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외동포들을 대상으로 하는 한인네트워크 웹진 10월호에 실린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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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백두산!

 아~ 백두산!


 

비록 우리 땅, 내 땅이 아닌 남의 땅을 밟고 가까운 길 두고 머나먼 길을 돌아서 가야 하는 곳이지만 세상사 어차피 지름길로만, 비단길로만 다닐 수는 없다는 가소로운 명분을 가슴팍에 붙이고 떠난 가을 기슭의 백두행.


그곳으로 가는 여정은 최근에 각 여행사에 나그네 상품으로 다채롭게 마련되어 있지만 내가 택한 여정은 심양(沈陽)을 경유하여 가는, 보다 더 멀리, 보다 더 진득하게 돌아가는 길이다. 돌아가는 이유는 없다. 단지 심양이 보고 싶어서다.


강산이 온통 물에 잠기고도 남을 만큼, 지난여름 석 달은 비의 잔치였다.


기청제(祈晴祭)라도 지내고 싶을 만큼 몸과 마음이 흠씬 젖어 있었는데 처서가 지난지도 제법 되었건만 하늘의 물장난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순전히 인간의 탓으로만 치부되는 이른바 온난화의 영향일까, 아니면 가이아의 오랜 회유성 습관 탓일까.


쾌청한 날을 확보하기 위해 굳이 가을 초입을 백두 여정의 길일로 잡은 철부지 나그네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출발 일까지 하늘은 온통 탁한 잿빛이다. 아무래도 나의 처녀 백두행은 우중 트래킹이 될 것만 같은 불길한 예감.


아무튼 백두행은 시작부터 그렇게 만만하지만은 않았다.


소현 세자와 삼학사의 패전국의 설움과 볼모의 애환을 절절히 간직한 땅, 그 시름의 사연들이 묻어있는 봉천 땅 <심양>을 거쳐, 요령성을 동진하여 잃어버린 우리 땅 길림성을 경유, 이른바 만주벌판을 돌고 돌아 하염없이 가는 대륙의 길.


이윽고 통화(通化)에서 하루 밤을 보낸다. 일취월장하고 있다는 중국의 인프라 덕택으로 통화까지는 차량으로 불과 여섯 시간, 우리의 신화가 아직도 살아 숨 쉬는 비류강을 꽤 오랫동안 바라보며, 때때로 도로변 곳곳에 우리말로 내걸린 간판들을 바라보며 여기는 어쩌면 남의 땅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상념에 잠긴다.


도로변 곳곳에 우리말로 내걸린 간판들을 바라보며 여기는 어쩌면 남의 땅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상념에 잠긴다.

다음 날, 백두의 서쪽 관문인 서파(西坡)산문에 들기 까지는 4시간을 더 달려 무려 꼬박 하루 동안의 시간이 필요했다.


비행거리는 불과 1시간 30분, 육로로 10시간, 쉬고 기다리는 시간 10시간. 여행이 대개 그렇듯 이동시간이 대부분이다. 그렇게 달리고 움직이는 동안, 창밖의 대부분은 옥수수 밭이었다. 요령성, 길림성에 있는 대부분의 초록색도 옥수수였다. 하늘에서 내려다 본 광활한 수평선의 초록도 예외 없이 죄다 옥수수였다. 옥수수곁에 약간의 소품들이 있을 뿐이다. 어쩌면 이 무렵의 중국 자체가 옥수수 인 듯 한 착각이 들 정도로 옥수수의 물결은 소름이 끼칠 정도로 넓고도 광대했다. 식량이 가장 원초적인 무기가 되는 그 날, 이 중국의 힘은 어디까지일까. 더 놀라운 사실은 이러고도 중국은 작년에 옥수수를 해외에서 수입했다는 것. 덕분에 우리마저도 엄청 비싼 가격의 옥수수를 들여왔다는 사실. 중국의 생산성도 가히 놀랍지만 그들의 소비성도 상상이상이다.


과연 중국이다. 내게 13억이라는 중국 인구는 계산기 밖의 숫자일 수밖에 없다.

백두산 가는 길. 차창밖 풍경은 처음부터 끝까지 옥수수밭이었다.

그렇게 옥수수의 바다에 빠져 허우적거리다가 드디어 백두의 턱밑에 닿았다. 서파산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불길한 예감일수록 실현가능성이 높다는 가설은 꼭 이럴 때 입증이 된다. 해발고도 2,000m를 넘어서면서부터 하늘에선 물줄기를 틀어대고 있다. 빗방울마저도 굵다. 짙은 안개까지 동반한 비바람은 차갑다 못해 아예 시리다. 엄동설한이 따로 없다. 서울에서부터 준비해간 제법 성능 좋은 비옷이 모처럼 제값을 하면서 주변 여행객들의 부러움 섞인 찬사를 받는 것으로도 별로 위로가 되지 않는다. 나름대로 의미를 부여하고 다가온 백두여정인데 어떻게 해야 하나. 그러나 어쩌겠는가, 가고자하는 고지가 바로 저기고 보고자 하는 천지(天池)가 바로 저긴데, 얼음비가 무슨 대수겠는가, 5호 경계비를 향하여, 천지를 향하여, 정해진 고지로 일단 오르고 볼 일이다. 서파산문 주차장은 해발고도 2,200m지점에 있다. 거기서 천지 조망지 까지는 1,236개의 계단으로, 그리고 계단 밖으로는 한 발자국도 넘어가지 못하게 곳곳에 경고문을 두고 있다.

육당 최남선은 백두산을 다녀와서 백두산 근참기(白頭山 覲參記)를 썼다. 근참(覲參)이란 높으신 분을 어렵게 찾아뵙는다는 존경과 겸손의 뜻이다. 세상 모든 산은 '오른다'라고 표현할 수 있어도 백두산만은 '오른다' 라는 말을 감히 쓸 수 없어서 '뵙는다'라는 의미의 말을 썼던 것이다. 또한 백두산을 찾을 때는 큰 소리로 말을 해서도 안 되고 오물은 물론, 생리적 노폐물까지도 다시 가지고 내려와야 한다고 했다. 그렇게 어렵게 찾아가서 뵙고 가야 할 백두산에 온통 편리함의 구조물들이다. 계단도 부족해서 심지어 요소요소에 가마꾼들이 여행객들의 보다 더한 편리함을 부추기고 있다. 백두산 주변에서는 한국화폐가 상용화폐에 다름 아니다. 물론 신체가 불편한 산객들을 위한 시혜성 상술이라고 항변한다면 굳이 할 말은 없다.

서파주차장에서 천지까지 오르는 계단엔 편리하게 오를 것을 부추기는 가마꾼들이 곳곳에 대기하고 있다.

계단 길을 시나브로 올라도 채 한 시간이 안 걸린다. 등산화도 젖고, 옷도 젖고 마음 까지도 젖어들 무렵, 바야흐로 서파의 정점이다. 해발 2,470m. 5호 국경 경계비가 있다. 북한과 중국의 이른바 경계비다. 여기서는 우리 통일부의 사전 승인 없이도 북한 땅을 밟을 수 있다. 중국 경계선으로부터 약 100m, 중국이 북한의 양해를 얻어 여행객들이 북한 땅을 밟고 사진촬영도 할 수 있도록 특별히 묵인된 땅이다. 바야흐로 백두산 천지를 감싸고 있는 가장자리의 한 정점에 섰다.어떻게 왔건 내게 있어서는 하나의 기념비적인 자리에 선 것이다.

앞쪽엔 조선, 뒤쪽엔 중국이 적혀 북한과 중국의 경계를 이룬다. 앞뒤로 번갈아서며 기념촬영에 분주하다.

그런데, 그런데...천지가 없다. 천지가 안 보인다. 화면과 사진으로 수없이 보고 뇌리에 새겼던 그 천지가 감쪽같이 없어졌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운무 속에 천지는 그야말로 하얀 백지가 되어있었다. 천지 언저리에 한 발자국만 잘못 디뎌도 끝없는 운무 속으로 까마득히 침몰할 것 같은, 천지가 있어야 할 그곳에는 백색 허공만 있을 뿐, 아스라한 추락만이 도사리고 있을 뿐,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야말로 천지는 하얗게 지워지고 온전하게 비어 있었다.

천지가 없다. 천지가 안 보인다. 운무 속에 천지는 하얀 백지가 되어있었다.

그리고 그곳에는 여름 끝 무렵에서 금방 달려온 나그네에겐 너무나 견디기 힘든 매서운 추위와 비바람만이 퀭하니 서있을 뿐이다. 고산의 냉기가 온 몸으로 전해져 왔다. 국경을 지키는 중국 측 경비병들도 하얗게 얼어붙은 입술로 하산을 독려한다. <다음>은 사이버 상에만 존재하는 게 아니었다. 백두산에도 있었다. 일단 목숨보전을 위해, 그리고 ,<다음>을 기약하기로하고, “하산”하기로 했다.

천지를 보겠다는 일념으로 먼 길을 달려온 이들. 천지를 보지 못하고 돌아서는 발걸음이 무겁다.

이도백하(二道白河)로 숙소를 옮겨 동사직전의 몸을 추스르고 난 이튿날, 일기예보는 “일단 쾌청”으로 희망을 노래한다. 과연 믿어도 될까, 백두산의 일기예보는 단순히 일기예보일 뿐, 정상부근의 일기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는 이곳의 정설. 이번에는 북파(北坡)코스를 엄숙히 선택해 본다. 하지만 기도는 하지 않기로 했다. 만일 그 기도가 통하지 않는다면 나 스스로 두고두고 실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일단은 백두산의, 가장 백두산 다운모습을 완상한다는데 목표를 두고 백두산의 품으로 두번째 달려간다.

백두산에 오르기전, 화창하게 갠 하늘을 보며 천지를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가져본다.

백두산은 천연수림의 천국이다. 아니 자작나무의 천국이다. 온통 자작나무다. 자작나무가 만든 숲길을 따라 인공으로 식재한 듯한 루드베키아가 노란 꽃길을 열어 이정표가 되고, 군데군데 쑥부쟁이가 설익은 가을을 만들고 있다. 자작나무가 주연인 백두의 무대에 가문비나무, 측백나무가 다채로움을 더하고, 이따금씩 이깔나무도 보이고 사스레나무와 소나무군락들이 백색 자작나무 줄기와 보색구도를 연출하고 있다. 혹자는 자작나무를 영혼의 나무라고 했다.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나무라고도 하고, 꿈을 꾸는 우주의 나무라고도 했다. 병을 치유하는 나무가 되기도 하고 누구에게는 노벨상을 타는 작품의 배경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백두산은 천연수림의 천국이다. 아니 자작나무의 천국이다. 온통 자작나무다.자작나무
...친구여, 따뜻한 남쪽에서 제대로 사는 삶이란
뭐니 뭐니 해도 자작 나무를 찾아 가는 길.
자작나무 숲에 너와 내가 한 그루 자작나무로 서서
더 큰 자작 나무 숲을 이루는 일이다....
(백두산 자작 나무 숲을 그리며-안 도현)


해발고도 2,000m에 다가가면서 자작나무는 급기야 그토록 꼿꼿함을 자랑하던 자태를 비틀어 그 높이를 저항하면서 온 몸으로 버티고 있다. 수목 한계선인 2,200m즈음에 이르자 우듬지를 세우던 침엽수조차 하늘높이에 적당히 굴복을 하고 모든 생명체들은 이윽고 가장 가벼운 모습과 자세로 낮은 포복을 한다. 일정한 높이를 경계로 하여 제 나름대로 세력권역을 형성하고 있는 셈이다. 지정된 4륜 구동차량 외에는 오를 수 없는 북파코스. 높이를 지향하는 교목군락들이 자취를 감추자 유연한 능선위에 드러난 초원 사이로 구름 국화도 더러 보이고 바위 구절초인 듯한 야생화, 하늘 매발톱도 눈에 띈다.
수목 한계선인 2,200m즈음에 이르자 우듬지를 세우던 침엽수조차 하늘높이에 굴복을 하고 모든 생명은 가장 가벼운 모습으로 낮은 포복을 한다.

“백두산이 왜 백두산인줄 아세요?” 어떤 조선족 가이드가 뜬금없는 질문을 한다. 분명 책에서 배운 모범 답안을 요구하는 건 아닐 터, 이럴 땐 모른다고 하는 게 출제자의 사기를 올려주는 현명한 처신이다. “글쎄요...” 조선족이 통쾌하다는 듯이 말한다. “백두산은 <백>번 오르면 <두>번 천지를 보여준다고 해서 백-두-산이라고 합니다.” 천지를 설령 보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실망하지 말라는 의미에서 만들어낸 그들의 지혜일 터...... 천지를 못 보는 게 그들의 탓은 아닐진대...... 그 이면에 숨은 발상이 예쁘다. 해발고도 2,500m가 되자 일기가 돌변하더니 또 세찬 비바람이 몰아친다. 방한 장비를 완비했음에도 심한 냉기가 엄습한다. 또 이런 날씨라면 천지 조망은.. 여기 북파의 최종 주차장은 해발 2,600m지점이다. 여기까지 소형차량들이 인도한다.

해발 2600m 지점에 위치한 북파. 주차장. 천지가 지척에 있다.

천문봉은 해발 2,670m, 그래, 악천후를 감수하고 천문봉에라도 올라보자. 이번에도 천지를 볼 수 없다면, 또 다시 <다음>으로 남기면 되는 것, 마음까지 비우면 되는 것. 어차피 백두산 정상인 장군봉(2,749m-최근 북한 당국에서 정밀실측을 하여 기존 2,744m보다 5m높은 2,749m로 공식인정하여 국제공인 되었다고 함)에 오르지 못할 것 같으면 어디인들 여기는 다 백두산이 아니던가. 세찬 비바람을 뚫고 오른 천문봉, 역시 예상대로 두꺼운 운무 속에 천지는 묘연했다. 어제 치르지 못한 정상에서의 나만의 등정 의식은 어떤 식으로든 실행해야한다. 서울에서부터 준비해온 우리 술, 막걸리. 소박한 묵념과 그리고 헌주. 백두산에서의 산행의식은 내게 의미 있는 일이다.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신통해한다. ‘중국에서 오른 백두산에서 웬 막걸리?’라는 표정들이다. 세찬 비바람 탓에 바위 위에 진설한 막걸리 병이 몇 번을 날아간다.


준비해간 막걸리를 올리는 순간 마치 꿈인 듯 저 아래 천지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은 기막힌 조화였다.
그리고 초면의 주변인 몇 분과 막걸리를 나누며 의식을 마무리하는 순간......... 홀연히, 그리고 환영처럼 나타난 천지.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천문봉 주변을 지키던 많은 사람들의 환호성, 그것은 조화였다. 아니, 조화일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인간의 영역으로는 감히 흉내 낼 수 없는 신의 조화임에 틀림없었다. 거의 수평으로 쏟아 붓는 비바람 탓으로 카메라를 들이 댈 수 없어도 그래도 행복했다. 맑은 날 그저 그 자리에 원래의 모습대로 천지를 조망했다면 결코 느낄 수 없었던 신의 연출, 그렇게 천지는 자신의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 주었다. 그것은 기가 막히는 반전이었다. 어느 창졸간에 그 지엄한 속살을 보이고는 수줍은 듯 다시 감추는, 운무 속에 그윽히 드러낸 그 모습은 오히려 더 감동적이다. 다행이다. 그리고 감사했다.

백두산 근참기에서 최남선은 백두산 천지의 영묘한 현상을 이렇게 묘사했다.


....구름이 흩어지는 대로 처녀처럼 자라나는 미(美)의 소식이, 햇빛이 쏟아지는 대로 장사(壯士)처럼 활개를 치고 몸부림을 치면서 최대한의 뇌성(雷聲)을 지른다. 푸르다 하자니 거덕지고, 누르다 하자니 까부르지고, 검다기에는 맑고, 희다기에는 진한 저 빛을 무엇이라야 옳은지 억지로 말하자면 연록(軟綠)을 예각으로 한 일절(一切)의 물과 그 늪을 빌려서 우리 어머니의 진신(眞身)이 그 편린(片鱗)을 잠깐 내어 놓은 것이라고나 하겠다....


백두산은 2,500m급 봉우리 16개중에서 중국 쪽 7개, 북한 측 6개, 그리고 3개는 국경으로 공유하고 있다. 둘레만도 14.5km, 최대너비 3.6km, 평균깊이 213.3m, 수면고도2,257m이며, 면적은 9.17㎢이다. 천지의 물은 달문을 통해 이도백하를 경유 송화강으로만 유출되고 압록강과 두만강으로는 시각상으로는 유출되지 않는다. 물론 백두의 육중한 피부 밑 지하수의 형태로 그 근원을 이루리라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일 테지만. 우리는 일찍이 불함산이라 불렀고, 백두산이라고 했으며, 도태산, 태백산, 종태산이라고도 했던 산, 중국에서는 장백산, 태황산이라고 불렀던 한반도의 영산, 중국으로는 장백산맥으로 어깨를 걸치고 우리에게는 마천령산맥으로 나머지 한쪽의 어깨를 나누는 산맥의 꼭짓점이다. 고산자(古山子) 김정호는, <백두산은 조선 산줄기의 아비>라고 하여 그 위상을 정리했으며,육당 선생은 <백두산은 우리 종성(種姓;겨레)의 근본>이라고 정의하여 고산자와 그 이념의 궤를 같이 했다.

백두는, 그렇게 높아도 결코 우쭐대는 일이 없다.
백두는, 그렇게 넓어도 감히 속을 보이는 일이 없다.
백두는, 그렇게 속으로 앓고 안으로만 끓는다.
백두는, 어느 날 단 한 번의 오열로 세상에 나타날 것이다.
백두는, 그렇게 한으로만 살아온 우리 모두의 기억이다.
(백두산 천문봉에 취한 어느 과객)
여전히 뜨겁게 끓고 있는 백두산, 백두산은 결코 죽은 것도, 쉬고 있는 것도 아닌, 왕성하게 살아있었다.

백두산 여정......단순한 나그네가 되지 못하고 '한국인'이 될 수밖에 없는 시각과, '우리'라는 염원으로 바라본 중국속의 백두행. 미답의 세계를 다녀 올 때마다 느끼던 예전처럼의 통쾌함과 당연히 따라오던 충만감은 없다. 그 대신 육중한 돌덩이 하나를 어깨위에 메고 온 듯한 아쉬움과 안타까움, 그들이 예전의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지금 내 책상위에 놓인, 백두산 천문봉에서 기념으로 집어온 작은 화산석하나, 이런 돌 두어 개가 내 폐부 어딘가에 고황처럼 아프게 박혀 있는 것 같은. 언제 시원하게 아픈 돌 빼어내고 소리 높여 외칠 날은......


일주일 동안 동행했던 교포 청년은 자신들 즉, 조선족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우리 조선족은 몸속에 한 민족의 피를 담고 있지만 겉과 속 모두는 결국 중국인일 수밖에 없는 숙명을 갖고 살고 있습니다. 우리 다음 세대는 말과 정신까지도 언젠가는 철저히 중국인이 되겠죠.“ 세월은 그런 것인가. 그래서 백두산도 백두와 장백으로 갈리고 만주 벌판의 그처럼 우렁찼던 기상도 결국은 전설이 되고 신화가 되어 저 백두의 화산재 밑에 그냥 그렇게 묻히고 말 것인가. 그렇다면 저 절개 높은 백두봉이, 새로이 하나가 되기 위하여, 그리하여 떠내려간 화석을 캐고, 묻혀진 전설을 발굴하기 위하여, 다시 한 번 거대한 용트림을 하더라도 나는 할 말이 없다. 그리하여 백두가 다시 한 번 일어나서 대륙을 향해 말갈퀴를 세우더라도 나는 말리고 싶은 마음이 결코 없다. 아~잃어버린 우리들이여, 백두산이여!

한겨울에도 얼지 않는 장백폭포. 백두산에서 가장 큰 폭포다.(높이 68m)장백폭포 올라가는 길 만나게 되는 백두산 온천물로 삶은 옥수수와 계란. 백두산의 뜨거운 열기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고산화원이라 불리는 야생화 군락지에는 1800여종의 야생화가 자태를 뽐내며 백두산을 수놓는다.
김화일 (프리랜서 방송작가)ace7162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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