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이들은 내게 묻는다.
왜 여행을 다니느냐고...
그렇게 떠남과 돌아옴을 반복하면서 얻는 것은 무엇이냐고...
사실 나도 궁금하다.
내 스스로에게 다시 묻는다.
나는 왜 다시 돌아올 여행을 지치지도 않고 계속할까...
인간살이도 부인할 수 없는 하나의 여행이다.
이 삶의 여행에는 답이 있을까...
훗날 삶의 종착역에 이르러 내 삶의 여행을 정의할 수 있을까.
그럴 수 있다면,
그때 지금 하고 있는 내 끊임없는 여행의 이유도 분명히 밝힐 수 있을까...
이유 없는 실행은 아무것도 없고
결과 없는 실행또한 아무것도 없다지만,
내 여행의 이유는 지금 없다.
있다면...
그곳에 있는 또다른 나를 만나기 위함이다.
지리산 둘레길 제 9코스...
산청군 시천면 사리에서 시작하여 하동군 옥종면 위태리(상촌마을)을 연결하는
10.3km의 길.
경상남도 산청군(山淸郡),
국립공원 지리산과 황매산등의 산악으로 이루어진 중산간지방으로,
1914년, 산음군(山陰郡)과 단성군(丹城郡)이 통합되어 만들어진 지명.
36,000여명의 이웃들이 살을 붙이고 살아가는
그야말로 산자수명의 그림같은 고을이다.
다섯개의 지리산 둘레길(5~9코스)중에서
둘레길 본연의 역할을 다채롭게 마무리하고 그 길의 대미를
다음주자인 하동군에 넘겨주는 산청군의 마지막 둘레길, 9코스...
그 시작은 여기,
시천면 사리마을이다.
생물학사에 숨겨진 엄청난 비밀하나를 공개합니다~!
이 땅에 호랑이가 멸종한 까닭이,
여기 산청곶감 때문이라는 사실!!
고종황제에게 진상까지 했다는 그 전설의 곶감이 이 동네에서 공급된답니다.
호랑이도 줄행랑을 치도록 만든
무서운 동네랍니다~ 천평마을!
일설에는, 그 많은 호랑이가 산청 곶감앞에서
손발톱 다 깎고 고양이로 진화했다는
"카더라"학술지의 믿거나 말거나...
왼편에 덕천강을 두고 걷는 송하마을과 천평마을의 전경은
시골의 여느 마을의 풍경과는 사뭇 색다르다.
곶감을 채색한 벽화와
정원에 모형비행기를 여러대 장식한 전원주택이 있는가 하면
뜬금없이 풍향계와 온도계로 웃음을 짓게하는 재치가 엿보인다.
둘레길은 느릿느릿 걸어야 하는 길이다.
길의 끝지점에다 기다리는 이를 세워두지도 않았고
또한 길이 끝나는 곳에서 정해진 시간에 무엇을 해야할 일도 없기 때문이다.
최소한 둘레길에 오는 사람은
그런 끝점의 다음 일들을 만들어 두는 어리석은 행동을 하지 않기 대문이다.
덕천강은 풀들의 흔들림 만큼이나 느린속도로 남강으로, 낙동강으로 간다.
중평마을 가는 길,
계곡 양안으로 온통 감나무다. 그리고 감꽃이 탐스러운 가을 감을 만들고 있다.
내밀한 저 꽃받침속에는 아마 달디 단 곶감이 들어 있을 것같다.
감자는 더운김을 올리며 속살을 드러낸 접시위의 모습만 아름다운 줄 알았는데.
감자꽃이 이렇게 아름다운줄은 ...처음 알았다.
식용도 좋지만 앞으로 감자를 화분에 화초용으로도 길러볼 일이다.
감자꽃, 오이꽃, 참외꽃, 고추꽃, 호박꽃,가지꽃...
식탁에 오르는 온갖야채들도
저나름의 꽃을 갖고 있으며, 그 아름다움도 결코 화초못지않다는 것.
남새밭에서 한 철뿐인 저들의 꽃들이 나의 발길을 오랫동안 잡는다.
여름장미도 화사하고,
베고니아도, 돌나물꽃도, 개망초꽃도, 민들레도, 엉겅퀴도
하나 빠짐없이 나를 붙잡는다.
죄다 자기들의 이름한번 불러주고 가라고...
9코스...
4시간이면 충분하다는데,
까짓거 다섯시간이면 어떻고 열 시간이면 어떠냐,
오늘 못가면 내일 다시가면 되고 그도 안되면 올 가을에 다시오지...
이 소중한 꽃들은 오늘 못보면 내일 못볼지도 모르는데...
도착지 지명이 위태마을...근데 여기는 중태마을...
뭔가 편안하지 못한 이 느낌은...
어디가 위태롭고 마을의 어느분이 중태이신지...
차마 물어 볼 수는 없고
그냥 지나갔다...ㅠㅠ
중태마을에있는 둘레길 안내소.
근데 문은 잠겨있고 사람도 안보인다.
안내지도라도 하나 얻으려고 30분을 기다리다 역시 그냥 갔다...ㅠㅠ
그래, 둘레길은 그냥가는 길, 맞다!
월요일 낮 11시경....
둘레길 안내소 옆에 있는 둘레길 상황판.
지금까지 걸은 거리가 약 5km, 절반 정도 왔다는 말이다.
여기까지는 휘파람불면서도 갈 수있는 평지길.
물한모금 마시고 신발끈도 조이고...
새로운 마음으로 다시 출발~!
초록길...
그 길이 돌아갈 무렵에 동화속의 그림처럼 앉은 숲속의 집.
일곱 난장이라도 사는지 찾아볼까..?
저런데 사는 사람들도 시름이 있을까...
적당한 바람과 절묘한 그늘, 더불어 낭자한 푸르름,
그리고 이마에 땀방울 몇개 드리울 정도의 지혜로운 오르막,
적어도 지리산의 둘레길이라면 이정도의 오르막은 유쾌하게 가납해야할 터.
그래도 힘들다.
배도 고프고...
막걸리도 그립고...
뜬금없는 소파와 의자.
위치한 높이와 구조로보아 나그네가 앉아 쉬라고 갖다둔건 확실히 아니고
어느 분의 용이주도한 용도폐기의 현장인듯,
단언컨대 공해에 다름아니다.
배고플 때, 다리아플 때.
나를 위해 마련해둔 듯한 인공구조물...
여기서 민생고도 해결하고
주인 잘못만난 내 발에게도 감질나는 휴식을 줄만한 곳이다.
갈수록 나그네의 레시피가 진화를 한다.
사흘밤을 자고 헤어진 민박집 아주머니가 챙겨준 라면의 친구들.
애호박에, 양파에, 그리고 나의 변함없는 단백질 공급원인 육포...
게다가 오늘은 둘레길 돌담에서 채취한 방아 이파리까지...
라면에 첨가된 방아내음이 예술이다.
호남, 충청, 서울 사람들은 이 방아잎을 안먹는다던데...
허브의 일종인 방아잎, 먹다보면 은근한 중독성이 있다.
오르막길이 있는 곳엔...막걸리가 있다!
내 몸이 흘린 땀에대한 보상, 막걸리만한게 없다.
오늘따라 막걸리에 꿀이 들어갔나?
산자락을 훑어내리는 바람결, 몸에 쌓인 피로물질을 쓸어내리는 한잔의 막걸리.
이래서 산은 내게 중독이다.
선녀도 만나고, 이따끔씩 나뭇꾼도 만나고.
산새들, 산꽃들, 나무들, 풀들,...
길에서 만나는 모든이들이 반갑고 고맙다.
그리고 이렇듯
온전한 건강으로 이 길을 걷게해준 내자신에게도 고맙다.
9코스의 길에는 고마움이 가득하다.
활엽수길도 지나고.
소나무 길도 지나고.
조릿대가 무성한 길도 지나고.....
모든 길들이 지루하지 않아서 좋다.
다양한 수종과 다채로운 높낮이,
그늘도 다르고 향기도 다르고, 다리품에 전해오는 오르막의 강도도 다르다.
단지 "좋다"라는 느낌만은 한결같다.
저기가 거기인가보다.
저기가 오르막의 끝인가 보다.
저기 까지만 가면 시원한 바람과 고생의 끝이 같이 나를 마중하려나보다.
길은 좋은데 사흘 연속 여름 산길트레킹은
역시 힘드는 일이다.
에고 내 불쌍한 팔, 다리, 허리야~!
오르막의 막바지에 왔다는 것을 과시라도 하듯,
제법 가쁜 호흡을 쏟아낼 무렵,도착한 곳은
갈티(치)재...!
산청군과 하동군의 경계선이다.
그리고 9코스의 웬만한 오르막은 여기까지이다.
옛날, 산청 사람들과 하동 사람들은 이 길을 통해 소통하고
그리고 사랑도 했을 것이다.
작대기로 경계선도 만들어보고,
화살표 저쪽은 하동군...
험난한 국경이라도 두어개 넘은 기분이다.
힘들게 여기 하동까지 왔으니,
여름낮의 대나무 숲에서 나는 은근한 향기와 그늘내를 맡아보라는 듯.
환상적인 분위기의 죽림이 품을 벌리고있다.
군데 군데서 고개를 내미는 죽순들,
이런 길을 흔쾌히 내어주셔서 둘레길의 품위를 더해주신 대나무숲의 주인은
반드시 오랫동안 건강하고 행복해야한다
한때 밭이었던 곳을 대나무 숲으로 조성한듯,
밭을 조성했던 축대와 다랭이 계단흔적이 곳곳에 있다.
그 가운데로 둘레꾼들이 편안하게 지나갈 수 있도록
나름대로 길맛과 눈맛을 버무려놓았다.
이런 여름날의 길로서는
과히 최고의 길이다.
불과 고개하나 넘고 재하나 넘어 왔는데,
하동의 느낌은 산청과는 또 다른 느낌이 있다.
한적한 산길, 그 길섶에 차려진 벤치...
이 길을 거슬러 산청으로 오르는 둘레꾼을 위한 배려일 터...
하산하는 사람이 앉아도 되나...?
어디선가 때죽나무꽃의 향이 가득하다.
마무리로 가는 길,
흙길에 잔디가 깔리고 그 느낌은 양탄자에 비길게 못된다.
편안하고 상큼한 향내로 치장을 다한 길.
하산길의 쾌적함이 더 없이 좋다.
지금쯤 농촌의 시간은 온통 분주함이고 조급함이다.
이앙을 시간맞춰 해야하는 논일과 수확을 결정짓는 밭일의 극한상황...
이럴때 배낭을 메고 농로를 배회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
농촌의 그 분들이 시야에서 보이면 괜한 미안함과
죄송함이 발길을 잡는다.
그리고 애써 자위하고 변명도 해본다.
산길과 들길을 가는 저희들도
일년 내내 쉬임없이 제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일하고
정말 최선을 다해 눈에 보이는 이시간들을 만들었노라고...
그래서 이 시간, 알뜰히 가슴에 담고 최선을 다해 느끼고 가겠노라고...
지리산 둘레길 제9코스의 종착점이다.
산길, 들길, 강길 10.3km...
그렇게 멀지도 그렇다고 그렇게 가깝지도 않은 길.
또 하나의 길을 가슴속에 담았다는 성취감.
이것이다. 이 성취감이 좋다.
정말 기분좋게 걸었던 길, 9코스였다.
아마도 여기 이 이정표가 다음번 둘레길의 시작점이 될 것이다.
항상 끝나는 곳이 어느 누구의 시작점이 되고
어느 누군가가 마무리할 때 어느 누구는 다시 시작한다.
혹자는 말한다.
"나도 떠나고 싶지만, 내 여건이 허락하지 않는다"고.
또한 말한다.
"이번에 바쁜 일만 끝나고 나면 그 다음에 생각해보겠노라"고.
시간은 그렇게 사정없이 뒤도 돌아 보지않고 지나간다.
지나간 세월은 피도 눈물도 없다.
「다음」은 사이버 공간에서나 존재하는 것이다.
떠나지 못함의 이유는 밤하늘의 별보다도 더 많다.
분명한 것은 「다음」이라는 시간이 와도
그때도 더많은 떠나지 못함의 사유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또 올것이다.
「다음」에.
10코스, 11코스, 12코스....세상의 끝까지.
글 & 사진
아직도 발뒤꿈치 굳은살로 고생하는
김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