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카파토키아의 여명(黎明)이 오른다.
카파토키아가 위치한 곳은 아나톨리아 고원 지대이다.
아나톨리아는...그리스 말로 "해뜨는 곳'이라는 뜻이다.
그리스에서 보면 아나톨리아는 해뜨는 동쪽 지역이기에...
봄의 문지방을 이제 막 넘고자하는 터키 겨울의 끝자락,
카파토키아의 아침공기는 폐부까지 상쾌하다..
미지의 설렘을 안고 잠을 뒤척였던 지난 밤,
그것은 야릇한 호기심의 불면이었다.
오늘은 하늘을 나는 날.
날개도 없이,
천사도 아닌데...
새벽 4시 기상,
하지만 부담은 크게 없다.
어차피 한국에 있어도 일찌기 기상해 있을 시간이므로.
그리고 오늘같이 좋은 날, 늦잠을 잔다면 그는 진정한 여행자가 아니다.
선잠을 서둘러 털어내고 호텔을 벗어나 아직 간밤의 그림자가 가득한
카파토키아의 마을 길을 달린다.
호텔에서 우리를 픽업하는 것은 "돌무쉬'라고 부르는 승합차다.
올빼미의 눈처럼 동굴집의 불빛이 어둠의 빈틈을 비집고 나오는 시각.
오늘은 키파토키아를 통째로 보는 날이다.
그 숲을, 그 산을 온전히 보려면
그 숲에서, 그 산에서 나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산보다 그 숲보다 훨씬 더 높이 올라가거나...
그래서 그토록 아름답다는 카파토키아의 온전한 모습을 보기위해
오늘은 카파토키아의 하일라이트,
열기구 투어를 한다.
하늘로 높이 오른다는 말이다.
아침식사는,
벌룬 투어회사에서 차려준 간이식으로 요기하거나
아니면 현명한 사람들은 미리 준비한 컵라면등으로 해결하고.
열기구투어는...
원한다고 해서 누구나 할 수 있는게 아니다.
역시 여행자 개개인이 전생에 좋은 일을 많이 해야하고
그래서 하늘이 비로소 허락해야 가능한 ...
이렇게 이른 아침에 기구를 띄울 수 밖에 없는 까닭은,
이처럼 해가 뜰 무렵에 지표면의 기온이 오르면서 상승기류가 형성되어
대류가 안정되므로 기구가 안정적으로 뜰 수 있다고.
어쨌건 우리 일행들은 다들 착한 전생을 갖고 있었고
하늘의 승인을 받은 셈이다.
오늘의 일기는 열기구 운항에 최상의 조건을 갖췄다고...
여러 열기구를 띄우기 전에, 하늘의 상태를 점검하기위해
미리 띄운 탐사 비행선이 알려온 하늘의 상태에 의하면...
오늘은 하늘이 엄청 도와 주는 날.
여러모로 우리는 복받았다.
그래서 오늘은 가장 많은 열기구가 이곳 카파토키아의 하늘을 수놓을 것이라고.
열기구 투어는 약간의 추가 경비가 필요하다.
대체로 1인당 160~170유로(한화250,000원)정도!
하늘에 체공하는 운항시간은 1시간 남짓.
하지만,
나의 여행 수칙은...
여행지에서의 기념품 구매는 최소로 하되, 이색 체험은 최대로 하는 것,
그러기 위해서는 다소의 출혈은 어쩔 수 없는 일.
성질급한 팀들은 벌써 승천중이다.
그렇지 않으면 이무기라도 될듯이...
기구 하나당 20~30여명 정도가 동반 탑승을 한다.
절대 그럴 일도 없고 있어서도 안되겠지만
잘 못되면 한 날 한 시에 어디론가 같이 갈 사람들이다.
주변에서는 온통 기구 속에다 예열중이다.
머리를 맞대고 꼭짓점을 다툰다.
비로소 용이 되고자 하는 세계각국의 천년 이무기들이 모여들고,
물론 나도 등룡문에서 내가 탈 기구를 가슴 설레며 기다리고.
우리 일행을 태우고 창공을 헤맬 우리 열기구의 조종사.
얼마나 알차고 야무지게 지상의 장관을 보느냐 하는 것은 오로지
이 분의 능력과 배려에 좌우된다.
나름대로 이 분야의 베테랑이고 인정받는 파일럿이라고...
여러모로 우리는 복 받은 팀이다.
나를 바야흐로 용으로 만들어줄 우리의 기구,
액화가스로 예열을 해서 기구 내부의 공기를 데우면
그 가벼워진 공기의 상승으로 기구는 원하는 높이만큼 떠 오른다.
드디어~하늘로~!
날개도 없다. 창문도 없다.
그래도 하늘로 간다.
물론 낙하산도 없다. 왜냐고?
날아 올라가는 데는 낙하산이 필요 없으므로...
낙하산은 떨어질 때나 쓰는 물건인데 우리는 떨어질 일이 절대 없으므로.
기대와 흥분이 절반, 그리고 약간의 불안감이 절반.
이러한 흥분은 처음이다.
다 조물주 탓이다.
인간에게 날개를 만들어 주지 않은...
뭔가 발밑이 허전하는가 싶더니,
어느새 두~둥실...
떠 올랐다!
확실히 비행기와는 완전히 다르다.
기우뚱, 그리고 이따끔씩 나풀대는 듯한,
그리고 비행기에서는 절대 열 수 없는 창문도 일찌기 열려있고,
그래서 하늘의 소리, 하늘의 냄새, 하늘이 전해주는 체감온도까지,
창공의 모든 것이 리얼이고
오감의 모든 것이 곤두섰다.
사람들이 남산 타워에 왜 오르고
인간이 왜 악착같이 바벨탑을 쌓아 올렸는지...알 것 같다.
내 발아래서 흔들리는 세상,
내 시야 아래에서 가소로와지는 지상의 모든 것들.
그래, 높다는 것은 좋은 것이야~!
눈 높이를 맞추며 동행하는 주변의 열기구들,
더러는 더 높은 고도를 유지하며 앞서가는 기구,
하늘에는 하늘 나름대로의 동네를 형성하며
그들끼리의 동선을 만들어 나가고 있다.
어느새 하늘에는 열기구 꽃들이 만발했다.
까마득히 높이 올라가있는 기구는 밑에서 보아도 아찔하다.
우리도 저만큼 올라가려나?
각각의 기구에서 보는 눈 아래의 풍경은 제 각각이겠지만
이 흥분감은 다들 비슷하지 않을까.
지상에서의 2차원 시각으로는 쉽게 볼 수 없는 장면들,
섬세함과 발자국의 무게감은 없지만
좀처럼 보게 힘든 카파토키아의 광활한 풍경들,
열기구 투어를 선택한 것은 참 잘한 결정이었다.
고소 공포증을 염려했는데,
이색적인 감동이 앞섰는지 두려움은 까마득히 사라졌다.
먼저 가신 이들의 마을,
죽은 자가 있다는 것은 산 사람들도 가까이 있다는 의미.
살아 있을 때는 줄서기를 싫어한 분들도
멀리 저 곳으로만 가면 어김없이 줄을 서야한다.
빨간 기구, 파란 기구, 찢어진 기구...
찢어지면 큰 일이다. 지구 건너편 한국 신문에도 날 일이다.
그들은 안전하게 어깨를 나란히 하고 하늘을 누빈다.
멀리 붉은 계곡, 로즈바레 협곡에도 눈높이를 같이하고,
무스타파 파샤 계곡도 손에 잡힐듯 다가오고.
정말 카파토키아는 광활하다.
누군가가 했던 말,
카파토키아만 제대로 봐도 일주일 이상 걸릴거라고...
멀리 우치히샤르 요새가 섬처럼 떠 있다.
조종사가 지상 2,000m란다.
한라산 지리산 보다도 더 높다는 얘기,
온도마저 다르다.
하지만 처음 겪어보는 이 아침의 절묘한 경험.
은근한 공포감 위에 떠오른 감동은 벅차다 못해 황홀하다.
수 많은 동굴 가옥이 허물어지거나 비어 있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실제로 거주하는 곳.
터키 정부에서 안전을 고려하여 이주 정책을 펴고는 있지만
그 호응도는 미미하다고.
어디든 다 마찬가지이지만 아마 여기도 얼마 안되는 이주비 탓일듯.
집이며, 창고며, 교회며, 회의소며...
그들의 신앙과 생명을 보호하기위해 치열하게 깎고 다듬었을 구조물들,
단순히 지나가는 나그네의 지성으로 판단할 내용은 아닐 터,
그들 삶의 애환과 피나는 인내의 흔적들이다.
지상 2,200m!
아직도 머리에 백색 겨울을 깊게 눌러쓴 산들도 발밑으로 들어오고,
승천객들은 고공의 시린 공기로 인해 옷깃을 더욱 여민다.
더 이상의 높이는 위험하다는 조종사의 멘트를 아쉬워하며,
카파토키아의 대부분이 내 발아래에 있다는 감탄!
그것은 희열이었다!
철부지 나그네들의 아쉬움을 간파한 조종사의 최후의 배려로
지상 2,400m!
바야흐로 어설픈 용들이 되어버린 과객들,
다 들 말을 잃었다.
알게 모르게 신음같은 국적불명의 감탄사들만 간혹 새어나오고.
왜 인류가 그 가혹한 댓가를 치러가면서도
비행기를 만들고 우주선을 만드는지....
서서히 하강한다.
이미 청각기능은 감각을 잃었다.
펌핑을 할 겨를도 없다.
고도 변화를 몸으로 느끼면서도 이미 지성은 패닉 상태다.
이 풍경을 애써 외면했거나 하늘의 거부로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정말 애석한 일이다.
카파토키아의 실핏줄과 그 사람들의 동선이 한 눈에 보인다.
그 사람들이 대대로 머리에 이고 살았을
그 하늘을 날아 다니면서 그들의 내력을 나그네의 시각으로 본다는 것,
그것은 과객들의 축복이다.
이 지구별을 간혹 훔쳐본다는 외계인들의 감흥도 이럴까...
어느덧 눈에 익어버린 괴레매 골짜기도,
파샤바 계곡도 괜히 정겹다.
척박한 땅에 살 떨리게 마련한 그들의 한 뼘 땅들도 눈물겹고.
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이러한 독특한 지형구조들은 수백 년, 길어야 천 년 이내에
현재의 모습을 잃게 된다고 한다.
비와 바람, 풍수에 의한 차별 침식이 지나치게 과속화되고 있다고...
제 역할을 마쳐가는 열기구들이,
꽃잎처럼 지고 있다.
뒤늦게 찾아온 의식으로 청각도 되찾고
기구 안의 사람들도 제 정신을 추스린다.
좌측 시선에는 겨울이 살고 있다.
그래서 먼 길 찾아온 나그네들의 시린 가슴을 채근하고.
오른쪽 시선에서는 이제 막 겨울 외투를 벗어던진 봄이 산다.
그들은 초록 양탄자를 깔아두고 나그네들을 붙잡는다.
어느 장단에 춤을 춰도 나그네는 즐겁다.
나그네의 특권이다.
한 시간 남짓 떠나온 땅이 그리워
벌써 하강을 서두르는 기구들이 발 아래에서 까마득하다.
내려올수록 체감 온도가 다르다.
고공에서 감내했던 한기로 어떤 이들은 콧물도 훌쩍이고
또 어떤 이들은 아직도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다.
날개 없는 이들의 고향이 바로 발아래다.
비상(飛上)은 다들 비슷한 곳에서 했지만
조금씩 다른 창공을 비상(飛翔)하다가 착륙은 너무나 다른 곳에서
하는게 여기 카파토키아의 열기구이다.
조종하는 사람조차 정확한 착륙점을 알 수 없기에.
착륙점은 그 날의 바람이 결정한다.
착륙 지원팀이 내려오는 기구를 향해 뛰어온다.
그들은 하늘에 떠 있는 열기구를 따라 지원 차량을 몰고 쉬임없이 뒤따라온다.
한 개의 기구당 대체로 조종사를 비롯해서 5~6명이 한 조를 이룬다.
이들이 서로 팀워크를 잘 이루어야 그날 운항이 순조롭게 끝난다고.
하강하는 기구를 유도하여 운반 차량 위에 사뿐히 안착시키고,
공기를 빼고 부피를 줄여 소속 회사의 창고로 옮겨
다시 엄격한 정비를 마치고 다음 운항에 대비한다.
한 눈에 보기에도 힘든 과정이다.
가격이 비싼 이유가 있다.
그만큼 값어치도 있었고.
그리고...
용이 되다 만 이무기들을 위해 마련된 엔딩 세레모니.
터키산 샴페인과 와인!
승천했던 성취감과 무사히 귀환한 안도감, 그리고
용이 되지 못한 아쉬움까지 섞인 탓인지
모든 사람들의 표정이 다양하다.
그러나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들, 참으로 좋은 경험이었다고...
우리를 이 나이에 하늘로 모시고 갔던 분,
하늘로 인도하는 존재를 우리는 천사라고 부른다.
오늘, 그는 우리에게 진정한 천사다.
열기구 파일럿 오즈구르씨!
그리고 개개인의 실명이 적힌 수료증.
한 시간 만에 깔끔히 끝낸 열기구 비행 수료증,
이른바 승천기념 확인서다.
이 수료증을 갖고서는 열기구 조종은 물론 못한다.
충격적인 감동은 여행이 끝나고 나서야 느끼기 마련이다.
참으로 아름다운 여행은 그 여행이 끝나고나서
집으로 돌아와 세상에서 가장 친숙한 베개를 베고서야
비로소 느끼게 된다.
카파토키아의 열기구 체험!
그건
내게 지나친 감동이었다!
글 & 사진
아직도 빗자루 타고 하늘을 나는 꿈을 꾸는
김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