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가면 꼭 사찰 하나씩을 들러보게된다.
우리나라 방방곡곡 유명 사찰을 하나씩은 품고 있기 때문이다.
한가지 문제점은
사찰을 찾아가려면 꼭 산에 오를 것을 각오해야 한다는 것이다.
차를 타고 가더라도 내려서 어느 정도는 꼭 올라가야 하는 곳,
그곳에 사찰이 있다.
입구까지 차가 닿으면 좋으련만
부처를 만나기 전엔 잠시라도 고행은 필수라는 듯,
꼭 땀을 흘려 올라야 하는 곳에 사찰들은 위치해있다.
그런데...
차에서 내리면 1분 거리에 절이 있다.
그것도 아주 평평한 평지길로...
게다가 산도 아닌 강옆에...
조선시대 억불정책으로 인하여 대부분의 사찰들이 산속으로 들어갔다 하는데
남한강 옆에 당당히 서 있는 이 절...
뭔가 심상치 않다.
아니나 다를까...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보물을 간직하고 있는 사찰이다.
신륵사...
가볍게 닿을 수 있었던 그 곳은
결코 가벼이 돌아볼 수 있는 절이 아니었다.
봉미산 신륵사..
이 일주문 아래로도 차가 들어갈 수 있다니, 얼마나 고마운가.
평지에 위치하고 있어서인지 경내도 꽤 넓다.
무엇보다 바로 옆으로 한강이 흐르고 있는 그 지리적 위치가 참으로 생소하다.
한국의 33대 관음성지 중 하나로 손꼽히는 곳이라니...
신륵사 라는 이름조차 처음 들었는데,
이 유명한 곳을 그동안 나만 몰랐나?
차에서 내려 입장권을 끊고,
입장한지 1분도 안되어 단아한 사찰의 풍경이 보이기 시작한다.
땀이 날 시간도, 다리가 아플 틈도 없다.
이렇게 땀흘리지 않고 사찰을 만나도 되는 것인지..
그 기분이 오히려 생경하다.
한강을 사이에 두고 저 너머 고층 아파트가 보이는 곳이 사찰이라는 사실이
아직도 실감 나지 않는다.
7세기, 신라 진평왕때 원효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한다는데,
이런 도회적 분위기는 더더욱 어울리지 않는듯.
다만 하늘을 찌를 듯 높게 솟아 있는 나무들만이 오랜세월을 대변하고 있다.
신륵사에는 국가가 지정한 보물이 무려 7개나 있다고하는데,
600년 된 향나무 뒤에 숨어있는 첫번째 보물을 찾아냈다.
조사당! 보물 제 180호
조사당은 절에서 덕이 높은 승려의 초상화를 모셔놓은 건물인데,
신륵사 조사당에는 중앙에 나옹을, 그 좌우에는 지공과 무학대사의 영정을 모시고 있다.
<나옹>
고려 말기의 고승, 공민왕의 왕사.
나옹선사는 인도의 고승 지공스님의 제자이며
조선건국에 기여한 무학대사의 스승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시 "청산은 나를 보고"를 지은 분이다.
靑山見我無語居 - 청산은 나를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蒼空視吾無埃生 - 창공은 나를보고 티없이 살라하네
貪慾離脫怒抛棄 - 탐욕도 벗어놓고 성냄도 벗어놓고
水如風居歸天命 -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하네
문틈 사이로 무학대사의 영정이 설핏 보인다.
조사당 뒷편으로 또다른 보물이 숨어있을 것 같은 기운이 느껴져
숲으로 나 있는 계단을 올라본다.
이런 경우에 쓰라고 "대박"이라는 말이 있는걸까?
무려 세 개의 보물이 한자리에 모여 있다.
보물 제 228호 보제존자 석종
나옹의 사리를 모셔놓은 종 모양의 부도다.
이름만으로는 "종" 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 같다.
이 계단탑 형식의 종모양 부도는 조선 초기에 만들어진 종모양 부도의 선구적 역할을 한다고...
보물 제229호 신륵사 보제존자 석종비
나옹이 말년에 밀양 영원사로 가던 중 신륵사에서 세상을 떠나자
제자들이 절 북쪽 언덕에 종모양의 부도를 세워 사리를 안치하고
그의 초상을 모신 진당을 짓는 등 대대적인 중창을 했는데,
이는 보제존자 나옹의 묘탑과 영정을 모신 진당을 조성한 내력을 적은 비라고 한다.
보물 제231호 신륵사 보제존자 석종 앞 석등
이는 부도인 석종을 밝히기 위한 것으로
치마를 입고 빙그르르 도는 것 같은
끝이 살짝 치켜올라간 팔각의 지붕돌이 유독 아름다워 보였다.
보물 하나를 만나기도 쉽지 않은데,
보물 세개를 한눈에 담아보다니...
신륵사는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대단한 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바람처럼 스친다.
한참 공사중인 극락보전 앞에 이르니, 또 하나의 보물이 기다리고 있다.
보물 제225호 다층석탑
하단부의 섬세한 조각과 층층이 쌓여 있는 하얀색 대리석이 우아함을 더해준다.
보물 제230호 신륵사 대장각기비
불경을 만들어 보관하던 대장각의 조성에 관한 여러가지 기록을 담고 있다.
거북 모양의 비받침, 용의 머리가 새겨진 비머리가
고려 후기로 오면서 사각형 받침과 지붕 모양의 머릿돌로 간략화되는데, 이 비도 그러한 예다.
신륵사 보물의 하이라이트는 보물 제226호 다층전탑이다.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고려시대 유일한 전탑이라고 하니,
그 가치가 새삼 와닿는다.
그나저나 똑 부러지게 몇층 탑이라고 하지 않고,
왜 다층탑이라고 얼버무렸을까...
일단은 그것이 궁금해 1,2,3...층 수를 세어본다.
언뜻 6층 같기도 하고, 7층 같기도 하고...애매하다.
"전탑" 이라는 이름도 생소했는데, 알고 보니, 흙으로 구운 벽돌로 쌓은 탑을 전탑(塼塔)이라 한다고...
600년도 넘은 어르신 탑 위에
피어오른 한해살이 풀은 참으로 용감하다.
옛 흑백 사진 위에 초록 풀을 교묘하게 합성해놓은 듯
어울리지 않으면서도, 한편으론 참 잘 어울린다.
듬직한 모습으로 한강을 내려다보고 있는 전탑...
배를 타고 이곳을 지나던 이들은 이 전탑 앞에서 가볍게 목례라도 해야 했을 듯.
신륵사를 나오는 길목에 있는 세심정.
마음을 씻는다는 그 이름 때문에라도 물 한모금 마시고 가야 할 것 같다.
그런데 새로운 물이 나오고 있지 않고 고여있는 물 뿐이다.
먹어도 되는 건지, 먹을 수 없는건지 반신반의하며 다가갔는데,
갑자기 나오기 시작하는 물에 깜짝 놀랐다.
물이 나오기 시작하는 시간에 맞춰 잘 왔다...생각하며 돌아서는데
갑자기 뚝 끊기는 물...
이상하다 싶어 다시 들어갔더니, 다시 나기 시작하고
정자 밖으로 나왔더니 다시 끊기고..
아무래도 감지시스템이 설치 되어 있나본데,
신기하고 또 재미있어, 들랑날랑 하며 잠시 아이처럼 놀아봤다.
산이 아닌 강옆에 서 있어 땀 흘리지 않고 수월하게 만날 수 있는 이색적인 절.
무려 7개나 되는 보물을 눈에 또 마음에 담고 왔더니,
부자가 된 듯한 기분이다.
땀흘리지 않고 보물을 만났으니,
이것도 불로소득이라고 해야하나? ^^
글 & 사진
김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