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타고 떠난 꽃한송이

[지리산둘레길-8코스] 더이상의 둘레길은 없다!

작성일 작성자 김작가

 

 

「가자, 밤 열차라도 타고.

올 때가 지났는데도 오지 않으면

내가 먼저 찾아 나서자.

더 이상 기다리고만 있지 말고

두 팔 걷어부치고 대문을 나서자.」<이정하>

 

님을 맞이하는 그런 마음으로 훌쩍 달려온 지리산이다.

역시 산은 내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고

기대 이상의 풍요로움으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치 이 시간에 내가 가쁜 숨을 고르며 당연히 달려올 것을 알고 있기나 한 것처럼...

 

어머니의 품 같은 곳, 지리산 자락!

그 곳에서 만난 또다른 품,

내가 묵은 민박집은 그저 잠자리 하나, 식사 한끼로 매듭지을 수 있는 곳이 아니다.

힘든 산행길을 염려하는,

멀리서 달려온 나그네의 힘든 마음까지 해아린,

 배려와 정(情)이 스며있는 곳이다.

 

소박히 그러나 정성들여 차려진 하루 여정후의 만찬.

 

거기서 묵은 사흘 밤의 거나했던 저녁만찬은

지리산의 여름밤과 함께 영원히 잊지 못할 소중한 추억의 한 편린이 되었다.

민박집 아저씨...

우리랑 같이 하느라 매일 밤 과음으로 다치신 속은 지금쯤 회복되셨는지...

  

 

 

 

밤늦도록 지리산 만큼이나 다양한 얘기꽃을 피우고,

성찬이 무색할 만큼 풍성한 잔치를 펼치고도

매일의 아침은 맑고도 상쾌했다.

 

시끄러운 알람이 아닌,

곱디 고운 새소리와 풀내음 가득 담은 바람이 아침을 깨운다.

 

부엌에선 아침을 준비하는 아주머니의 손길이 분주한 듯 한데,

혹여 손님들 잠을 깨울까봐 도마위에 닿는 칼 소리가 조심스럽다.

 

 

 

 

아침메뉴는 들깨수제비!

들깨가 풍기는 고소한 맛이 일품이다.

 

 

 

 

그리고 맛깔스런 반찬들!

놀라운 건, 어제 상에 놓인 반찬과 같은 게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반찬 하나 만들어서 일주일씩 먹는 나로서는 정말 존경하지 않을 수 없다.

 

 

 

 

자세히 보니, 식탁에 놓인 꽃병의 꽃도 어제와 다르다.

오늘은 보랏빛 엉겅퀴꽃이 식욕을 돋운다.

 

 

 

 

여름 초입에 든 지리산 자락은,

생동이며 생명 그 자체이다.

살아있다는 것을 더 이상 어떻게 가슴저미게 표현한단 말인가.

 

푸름을, 싱그러움을, 향기로움을, 그리고 이 현란함을.

이 땅의 적당히 수려한 어휘로는 더 이상 표현 할 방법이 없어서,

지금부터는 가장 평범한 수식어로 나타낼 수밖에 없슴이 안타까울 뿐이다.

 

지리산 8코스...

지리산이 베풀고 인간이 세월의 힘을 빌어

발자국으로 빚은 길...

그 길을 간다.

 

 

 

 

8코스를 시작하기 전,

전날 7코스를 온전히 걸었으면 당연히 지나왔어야 할

단속사지 3층 석탑에 들렀다.

지금은 터만 남아 있는 "단속사"라는 절 터,

그 법당자리 앞에 동서로 나란히 세워져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쌍탑이다.

'단속사' 라는 이름을 처음 듣고는

'단속? 뭘 단속하겠다는 걸까? 절 이름으로서는 별론데~' 라고 생각했는데,

한자로 쓰여진 걸 보니,

끊을 단 (斷)! 세속 속 (俗)!

즉 속세와 끊는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뜻을 알고 보니, 이보다 좋은 절명이 없을 듯 하다.

 

 

 

 

이곳엔 유명한 매화나무가 있다.

이름하여 정당매!!

산청의 명물, 삼매(三梅) 중 하나라고 한다.

 

 

 

 

 

 

그 옆으론 "다물평생교육원" 이 있는데,

다물은 '되돌린다' '되찾는다' 는 의미의 순수한 우리말이다.

기업체 교육이나 공직자 교육, 여성리더쉽, 청소년 교육 등을 하는 곳이라고...

들어가서 잠시 둘러보려 했더니, 수업중이라 외부인은 출입할 수 없다고 해서

아쉽게도 발걸음을 돌렸다. 

 

 

 

 

이곳 다물평생교육원이 8코스의 시작 지점이다.

 

 

 

 

산청에는 지리산 둘레길 5개 구간이 통과한다.

 

 

 

 

5코스부터 9코스까지!

오늘 걸을 8코스는 13.1km로 다른 구간에 비해 좀 긴 편이다.

하지만 참나무숲길과 백운계곡, 마근담 계곡이 좋아,

산청에 있는 5개 구간 중에는 최고라고 정평이 나 있어, 내심 기대가 크다.

 

 

 

 

운리 마을로 들어가면 전형적인 농촌풍경이 펼쳐진다.

모내기가 한창이다.

농촌의 평화로운 풍경에 내 발걸음도 함께 느려진다.

 

 

 

 

건장한 네명의 청년이 힘찬 인사를 건네며 옆을 지나간다.

이름도 사는 곳도 모르는 사람들이지만,

산을 좋아한다는 한가지 공통점으로 통했기에,

나또한 웃으며 인사를 건넨다.

 

 

 

 

어디선가 알싸한 냄새가 풍겨온다 했더니,

길가 바위틈으로 더덕줄기가 길게 뻗어 있다.

아무도 못 캐가게, 더덕뿌리는 바위 깊숙히 숨긴채...

 

 

 

 

마을이 끝날무렵, 길은 산으로 이어지는데...

 

 

 

 

이 길은 운리에서 백운까지 이어지는 임도다.

임도(林道)란 임업경영과 산림을 보호관리하기 위한 목적으로

산림내에 시설한 차도다.

 

 

 

 

한여름에는 그늘 하나 없는 이런 넓직한 도로보다는

나무가 그늘을 만들어주는 시원한 오솔길을 더 좋은데...

한동안은 햇빛 내리쬐는 임도 위를 걸어야 할 듯 하다.

 

 

 

 

아침 식탁 위에서 만났던 엉겅퀴를 길 위에서 다시 만났다.

꽃병에 꽂혀 있는 시한부의 꽃보다는 강한 생명력이 느껴져 더좋다.

 

 

 

 

하늘마저도 더 할 수 없이 맑은 날...

건강한 두 다리로, 푸르름 가득한 지리산 둘레를 걷고 있다.

한마디로 축복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하지만 꽤 길게 이어져 있는 오르막 '임도'에 조금 지치기도 한다.

 

 

 

 

이쯤에선 좀 쉬었으면 좋겠다 싶은 여행객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듯,

자그마한 휴식 공간이 나타난다.

 

 

 

 

다른 지역에선 찾아볼 수 없는 "지리산표" 벤치와 함께...

 

 

 

 

백운 계곡까지 갔다가 내려오는 길이라는 일가족!

조금만 더 가면 임도에서 오솔길로 들어가는 입구가 나온다고 일러준다.

그들의 뒷모습엔 "우리 가족은 몸도 마음도 건강해요~" 라는 메시지가 있다.

참 보기 좋은 광경이다.

 

 

 

 

정말 조금 더 올라가니,

그동안 임도를 걷느라 고생했다며,

이제 임도로는 그만 가고, 오솔길로 걸어보라고,

안내판은 왼편을 가리키고 있다.

 

 

 

 

아~ 얼마나 기다렸던 나무 그늘인가!

 

 

 

 

이제 온전한 산길이 시작된다.

이 산길에 낼 수 있는 가장 최적의 길...

참나무 길이다.

 

 

 

 

갈참나무, 굴참나무, 떡갈나무, 상수리나무등으로 조림된 전형적인 활엽수 그늘 길,

 

 

 

 

뜻 맞는 두사람이 손을 잡고 걸어도 충분할 정도의 여유로운 길,

 

 

 

 

 

 

 참으로 편안한 길이다.

 

 

 

 

이 안에선 산해진미가 아닌,

갈증을 달랠 수 있는 오이 한조각 만으로도 너무나 충분한 것을...

 

 

 

 

 

 

 

 

바닷길에는 파도가 있어서 좋다면,

산길에는 향기가 있어서 좋다.

때죽나무꽃, 싸릿꽃, 야생 밤나무꽃, 산딸나무꽃, 갈퀴꽃,...

그야말로 기화요초가 섞여서 만들어 낸 이른바 6월표 향기...

 

 

 

 

산길은 오감을 자극한다.

눈에는 푸르름의 장관을,

귀에는 나뭇닢들의 사랑 소리와 새들의 웃음소리, 그리고 계곡물들의 발자국 소리.

등줄기에는 계곡을 건너온 청량한 바람,

걷는 이들의 휘파람도 맛을 더하고,

급기야 산속에 내가 있는지 내 속에 산을 담았는지 알 수 없다.

가슴만으로 , 느낌만으로 다 담아내기에는 무리다.

 

 

 

 

어제 걸었던 아니,올랐던 7코스는 차분한 수평지향의 길은 결코 아니었다.

둘레길은 수평길이며, 유유자적, 음풍농월을 예상하고 간다면,

7코스에서는 뒤통수를 강하게 맞을 수도 있다.

성질급한 사람같으면 동전 섞인 소리가 나올 수도 있다.

다채로움과 여유로움을 추구한다면,

그리고 다양한 숲길의 멋을 찾는다면,

오히려 8코스를 권하고 싶은 마음,

여기에는 적당한 높이와 수평이 있어서 좋다.

 

 

 

 

 

 

 

 

]

 

 

민박집 아저씨가 말했었다.

배 고프고, 다리 아플 무렵이면, 아주 근사한 계곡이 나타날거라고...

그 예언은 그대로 적중했다.

정확히 허기지고 발바닥이 몸살을 느낄 무렵,

홀연히 나타난 계곡!

바로 백운 계곡이었다.

 

 

 

 

신발을 신고 있는 이는 아무도 없다.

모두가 한여름에 느낄 수 있는 최고의 시원함에 매료되어 있는 듯 하다.

 

 

 

 

차가운 바위 위에 누워,

시원한 계곡물 소리 들으며,

서늘한 바람 맞으며,

낮잠을 즐기고 있는 사람들...

꿈속에서라도 "행복"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고 있을 것이다.

 

 

 

 

일찌기 날개를 잃어버린 탓에 선녀와는 거리가 멀지만

목욕이라도 한 번 낭자하게 하고싶은 계곡물...

하지만, 손을 씻는 것도 미안할 만큼 너무 깨끗해

잃어버린 날개를 준다해도,

차마 목욕은 할 수 없을 듯 하다.

 

백운계곡!

기대이상으로,

너무 좋다.

 

 

 

 

선계라 할만한 이 곳에서 난 또다지 산중만찬을 준비한다.

 

 

 

 

어느덧 주식이 되어버린 막걸리와 신선채.

 

 

 

 

 

 

육포를 넣어 만든 소고기 라면은 이곳에서 먹을 수 있는 최고의 오찬임을 알기에,

더 이상의 호사를 바라지 않는다.

 

 

 

 

여기서는 누가 뭐래도 내가 신선이고 내가 선녀다.

 

 

 

 

식사 후 부른 배를 두드리며 잠시 누워 바라본 하늘!

이 세상, 부러울 게 하나도 없는 순간이다.

 

 

 

 

운리마을에서 시작해 13.1km의 코스니,

6.2km 왔으면 아직 반도 못 온 셈.

부리런히 가야 할 듯 하다.

 

 

 

 

다시 이어지는 오르막길,

평지길의 여유로움과 내리막길의 편안함을 느끼는 것은

이처럼 오르막길이  있기에 가능한 것.

그래도

막걸리 두어잔과 긴 휴식시간 뒤의 오르막길은

 

에고~! 힘들어라~!!

마실 때는 좋았는데~~

 

 

 

 

본격적인 오솔길에 접어든 길은 좁아지는데...

둘레길은 원래 이래야 하지 않을까?

넓고 잘 포장된 도로는 도시에도 많다.

자연 속에서 길을 걷고자 할 때는

불편할지언정, 최대한 자연 친화적인 길...

그런 길을 걷고 싶은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곳 8코스엔

'진짜 둘레길' 이라 이름 붙이고 싶은 길들이 많았다.

 

 

 

 

 

 

이러한 길이라면 가을에 낙엽이 쌓여 이 길이 보다 부드러워졌을 때,

다시 한번 걸어도 좋을 듯 하다.

 

 

 

 

백운 계곡을 빠져나오자, 길은 다시 임도로 이어진다.

 

 

 

 

 

 

마근담길.

계곡이 "ㄷ"자형으로 막다른 길처럼 생겼다고해서 붙여진 이름,

"막은담'에서 "마근담"으로 진화했다나~.

 

 

 

 

 

 

 

 

산허리를 따라 하산하는 길,

우측으로 펼쳐진 그림같은 계곡의 청정 풍경,

북유럽의 어느 산골을 보는 것같은...

단순히 이국적이라는 말보다는 참으로 몽환적인 분위기의 계곡이다.

너무 좋다!!!

 

저 언덕너머에서 호른을 멘 잘생긴 양치기라도 홀연히 나타날 것같다.

이럴 줄 알았으면 플래드무늬 에이프런에 레이스가 예쁜 원피스랑 갖춰입고

요들송이라도 몇곡 배워서 올걸,

 

 

 

 

산청은...

나물과 약초, 그리고 감의 고을이다.

곶감또한 산청의 대표적인 산물이다.

땅의 물빠짐이 좋고 기온차가 뚜렷하며 공기가 맑아야 가능한 것,

당도가 높고 과육의 식감이 좋기로 유명한 호랑이의 천적 산청곶감!

그래서 가는 곳마다,

비슷한 크기로 줄 서있는 대부분의 나무는..

감나무다!

지구상의 밀감나무는 제주에 다 있고

세상 대부분의 감나무는 여기 산청에 다 있나보다.

 

 

 

 

마근담 계곡을 내려오는 길에도, 시원한 계곡이 잠시 쉬었다 가라고 유혹하는데,

 노루꼬리보다도 더 짧다는 지리산의 낮길이,

벌써 낙조가 내려 앉고 있어 걸음을 재촉한다.

 

 

 

 

 

마침내 도착한 8코스의 종착점, 사리마을!

땀을 잔뜩 흘려 옷은 다 젖고,

발에서는 불이 나지만,

지리산 둘레길 8코스 13.1km를 무사히 걸어냈다는 뿌듯함은

그 모든 것을 치유하고도 남는다.

 

지리산 둘레길의 주인공은 둘레꾼이 아니다.

어느 길, 어느 코스도 그렇지만 둘레길의 대표단수는 나무다.

특히 여기 8코스는 나무의 다양함이 그 극치를 이루고 있다.

나무와 호흡하고

나무와 같이 걸으며,

나무를 진정으로 느낄 수 있는 곳.

8코스는 그런 곳이다.

 

말없이 나의 모습을 지켜주며,

또한 내가 하는 어떤 말도 묵묵히 들어주며,

설령 내가 하는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넋두리조차도

고개를 끄덕여 수긍해주는 나무들과의 동행,

물 맑은 계곡과 바람, 그리고 싱그런 하늘이 뒤따라왔던 곳.

적당한 높이와 잘 짜여진 수평이 조화를 이루는 곳,

초하(初夏)에 마련된 절묘한 연출,

8코스는 그런 곳이었다.

 

8코스!, 참 좋다!!

 

「나무는

서로의 앞에서 흔들리지 않기 위해

얼마나 애를 쓰는 걸까

그러나 굳이 누가 와서 흔들지 않아도

그 그리움은 저의 잎을 흔들고

몸이 아프지 않아도

그 생각은 서로에게 향해 있다. 」<류시화>

 

 

 

 글 & 사진

아직도 지리산에서 나무꾼을 찾고있는

김작가

 

 

 

 

 

 

 



맨위로
통합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