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둘레길!
오늘(2012년 5월 25일)은 지리산 둘레길 역사에 있어서
아마도 기념비적인 날이 될듯하다.
2007년 3월부터 우연한 걸음마를 시작하게 된 둘레길에,
5년여 세월동안 주민들의 땀과 정성을 발자욱마다 아로새겨 드디어 오늘,
총길이 274km, 16개 코스, 그 환상(環狀)의 고리를 마침내 온전히 연결하여
마지막 방점을 찍기 위해 합동 개통식을 하는 날!
3개도(道-경남, 전남북), 5개 시군(市郡-남원, 함양, 산청, 하동, 구례), 20개 읍면, 117마을의
숲길, 농삿길, 마을 고샅길을 하염없는 베풂으로 빌려서
한 땀 한 땀 손과 발로 여미고 쌓아서 만든 길.
소관부처인 <산림청>과 <사단법인 숲길>에 축하의 마음을 전한다.
무엇보다, 조건없이 베풀고 나누어 오늘의 7백리 길의 소중한 초석을 놓으신
마을 주민들에게 가장 큰 갈채를 보내야 할 듯.
그리고 이제부터는,
그 분들의 마당채 한가운데를 빌려쓰는 염치없는 우리 과객들의 몫이다.
풀포기 하나, 꽃송이 하나, 열매 하나
내 살처럼 소중히 간수하고 보존해야 할 것이다.
작년 가을,
가을이 소복히 쌓여 그토록 싱그러웠던 어느 날,
둘레길 10코스를 뿌듯하게 갈무리하고
<다음>을 위해 가슴에 담아 두었던 10코스의 종점이자 11코스의 시작점.
하동호!
봄이 익을대로 익어 만삭의 몸부림을 치는 5월의 중순,
계절병을 치료하고자 다시 찾은 하동호는
사뭇 가을의 정경과는 또 다른 모습이었다.
항상 그렇듯 시작은 설렌다.
엄청나게 새로운 뭔가를 불현듯 볼 수 있을 것 같은 왕성한 기대감!
먼 발치에서부터 준비한 행장을 메고
간다! 둘레길 11코스로!
둘레길 11코스는 하동군 청암면을 거쳐가는 구간이다.
여기 하동호에서 시작하여,
평촌마을-화월마을-관점마을-명사마을-상존티마을-존티재-동촌마을을 지나
삼화실 마을에 이르는 11.5km의 아늑한 길.
마을의 이름에서 보듯 우리네 오래된 외갓집 같은 친숙한 마을들과
어제 걸은 듯 익숙한 길들을 도란도란 정담 섞어가며
그야말로 마실가듯 걸을 수 있는 길.
반갑다. 시작점 입구에 있는 둘레길 휴게소.
둘레길 지도라도 하나 얻으려고 들어 갔는데.
"지도 없어욧!"
돌아 나오는 답변에 따뜻한 온기라곤 없다. 악센트도 많이 강하다.
지갑을 열려고 들어온 사람이 아니라는 뜻이다.
뒤돌아 나오는 나의 뒷통수에 뭔가가 와서 꽂히는 느낌!
어떤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많이 죄지은 기분이다. 아침부터...
많은 길을 다니다 보면,
그보다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사람마다 그 색깔이 다르듯 생각도 다를 터.
서글픈 기억은 싹 지우고 씩씩하게 나의 길로 출발~!
시골길을 다니다 보면,
너무나 많은 폐가를 만나게 된다.
대부분은 사람이 살다 어느날 갑자기 순간적으로 다른 별로 떠난 것처럼,
어제까지 살던 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
지금 당장 지붕이나 손보고 들어가 살아도 전혀 불편하지 않을 것 처럼.
주인 떠난 마당엔 대책없이 방초만 지천이다.
하늘도 아름답고, 바람은 더 없이 착하고
그리고...
길도 싱그럽다.
참 좋은 날이다.
하동호에서 끊긴 물줄기가 다시 개울물을 모아
정갈하게 마련한 횡천강.
오염원이라고는 단지 나그네들이 흘리고 지나가는 먼지 몇 점 뿐!
여기서 수질의 급수를 따진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강변에 만든 마을 운동장.
주민들의 체육대회를 준비중인듯 하다.
내일이면 저 운동장엔 축제의 함성들이 가득할 것이다.
테이블마다 정성어린 음식들도 가득하고.
웃음소리와 행복은 이 봄의 진초록 만큼이나 무성할테고.
그러나 그라운드가 인조 잔듸라는 것은 어째 좀...
피곤한 사람은 쉬어가라고 손짓한다.
하지만 아직은 쉬어갈 만큼 피곤한 상태는 아니라서 눈으로만 휴식.
평촌마을은...
청암면의 면 소재지이다.
즉, 청암면에서 제일 번화한 곳이라는 이야기.
목욕탕도 두개나 되고,
시골마을, 시골식당, 시골다방...
정겹다~
들판 곳곳에 농사준비가 한창이다.
부지런한 사람은 벌써 모내기를 했는지 이앙한 흔적도 있고
보온 못자리와 지난 가을의 흔적도 미련처럼 남아 있다.
지난 가을이 벗어두고 간 묵은 껍질들의 흔적들.
그러나 초록들은 아랑곳없이 자신들만의 봄을 치열하게 밀어 올리고 있다.
이런 계절엔...시골길이 더러는 어렵다.
바쁘고 바쁜 계절,
만나는 농민들마다 괜히 미안하고,
지은 죄도 없는데,
그 분들의 시선에서 가급적 멀리 벗어나서 걸어야 할 것만 같은...
횡천강변을 걷는 둘레꾼들이 제법 있다.
오늘은 5월 중순의 주말,
그들이 오늘 이 곳을 찾은 까닭은 나와 똑같다.
봄바람이 밀어 부치는 초록이 너무나 예쁘다는 이유하나.
꽤 오래 전부터 횡천강을 연결했을 초현대식 교량,
그 이름도 현란한 "징검다리"
눈에 익을대로 익어 있지만 요즘 건너보기는 쉽지않은 다리다.
도강준비!
이 땅의 한많은 숏다리들을 충분히 배려한 최첨단 다리다.
보폭이 진저리나게 좁은 백성들도 충분히 건널 수 있는 간격,
많이 고맙다!
빨래하시는 할머니,
한참을 서서 구경을 하는데, 할머니께서 하시는 말씀,
"흙 묻은 작업복인데,
비누도 없이 그냥 흙만 털어내는기라예~"
무슨 의미일까?
그랬다.
할머니는 이 깨끗한 물을 조금이라도 오염시키는게 미안해서
비누도 사용하지 않고 농삿일에 묻은 흙만 털어내시는 거라고 애써 변명하신다.
누군가가 그랬다.
횡천강은 상수원 보호 지역이라고...
그런데...
이런 분도 계시다.
자기가 사랑하는 차를
아예 통째로 강물에 담가놓고 세차를...
여기는 하동군 청암면 평촌마을, 이른바, 청정지역 1급수 지역!
길, 참 예쁘다.
조금 더 이른 계절이었다면 벚꽃이 황홀했을 것이다.
하늘도 땅도 온통 순백의 세상,
내년 봄, 벚꽃철에 다시 한 번 이 곳을 찾아야 할 명분을 만들었다.
이처럼 좋은 길은 차량 전용이다.
사람은 걸어서는 못다닌다.
그래서 옆길로 벗어나서 햇볕을 마구 맞으면서 가야한다.
걷는 사람 "관점"에서도 좀 생각해주시지~
얼마 안가서 관점 마을인데.
제법 걸어 왔다.
항상 그렇듯 지나온 거리는 뿌듯하다.
남은 길은 아득하지만...
그래도 가야지,
봄이 이처럼 화사하게 격려하는데...
관점마을...
둘레길을 갈 때는 그 마을의 목소리 큰 고객이 아니라
점잖은 손님의 "관점'으로 가야한다.
손님은 항상 물건하나 만지는 것도 조심스러워야하고
어느 것 하나도 함부로 취급해서는 안될 뿐만아니라
없는 듯 가서 안간 듯 다시 돌아와야 하기에...
올 해 갓 틔운 새싹 사이로
처절하게 돌아누운 지난 가을의 잔해...
그저 덧없이 가고
그리고 그저 어김없이 오는 것이다.
세월은...
밤꽃도, 감꽃도...
이 계절만의 꽃을 새로 준비한다.
새로운 2세를 위해, 새로운 가을을 위해,
응당 그래야 하는 것 처럼. 누가 시키는 것 처럼.
조금 일찍 일어나서 준비한 이들은...
벌써 씨를 만들고 살을 더해간다.
이 풍성한 햇살을 담아 어느 순간 과일이 되고 자양분이 되고
그러다 이 봄날의 화려함도 어느덧 지난 계절의 흔적으로 남을테지.
발자국마다 봄이 널렸다.
눈길마다 봄꽃이 함성을 지른다.
봄은 지금 사방에서 혼수상태다.
고객은 취기를 견디다 못해 질식을 한다.
일편단심 민들레도, 과년한 철쭉도,
백사장 떠나온 해당화도, 그리고 베고니아도...
어느하나 질 기세가 아니다.
다들 잘 나고 예쁠 뿐이다.
봄날의 까마득한 패자는 어설픈 나그네 뿐이다.
불두화(佛頭花)...
부처님 머리의 육계(부처님 머리위의 볼록볼록하게 솟은 부분-지혜를 의미)를
닮았다고해서 붙여진 이름.
암술도 수술도 퇴화되고 없다, 무성화(無性花)라는 얘기,
물론 벌도 나비도 안 온다.
서글픈 꽃이다.
남성도 여성도 아니고 그저 꽃일 뿐,
화사함을 보여주는 것외에는 아무런 꽃의 역할을 못하는...
그래서
남성도 여성도 없고 오직 진리만 존재하는 사찰의 꽃...
꽃말도 제행무상, 은혜, 베풂인 꽃,
항상 생각을 많이 하게 만드는 꽃이다.
불두화는 그 꽃이 상징하듯 4월 초파일,
부처님 오신 날을 전후하여 그 절정을 이루는 꽃이다.
비슷하게 생겼지만 수국과는 완연히 다른 꽃!
사시사철 지지 않는 외래종 꽃...페트꽃!
이런 꽃을 심은 사람은 대부분,
가정교육이나 학교공부가 부실한 사람이 많다고 한다.
물론 양심도 제법 불량하고.
이 꽃 만큼은 누구나 꺾어가도 아무 말 하지 않는다는데...
인도도 없는 길...
오로지 차량들만 염두에 두고 만든 길...
제법 긴 시간을 차량들과 어깨동무를 하고 걸어야한다.
둘레길이 그렇게 가라고 하면 어쩔 수 없이 가긴 하지만
많이 불편하다.
70킬로 속도의 네바퀴 짐승과 고작 10킬로도 되지 않는 두발 인간이
어깨를 나란히 같이 가라고?
단언컨대,
명품 걷는 길이 되려면 이런 길은 무조건 줄여야 한다.
차량들과 위험한 동거를 즐기기위해
이 먼 천릿길을 찾아올 사람은 단연코 없을 것이므로.
불편한 차도를 팽개치고 다시 찾은 둘레길 본연의 길.
그래, 걷는 길은 모름지기 이래야지!
눈이 호강한다.
신록과 진초록이 이루는 화음도 곱다.
발밑도 평화롭다.
풀향과 꽃향기는 진작부터 덤이다.
사유지를 내어주신 분들의 깊은 향기도 마음으로 느끼고...
무얼 해도 좋은 계절이지만
걷기에는 정말 좋은 계절이고 오늘이다.
오르막의 적당한 곳에 자리한 쉼터.
여기까지 저 무거운 인공 구조물을 옮겨왔을
그 분들의 노고도 한 번 쯤 되짚어보고...
11코스의 마지막 고빗길.
고지가 바로 저기다.
산길에서 정점을 찍는다는 것만큼 통쾌한 일도 없다.
왜냐고?
더 이상 오르막이 없다는 얘기,
등산화 끈을 다시 한 번 조이고 약진 앞으로~!
존티재...
청암 사람들이 숨을 할딱거리며
적량고을 삼화초등학교를 다녔던 다리아픈 유년의 길,
적량 처녀와 청암 총각이 설레는 가슴으로 넘나들던
인연과 사랑의 고갯길.
존티재를 지키는 장승들이 두 눈을 부릅떴다.
고작 이만한 높이에 숨을 헐떡인다고.
여장군은 혀까지 낼름거린다.
겨우 그 정도 걷고 자랑질이냐고.
옛날엔 작은 아이들도 매일같이 제 집 드나들듯 넘어 다녔는데...
"............"
계속해서 꾸준하게 올라갔던 길,
이제는 급하게 내려간다.
한참을 내려 간다는 것은 그만큼 많이 올라 갔다는 반증.
사실 산길의 내리막도 그렇게 반가운 것은 아니다.
은근한 불편함, 산길은 어떤 길이건 결코 편한 길은 없다.
바야흐로 기다리던 종점이 가깝다.
30릿길이 끝나간다는 말이다.
솔숲의 향이 끝나간다는 아쉬움과 또 하나의 간이역을
맞이한다는 뿌듯함이 같은 부피로 다가온다.
삼화실 마을, 삼화실 초등학교...
삼화실마을은, 세개의 마을 즉,
이정, 상서, 중서마을을 일컫는데,
이는 이정 마을의 배꽃<梨花>, 상서마을(도장골)의 복숭아꽃<桃花>,
그리고 중서마을의 오얏꽃<李花>의 3화(三花)를 말한다.
그리고...
여기가 11코스의 끝점이다.
아니다...
12코스의 시작점이다.
청암은...
예로부터 풍수지리상으로 국가3재(三災)가 없다는 땅이다.
흉년, 전염병, 난리가 없다는 안녕과 평화의 고장.
좋은 계절 5월에 걸었던 청암땅 11코스도 역시
아늑하고 편안한 그런 길이었다.
11코스에서 얻고가는 이 풍성한 영적 에너지의 유효기간이
얼마나 갈지는 지금은 알 수 없다.
한 달이 될지 두 달이 될지
그 약효가 소진되는 날 나는 여기 삼화실 마을에서
다시 신발끈을 조일 것이다.
지리산,
그 좋은 산, 이 좋은 계절,
그곳에 아름다운 길,
둘레길이 있어서 마냥 좋다.
글 * 사진
외딴 산길에서도 보약을 찾아내는
김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