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고금을 통틀어 으뜸가는 성인이라 일컬어지는 4대 성인이 있다. 예수 석가모니 공자 소크라테스 울릉도에는 그들 4대 성인과는 전~혀 상관없는 <성인봉 (聖人峯)> 이 있다. 4대 성인으로 길이 남진 못하더라도, 성인으로의 길을 가려는 노력은 한번쯤 해봐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나섰다. 성인봉을 향해...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었는데, 화창한 날씨다. 계절의 여왕이라는 5월, 구름 한 조각에도 가려놓지 않을테니 성인봉의 매력을 한껏 느껴보라는 듯!
나리분지에서 성인봉까지는 대략 4km 정도!
그런데 등산로 입구에서 '신령수' 라는 곳까지는 '가볍게 걷기 좋은 코스' 로 정평이 나있단다.
오죽하면 2.5 km 를 걷는데 소모되는 칼로리가 120 밖에 안 될까.
예상했던대로 한동안은 평지가 이어진다.
연초록 나뭇잎들의 환영을 받으며 걷는 길은 참으로 상쾌하다.
나물 천국답게 지천에 나물!
곳곳에 나물에 대해 친절히 설명도 해놓았다.
산마늘 (명이나물) 은 일본에서 정력제로 이용되기도 한다고???
설마 울릉도 주민들이 그렇게 힘들게 딴 명이나물을
일본으로 수출하는건가???
명이나물이 귀한 대접을 받는 것이 그런 이유는 아니길....
저~어기, 볼록 솟은 곳!
저곳이 성인봉인 듯 하다.
당장은 평지길을 가지만, 저 높은 곳에 오르려면 고생 좀 하겠다.
가는 길에 투막집을 하나 만났다.
사람이 살고있진 않았지만,
투막집을 소개할 목적으로 예전에 사람 살던 집을 그대로 놔둔듯했다.
이 집은 울릉도 개척당시(1882)에 있던 재래집 형태를 간직하고 있는데,
바람과 폭설에 대비해 이중벽 구조로 만들어진 '투막집'이다.
지붕도 특이하지만,
학창시절 교과서에서만 배웠던 우대기가 이렇게 생긴 것이었구나...체득하게 된다.
바깥에 눈이 2m 이상 쌓여 못나가더라도
왔다갔다 할 수 있는 최소한의 공간은 확보되게끔 만들어놓은 우대기.
방 옆에 있는 부엌은 바닥을 낮게 한 것이 특이하다. 부엌 옆에는 마구간! 그렇게 모든 것을 우대기 안쪽에 설치해놓았다. 나리분지에는 고대 우산국부터 사람이 살았으나, 왜적의 침입을 피하기 위해 조선시대 공도정책 (섬을 비우는 정책)을 펴서 수백년동안 비워져 있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1882년 고종의 개척령에 따라 93가구 500여명의 개척민들이 들어와 이 투막집을 짓고 살았는데 이곳 나리분지는 개척당시 주민들이 거주한 울릉도 제1의 집단촌이라고 한다.
투막집을 나와 계속 걷는 길...
도대체 막판에 얼마나 힘든 길을 선사하려고,
계속 이렇게 평탄한 길을 가는지...살짝 겁도 난다.
나리분지에서 2.5km 떨어져 있음에도 120kcal 소모 구간이라고 할만큼 평탄한길...
산책하듯 완상하며 걷기에 참 좋은길...
그 길을 지나 드디어 신령수 앞에 당도했다.
신령수... 이름만 듣고는 나무인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물이었다. ^^
저 외국인!
"신령수" 라는게 어떤 의미인지는 알고 마시는걸까??
시원하게 들이키고 캬~ 하길래,
주머니에 있던 "울릉도 호박엿" 하나를 내밀었더니,
환한 미소를 지으며 "Thank you!" 한다.
성인봉에 오르기전,
어쩌면 이 신령수로 마음을 씻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싶어
나도 한바가지 들이켰다.
신령수 앞에는 잠시 발을 담글 수 있는 "족욕탕"이 있다.
진짜 발을 담그는데 쓰는건지는 모르겠지만...^^
내려올때 잠시 쉬어가면 좋겠다 싶어 "찜~" 해놓고 계속 오른다.
신령수 지점을 지났더니,
서서히 계곡도 나타나고, 본격적인 오르막이 시작된다.
그러다가 갑자기 펼쳐지는 급경사 계단!
124km 도 아니고 1.24km 만 가면 된다고 하니
애써 힘을 내어본다.
계단을 올라오니 작은 전망대가 하나 있는데,
저 아래에 있을 때는 몰랐던 작은 봉우리가 하나 눈에 들어온다.
나리 분지 안에 있는 작은 봉우리...
저곳이 "알봉" 이다.
해발 750 미터 위로 올라가니, 자연 상태 그대로의 원시림이 펼쳐져 있다.
해리포터에 나오는 호그와트 마법학교에나 어울릴 법한 그런 나무들이 천지다.
우연히 고개를 돌렸다가 커다란 뱀머리인줄 알고 깜짝 놀랐던 나뭇가지!
후우~ 사진으로 찍어놓고 봐도 진짜 뱀머리 같다.
오래된 고목 아래에서 옹기종기 모여 핀 예쁜 꽃들!
지나가는 아주머니께 여쭤보니 "섬노루귀"란다.
울릉도에만 서식하는 여러해살이풀로,
꽃이 필 때면 줄기에 긴 흰털이 많이 나오는데,
그 모양이 노루의 귀와 비슷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참 정신없이 사진을 찍다보니, 저 뒤 쪽에 하얀게 눈에 들어온다.
저건 뭐지??
하고 자세히 봤더니,
세상에!!!
눈이다!!!
한쪽엔 꽃이 활짝 피었는데, 한쪽엔 아직도 녹지 않은 눈이라니...
성인봉 가는 길엔 봄과 겨울이 공존해 있다.
아직 녹지 않은 눈의 두께는
지난 겨울, 얼마나 두껍게 덮혀 있었을지...상상이 가능하게 한다.
아마도 이런 봄나물들이 없었다면,
겨울산에 와 있었다고 착각했을지도 모르겠다.
성인봉 정상에서 맛볼 요량으로 명이나물은 몇 포기 캤다.
계속되는 급한 오르막에 숨이 턱까지 차오른다.
성인봉 가는 길이 아무리 힘들다 한들,
진짜 성인이 되는것만큼 힘들까.
그 성인이 타인에게 본보기가 된 성인(聖人) 이든,
만 20세 이상의 성인(成人) 이든 말이다.
드디어 성인봉정상을 10m 앞둔 지점까지 다다랐다.
그리고...
마침내...
해발 984m
성인봉 정상에 섰다.
난 지금 울릉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서 있다.
비록 1000m 도 안되는 봉우리지만,
이곳 울릉도에선 그러한 수치를 들이대는 것이 실례일지도 모르겠다.
1000만년도 훨씬 전인 신생대 3기에
화산활동으로 만들어진 이곳 성인봉!
그 성인봉에 엎혀 나 또한 더불어 성인이 되는 순간이다.
울릉도에서 하늘을 가장 가까이 볼 수 있는 이곳 성인봉 정상!
나만의 세러모니를 조용히 준비한다.
글 & 사진
성인영화를 한번도 본 적이 없는 (?)
김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