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타고 떠난 꽃한송이

[김작가의 여행칼럼-5] 그 길에 가면 바람이 된다. <제주 올레길>

작성일 작성자 김작가

 

 

 

 

아름답고 소리 또한 고운 우리말 중에는 단음절로 된 말들이 의외로 많다. 꽃, 달, 별, 섬, 흙, 멋, 글, 벗, 술.... 발음으로 들리는 느낌도 좋지만 그 어휘들이 안고 있는 의미도 특히 정겹다. 어휘 하나하나에 담긴 아련한 그리움도 있고 어느 한 시절을 스치고 지나간 추억마저 묻어있는 말들이다. 아마 그들은 태고로부터 우리의 원형질 속에 대를 이어 각인된 생활의 일부이기 때문일 것이다.


<길>이라는 어휘도 그 중의 하나이다. 나는 <길>이란 말만 들어도 때때로 가슴이 뛴다. 지나온 숱한 길들이 거미줄처럼 얽힌다, 많은 길들을 걸었고 그 길마다 참으로 다채로운 사람들과 사연들을 만났다. 그런데 길이란 무엇인가?


<길>은 “길들이다”로부터 비롯된다. 산을 누군가의 발자국으로 길들이면 산길이 된다. 들에다 세월의 흔적을 쌓으면 들길이 되고 물에다 인간의 땀을 더하면 물길이 된다. 요즘은 하늘마저 날개 짓을 얹어 하늘 길도 만든다. 그 모든 길은 대체로 사람이 만든다. 그리고 길들은 서로 얽히고 설켜 인연을 만든다. 그리하여 길은 급기야 사람과 사람을, 인연과 인연을 연결한다. 길속에는 항상 지나온 세월과 사연이 파노라마처럼 녹아있다.

 

 “길을 두고 메로 갈까”, 옛 사람들은 쉬운 길을 두고 굳이 어려운 산으로 가는 사람을 어리석은 사람으로 단죄했다. 하지만 그렇게 가야만 하는 길이 있다. 제주 올레길은 그렇게 가야만 한다. 빠른 길은 애써 에둘러 가야하고 짧은 길은 구태여 멀리 가야하고 편안한 길은 가급적 불편한 오름을 통해야한다.

제주도는 원래부터 아름다운 곳이다. 제주섬은 한마디로 최상의 비빔밥이다. 갈 때마다 다르고 가는 곳마다 신선하다. 어떤 레시피로 담아내어도 맛깔스럽다. 어떤 그릇에, 어느 누가 담아도, 어떤 소재로 조합을 해도, 제주의 맛과 멋은 자랑스럽다. 동행하는 사람의 색깔에 따라, 가는 이의 설렘에 따라 제각기 색다른 양념과 손맛을 더해도 좋은 곳, 적당한 식탐마저 용서가 되는, 세계에서도 몇 안 되는 여행의 별미인 것이다. 별미일수록 천천히 음미하면서 눈으로, 후각으로, 그리하여 느낌과 감동으로 느리게 즐겨야 한다.

제주는 섬이다. 섬은 섬이라는 이름 그 자체만으로도 이미 여행지의 자격을 충분히 갖춘 곳이다. 섬은 단절과 차단으로 만들어진 공간이다. 원한다고 언제 누구나 쉽게 갈 수 있는 공간이 아니다. 그런 만큼 단절 속에서는 빠를 필요가 없다. 섬에서는 충분히 느릴 필요가 있다. 그 섬에서 나는 차분한 느림과 설렘을 안고 그 최상의 맛을 탐하기 위해 올레길을 찾아간다.

 세계7대자연경관에 선정된 제주도! 풍경마다 감탄사가 따른다.

제주 섬의 속살을 온전히 맛보기 위해서는 가장 느리게 가장 짧은 보폭으로 두리번거리면서 걸어야한다. 그 곳이 올레길이다. 세월 속에 끊어진 길들을 살려내고, 아스팔트에 묻힌 길들을 과감히 털어내고, 인적 속에 잊혀진 길들은 낯익은 목소리로 불러내어 만든 길, 그런 올망졸망한 길들의 자투리를 여미고 저며서 만든 길, 올레길은 그런 곳이다.


올레길은 도로에서 집까지 가는 짧은 거리의 골목을 의미하는 제주도 말이다. 굳이 육지의 말로 옮긴다면 <골목길>, 혹은 <고샅길>정도가 아닐까, 아무튼 이웃집에 가는 마실길과 다를 바 없다.

 

  올레길은 도로에서 집까지 가는 짧은 거리의 골목을 의미하는 제주도 말이다.

2011년 11월 현재까지, 19개 정규 코스와 5개 보조코스를 합쳐 장장 400Km에 가까운 길이로 조성되어 있는 그야말로 걸어가는 천릿길이다. 아직도 2~3개 코스가 미완성으로 남아 있어서 전 코스가 완성되는 내년 말 쯤 이면 천리가 훨씬 넘는 제주도 순환 대장정의 길이 될 것이다.


그 올레길의 시작은 여기, 제주의 상징적인 첫 마을인 시흥리(始興里) 시흥초등학교이다. 시흥리는 옛날 제주 목사가 임지에 부임을 하면 이곳 시흥리에서 순찰을 시작하여 인근에 있는 종달리(終達里)에서 마무리를 하였기에, 두 곳의 지명이 유래되었다고 하는데, 그런 의미를 고려하여 올레길의 시작도 여기가 되었을 터. 그렇다면 옆 마을 종달리도 조만간 그 이름값을 할지도 모르겠다. 시종(始終)의 의미를 잘 살린 듯하다.


올레길 19코스의 종점. 2011년 현재 전체 제주 올레길의 마지막지점이다.

올레길 위에서 보는 화면의 절반은 바다다. 한 마디로 올레길의 나그네에겐 청색과 수평선뿐인 바탕화면이다. 그래서 걷는 그 길이 다소 지루할 무렵이면 적당한 높이로 똬리를 틀고 앉아서 나그네를 기다리는 것은 오름이다. 제주에서 오름은 산이 아니다. 제주의 토속어이기 이전에 그저 오름이다. 대부분의 산은 높이에서 여행객에게 부담을 줄 수 있지만 오름은 그저 주변을 보다 멀리 조망하기위해 마련된 일종의 전망대에 가깝다.

 

올레길 위에서 보는 화면의 절반은 바다다.

제주땅이 한 때, 주체할 수 없는 열정으로 끓어오를 무렵 그 엄청난 열기를 쏟아내던 숨구멍이 솟아서 오늘의 오름을 만들었다. 그들도 한때 뜨거웠던 적이 있었노라고 강력히 항변하는, 그러나 이제는 식어서 그 자리에 소박한 높이로 수줍게 앉아있는 모습이 오름이다. 제주에는 360여개의 오름이 있지만 산이라는 이름의 자격을 받은 곳은 불과 10개도 안된다. 산과 오름의 기준을 굳이 나열하지 않더라도 오름은 여느 산 못지않게 예쁘다. 더구나 올레길에 있는 오름은 이 길의 크고 작은 액센트에 다름 아니다. 각 올레 코스마다 최소 한 개 이상씩 자리하고 있는 오름길은 올레길의 또 다른 매력이다.

 

올레길을 가려면 어느 정도 생각을 비워야한다. 어느 하나의 생각에만 골몰해서도 안 되고 그렇다고 하얗게 비운 무념의 상태로는 더욱 곤란하다. 적당히 뒤도 돌아보고 두리번거리면서 주변도 둘러볼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 길을 잃지 않는다는 말이다. 살아가는 길과 너무나 닮았다. 걸음을 옮기면서도, 상념에 잠기면서도, 옆지기와 정담을 나누면서도 가야할 길을 제대로 살펴야 나중에 낭비를 줄일 수 있다. 올레길의 이정표는 3차원이다.

걸어가는 길바닥위에, 세워진 물체의 불특정 여러 곳에, 그리고 나부끼는 허공의 내키는 곳에, 그렇게 표시되어 있다. 걷는 내내 집중해서 잘 찾아야, 다시 되돌아가는 분통터지는 헛수고를 줄일 수 있다는 말이다. 사실은 이 또한 올레길의 쏠쏠한 또 다른 재미이다. 물론 그것은 여행이 끝나고 한 참 지난후의 느낌이지만. 심신이 지쳐갈 때 쯤 이런 일을 겪으면 입에서 아름다운 소리는 안 나온다.

IT강국답게 초현대적 리본과 첨단 과학적 화살표로 표시된 이정표 외에도 틈틈이 <간세>라는 조금은 생경한 조형물이 나타나서 오가는 방향을 잡아주기도 한다. 간세는 제주의 조랑말이자 게으름뱅이라는 뜻의 제주어 <간세다리>에서 왔단다. “제주 올레를 즐기려면 제주의 길을 꼬닥꼬닥(느릿느릿)걸어가는 간세처럼 놀멍, 쉬멍, 가야한다.”라는 의미에서 간세를 세웠다고.
제주 올레길의 안내꾼들 왼쪽은 올레리본, 오른쪽 상단은 길안내화살표, 오른쪽 하단은 간세 표지판

다양한 안내 표식들이 있지만 인생이 그렇듯 방심은 금물이다. 매 코스마다 표식을 놓치고 몇 번씩 되돌아 간 적도 있고, 때로는 자신도 모르게 잘못된 길을 가다가 정말 우연히도 원래의 길에 제대로 합류하는 행운도 있다. 필자의 경험상 5분 이상 다음 표식물이 눈에 띄지 않으면 필경 길을 잘 못 든 것이다. 그러나 잘 못 든 그 길도 대부분 제대로 된 길과 다시 만나게 된다. 이 말에 대해 어떤 책임을 진다거나 장담을 할 수는 없지만. 이 또한 인생길과 너무나 닮았다.


그리고 또 주의 할 점은 자기 앞에 많은 수의 올레꾼들이 간다고 해서 그 길을 따라 갈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다수의 그들도 실수를 한다는 말이다. 그리고 그들은 절대로 뒤 따라 오는 이들을 책임지지 않는 다는 것도 명심해야 한다. 우리 사는 길도 그렇지 않던가. 인생길이건 올레길이건 길은 다 똑 같다. 좌표 없이 남 따라 함부로 가지 말라는 말이다. 아무튼 하루 종일 걷다보면 웃고 즐길 일들이 많다.

 

올레길 위에서는 앞서 간 사람들의 발자국도 이정표가 된다.

그 길에는 사연도 많다. 제주를 너무나 사랑하다 제주에 그 잔영(殘影)을 남기고 떠나신 님의 갤러리를 보는 것도 그 길가의 즐거움이다. 길 위에서는 동시대를 같이 호흡하고 같은 길을 가는 이른바 동행을 하지만 때때로 길이 어긋나서, 시절이 달라서, 부득이 시차를 통해 만나는 인연도 소중하다.


그런가하면, 우리의 현대사에 정말 부끄럽게 감춰진 민초들의 한이 서린 곳도 있다. 아직도 그 원혼들이 보듬고 있는 진실의 실체마저도 온전히 풀지 못하고 여전히 한으로 누워있는 4.3사건의 흔적도 그 길의 곳곳에 산재해 있다. 그래서 올레는 시종일관 즐거움과 웃음을 누리는 길만은 아니다. 때로는 참담할 정도로 부끄러웠던 우리의 뒷모습도 쳐다보고 검은 제주의 흙 속에 숨어있는 제주 사람들의 애끓는 숨소리도 겸허하게 들어야 하는 곳이다. 60여년의 세월로서 씻어내기에는 아직도 많이 모자라는 그 생생한 모습들이 여전히 안타깝다.

 

19코스 북촌마을에 있는  4.3 기념관과  4.3 사건 희생자 명단. 가슴 먹먹한 제주의 아픈 역사를 만난다.

그 길에는 그야말로 <놀멍>, <쉬멍>의 공간도 있다. 지나치는 나그네의 수보다 훨씬 많은 쉼터, 다양한 앉을 자리, 자리마다 빠짐없이 채워져 있는 익살과 재치, 그리고 사연들. 수많은 사람들의 복잡한 머릿속을 비집고 나와서 번뜩이는 풍자와 해학으로 채색한 의자들. 정말 의자도 많고 말도 많다. 그윽한 미소도, 호탕한 웃음도, 때로는 콧날 시큰한 느낌까지 있는 곳. 다채로움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13코스에 있는 낙천리 의자마을! 대형의자부터 각양각색의 의자들 천여개가 즐비해 있다. 의자마을의 의자는 앉아 쉬기 보다, 구경하는 재미가 더 크다.
13코스에 있는 낙천리 의자마을! 대형의자부터 각양각색의 의자들 천여개가 즐비해 있다. 의자마을의 의자는 앉아 쉬기 보다, 구경하는 재미가 더 크다.

그 길에는 사연만큼 사람도 많다. 아픈 사람의 얘기가 얼마나 아픈지, 외로운 사람의 얘기가 얼마나 외로운지, 건너편의 사람은 알 수가 없다. 물 속의 고통을 물 밖의 사람은 더욱 모른다. 어떤 때는 가족도 모르는 일이다. 그녀를 잠녀(潛女)라고 부른다. 우리는 해녀라고도 부른다. 제주의 해녀는 제주의 역사이며 제주의 현재 진행형 삶이다. 그리고 제주의 해녀는 제주의 땅과 나무 그리고 바람과 너무나 닮았다. 올레길의 마무리 코스, 어느 숲길을 걷다가 만난 할머니 한 분. 제주를 떠나서 살아 본 적이 한 번도 없다는 그녀는 그야말로 제주해녀의 산 역사와 같은 분이다.

 

올레길에서 만난 할머니가 집으로 데려가 커피 한잔 대접해주신다. 올레길에서 만나는 보너스다. (할머니~! 사진 촬영을 허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래도록 건강하세요.)

예닐곱 살에 물질을 배워 지금도 간혹 바다에 나가신다는, 올 해로 희수(喜壽/77세)이신 이 순애 할머니. 할머니의 마지막 소원은 서울 구경한 번 해보는 것이라고...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물과 더불어 평생을 살아오신 분이다. 어쩌면 저승 앞마당에서 품을 팔아 이승의 가족을 살려낸 여인들, 자맥질 3~4분, 그 길지 않은 호흡 속에다 목숨을 담보로 세월을 헤쳐 나온 그 질긴 고통을 어쩌면 가족들도 모른다. 가족은 대처로 다 나가고 혼자 사신다는 할머니, 모처럼 만난 대화 상대자를 그냥 보내기 아쉬워 커피한잔 하고 가라고 한사코 붙잡으신다. 맛있는 밥에 좋은 잠자리까지 내어 줄 테니 아예 자고 가라고... 갈 길도 바쁘고 등산화 끈 풀기도 뭣하고 해서 섬돌마루에 차린 커피 타임, 눈물이 날 만큼 귀하고 소중한 만남이었다. 물론 커피도 그 어디서 먹은 것보다 훌륭한 맛이었고. 동구 밖 멀리 까지 나오셔서 내 뒷모습을 지켜주신 그 할머니를 잊을 수가 없다.


옛날, 시대를 앞서 살다 요절한 어느 천재 여류시인은 이렇게 말했다.
“나에게는 세 가지 한(恨)이 있다. 여자로 태어 난 것, 조선에서 태어 난 것, 그리고 남편의 아내가 된 것.”
제주의 해녀들은 어떤 한을 가지고 있을까....

 

수십년을 해녀로 살아온 제주 여인들! 그들에게 제주는 어떤 의미일까...그들이 갓 잡아올린 해산물을 앞에두고 상념에 잠긴다.

제주 올레길! 세계 어디 내놔도 아름답고 특별한 길이다. 감히 어느 누가 넘볼 수 없는 명품길이다. 아직 다 걸어 보지는 못했다. 절반 남짓 걸었으니 아직도 반 이상이 남았다는 게 더욱 즐겁다. 이렇듯 아름다운 길을 다 걸어버리고 나면 많이 허전 할 것이다. 그래서 앞으로는 아껴서 계절별로 조금씩 걸어 볼 참이다. 제주 올레는 그럴 만큼 충분히 아름답고 내재된 가치가 더 많은 길이다.


하지만 제주 올레는 아직 많이 어리다. 길이 어린 게 아니라 그 길에 붙은 이정표와 포장지가 어리다는 말이다. 더 독특해야하고 더 배려해야 한다. 조금 더 초행객들의 입장에서 볼 수 있어야 한다. 많이 바뀌고 있다. 벌써 1~2년 사이에 초기에 있었던 코스도 많이 바뀌었다. 아직은 초창기라 많이 불편하고 미흡하니 양해해 달라는 소리를 해서는 안 된다. 명품은 연습 없이 처음부터 명품으로 출발해야한다.


제주는 이미 세계적인 명품 반열에 그 이름을 올리고야 말았다. 세계에서 일곱 군데 내에 들어가는 명품브랜드에 이름을 올렸다. 그 선정기준의 객관성은 차치하고라도 이제부터 그 이름값을 해야만 한다. 제주라는 명품매장 안에 있는 도보여행코스도 역시 명품이 되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길도 가장 제주스런 모습으로 명품길이 되어야하고 그 길 위의 올레꾼들도 도보여행의 명품객이 될 수 있도록, 그래서 명품 추억록을 만들 수 있도록 안내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으로부터 많이 듣고 많이 배워야한다.


책상위에서 길을 만들 수는 없다. 길은 직접 올레꾼이 되어 발로 만들어야 한다. 길은, 비가와도 그 길은 다른 길이고 눈이 와도 그 길은 완연히 다른 길이다.


<길>이란 무엇인가. 길은 음운학적으로 <흙>이다. “흙”의 옛말 <딜>이 <질>로 바뀌고 “질”이 오늘날 <길>이 되었다. 아직도 “질그릇”, “질화로” 등에서 흙의 옛 모습들이 흙이 잔뜩 묻은 채로 남아 있다. 걷는 길은 가급적 흙길이거나 풀섶 길이었으면 좋겠다.

 

제주 올레길은 가급적, 흙길이거나 풀섶 길이었으면 좋겠다.

아직도 아스팔트길이 너무 많다. 보행객과 차량이 동행하는 구간이 너무 많다는 말이다. 시속 100Km가 넘는 속도로 무한 질주하는 차량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걷는 것은 아무래도 올레꾼들의 심기가 많이 불편할 수밖에 없다. 몇몇 코스는 비가 오면 배수가 제대로 되지 않아서 진창이 된다. 대부분의 제주 땅은 배수 걱정이 필요 없는데 농로를 경유하는 코스에는 이런 불편한 구간이 꽤 많다. 해변가의 몇 코스는 파도가 높을 때 우회할 수 있는 길이 없어서 위험하다.

 

올레길 중 해변가의 어떤 코스는 신발을 벗고 물 위를 걸어야 하기도 한다.

안내서에 명기했듯이 여행자 보험을 권하는 것도 꽤 좋은 방법이긴 하지만 어떠한 경우에도 안전성은 끊임없이 고려되어야 한다. 어떤 좋은 길도 안전성은 우선이고 기본이다. 인적이 드문 몇몇 내륙 코스에는 좀더 상세한 안내판이 있었으면 좋겠다. 이를테면 일몰을 고려하여 동하절기별로 통행제한 시간을 명기한다든지 하는 최소한의 안전을 위한 사전조치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말이다. 몇몇 코스의 숲길은 여성 1인 올레꾼에게 불안감을 줄 수도 있어서 보다 친절한 주변 정보가 많이 아쉬웠었다. 아무튼 작은 말도 크게 듣는 섬세함이 모여야 진정한 명품 길을 만들 수 있다.


제주 올레길은 가급적 빠른 시간 내에 완성도 높은 고품격의 길로 승화시켜서 세계시장에 진열했으면 좋겠다. 예쁜 포장지에 향기까지 그윽한 진정한 제주 사람의 모습으로 말이다.


어디를 가도 가는 만큼 아름다운 땅, 제주에서, 나아가 아름다운 사람과 더불어 간다면, 그리고 거기가 더우기 올레길이라면 더욱 행복한 길이라고... 그렇게 세계적인 올레길로 다듬어가야 한다.


김화일 (프리랜서 방송작가)ace7162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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