가 힘들었나보다.
정신없이 휘몰아치느라 멀미를 했는지, 해변에 파도의 토사물이 가득하다.
으~~~~!!
그런데 한쪽에서 열심히 뭔가를 주워 담고 계신 할머니...
뭘 하시냐고 여쭈었더니, 바다가 토해놓은 쓰레기를 치우고 계신단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그저 누가 해도 해야할 것, 자기가 하는 거라고...
바다는 해변의 조약돌 뿐만 아니라 이곳 사람들의 마음까지도 둥글게 둥글게 다듬었나보다.
누가 해도 할 것, 내가 한다...
누가 해도 할 것, 난 빠지지 뭐...
그렇게 모난 마음을 갖고 살아온 게 부끄러워,
서둘러 할머니와 인사를 하고 해변을 빠져 나왔다.
바다의 보이지 않는 힘일까....
아니면 보길도라는 섬의 마력일까...
남해바다 보길도 라는 섬에 잠시 머물다보니,
모나 있는 내 마음이 뜨끔 뜨끔 아파온다.
해안도로를 따라 동쪽으로 한바퀴 돌 마음으로 운전대를 잡았는데,
1분도 안가서 난감한 상황에 부딪혔다.
도저히 해안도로라고 생각할 수 없는 구불 구불 마을 길이 나온 것이다.
동네 주민께 여쭤봤더니, 보길도의 동쪽 해안도로는 예송리에서 끝난다고 한다.
수리봉 격자봉 같은 험한 산이 가로막고 있기 때문에...
길은 다시 반대로 돌아가야 서쪽으로 갈 수 있단다.
섬의 동쪽인 예송리가 일출 감상하기 좋은 지역이라면
해안로를 따라 서쪽으로 가다보면 일몰을 감상하기 좋은 지역인 망끝 전망대가 나온다.
일출이든, 일몰이든, 근사한 장면 하나는 건졌어야 했는데,
어정쩡한 시간에 움직이다 보니,
일출이 아름다운 곳, 일몰 관광지...그렇게 말만 듣고, 글만 읽고 돌아섰다.
마음만 먹으면 일출과 일몰을 모두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이 섬의 매력이건만
그 매력을 온전히 느끼지 못하고 돌아서는 발걸음이 못내 아쉽기만 하다.
망끝 전망대는 "전망대"라는 이름이 어울리게 절벽 위에 자리잡고 있다.
일몰은 전망하지 못하지만, 아쉬우나마 망망대해라도....
그곳에서 돌아서 선착장으로 갈까 하다가 욕심을 부려봤다.
10 km 정도 가면 보족산이 나온다는데...
살짝 갈등 하다가 그곳까지 가보는 걸로 결정!
보족산!
195m의 야트막한 산이지만,
1000m 넘는 형들을 어설프게 흉내라도 내듯 정상이 운무에 휩싸여 있다.
정상이 뾰족하게 생겨서 "뾰족산"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는데, 정상이 안 보여 아쉽다.
겨우 195m의 낮은 산인데....
사실 이곳에 온 건 보족산을 보기 위함이 아니다.
보족산이 품고 있는 바닷가....그곳의 특별함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서른이 되기 전에 가봐야할 여행지 28> 이라는 책에서
보길도를 소개하면서 나왔던 첫 사진이 "공룡알 해변"이었다.
책을 통해 보면서, 동글동글하면서도 큼직한 그 돌들이 참 신기했다.
그런데....
지금 그 돌들이 사방천지에 널려 있는 공룡알 해변이 내 눈앞에 있다.
꺄오~!!
공룡알...이라는 이름엔 적당한 거품과 과장이 있는 줄 알았다.
그런데...
정말 돌들이 공룡알만큼이나 큼직하다.
게다가 정말 알처럼 둥글 둥글~
금방이라도 뿌직~ 하고 금이 가면서 안에서 아기 공룡이 튀어나올 것만 같은 느낌...
육지라는 거대 몸집의 끄트머리에 자리하고 있는 해변과는 달리
상대적으로 작은 부피의 섬의 해변은 파도에 저항하는 힘이 약해 이 돌들이 더 많이 깎이고 깎인걸까?
그렇더라도 이 돌들의 크기는 어떤 근원으로 설명될 수 있을까...
이토록 크고 둥근 돌들이 한곳에 모여 있는 풍경이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보족산은 보길도의 서쪽 도로 끝이다.
진행방향 대로 동쪽 해변으로 가려면 산을 넘어가야 한다.
12시 배를 생각하고 있는 터라, 이제 슬슬 선착장으로 이동해야 할 때다.
보길도의 청별항까지 나오면 노화도와 보길도를 이어주는 보길대교가 눈앞에 보인다.
아주 가까이 있는 두 섬...
그 사이를 가로 막고 있는 바다를 배로 드나들어야 하는 불편함을 겪었던 때가 있었을 거다.
그런데, 저 다리 하나가 1분이면 두 섬을 오갈 수 있게 만들어주니....참으로 기특하다.
해남으로 나갈 때도 보길도가 아닌 노화도 산양진 선착장에서 나갈 예정이다.
그래서 배 시간도 노화도 선착장으로 체크를 했는데, 12시 배를 타려면 20분 정도 남았다.
가는데 10분 정도 걸리니, 여유롭게 갈 수 있겠다.
보길도를 떠나는 날,
또 다른 떠남의 현장 앞에서 차를 멈췄다.
같은 "떠남" 을 앞두고 있지만,
난 언제든 다시 올 수 있는 길을 떠나는 것인데 반해,
저 상여 안에 계신 분은 다시 못 올 길을 떠난다.
저렇게 많은 분들의 환송을 받으며. 화려한 상여에 타고 가지만, 그 길이 다시 못올 길이라면....
새삼 그 풍경을 지켜보고 있는 내 자신이 사치스럽게 느껴진다.
상여가 마을을 한바퀴 돌고 나가는 것까지 지켜보며 내가 이 순간 더 부지런히 움직여야 하는 이유를 찾아본다.
덕분에 12시 배가 눈 앞에서 떠나는 걸 지켜봐야 했다.
다음 배까지 1시간을 더 기다려야 하지만,
나의 남도여행에 마침표를 찍기 직전,
내가 더 열심히 살아야 할, 부지런히 곳곳을 누벼야 할 이유에 대한 자극을 받은 것만으로도 족하다.
1시...
나를 싣고갈 배가 왔다.
욕지도부터 시작해서, 거제도, 소매물도, 그리고 보길도까지...
각기 다른 색깔을 지닌 네개의 섬과 함께 했던 지난 날이 파노라마처럼 스쳐지나간다.
그리움과 외로움의 대명사라 할 수 있는 "섬"
언제든 내가 다시 오길 그 자리에 그대로 서서 기다려 줄 섬.
다시 오는 그날 두팔 벌려 맞아줄 섬...
여름이 물러가고 가을이 찾아오는 길목에서, 난 그렇게 네 친구를 사귀었다.
2010 여름의 끝 가을의 시작에서
남도 섬 여행 시리즈를 마치며...
글 & 사진
김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