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타고 떠난 꽃한송이

[지리산둘레길-7코스] '둘레길'인줄 알고 갔다가 큰 코 다치고... 흙속에 바람속에 치유되고...

작성일 작성자 김작가

 

 

길도 신상을 좋아하는 탓에

지리산 둘레길 6,7,8,9 코스가 개장했다는 소식에

엉덩이가 들썩들썩한다.

6코스는 개장도 하기 전에 일찌감치 답사를 다녀온 터,

남은 7,8,9코스를 돌아보고픈 욕심에

지리산 자락으로 향했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외쳤다.

 

뛰어난 경치를 보고 느끼는 감동은 순간이지만,

사람의 정을 통해 느끼는 감동은 오래간다고!!!

 

인심이란 그런 것이었다.

돌아오는 길에 자꾸 뒤돌아보게 만들고,

언젠가는 반드시 다시한번 가리라, 다짐하게 만드는 것!

 

지리산...둘레길...그리고 사람....

 

지금부터 그 이야기를 풀어놓고자 한다.

 

 

 

산청 청계마을에는 <흙속에 바람속에> 라는 민박이 있다.

방이 하나 밖에 없으니, 아주 소박한 민박집!

하지만 시설은 웬만한 펜션 못지 않다.

 

 

이곳 아주머니가 차려준 아침식사 상은 참으로 정갈하다.

음식에서는 엄마의 손맛이 느껴진다.

 

 

지리산에서 나는 각종 나물들의 진연!

고기 한점 없이도 "진수성찬"이다.

 

 

식사가 끝날즈음, 아주머니가 차를 내어오신다.

다도도 잘 아시는듯, 물 붓고 따라내고, 다시 우려내고...

그 손놀림이 예사롭지 않다.

생전 처음 맛보는 "홍화차"라고 따라주시는데,

물 속에 있는 잎들은 마치 홍학이 춤을 추는 듯 하다.

찻잔을 들고 있노라니, 그 향에 취해 쓰러질 것 같다.

그렇게 든든히 아침 식사를 하고,

향기로운 차 한잔의 여유까지 즐기고 나니

이젠 이곳 아저씨의 서비스가 이어진다.

 

 

 

민박집에서 7코스 입구까지, 직접 운전해 태워주셨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

7코스는 웅석봉 헬기장까지 올라가는 길은 좋은데,

그곳을 지나 내려오는 길은 시멘트 길이어서 굉장히 피곤하고 둘레길로서의 맛이 없다고 하신다.

그래서,

주방장 추천요리처럼 그 맛이 보장된,

민박집 아저씨의 추천코스가 있다며, 내려올 땐 그 길로 내려오길 권하신다.

친절한 설명과 함께...

 

그래도 7코스를 걷겠다고 왔는데, 정상적인 코스로 걸어야 하지 않을까?

아니야, 이곳에 계신 현지인의 충고라면 당연히 따라야 하지 않을까?

 

갈등이 되기 시작하는데, 일단은 직접 가서 보고 결정하기로...

 

 

7코스 입구 어천마을!

지리산 둘레길 7코스의 본격적인 트래킹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요즘 부쩍 길 따라 걷는 트래킹에 재미를 붙여 가고 있다.

처음엔

저 길 너머엔 뭐가 있을까?

저 모퉁이를 돌아가면 뭐가 나올까?

내 앞에 펼쳐진 길에 대한 호기심이 전부였다.

그렇게 오로지 앞만 보고 갔다면,

이젠 제법 눈을 길가로 돌릴만한 여유가 생겼다.

 

길 옆으로는 꽃, 나무, 열매 등이 "나좀 봐달라"고 가장 화려한 모습으로 아우성을 치는데

그 유혹을 이겨낼 재간이 없다.

 

 

 

 

 

 

 

 

 

 

그 중 가장 신기했던 나무...

위로 잘 자라다가 옆으로 방향을 틀어버린 곡절은?

그러다 다시 위로 자라겠다고 마음 먹은 이유는 뭘까...?

그래도 싱싱하게 잘 자라니, 신통하다.

 

 

 

 

이제는 꽤 익숙해진 둘레길 표지판!

 

 

그런데 바닥에 그려진 화살표는 처음 본다.

지리산 둘레길도 제주 올레길처럼 진화하고 있는걸까?

내가 가야할 길을 명쾌하게 알려주는 이정표와 화살표는 둘레길 위의 가이드라,

하나하나 만날때마다 참 든든하고 고맙다.

 

 

고갯마루에 오르자 비로소 나타나는 구간 안내도!

안내도를 보니, 길이 여러갈래라 혼란스러운데,

정리해보면, 7코스는 차를 타고 어천마을 주차장까지 와서 거기서부터 걸어오는 코스가 있고,

6코스와 이어지는 산길을 통해 오는 코스가 있는데,

그 두 길은 결국 "아침재"에서 만난다.

결국 아침재가 7코스의 본격적인 시작점인데,

이곳에서 운리마을까지 11.3km!

그런데, 앞으로 가야할 길을 보니,

6코스가 다소 평면지향이었다면, 7코스는 높이지향이 될 것 같은 불안감!

 

 

그래도 당장은 쭉 뻗어 있는 길이 좋다.

 

 

상큼한 흙길도 이어지고...

 

 

가다보니 <웅석사>라는 절도 나온다.

절이라고 하기엔 그저 평범한 가정집 같은데...

그래도 경건한 마음으로 잠시 들어가 본다.

 

 

산에서 내려오는 물인듯한 약수로 목을 축이고,

 

 

주렁주렁 매달린 앵두도 살짝 하나 맛보고

 

 

탐스럽게 봉오리 맺은 나리꽃 구경도 하고...

 

 

그렇게 휴식의 달콤함을 맛보고 다시 걷기 시작하는데...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자, 시원한 계곡이 반긴다.

손도 씻고, 땀에 젖은 손수건도 적시고,

그 시원함에 매혹돼 이대로 눌러앉고 싶지만,

가야할길이 구만리라 애써 걸음을 재촉해본다.

 

 

에고...

저 좋은 선녀탕도 그냥 지나쳐야 하다니...

아쉬움이 넘친다.

 

 

그러고보니, 산을 꽤 많이 올라온 듯 하다.

순간, 혼란스러움이 밀려온다.

'내가 등산 온 것인가? 둘레길 걸으러 온 것 같은데...'

 

 

그 때부터 가파른 오르막이 꽤 오래 이어지는데,

이마가 땅에 닿을 것 같은 가파름에

몇발자국 가서 쉬고, 몇발자국 가서 쉬고를 한참 반복했다.

 

이건 트래킹이 아니라 등산이야!!!

 

그동안 산도 부지런히 다녀 등산과도 친하지만,

'둘레길을 걷겠다' 고 마음 먹고 왔는데,

가파른 산길이 나오니, 심리적으로 더 힘든 것 같았다.

'산을 오르겠다' 마음 먹고 가면 웬만큼 완만한 경사는 가뿐히 오르는 것처럼...

 

올라가다보니, 길 옆으로 잘 포장된 오이 4개가 얌전히 놓여 있다.

마트에서 산듯 가격표까지 붙어 있는데,

전혀 뜯지도 않은 새상품이 왜 여기 있지?

보아하니, 오래된 것 같지도 않고 싱싱해보이는데...

 

그 때 머리를 스치는 생각!!

아~ 앞에 간 누군가가, 이 산길이 너무 힘들어

무거운 오이를 내려놓고 갔구나...

저 오이를 넣어가고 싶은데,

이 힘든 산길에서 짐을 늘이는 것 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으니,

그냥 통과~!!

오이를 넣어가기는 커녕, 내 배낭 속에 있는 짐도 내려놓고 싶은 심정이다.

 

이마가 땅에 닿을 것 같은 급경사에,

여름이라 무더위까지...

과연 이 오르막은 끝나기는 하는 것일까...

한숨이 나온다.

 

한참을 가다가 지쳐 쉬고 있는데,

어느덧 부자(父子)인 듯한 두 사람이 뒤따라 오고 있다.

아들은 오이를 안고 있는데, 저 오이는 아까 그....???

 

내 시선이 오이를 향해 있는 걸 보고 아버지인듯 한 사람이 먼저 인사한다.

"저 아래에 오이가 있던데, 두고 가신 건가봐요. 덕분에 잘 먹었습니다. (꾸벅~)"

"아아니...저 그게...제가..."

내 것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는데, 어느덧 부자는 저 앞에 가 있다.

힘들어서 오이까지 내려놓고 간 나약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진 않은데,

하긴...지쳐 쓰러질 것 같은 표정으로 앉아 있으니,

그렇게 볼만도 하다.

 

 

앗! 저 빛은 오르막이 끝났다는 신호탄??

저곳이 웅석봉 헬기장이겠구나!!

마지막 혼신의 힘을 다해본다.

민박집 아저씨는 1시간 30분이면 오른다고 했는데,

난 3시간째 오르고 있으니...에휴~

 

 

그...런...데...!!

저건 무슨 광경?

이곳까지 차가 올라온다고??

 

알고보니 공사인부들의 차량이었고,

어천마을에서 이곳까지 이어진 차도가 있었다.

미리 알았다고 해서 차를 타고 올리는 만무하지만,

나는 힘겹게 올라온 길을 누군가는 쉽게 오르내린다고 생각하니

살짝 억울한 마음이 드는 게 사실이었다.

 

 

어천에서 올라온게 고작 2.7km??

전체 11.3km 중에 1/4도 못 온 셈이다.

그런데 이미 체력은 고갈상태고...

여기서부터는 임도로 되어 있어 편한길이라고는 하지만,

초반에 힘을 다 써버려 남은 길을 갈 여력이 없다.

둘레길 안내서에 7코스의 난이도가 상중하 가운데 <상> 으로 되어 있을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는데...

 

 

그 때 눈을 번쩍 뜨게 하는 것이 있었으니,

내가 묵고 있는 민박집 현수막???

그 속에 큼지막하게 적혀 있는 "추천코스!" 라는 네글자!!

아~ 민박집 아저씨가 말했던 길이 이 길이구나!!

화살표는 임도가 아닌 숲길을 가리키고 있었다.

 

임도로 가면 4시간을 더 가야 하지만,

숲길로는 2시간이면 내려온다고 했던 아저씨의 말이 생각났다.

 

나의 선택은??

당연히 추천코스로~~~!!

 

 

임도는 그늘이 없는 시멘트 길이었는데,

숲길은 나무가 그늘을 만들어 주어 시원하다.

 

 

바닥도 시멘트 길이 아니라 흙길에,

나뭇잎까지 양탄자처럼 깔려 있어, 훨씬 운치 있고 좋다.

 

 

조금 더 내려가니 시원한 계곡이 펼쳐져 있는데,

가파른 산길을 오르느라 놓친 식사를 하기엔 안성맞춤이다.

 

 

가방에 들어있던 간식들을 꺼내 시원한 계곡물에 담그고,

(참고로 저 하얀 액체는 어딜가도 빠지지 않는 막걸리!! *^^*)

이미 불이 나 있는 '발'도 함께 식히고...

 

 

맛있는 라면도 끓이고...

 

 

시장이 반찬인건지,

라면이 원래 '맛있는 라면' 인건지,

아니면 끓이는 이가 엄청 잘 끓인 건지,

아니면, 시원한 계곡에서 먹는 것이라 한 맛 더하는 것인지,

지금껏 먹어본 라면 중 단연 최고라 할만했다.

 

 

계곡물엔 고춧가루 하나 튀지 않도록 조심조심~

먹은 그릇은 휴지로만 닦아 챙겨 넣었다.

물이 있는건지, 없는 건지 착각이 들 정도로 너무나 맑고 깨끗해

티끌하나도 묻히고 싶지 않다.

 

 

라면 한 그릇의 행복 + 시원해진 막걸리 한잔의 여유

그리고 디저트는 커피와 참외!!

완벽하다!

무엇보다 내려가는 길, 배낭이 가벼워질 것이기에,

마음까지 홀가분하다.

 

 

밥을 먹고 이어지는 하산길!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이곳엔 이정표가 따로 없기 때문에 자칫 길을 잘못 들면 산속에서 길을 잃을 위험이...

 

 

일단 계곡을 따라 이어지는 좁은 길을 따라가보는데...

 

 

어느 순간 길은 끊어지고...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는 난감한 상황에 부딪히기도 했다.

간간히 등산객들이 걸어놓고 간 리본이 있어 큰 도움이 되기도 했는데,

넓게 펼쳐져 있는 계곡은 한나절 편안히 머물고 싶을 정도로 근사했다.

 

 

거의 다 왔을까?

차들도 다닐만한 너른 길을 만나자 불안했던 마음이 싹~ 녹는다.

 

 

산을 온전히 내려오니 청계호수가 있는 청계마을이 나타났는데,

작년 가을에 묵었던 사나래 펜션 근처라 이곳의 풍경은 눈에 익었다.

 

 

여기서 민박집까지는 평지길로 30분이니,

그 정도는 가뿐히 걸을 수 있을 듯 하다.

그런데 그때 울리는 전화벨소리!

민박집 아저씨였다.

내려오면 태워가려고 계속 대기하고 있었는데,

내려올 시간이 훨씬 지났는데 안 와서 걱정하고 계셨단다.

 

이렇게 고마울수가...

 

그렇게 편안히 차를 타고 민박집으로 귀가!

 

 

민박집 입구에서부터 닭백숙 냄새가 코를 자극한다.

오늘 고생했으니 몸보신 좀 해야 하지 않겠냐며 차려놓은신 저녁식사에

감사해서 눈물이 핑 돈다.

 

분명 집을 떠나 왔는데, 집에 온 것 같은 편안함과 따스함...

둘레길 7코스가 주었던 고통이 한순간 씻겨내려가는 듯 했다.

 

이분들의 인정을 더욱 깊이 느끼라고,

7코스는 그렇게도 힘들었나보다.

 

 

 

글 & 사진

7성급 호텔보다도 민박집이 더 좋은

김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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