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흰 도화지 위에 산을 그리라고 하면,
커다란 산 봉우리를 두개 그리곤
그 아래에 꼭 집 한채를 그렸던 기억이 있다.
창도 있고, 굴뚝도 있는 그 집 앞엔 두 사람이 나란히 밝게 웃으며 서 있고,
그 옆엔 개 한마리가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고 있는 모습.
지극히 평화로웠던 그 모습은 어쩌면 내가 꿈꾸었던 이상향이 아니었을까 싶다.
지리산을 만나러 간 여정.
그곳엔 지리산만큼이나 넉넉한 품을 가진 부부가 있었다.
흙 속에, 그리고 바람 속에...
흙내음이 좋아 들어갔던 그곳에서
난 인심에 취해 바람처럼 쉬이 떠나지 못하고
하루만 더 있을까?
하루만 더 있자!
그렇게 3박 4일을 보냈다.
어릴 적 내 흰도화지 속에 있었던 풍경이
마치 꿈인듯 그곳에 고스란히 재연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마음씨 좋은 주인내외와 개 '토리'!
산청군 단성면 청계리....
푸른 청계호수 옆으로 흙과 나무로 지은 민박집 한채가 눈에 띈다.
이름도 <흙속에 바람속에>
흙이라는 자연 친화적 공간에서
바람처럼 자유롭게 머물다 갈 수 있는 집!
민박집이라고는 하지만, 손님을 받을 수 있는 방은 달랑 하나 밖에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주인 내외는 진주에 살다가 이곳으로 귀농을 했다고 하는데,
자신들이 사는 공간에 방 하나 더 만들어 지나는 나그네가 쉬어갈 수 있도록 했다고...
손님을 맞을 수 있는 방을 <茶美房(다미방)>이라 이름 짓고
예쁘게 현판도 내 걸었다고 하는데,
그 현판은 엉뚱하게도 주인내외가 머무는 방 입구에 붙어 있다.
이유를 물었더니,
예전에 어느 키 큰 외국인 손님이 걸어놓은 현판에 머리를 부딪혀
그 이후 현판을 떼어 주인집 쪽에 걸어두었다고...
그랬더니 이제는 손님들이 이 현판이 걸려 있는 주방쪽으로 종종 들어가
또다시 난감해졌다고 푸념을 털어놓으시는데,
그 순박함에 난 슬며시 웃음이 났다.
여닫이 문이 얌전히 닫혀 있는 저곳이 내가 머물렀던 방!
정갈하게 꾸며진 방은 소품 하나하나에 눈길이 간다.
저 자그마한 창 너머론 아침마다 새들의 합창이 잠을 깨우고
창을 통해 들어온 지리산의 맑은 공기는 심호흡을 하게 만든다.
홀은 전통차를 마시는 공간!
"이곳까지 거실이라 생각하고 맘껏 쓰세요~" 하신다.
청계호수가 내려다보이는 마당에도 테이블이 있어
밤엔 이곳에서,
하루는 삼겹살을, 하루는 오리고기를, 또 하루는 닭백숙을 안주삼아
주인내외와 함께 파티를 벌였다.
그 맛과 멋에 중독되어 하루만 더~ 하루만 더~ 를 외친 것이
결국 3박 4일이 되고...
개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내가,
이곳의 마스코트인 "토리" 군과는 꽤 깊은 정이 들어버렸다.
손님이 아닌 가족처럼 대해주는 그들의 인심은
시골 고향집에 온 것 같은 푸근함마저 들게 했다.
아침 식사하라는 아줌마의 부름이 들린다.
3박 4일을 있으면서 세번 받게 된 아침상.
한끼도 같은 반찬이 없음을 알았을때,
주인아주머니의 마음 씀씀에 작은 감동이 밀려온다.
[첫날 아침식사]
[둘째날 아침식사]
[셋째날 아침식사]
후식으로 마시는 차도 날마다 다른 차를 내어오시니
고향집보다 더 감동적인 대접이다.
찻잔 하나에도 차 위에 떠 있는 꽃잎하나에도
차를 준비한 이의 마음이 진하게 묻어 있다.
지나가는 나그네, 하룻밤 쉬어갈 방이 있을까요? 하고 들어갔던 민박집!
그곳에서 사흘밤이나 머물렀음에도 막상 떠나려는 아쉬움이 밀려온다.
사흘밤, 잘 지내고 간다고 아주머니 손을 꼭 잡는데,
박스하나를 품에 안겨주신다.
감자 캔 것과 나물 좀 넣었다며 갖고 가서 맛있게 먹어달라시며...
고향집 엄마 같아 왈칵 눈물이 날뻔 했다.
앞으로 여행은 시설좋은 펜션이 아닌 민박집을 숙소로 잡으면서 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만들어준 곳!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 그들과 정을 나누는 것 또한 여행의 일부임을 알게 해준 곳!
그렇게 나의 여행길에 또 하나의 터닝 포인트를 만들어준 곳,
그곳이 바로 <흙속에 바람속에> 라는 작은 민박집이었으며,
두분 주인 내외께 이 지면을 빌어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지리산에 다시 가게 되면 꼭 다시 만나고 싶다.
스쳐지나가는 인연이 아닌,
좀 더 끈끈한 인연으로....
바람 타고 떠났다가 바람속에 갇혀버린
김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