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산!
이름난 명산들에 가려 그 순위로 따진다면 10위 밖으로 밀려나 있지만
그 속살을 들여다보면 심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진다.
바로 해인사를 품고 있는 불교의 성지이기 때문이다.
가야산의 가야(gaya)는 '최상의' 라는 뜻으로
석가모니 부처님이 성도하신 붓다가야에서 따왔다고도 하고,
옛날 가야국이 있던 산이라는데서 유래했다고도 한다.
중국 남조시대의 지공스님은
해동의 가야산에 대가람이 세워져 불법이 번창하리라는 예언을 했다고 전하는데...
그로부터 약 300년 후인 서기 802년, 해인사가 창건되었다.
해인사는 특히 고려팔만대장경판을 봉안하고 있어
큰 보물을 간직한 법보종찰로 유명하다.
유네스코에서는 해인사에 보관된 고려팔만대장경의 고유한 역사, 문화적 가치를 인정,
1995년 장경판전을 세계문화유산으로,
2007년 대장경 경판을 비롯한 해인사의 모든 경판을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했다.
그래서일까?
해인사는 여느 사찰과는 달리
내쉬는 숨조차도 참게 만들고,
내딛는 걸음걸이 하나도 조심스럽게 만드는
특유의 포스가 있다.
차를 타고 해인사를 올라가면서 만나는 첫 관문!
멀리서보고는 해인사 일주문인줄 알았다.
알고보니 매표소!
표값도 두 손으로 전하게 만드는 묘한 기운이 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걸어서 1km를 올라가야 하는데,
햇볕은 뜨겁지만, 옆으로 흐르는 계곡물소리와 나무그늘이 시원하다.
올라가는 길,
한 그루 나무 앞에서 모두들 한번쯤 발걸음을 멈춘다.
그리고 이어지는 탄식!
"왜 그렇게 꼬일대로 꼬인거니~"
자그마한 기와집 한채가 눈에 띄는데,
이런 길가에 무슨 집이지? 사람은 사는가?
하고 다가가봤더니,
세상에,
경비실이란다.
매표소도 그렇고, 경비실도 그렇고
사소한 공간일 수 있지만,
이렇게 한국적 미가 물씬하게 지어놓으니,
이 또한 내가 가고자하는 사찰의 피붙이 같아 함부로 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해인사 올라가는 길은 그 자체만으로도 꽤 괜찮은 산책로다.
절 입구까지 차가 닿도록 하기 보다는
조금은 고행의 길을 걷도록 한 것이 "배려"처럼 느껴진다.
해인사 입구에 이르면,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고려대장경판전이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는 자랑을 듣게 된다.
그 앞에서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나...
"그래, 오랜세월 갖은 풍파에도 그 귀한 보물을 잘 지켜내어 대견하구나!"
드디어 나타난 일주문!
그런데 의외의 사실을 알게 됐다.
해인사의 "인" 자가 사람 인(人)자도, 어질 인(仁)자도 아닌
도장 인(印) 자라는 사실!
해인사의 이름은 화엄경의 '해인삼매'에 기초했다고 하는데,
해인삼매는 바다에 풍랑이 그치면 모든 형상이 온전히 비치듯,
법계의 실상을 본래 모습 그대로 자각할 수 있는 상태를 말한다고...
그 유래를 알고나니, 해인이라는 이름의 의미를 조금은 알 것 같다.
해인사 들어가는 길에 "고사목" 한그루가 애처롭게 서 있는데,
이 나무의 나이가 무려 1200년이라고.
신라 제40대 애장왕 3년 (서기 802년).
순응과 이정 두 스님의 기도로 애장왕후의 난치병이 완치되자,
왕이 이 은덕에 감사하여 두 스님이 수행하던 자리에 해인사를 창건할 수 있도록 했는데,
이 때 이를 기념하여 식수한 나무라고 한다.
이 느티나무는 1200 여년의 장구한 세월동안 해인사와 더불어 살아오다가,
1945년, 수령을 다해 고사하고, 지금은 둥치만 남아 해인사의 장구한 역사를 말해주고 있다.
모르고 보면 흉물스러워 시선을 피하게 되지만
알고 보니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역시 해인사의 최고 보물임을 입증이라도 하듯, 경내에 들어서자마자 팔만대장경으로 안내한다.
대적광전 뒤로 있는 가파른 계단 위에 "팔만대장경" 이라는 현판이 보인다.
그 문 뒤로 네개의 건물이 있는데, 마당 앞쪽의 동서로 긴 건물은 수다라장이고, 뒤에 있는 긴 건물은 법보전이다.
이 두 건물에 고려대장경판이 모셔져 있다.
그 양쪽 끝에 있는 작은 건물은 고려각판을 모신 동,서 사간판전이다.
팔만대장경은 부처님께서 진리의 세계에 대해 차별 없이 말씀하신 법과
그에 대한 주석서를 포함한 일체의 총서를 81350판에 달하는 목판에 양각으로 새겨놓은 것이다.
이는 세계에서 가장 포괄적이고,
한역경전 중 가장 오래된 원판본이며,
틀린 곳이 하나도 없다고 한다.
총 1514경전, 6781책, 5238만9400 글자!
정말 대단하다.
장경판전은 대장경을 보관하는 데 필요한 기본 구조만 갖추고 장식이 적어서 겉으로는 평범해보인다.
그러나 건물이 자리 잡은 위치, 건물 배치와 좌향, 건물 구조와 창호 처리, 판가구조, 경판배열 등의 측면에서
통풍이 잘 되고 일조량도 적당하도록 하여
목판을 보존하는데 최적의 조건인 항온 항습의 상태를 유지하게 되어 있다.
판전 외벽의 앞뒷면에는 크기가 다른 살창이 칸마다 아래 위로 나 있어서
건물 뒤쪽에서 내려오는 습기를 억제하고
판전으로 불어온 바람이 건물 안에서 골고루 퍼진 다음 밖으로 나가도록 되어 있다.
대장경판이 지금까지 잘 보존되어 있는 것은 이처럼 기후환경이 자연적으로 조절되도록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해인사에는 조선 후기에 일곱 차례 불이 났으나,
신기하게도 이 장경판전에는 불길이 미치지 않았다고 한다.
천년전에 만들어진 것이 이토록 과학적이라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출처 : [위키피디아] Lauren Heckler (the Flickr ID is malpuella)
출처 : [위키피디아] by Caroline Knox
출처 : [위키피디아] Steve46814
출처 : 문화재청
오랜세월 모진 풍파와 만나면서도 묵묵히 그 자리를 지켜온 장경판전!
작은 품으로나마 꼭 보듬어주고 싶어진다.
팔만대장경에 심취해 뒷전으로 밀렸던 해인사가 이제 눈에 들어온다.
그 규모가 생각했던 것보다 꽤 크다.
넓은 마당엔 연등이 잔뜩 달려있다.
사월초파일도 지났는데, 무슨 행사라도 있나 싶다.
그렇게 무심코 지나치려 하는데,
안내판이 눈에 띈다.
해인도는 의상대사가 당나라 유학 시절
화엄사상을 요약한 210자 7언 30구의 게송(부처의 공덕이나 교리를 담은 노래 글귀)을
만(卍)자를 발전시킨 도안에 써넣은 것이다.
미로와 같이 54번 꺾어 도는 동안 그 내용을 마음에 체득하면서 따라가면 깨달음에 도달한다고...
그러고보니, 등 옆으로 미로 같은 길이 보인다.
그리고 노란 테두리에는 210자의 글귀가 적혀 있고...
미로 한바퀴 돌고 깨달음에 한걸음 다가갈 수 있다면...
그 누가 마다할까?
미로의 입구에 서서 두손 합장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걸어본다.
직접 걸어보니 생각보다 긴 코스인데,
미로로 되어 있어 도중에 나오고 싶어도 못나온다는...
미로의 입구에 놓여있는 소원지에 내 마음을 담아 한바퀴 돌고나니,
마음이 편안해진다.
사후에 공덕이 미친다고 하니...두고 볼일!! ^^
스님들이 수양하는 공간이라 외부인은 출입을 금한다는 팻말이 붙어 있는 곳!
댓돌 위에 놓인 신발의 느낌이 좋아 사진을 찍고 싶어 잠시 들어갔다.
까치발을 하고 살금살금 나오는데,
어느새 마루에 계시던 노스님 한분이 큰 소리로 이리 오라 하신다.
심장이 덜컹~ 내려 앉는데...
다가가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더니, 손을 내밀라 하신다.
규율을 어겼으니, 손바닥이라도 때리려 하시나...??
그렇게 움찔 하며 손을 내밀었더니,
손 위로 체리가 담겨진다.
그제서야 노스님의 얼굴을 쳐다봤는데,
연세가 80~90은 되어보이는 매우 연로하신 분이었다.
그릇에 담긴 체리를 최대한 많이 집으려 애쓰시는 모습에,
한웅큼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사양했는데,
스님은 두손을 최대한 크게 벌리라며 그 위에 체리를 듬뿍 얹어 놓으신다.
체리를 한 웅큼 쥔터라 합장도 못하고,
그저 고개를 숙이며 감사합니다~ 를 연발하며 그 자리를 나왔다.
후유~ 그제서야 마음이 안정돼 체리를 하나 먹었더니,
마침 목도 말랐던 차라 그런지 꿀맛이다.
한가득 체리를 아끼지도 않고 맛있게 먹고 있는데, 그 때 앞에 나타난 나무 한그루!
"이 나무에는 1년동안 거름을 주지 마세요."
생태적인 이유로 그런 것이겠지만,
꼭 말 안 듣는 동자승에게 주지스님이 벌 주는 것 같아 슬며시 웃음이 났다.
노스님께 먹을 것을 한웅큼 받아온 내 모습이 이 나무는 얼마나 얄미울까 싶어
얼른 자리를 떴다.
해인사 안에 있는 전통 찻집!
이름이 재미있다. "쉬어 가야"
"가야산"의 이름을 재밌게 잘 활용한 듯 하다.
이곳의 식당들 이름은 "먹고 가야~"일까?
민박집 이름은 "자고 가야~"로 하면 좋겠다.
언젠가는 꼭 한번 가봐야 한다고 생각했던 가야산 해인사...
분명 발도장을 찍었는데,
조만간 한번 더 가야~ 할 것 같다.
팔만대장경의 안부도 궁금할 것 같고,
해인도도 한번 더 돌면 좋을 것 같고,
무엇보다 체리 한 가득 사들고,
노스님께 빚 갚으러...
글 * 사진
빚 지고는 못 사는
김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