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안(彼岸)!
사전적으로만 풀면"강의 건너편 기슭"이라는 지극히 단순한 의미일 수도 있다.
그러다 종교적으로 다가가면,
이승의 번뇌를 해탈하여 열반의 세계에 도달할 때
비로소 이를 수 있는 바라밀다(波羅蜜多)의 경지를 말한다.
인간이 살아서는 쉽사리 다가갈 수 없는,
힘들고 고단한 정토(淨土)의 영역이다.
그래서 일까,
압록강은...
압록강의 피안은 그래서 그토록 건너기 어려운 곳일까,
어리석게 잃어버린 우리네 제국터를
주인이 아닌 힘없는 나그네의 몰골로 유랑하다가
문득 당도한 물가,
압록강변에 섰다.
압록강의 중상류변에 위치한 길림성(吉林省) 집안시(集安市),
그 옛날 고구려 땅의 튼실한 젖줄이었고
우리 신화의 애틋한 사연들이 끊임없이 탄생되고 소멸되어갔던,
그 모습 그 대로 고스란히 우리 역사의 현장.
압록강(鴨綠江)은...
그 물색이 숫 오리의 머리색인 녹색을 띄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수당서).
총길이 925km의 우리나라 최장의 강,
그 중 803km를 중국과의 국경으로 나누는 국제하천이자 국경하천이다.
양강도 김형권군 소재 명당봉(明堂峰-1800m)에서 발원하여,
물방울을 모으고 세류를 아우르다 급기야 백두에서
그 남상을 마련한 보혜천을 만나면서 세력을 더하고
장장 2,300릿길을 줄기차게 적시면서 세류와 지천을 엮어서
결국은 서해바다에다 그 육중한 짐들을 풀어 놓는...
우리에게는 비통의 강, 통곡의 강이다.
그나마 신들의 세상에서나 흐르는 비통의 강 아케론(Acheron)은
엽전 한닢만 쥐어주면 바닥없는 소가죽 배라도 얻어타고
건널 수가 있다는데...
압록강,
우리 민족의 비통의 그 강가에는
건너 편 기슭으로 실어다줄 뱃사공 "카론"도 없다.
죽음처럼,
우리가 언젠가는 숙명으로 만나야 할 피안의 땅,
자강도 만포시,
북한의 경제난으로 이미 경영권이 중국으로 넘어갔다고 전해지는
만포 제련소에서 나그네의 애간장처럼 끊임없이 쇳물을 녹이고 있다.
이 강물도 강심을 기준으로
한 쪽에서는 중국말로 흘러가고
그리고 반대편 쪽에서는 우리 말로 흘러간다.
물론 그 속에서 자라는 물고기도 한 쪽에서는 중국음식으로 포식을 하고
또 한 쪽에서는 주린 배를 움켜쥐고 입에 거미줄을 친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직접 잠수해서 확인 하지는 못했다.
우리 땅, 만포의 산은 대부분 벌거숭이다.
벌목 당시의 취지대로 빈 땅에 곡식을 심은 흔적도 없다.
국토 방위에 전념하느라 농사지을 인력이 없어서 일까,
아니면 지역 주민들이 살아 생전에 잘먹고 잘살기 위해
통곡의 강을 건너 만주로 갔기 때문일까.
강의 가운데에는 퇴적토가 만들어낸 섬들이 많다.
중국, 북한이 서로간에 출입을 제한하는 바람에
제대로 자란 원시림이 무성하다.
그런 주변을 둘러보고 보다 가까운 거리에서 압록강을 느껴보고자
물위를 달려보기로.
비록 통곡의 강을 건너 피안으로 데려다 줄 사공은 없어도
"압록"강이 아닌 압록강의 절반인"알루"강을 만나게는 해 준단다.
물론 엽전 한 닢으로는 안되고
세종대왕님의 윤허를 받아야만 가능.
힘들게 노를 저어 가야하는 바닥없는 소가죽 배 대신
바람같이 물보라를 가르며 북한의 국경으로 우리를 인도해주실
오늘의 카론 뱃사공.
이 분의 마음 먹기에 따라서는
우리가 오늘저녁 평양방송 아홉시 뉴스에 나올 수도 있다.
비록 배위에서이긴 하지만
우리 땅을 보는데 왜 이렇게 생경할까,
이 묘한 감흥은 무엇일까.
한강도, 낙동강도, 금강도, 영산강도, 다 아름답다.
그런데 보다 더 가까이 있는
그 강에서는 이렇듯 줄을 서서 쾌속 유람선을 타 본 일이 없는데,
특별히 더 아름답지도 않고,
그렇다고 해서 건너편 강기슭의 미답지를 직접 밟아 보는 것도 아닌데,
굳이 이 배를 타야만 하는 것처럼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처럼,
왜 이러는 걸까,
단 하나,
한 발자국이라도 더 가까이서 "그 땅"을 보고싶어하는.
묻어두고 온 조상님도 없고,
두고온 사랑도 "그 땅"에 없지만,
어이없이 갈라선 그들의 모습과 그들이 사는 속살을 보고자 하는.
본의 아니게 등을 돌리고 살아온
그들의 모습과 그들의 땅이 우리랑 얼마나 달라졌는지,
그래서 언젠가 만나게 될 그들과 과연 옛날처럼 살가운 형제가 될 수 있을지,
그걸 보고싶을 따름이다.
자강도 만포의 어느 시골마을....
많이 다를 줄 알았다.
우리의 시골 할머니 댁,
친구의 시골 외갓집과 전혀 다를게 없다.
뒷동산에는 밤이, 감이 햇살 깊이로 여물어가고
앞마당에는 대추나무가 늘어가는 제살 탓에 가지를 추스리는가 하면,
문전 옥답에서는 수수가, 옥수수가 묵묵히 가을 채비를 하고 있다.
산길을 스쳐가는 주민들의 모습도,
중턱에 세워둔 표지판들도 여느 시골의 그것과 다를 바 없다.
그들의 행색이 조금은 남루하고,
그들이 타고 가는 교통수단이 조금은 노후되었을 뿐.
손을 흔들어 그들의 반응을 애써 요구하는 여행객들이 오히려 어색하다.
만포는 북한의 교통과 공업의 요충지이다.
일제가 작정을하고 백두산의 목재를 강탈할 때는
목재의 중간 집산지이기도 했고.
지금도 중국의 집안(集安)을 연결하는 철도가 운행되고 있어서
수많은 광물과 목재가 대륙으로 쏟아져 들어간다고.
세상에는 많은 강들이 있다.
비통의 강 아케론이 이승과 저승을 이어 주기도 하지만
망각의 강 레테(Lethe)는 사람들의 기억을 지워 주기도 한다.
그 강은 모든 기억을 다 지워도 사랑의 기억은 지울 수 없고
또 그 강은 사랑까지도 지울 수 있지만 원한만은 지울 수 없다고.
그래서 결국에는 망각의 의자에 앉아야만
전생의 모든 기억을 지우고 새삶을 얻을 수 있다는데...
고구려도, 강건너 피안의 땅도 대대로 우리 삶의 일부 였다는 기억이 없었다면
아마도 그 강이
압록강이라한들 이처럼 경이롭지는 않을 터인데.
나머지 강물을 건너 저 산마루를 굽어 돌면
거룻배 엎어 놓은 듯한 철수네 순이네 옛집이 있지않을까,
저녁밥에 얹을 호박닢이 물기를 털어내고
상추쌈 언저리에 풋고추 서너개가 꼭지를 따면
할머니 치마폭으로 담아내는 된장국 내음이
함초롬히 마을을 덮고 있을 것만 같은...
강건너 기슭은 그렇게도 오랜동안 그립고
눈에 보일 듯 그러나 갈 수없는 "그 땅"에는
60년이 넘도록 까치도 울지 않는다.
압록강에 와서 기념사진을 찍는 사람들은 대부분 한국인이다.
하지만 여기 이 가족은 중국인이다.
그들에게 압록강은 원래부터 중국강이다.
그리고 그들은 말한다.
한반도의 국가는 어느나라이고간에 중국에 조공을 바치는 중국의 제후국이었다.
따라서 결코 남의 땅이 아니다~!
중국 역사 박물관에는 북한 지역까지
이미 중국의 강역에 포함 되어 있다.
우리는 많이 잃었다.
아마 지금, 이 시간에도 계속 잃고 있는 중인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그렇게 잃고도 잃음 그 자체를 모르고 있다는 점이다.
이미 찬란했던 고구려는 그들의 언저리 역사에 초라한 셋방살이로 들어 앉았다.
발해역사는 말할 것도 없다.
언제부터인가 그들의 역사 편입은 서서히 압록강을 건너고 있다.
항미원조전쟁(抗美援朝戰爭-중국에서는 6.25한국전쟁을 이렇게 부른다)때
모택동의 큰 아들이 이 전쟁터에서 전사한 뒤 부터 이미
그들의 길고도 교묘한 영토 확장은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들은 동해마저 인정하지 않는다.
그들의 지도에는 단지 '일본해'만 있을 뿐이다.
압록강, 호태왕비에는 압록강을 아리수(阿利水)라고 했다.
그들이 아리수를 넘어 역사의 황칠을 할 수 없도록 하는 것은
순전히 우리 시대의 우리 역할이다.
위정자들은 위정자대로,
강단에서는 강단 사학자대로,
철부지 여행객은 또한 그 나름대로,
부끄러운 "다음세대"가 되지 않도록 정신차려야 한다.
글 * 사진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을 참으로 아쉬워하는
김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