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잊지 못한다. 2002년 여름의 그 뜨거웠던 열기를... 꿈만 같았던 월드컵 4강진출! 비록 준결승에서 독일에게 지긴 했지만 덕분에 축제같은 3,4위전을 즐길 수 있었다. 경기장을 가득 메운 대한민국 관중들! 하지만 그들의 절반은 터키 국기를 들고 있었다. 50년전 한국전쟁의 빚을 조금이라도 갚겠다는 듯... 한국전쟁에서 터키는 참으로 고마운 나라였고, 대한민국 국민들은 그걸 기억하고 있음을 전 세계가 지켜보는 순간이었다. 형제의 나라 터키! 터키에도 한국전의 흔적이 남아있었다. 바로 수도인 앙카라에!
이스탄불에서의 일정을 서둘러 끝내고,
우리 일행을 실은 버스는 보스포러스 다리를 건넌다.
앙카라로 출발이다!
유럽과 아시아의 경계인 보스포러스 해협을 건넌다.
유럽에서 아시아로 넘어가고 있다.
터키에서는 아시아대륙에 속에 있는 터키 영토를 '아나톨리아'라고 부른다.
이 다리를 건넘으로써 본격적으로 아나톨리아 여행이 시작되는 셈이다.
이스탄불에서 앙카라까지는 그 거리가 무려 454km, 8시간 정도가 걸린다. 오스만 제국의 중심지였던 이스탄불이 아닌 앙카라가 터키의 수도가 된 이유는 뭘까? 혹자는 말하길, 이스탄불은 서쪽 끝에 치우쳐 있어 수도로서의 역할을 하기엔 무리가 있어, 터키의 중심 쪽에 있는 앙카라가 터키의 수도가 되었다고 한다.
앙카라를 향해 버스는 부지런히 달린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을 통해,
터키의 영토가 얼마나 광활한지 새삼 깨닫게 된다.
가는 길에 간단한 (?) 저녁 식사도 하고,
휴게소에서 터키의 대표 과일인 석류도 사먹으며,
부지런히 달린 결과,
마침내 앙카라에 도착!
버스를 타고 8시간을 달리는 것도 꽤나 중노동에 속하는 것이라,
호텔방을 배정받자 마자, 방으로 달려가 침대위에 쓰러졌다.
그런데 누워서 보니, 방 천장 모서리 쪽에 뭔가가 붙어 있다.
가까이 가서 보니 화살표다.
'아!! 이게 바로 그 화살표?'
이슬람권 국가에 가면 호텔방에 화살표가 있다는 얘길 들은 적이 있다.
그 화살표가 가리키고 있는 곳은
이슬람의 성지인 사우디아라비아의 메카!
기도시간을 알리는 '아잔'이 울리면
메카의 방향을 보고 기도를 하는데,
집을 떠나 낯선 곳에 가면 그 방향이 어디인지 헷갈리니,
저런 화살표를 통해 그 방향을 알려놓은 것이라고...
다음 날 새벽 5시 30분!
온동네를 뒤흔들어 깨우는 아잔이 예외없이 울린다.
시차적응이 안 되서 밤에 잠들기가 쉽지 않은데,
간신히 든 잠을 깨우는 아잔이 여간 야속한게 아니다.
아침 식사를 하고 찾은 곳은 '한국공원!'
터키의 수도 앙카라 중심에서 대한민국 국기를 보니 가슴이 벅차오른다.
집을 떠나면 가족의 소중함을 알고,
나라 밖으로 나가면 애국자가 된다더니, 틀린 말이 아니다.
가로등도 청사초롱 모양을 하고 있으니,
"여기가 터키야, 한국이야~" 하는 소리가 곳곳에서 들린다.
한국 공원의 중심에는 석가탑을 닮은 탑까지 우뚝 서 있으니,
이곳이 터키라는 것이 영~ 실감 나지 않는다.
게다가 한국어까지 적혀 있으니,
사진만으로는 이곳이 터키라는 걸 누가 믿어줄까...
이곳 한국 공원에는 한국참전 토이기 기념탑이 있다.
토이기는 터키의 한자식 발음이라, 예전에는 그렇게 불렀다고 한다.
한국전에 참전했다가 전사한 터키 젊은이들의 넋을 기리기 위한 탑이다.
한국전쟁 당시, 유엔이 한국전에 파병을 결정했을때,
터키는 5000명 정도를 파병할 계획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자원병이 15000명이나 되었고,
그 중 14936명을 선발해 파병했다.
놀이터도 아닌 전쟁터인데,
강제가 아닌 자율로 그 많은 젊은이들이 나서주었다니...
그것도 아시아의 끝에서 또다른 아시아의 끝으로....
생각만 해도 가슴이 뭉클해지고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터키 병사들은 배를 타고 한달이 걸려 부산에 도착했다.
그 어느 나라 병사보다도 용맹하게 싸웠던 터키 병사들!
용병도 아닌 자원병이었던 그들은 미국 다음으로 많은 전사자를 냈다고 하니,
우리가 지금 그들의 나라를 형제의 나라로 생각해야 함은
지극히 당연한 도리일 것이다.
탑 둘레에는 전사자들의 명단이 적혀 있다.
그렇게 마지막 773번째 병사까지...
탑을 돌며 진심어린 감사를 전했다.
전쟁중이었던 터라, 시신들은 조국으로 돌아오지 못했고,
이 기념탑을 지으면서 그들이 묻혀 있는 곳의 흙만 옮겨와 이렇게 제단을 만들었다고 한다.
방명록에는 다녀간 이들의 마음이 빼곡히 남아 있다.
타국에 오니, 날려 쓴 한국어를 보고도 눈물이 난다.
이곳을 관리해주고 있는 사람은 한국인이 아닌 터키사람이었다.
날마다 공원을 청소해주며,
이곳 기념탑이 좋은 이미지로 사람들을 맞을 수 있도록 관리해주는 분!
이 사람은 따로 월급을 받는 곳이 없다고 한다.
정많은 한국 사람들,
어떤 집을 방문했을 때, 그 집 아이에게 돈 한 푼 쥐어주고 나오듯,
그 관리인의 딸에게 몇 달러씩 쥐어주는 모습이 아름답다.
우리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쳐준 이들에 대한 감사가
그들의 후손에게 전해지고 있다.
버스가 떠날 때까지 계속 손을 흔들어주는 아빠와 딸을 보며, 가슴이 뭉클해지고, 눈물이 났다. 어떤 나라에 가서 내가 이런 눈물을 흘려봤던가. 터키가 형제의 나라임을, 내 마음이 진정으로 느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