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타고 떠난 꽃한송이

[터키여행] 8부 - 놀라워라! 30,000명이 살았던 지하도시<데린구유>

작성일 작성자 김작가

여행은...

사람에게 세가지의 유익함을 준다고 한다.

하나는 타향에 대한 지식이고,

하나는 고향에 대한 애착이며,

또 다른 하나는 자신에 대한 발견이라고 했다.

 

흔히들 터키는,

가서 보면 볼수록 더 흥미있고 매력적이며,

나아가 중독성마저 갖게 한다고 했는데.

더욱 깊숙히 터키를 알아가면서 그 말은 점점 사실로 다가왔다.

 

터키라고 하는 타향에 대한 지식은,

점차 경이로움으로 바뀌고 그 경이로움은

어느덧 그 속에 살았던 사람에 대한 그리움으로까지 다가간다.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

이렇게까지 해서라도 그 처절한 삶을 영위해야 했을까.

 

 

데린구유(Derinkuyu), '깊은 우물'이라는 뜻이다.

터키 여행의 백미라고 말 할 수 있는 "카파토키아"는 일정한 특정 지명이 아니다.

우리가 "경기도"라고 넓은 의미로 말하듯 카파토키아도 그런 광범위한

지역의 넓은 지역을 일컫는 말이다.

그 말은 시외버스도 경기도행 시외버스가 없듯이 카파토키아행 버스도 없다는 말이다.

카파토키아에는 수많은 터키의 관광지가 존재한다.

그 중에서도,

이른바 세계 8대 불가사의에 해당한다고 하는 곳.

그래서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곳.

그 곳이 바로 데린구유다.

 

 

 

데린구유!

원래는 지상의 마을 이름이었다가

지금은 그 이름이 지하도시의 명칭으로 바뀌었다는데.

 

 

아나톨리아 지역에는 지하도시라고 부를 수 있는 곳이

무려 40여개나 된다.

그 중에서도 보존 상태가 양호하고 규모면에서 월등한 곳이

여기 데린 구유를 포함해서 이곳에서 10여Km 떨어져 있는 카이막클리

(그러나 둘은 지하의 미로로 교묘하게 연결되어 있어서

유사시에는 서로 소통이 가능했다고 한다.) 

그리고 오즈크냑 지하도시 등이 유명하다고.

 

 

이런 인위적인 지하도시는 이곳 카파토키아의 지형적 특성과 무관하지 않다.

카파토키아는, 원래 석회암 지대에 어느날 화산활동이 더해져서 생긴

용암에 복합 침전물등이 결합해서 이루어진 응회암이 주를 이룬다.

응회암은 암석이 견고하지 않아 잘 부서지고

사람이 그 형태를 쉽게 조각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카파토키아의 지하도시의 역사적 유래에 대해서는,

아직도 학계에서 확실한 정답을 내지 못하고 있으나,

구약성경에도 등장하는 히타이트 문명시대(BC 1700~BC1200)부터

시작해서 로마의 기독교 박해가 창궐했던 서기 6~9세기에 

오늘날의 모습으로 진화했을 것으로 추정한다고. 

 

 

그 기원과 유래가 어찌 되었건,

지하도시가 이 지역의 수많은 민초들의 거주 공간으로 선택되었다는 것은,

그렇게 해야만 살아 갈 수 있는 어떤 필연이 내재되어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일듯.

유럽의 높디 높은 성벽이 그렇고,

길고 긴 중국의 만리장성이 또한 그렇듯,

수많은 외침으로부터 그들의 안위를 지켜내기 위한 고육지책,

그 눈물겹도록 깊고 깊은 산물이 지하도시인 것이다.

 

 

지하도시 데린구유...

그곳의 환경이 얼마나 처절했으면...

그 절망처럼 깊은 도시에 가고자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심장병이 있거나, 고혈압 환자이거나,

혹은 천식 환자들은 관람을 삼가라고...

그렇게 위험하단다.

명색이 수만 명의 사람들이 뒤엉켜 살던, 그래도 마을인데.

세상의 어떤 마을에서 저런 여행 제한 공고문을 붙이던가말이다.

 

 

이곳 지하도시는...

아직도 발굴이 계속 진행되고 있지만,

현재까지 밝혀낸 바로는 지하 20층규모에 120m 깊이이고

추정되는 최대 주민 수용규모는 대략 30,000명 정도.

현재의 규모로도 소도시의 인구숫자와 맞먹는 작지않은 크기이다.

 

 

여기 지하도시에는 그야말로 없는 것 빼고는 다 있다.

주민들이 삶을 영위하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인프라가 빠짐없이 완비되어 있다.

개인거주에 필요한 모든 설비와 공간은 물론이고,

학교에, 교회에, 회의실에, 우물에, 죄인을 수용하기위한 유치장, 환기시설,

그리고 가축 수용시설에 심지어 공동묘지까지.

 

 

지금이야 만능 도깨비 불인 전깃불로 지하도시를 밝히지만,

옛날의 그 시절에는 기름불을 사용했으며,

지금도 불을 밝혔던 자리와 당시의 검정들이 세월을 밝히고 있다.

 

 

각 층마다 약간의 경사를 두고 있으며,

또한 넓은 공간과 허리를 굽혀야 겨우 통과 할 수 있는 작은 공간을

골고루 섞어 배치가 되어 있는가 하면,

 

 

대부분의 길들은 불규칙적인 곡선으로 이루어져서

초행길의 사람들은 절대 길을 찾을 수 없다고.

그래서 지금도 전문 가이드를 대동하지 않고는 출입이 통제된다.

 

 

어떤 길은 대단히 좁아서 평소에 관리못한 몸매를

머나먼 지하에까지 와서 한탄할 수도 있다.

이는 모두 외부의 침략시 적들의 진입에 지장을 주고

시간을 벌어서 도주를 원활히 하기 위한 고도의 사전 설계라고.

참으로 살기 어려운 시절이었나 보다.

적을 막기위한 나의 불편함을 도시 계획으로 채택했으니 말이다.

 

 

대부분의 풍경이 흡사 위내시경 촬영화면과 비슷하다.

고개를 숙였다가 다시 펴고,

팔자 걸음으로 활보하다가 다시 움츠려 조신하게 걷고.

위, 아래 그리고 벽의 측면을 끊임없이 주의하며

지하로, 지하로...

 

 

그렇게 지하도시는 지하 8층까지 내려간다.

현재 지하 20층까지 발굴이 끝났지만

관광객들의 안녕을 위해 지하8층(50m) 까지만 개방한다.

 

 

 

월남전때 월맹군은 수백 킬로미터의 땅굴을 파서

미군에 승리를 거뒀다고 하는데.

여기 데린구유는 바위굴을 팠으니 그 시대의 대단함이란...

하긴 인류 최초의 철기 도구를 개발한 문명이 히타이트 문명이라는 것도 우연이 아닐 듯.

 

 

카파토키아에는 오래된 교회가 약 600여개나 남아있는

기독교의 성지와도 같다.

그것도 이렇게 산재하는 지하도시와 연관이 없지 않을 듯.

데린구유의 교회!

 

 

동굴 곳곳에는 외침을 대비한 여러 종류의 안전장치들이 마련되어 있다.

500Kg정도의 원형돌을 구석 구석에 비치해 뒀다가

유사시에 그 돌을 굴려 통로를 차단하는 방패시스템이 있는가 하면,

끝이 차단된 통로를 만들어 시간을 끄는 유인 시스템,

그리고 통로의 크기를 최소화하여 다수의 군대가 한꺼번에

들이 닥칠 수 없도록 하는 수송저지 시스템에 이르기까지...

 

 

환기 시스템이 얼마나 훌륭한지 지하도시를 누비는

시간내내 호흡곤란이나 공기가 탁하다는 어떤 기분도 느낄 수 없었다.

물론 현대에 와서 공기정화를 위한 어떤 별도의 시설도 한 일이 없다고.

일천 수 백 년이 지난 지금도 그 당시의 공기 역학적인 그 어떤 시스템이

훌륭히 작동되고 있다는 반증.

 

 

30,000여 지하주민들의 생명수 였을 우물,

하지만 지금은 물이 세월 속으로 증발되고 없다.

 

 

폐소 공포증을 소유한 사람은 조금 불쾌할 정도로

협소한 통로, 이 역시 그들의 생존 지혜다.

도시의 길이 좁건 넓건 지하도시를 다니는 내내

사실, 기분은 그렇게 상쾌하지는 못했다.

단지 많이 앞서가신 선현들의 대단히 흥미있는 주거지를 본다는

그 호기심이 훨씬 더 컸다는 핑계가 없었다면

지하도시의 음습함과 묘한 불안감,

그리고 지상으로부터 점차 멀어진다는 일종의 절망감을 부인할 수는 없었다.

 

 

까마득히 올려다 보이는 저곳이 30,000여 생명의 숨구멍이다.

환기구,

음식조리시에 발생하는 연기 때문에 취사는 주로 밤에만 이루어 졌다고.

 

 

 

여기 데린구유의 지하동굴의 총연장길이는

30km가 넘는다고 한다.

그 길의 모습과 용도 그리고 효용성은 그 길의 길이보다 훨씬 다양하다고.

주민들의 편리성도 최대한 고려해야하고

침입객의 불편성도 예상해야하는 모순적인 설계를 해야했을

그들의 애환이 어제처럼 눈에 선하다.

 

 

하나하나 모든 공간이 투박한 연장으로

긇고 쪼아서 그 돌부스러기 하나 조차 일일이 지상으로 옮겨 처리했을.

비어있는 공간만큼 잘라내었을 그들의 피와 땀,

지하도시를 보는 시간이 누적될수록

그들의 모습이 점점 눈물겹다.

 

 

 

데린구유, 여기는 그저 스쳐보고 지나가는 그런 곳이 아니다.

그들의 삶을 보존하기 위해 하늘을 포기한 곳.

세상의 이목 속에서 몸을 숨겨야만 비로소

그들의 가족과 그들의 고귀했을 신을 지켜낼 수 있었던 곳.

그들에게 존재의 충분한 이유였을 신의 모습조차 애처롭다.

왜 그들의 신은 하늘을 포기하지 않고도

그들이 충분한 삶을 살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지 않았을까.

그렇게 모질게도 당신의 어린 양들을 철저히 시험해야 했을까.

 

 

 

지하 8층까지...

내려갈때는 일천 수백년이 걸렸는데,

지상으로 올라 올 때는 불과 십분도 안걸렸다.

지상의 공기가 이렇게도 신선하고

하늘의 구름꽃이 이렇게도 이름다왔던가.

 

 

사람은 모름지기...

햇빛가득 깔린 땅을 밟고 살아야하고,

태양볕에 데워진 공기를 머리에 마음껏 이고 살아야한다.

사람도 끊임없이 광합성을 한다는 말이다.

왜 아니겠는가, 사람도 잎을 만들어 아름다운 꽃을 피운다.

물론 아나톨리아의 맹렬한 열기와 참혹한 추위로부터 벗어나는 데는

지하공간만한 경제적인 시설도 없다.

그러나 그들의 지하 20층 공간은 살기위한 절망일 뿐이다.

 

 

터키에 오래 거주했던 사람들이 터키인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터키인 그들의 완고한 폐쇄성이라고 한다.

즉, 눈에 뻔히 보이는 잘못을 하고도 그 잘못을 결코 인정하지 않으려 하는...

설령, 직장에서 해고를 당할 망정 자신의 과오를 쉽게 수긍하지 않는 완고함.

 

나는 터키인의 그런 완고함을 그들의 역사에서 쉽사리 찾으려했다.

무려 500여년이 넘는 세월동안 주변 국가를 다스려왔던 제국의 자부심.

그런게 민족의 원형질로 남아서 오늘날의 완고함으로 자리잡았을 것이라는...

어쩌면 나의 착각일지도 모른다.

 

데린구유를 보고나서...

나는 그것이 나의 착각이었을 가능성에 무게중심이 급격하게 쏠리고 있다.

그들은 500년이 아니라

훨씬 그 이전인 일천 수백년 전부터 세상을 등지고 돌아앉아서

그들만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그들만의 대화에

길들여진 그들만의 원형질이 있는 것은 아닐까.

 

물론 아무런 근거도 없다.

어차피 지나가는 과객의 논거 전혀없는 가설이기 때문에...

그러나...

데린구유,

거기에는 참으로 생각이 많다.

 

 

 글 & 사진

오뉴월 햇볕만큼 지하실도 싫어하는

김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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