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떠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문득 자문해본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새로운 경험을 하고...
많은 이유들이 있겠지만,
'내가 만나보지 못했던 새로운 풍경에 대한 동경!'
또한 하나의 이유가 될 것이다.
새로움만으로도 충분한데,
아름답기까지 하면...
대박 맞은 기분이다.
아름다운 풍경이 있다면 당연히 수고로움을 마다해야 할터...
예림원이 있는 노인봉을 출발해 산을 하나 넘으면 유일한 두 갈래길이 나온다.
하나는 계속 이어지는 일주도로...
또 하나는 태하마을로 들어가는 길...
그 갈림길 앞에서 지도를 펼쳐놓고 잠시 고민을 한다.
그런데 다시 옆길 새어야 할 이유가 생겼다.
한국 10대 비경??
울릉도 10대 비경도 아니고,
한국 10대 비경??
그렇게 빼어난 경치라면 안 보고 그냥 지나칠 순 없다.
게다가 울릉도에 많은 5多 중에
"향나무"가 들어가는데,
향나무자생지가 있다 하니,
이곳은 선택사항이 아닌 필수코스일지도 모르겠다.
마을에 들어서니 나물냄새가 진동을 한다.
삶은 취나물이 넓은 길을 다 차지하고 있었는데,
나물향이 바다내음을 압도했다.
나물 냄새까지 맡으니, 슬슬 시장기가 밀려온다.
아침을 컵라면으로 때운 터라 점심은 좀 야무지게 챙겨먹고 싶다.
아직 먹어보지 못한 "홍합밥" 을 파는 집이 있으면 좋겠는데...
자그마한 식당 하나를 발견했는데,
문이 잠겨 있다.
동네 주민께 여쭤보니,
주인이 사정이 있어 오늘은 장사를 안 한단다.
그래서 다른 식당을 찾아 헤매다 식당 두개를 찾아냈는데...
광장반점, 울릉반점!
공교롭게도 둘 다 중국집이다.
조그마한 마을에 중국집이 두개씩이나...?
어느 쪽을 갈까요~~
하다가 찍힌 곳은 광장반점!
선택의 여지 없이 점심식사는 자장면이다.
울릉도에 와서 자장면도 먹어보고...
예전에 마라도 갔을때 국토의 최남단에 앉아 자장면 시켜 먹었던 기억이 새록새록 피어올랐다.
독도가 있으니 울릉도를 국토의 최고 동쪽 섬이라고 우기긴 힘들지만,
독도에선 자장면을 먹을 수 없으니
우리나라 최고 동쪽 섬에서 자장면을 먹었다는 기록을 또 하나 남긴 셈이다.
그렇다면 남은건...
대한민국 최고 서쪽 섬인 흑산도에 가서 자장면 먹기!!
아싸~!! 조만간 흑산도로 떠나야 할 이유가 생겼다.
한국의 10대 비경으로 가는 길은
모노레일이 운영되고 있었다.
5분 정도 타고 올라가는데 발 아래로 향나무들을 볼 수 있다.
이곳 향나무에 관한 재미있는 전설이 있는데,
지금은 향나무가 별로 없지만,
개척 당시에는 아름드리 향나무가 가득 차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곳의 이름도 향목령 (향나무재) 라고 불렸다는데...
어느날 산불이 나서 석달 열흘 동안 그 향나무가 다 타버렸다고...
향나무가 얼마나 많았던지, 그때 향나무 타는 냄새가 강원도까지 풍겨
그곳 사람들이 향기를 맡고는 울릉도에 큰 불이 났음을 알았을 정도라고 한다.
그 때 다 타버려 그런지 지금은 향나무가 많이 남아있지 않았다.
모노레일에서 내리자, 정겨운 흙길이 펼쳐져 있다.
이 오솔길을 따라 쭉~ 가면 한국의 10대 비경 지역이 나올 것이다.
시원한 바람도 불어오고, 초록의 자연도 싱그럽고...
그렇게 기분좋게 한참을 걸어가고 있는데...
바람에 묻어오는 이 향기는...??
아주 익숙한 향기였다.
그래서 그 향기 따라 또다시 옆길로 새고 말았는데...
발길은 어느새 그 향기의 근원지에 다다라 있었다.
이 산 꼭대기에서까지 나물의 향연이...
방금 삶아낸듯한 뜨끈뜨끈한 나물들이 햇살 아래 펼쳐지고 있었다.
이 많은 나물들을 솥에 일일이 삶아내는 것도 일이겠다 싶다.
그런데 한쪽에서 나물 삶는 모습을 목격했는데...
역시...솥에다가 삶아내는게 아니었다.
삶은 나물을 건져내는 걸 보니,
한번에 삶아내는 양이 엄청나다.
"무슨 나물이예요?"
여쭤봤더니
"부지깽이" 라고 하신다.
나물 삶는 것도, 나물 말리는 것도
모두 신기하게 보며 마구 셔터를 눌러대는 도시처자를
할머니들은 오히려 신기하게 보신다.
할머니들의 시선이 멋적어
주머니에 있던 엿을 두 개 꺼내
"이거 드세요~!" 하고 드렸더니,
"호박엿이 아니네. 고구마엿이란 것도 있나? 맛있네~"
하며 활짝 웃어주신다.
호박엿의 고장 울릉도에 와서 고구마엿으로 생색내게 될 줄이야...
전망대로 가는 길목에선 오징어가 친절히 길 안내를 해준다.
그런데 안내 표지판에 잠시 시선이 머무는데...
"Welcome to mistery in island Ulleung-do!"
울릉도의 mistery 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mistery?
아하~ 한국의 10대 비경이라고 하더니,
비경(秘景) 을 영어로 mistery 라고 번역했구나...
비경...숨겨진 아름다움
비경이라는 어휘 속엔 분명 신비로움이 담겨 있는 것 같다.
mistery 라는 단어 하나에 설렘과 기대가 더욱 충만해진다.
울릉도 서쪽 바다를 밝히는 "울릉도등대"를 지나
드디어 한국의 10대 비경 전망대에 섰는데...
우와~!!!
일단은 감탄사가 터졌다.
그리고 알 것 같았다.
이곳을 "절경"을 뛰어넘은 "비경"이라고 하는 이유를...
떠들썩하게 알려져 있진 않지만
그 어디에도 뒤지지 않는 내밀한 아름다움을 간직한 곳임을...
대한민국 구석구석 많이 다녀봤다고 자부하는데,
그동안 봐왔던 풍경중에 가히 최고라 할만했다.
안개가 없이 맑고 화창했다면 더 멋있었을텐데...아쉬워하다가
어쩌면 저 안개 때문에 이곳이 더욱 신비로운 아름다움으로 느끼지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눈앞에 펼쳐진 풍경이 모두 익숙한 곳들이다.
뾰족히 솟은 송곳봉,
그 앞에 문자조각박물관이 있었던 노인봉,
바다위엔 코끼리 모양을 한 코끼리 바위,
방파제가 있는 곳은 현포항...
이젠 울릉도 가이드를 하라고 해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 ㅎㅎㅎ
돌아오는 길, 모노레일을 기다리던 중 발견한 이정표는 또다시 운명을 바꾸어놓았다.
향목옛길?
저리 걸어가도 태하마을이 나오는건가?
바쁠 것도 없는데, 그냥 걸어갈까?
그렇게 내 안의 샛길증후군이 또 증상을 보이기 시작했다.
슬쩍보니, 오솔길이 펼쳐져있어 더욱 혹한다.
그래서 들어서게 된 향목옛길.
그런데...
정말 옛길이었다.
지금은 사람이 많이 안 다니는듯 풀들이 많이 자라 길을 찾기도 쉽지 않았고,
경사도 가파른데다 한사람만 간신히 지나갈 수 있는 좁은 길에
왼쪽은 바로 낭떠러지인 위험 구간도 있고...
내가 가는 이 길이 과연 맞는것인지,
산속에서 길을 잃으면 어떡하나 하는 두려움도 있었다.
하지만 자연만이 온전히 주인공인 숲속이라,
꽃도 열매도 정말 다양하게 피고 열려 있었다.
조금 고생스럽긴 해도 옛길을 선택한 건 잘한 일인듯...
산너머 산, 그 너머 산까지도 한눈에 보인다.
이 산들의 좋은 정기를 다 마셔버리겠다는 듯,
심호흡 크게 한번하고...
저 아래로는 태하마을 집들이 옹기종기 지붕을 맞대고 모여있는 모습이 보인다.
이제 저 마을만 바라보며 내려가면 되니, 길 잃을 염려는 없겠다.
그냥 모노레일 타고 5분만에 내려갈걸 그랬나...했던 후회는 잠시...
비록 내 느린 걸음에 30분 정도 걸리긴 했지만,
향목옛길을 선택해 내려온 건 탁월한 선택이었노라고,
자화자찬의 시간은 꽤 길었다.
마을입구까지 내려오자 긴장했던 다리가 풀려 털썩 주저 앉았다.
잠시 둘러보고 가려 했던 태하마을이었는데,
속살까지 다 훑어본 느낌이다.
결국 작은 골목 하나를 빠져나오게끔 연결되어 있었는데,
골목 입구에 보니 <태하등대 향목옛길, 등대까지 1.5km> 라고 적혀 있다.
과연 편한 모노레일을 놔두고 이 길을 찾아 걸어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지...
초자연이 살아있는 향목옛길 또한 숨겨진 "비경" 이라 할만한데 말이다.
태하마을의 또하나의 명소!
"황토구미"다.
원래 이곳엔 황토(黃土)가 많이 났다고 하는데
조선조 때는 이곳의 황토가 나라에 상납되기도 했다고...
개척 당시 사람들이 이곳에 와보니,
바닷가 옆 산에 황토를 파낸 구석이 있어, 이곳을 "황토구미(黃土邱味)" 라 불렀다 한다.
황토구미 옆엔 이곳도 올라가 보라는 듯 예쁜 소라모양의 "소라오름길"이 유혹하고 있다
태하옛길을 걸어내려오느라 다리가 좀 아프긴 했지만,
이 너머엔 또 어떤 비경이 펼쳐져 있을지 궁금해 가보기로 한다.
소라오름길의 꼭대기에 올라가서 보니,
절벽 옆으로 붙어 있는 난간길이 보기만 해도 아찔하다.
갑자기 돌이 굴러떨어지면 어떡하나...
다리를 지탱하고 있는 줄이 끊어지면 어떡하지...?
발판이 툭 빠지기라도 한다면...
정말 목숨걸고 가는 길이었다.
절벽의 모퉁이를 돌자 햇살이 눈이 부셨다.
일몰...
아...이곳이 울릉도의 서쪽이었지.
바다를 붉게 물들인 노을이 내 마음까지 평화로운 빛깔로 물들인다.
이곳은 낚시터로도 명성이 있다고 들었는데,
정말 낚시꾼들이 좋아할한하다.
저 위의 정자가 일몰전망대인 것 같은데,
뱀처럼 놓여있는 길에 미리 질려버려 감히 갈 엄두가 안 났다.
그래서 바다가 보이는 길목에서 일몰을 감상하기로...
서해바다에서나 볼 수 있음직한 일몰풍경을
동해바다에서 보고 있다.
울릉도에서 일출보기를 최대 과업으로 삼고 왔는데,
울릉도에서 바라보는 일몰은 일출 이상의 감동이 있었다.
아침에 울릉도 일주를 계획하고 나섰으나
고작 북쪽만 돌아봤는데 해가 지고 있었다.
어쩌면 울릉도를 하루만에 일주하겠다고 생각했던게 욕심이었던듯.
내일 점심 때는 렌트카를 반납해야 하는데,
내일 오전이 많이 바빠지겠다.
하지만 하루를 꽉 차게, 알차게 보낸 것 같은 느낌.
참 오랜만에 느껴보는 포만감이었다.
글 & 사진
흑산도에서 자장면 먹을 생각에 벌써부터 들떠 있는
김작가
2011.6.17
블로그 메인에 올랐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