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외동포들을 대상으로 하는 한인네트워크 웹진 8월호에 실린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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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발고도 1천m 라면, 지구과학의 복잡다단하고 두뇌 피곤한 지식을 대입하지 않더라도 최소한 이 땅의 평지보다는 10℃ 정도는 온도가 내려갈 것이다. 한여름 불같은 더위 속에는 대단히 시원하다는 말이다.
그런곳, 우리나라에도 그런 곳이 있다. 그런 도시가 있다. 도시라는 이름을 짊어지고 있는 곳 중 유일한 곳! 딱 한군데, 태백이다.
도시 전체의 평균 고도가 1천m가 넘는 곳, 동으로는 백병산(1,259m), 서쪽으로는 함백산(1,573m), 남쪽으로는 태백산(1,567m)이, 그리고 북쪽으로는 대덕산(1,307m)이 호위하듯 도시를 아우르고 그 심장부에서는 연화산(1,171m)마저 솟대를 이루고 있는, 그야말로 백두대간의 웅장한 높은음자리의 땅이다. 백두산이 용트림을 거듭하다가 그 주체할 수 없는 내공을 쏟아 부어 또 다른 자신의 모습으로 손수 빚어 만든 지세, 태백은 그렇게 백두산의 또 다른 이름이다. 태백은 태백산을 배제하고 이야기할 수 없다. 태백과 태백산은 동전의 앞뒷면이고 거울속의 또 다른 동일체다.
태백의 8월 평균기온은 20℃, 연평균 기온은 9℃, 전형적인 고산 산악기후를 보이고 있다. 무엇보다 여름철 평균기온은 이른바 환상에 가깝다. 에어컨이 필요 없는 유일한 도시라는 말이 허투루 생긴 게 아니다.
아직도 이곳의 땅값이 상대적으로 저렴하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다. 아무래도 이 땅의 땅값은 수요와 공급의 법칙이나 실효적 가치에 의해서 형성된 게 아니라 어떤 보이지 않는 이권에 의해서 만들어지고 가공된 것이라는 평소의 내 가설이 증명되는 곳이다.
태백으로 가는 길은 그렇게 간단치 않다. 하지만 여행은 짐을 꾸리면서부터 길 위의 모든 것을 즐길 줄 알아야 그 참맛을 더하는 것이다.
입속에 넣는 이열치열이 아니라 온몸으로 배출되는 땀의 미학을 터득할 수 있어야 비로소 여름여행은 완성되는 것이다. 아울러 여름날의 산행은 여행초보자에게 태생적 여행기피증을 유발할 수도 있는 막대한 고통이 수반될 수도 있다.
태백은 그 이름이 말하듯 고대국가 시절부터 정신적인 성소였고, 지금도 그 상징성은 변함이 없다. 이 땅에 존재하는 4천 여개의 이른바 산이라는 이름의 존재 중에서도 태백은 우리 민족의 대표단수에 이를 만큼 우리에게는 친숙한 존재이며 그 까닭 또한 분명하다.
태백은 우리나라 3면의 바다를 아우르는 강줄기의 첫 물방울을 만드는 유일한 곳이다. 서쪽으로는, 금대봉에서 발원하여 골지천으로 이어지다 결국은 한강 대동맥을 이루어 서해의 초록물결에 그 역할을 더하고, 매봉산 남쪽에서 잉태한 물줄기는 황지천, 철암천으로 결탁하여 낙동정맥의 이름으로 남해에서 태평양의 푸른 파도를 만든다. 그리고 백병산에서 남상(濫觴)을 마련한 또 한줄기의 물길은 오십천을 타고 동해로 가서 우리 민족의 장구한 역사를 현재진행형으로 만들어 가고 있다.
태백산은 일반적인 산이라고 하기엔 그 이상의 무엇이 있다.
그렇다고 설악산이나 지리산처럼 기암괴석이 장관이라든가, 수려한 계곡을 품고 있는 것도 아니다. 어머니의 젖무덤을 떠올리게 하는 둔중하고도 여린 곡선으로 능선을 만들고, 1천500m가 넘는 봉우리조차도 흡사 고향 동산의 가장 익숙한 자태로 똬리를 틀고 앉은 듯 서 있으며, 그 높이에 마주한 골짜기들도 수줍은 속살로 골을 파고 앉아서 누구에게도 손쉽게 품을 내어주는 그야말로 시골 외할머니 같은 산이다.
편백나무가 길을 만들고 삼나무가 그 길을 열면 어느 적당한 높이에서는 떡갈나무와 갈참나무가 그늘을 내어준다. 어린 아이와 같이 걸어도 좋은 길, 구태여 피톤치드를 들먹이지 않아도 보약 같은 공기가 사방 가득이다.
계절이 만들고 태백이 차려준 숲의 향연에 간단없이 취해들 무렵, 불현듯 주목 군락이 나타난다. 살아서 천년이요, 죽어서 천년을 산다는 주목! 그 삶의 십분의 일도 못 살면서 인간이 그들의 수명을 논한다는 것은 발칙함이요, 방자함일 것이다. 지난겨울, 백여 년만의 추위라는 그 맹동의 상고대 시절까지 이겨내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위엄을 자랑한다. 생전에도, 죽어서도 그 자태를 온전히 지니고 있는 모습은 우리 인간이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위대함이요, 인간이 결국 자연인일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그렇게 산에 들면 살아있는 것, 죽어가는 것, 심지어 화석이 된 모든 것에까지 배움이 있다.
유유자적을 셈하면서 호연지기를 빙자하며 천제단으로 가는 길, 우리나라 최고위도에 존재하는 망경사가 있다. 해마다 천제를 올릴 때 그 날의 성수로 쓰는 물이 이곳 용정의 약수다. 우리나라 자연 용천수 중 가장 맛있는 물에 속하는데, 산객들에겐 생명수요, 감로수다.
하기야 삼복염천을 짊어지고 가는 산행 길에서 이 물맛을 저평가하는 그런 무지몽매한 사람은 없을 터. 그 물이 흘러 넘쳐 만들어진 작은 실개천에다 발도 한번 담가보는데, 단언컨대 이 물에 1분 이상, 아니 30초 이상 발을 넣고 견딜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필자가 거나하게 술 한 잔 대접하겠다.
천제단…….태백산을 가장 태백산답게 만들어주는 이름 그대로 하늘에 제사를 모시는 제단이다. 그리고 여기가 태백의 꼭짓점이다.
(공자처럼) 산 아래 뭇 산들의 작음을 반드시 보려 한다.
<두보의 ‘태산을 바라보며’(望嶽) 중 일부>
다른 산들의 높이를, 남들의 높이를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그보다 더 높은 곳으로 가야 한다. 공자는 뒷동산에 올라서 노나라가 작다고 했고, 태산에 올라서는 천하가 작다고 했다. 그러나 지금 내가 태백산에 올랐다고 이 땅이 작다고 하는 그런 가벼움은 참아야 할 듯. 아직도 이 땅에는 갈 곳도 많고 내가 보지 못한 곳이 훨씬 많은 까닭이다.
정상에서는 멀리 보인다. 정상에서는 누가 뭐래도 내가 최고다. 그러나 정상에 서기 위해서는 적절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나를 온전히 이 산의 정상에 옮겨줄 타인은 없다. 비록 잠시 머물고 그리고 다시 힘들여 내려와야 하지만 정상은 그만한 가치가 있다. 내가 올라온 길을, 그리고 다시 내려가야 할 길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정상만큼의 높이가 필요하다.내가 산을 찾는 까닭은 나를 찾기 위함이다. 땀을 흘리고 없는 힘을 쏟으며 부단히도 나와의 타협점을 찾아가며 오르고 올라 비로소 다가선 산의 정상, 그곳에선 단 한 번의 예외도 없이 조금 더 큰 키로 서 있는 또 다른 나를 볼 수 있다.
내가 이 시간에 왜 산에 왔을까, 그만 여기에서 포기하고 하산할까,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끝없는 대하소설과 참회록을 써가며 올랐던 그 산에는 분명히 내 두 손을 잡아주는 더 큰 내가 있어서 좋다. 조금은 대견하고 조금은 생경한 모습으로 나를 맞이하는 나의 모습이 있어서 나는 여행을 하고 그리고 매양 산으로 간다. 역시 겨울에는 무채색의 겨울 산이 최고이고, 여름에는 푸른 여름 산이 최고다. 그리고 그 여름산 중엔 단연 태백산이 최고다.
“태백은 참 예쁘고 착한 곳이네요.”
등정 길에 만난 한 등산객이 말한다. 태백을 표현하는 말로 ‘예쁘다’는 말과 ‘착하다’는 말은 참 안 어울리는데,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사방으로 높은 산에 둘러싸여있는 고즈넉함이 예쁘고, 에어컨을 켜놓은 듯 기분 좋은 시원함이 있어 착하다고……. 정상에서 땀을 훔쳐내던 또 다른 산객은 만면에 화색을 띄며 말한다.
“이젠 어떤 일을 해도 힘들지 않을 것 같아요, 진작 이 여름 태백산을 뵙고 가야했는데…….”
선현들이 그러했듯, 산에서 힘을 얻고 그 기를 원형질속에 담아서 대물림을 하는 우리에게 산은, 더군다나 태백산은 당연히 활력소일 수밖에 없다. 여름 삼복, 이 염천에 찾은 태백과 태백산, 지치고 방전하기 쉬운 나를 돌아보고, 당연히 그렇게 “그냥”흘려 보내기 쉬운 한 해의 중턱을 돌아보는 의미에서 이번 여정은 나에게 보약에 다름 아니다.
옛 문인은 우우(又雨)라고 썼다. “또 비다!”라는 말일게다. 요즘, 특히 올해는 비가 너무 많다. 온 국토가 그야말로 흥건히 젖었다. 국토의 정세도 바다의 형세도 심지어 국민의 민심까지도 젖어드는 이 계절, 빗줄기 틈틈이 보이는 햇살이라도 알뜰히 아껴서 산행이라도 도모해볼 일이다. 굳이 태백산이 아니더라도 좋은 산은 바로 지척에 있으니 말이다.
이 여름, 나는 태백과 사랑에 빠져서 더 행복하다.
추전역 : 우리나라에서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한 하늘 아래 역. 겨울철 눈꽃열차를 타고 아름다운 설경을 감상할 수 있다.
황지연못 : 남한 최장의 길이를 자랑하는 낙동강 1300리의 발원지로 태백시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다.
태백 석탄박물관 : 한국 석탄산업의 변천사와 석탄 생성과정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동양 최대의 석탄 전문 박물관.
매봉산풍력발전단지 : 40만평 고랭지 채소밭과 정상에 있는 풍력발전기가 장관이다.
태백 해바라기 축제 : 태백시 황연동 구와우마을에서는 8월 한달동안 20만평이 넘는 땅에 해바라기와 300여종의 야생화의 향연이 펼쳐진다.
자동차 : 중앙고속도로 → 서제천 IC → 제천시 → 영월방면 (38번국도) → 영월시 → 태백방면 (31번 국도)
열차 : 청량리역에서 하루 7회 (소요시간 4시간. 첫차 7시, 막차 22:40)
태백시외버스터미널 (033-522-3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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