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맑게 하는데는 가을하늘 만한 것이 없다. 새파란 하늘을 올려다보면, 눈이 맑게 씻기는 느낌이다. 머리를 맑게 하려면 산에 가는게 딱이다. 나무들이 내뿜는 피톤치드로 샤워를 하다보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상쾌해지는 기분이다. 마음을 맑게 하려면... 산사(山寺)를 찾는 것만큼 좋은 게 없다. 맑은 계곡이 흐르고, 새들의 지저귐이 있는, 그런 자연 속에 포옥 안긴 곳! 나의 모든 것을 맑게 하기 위해 찾아간 곳! 그곳은 <석남사>였다.
<가지산 석남사>
석남사(石南寺)라는 이름은 가지산을 석안산이라고 했던데서 유래했는데,
석안산의 남쪽에 있다고 해서 석남사라 이름 붙여졌다고...
우리에겐 국내에 있는 절 중 가장 큰 규모의 '비구니 선원'으로 알려져 있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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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전국적으로 '길 열풍' 이 뜨거운데,
이곳도 입구에서부터 '나무사잇길' 이라는 예쁜 이름을 붙여 놓았다.
굳이 '걷는 길' 임을 강조해놓은 것은 뛰지 말라는 의미일까?
참 고마운 말이다.
절까지 9분만 걸으면 된다고 독려한다.
우리에겐 10분, 20분, 30분 처럼 10분 단위가 익숙한데,
굳이 10에서 하나를 빼 9분이라고 한 걸 보니,
생뚱맞게도 '홈쇼핑' 이 연상된다.
19900원, 39000원 처럼 100원씩, 1000원씩 빼서 가격을 책정하는...
20000원보다는 19900원이 "훨씬" 싸게 느껴지고,
40000원보다는 39000원이 "엄청" 저렴하게 느껴지게 하는 상술!
10분이라는 두 자리수가 아닌 9분이라는 한자리수를 내세우다 보니,
입구에서 석남사까지가 "억수로" 가깝게 느껴진다.
햇빛이 뜨거워도 나무가 양산 역할을 해주는 길.
참 좋은 길이다.
가슴을 후비는 좋은 말씀들이 곳곳에 눈에 띈다.
마음에 드는 한구절을 속으로 읊조리며 가다보면
더 좋은 구절이 나타나 앞 구절을 내려놓고 또 다른 구절을 마음에 담게 한다.
어느 나무 아래 앉아도 그 곳은 좋은 쉼터가 되어 준다.
가지런히 심어져 있는 쌈재료들!
공기밥 한그릇과 쌈장이 간절해지는 순간이다.
밭을 가득 메우고 있는 배추들!
올해 김장 걱정은 없겠다.
초록빛 터널을 지나다 보니,
역시 폐부 깊숙히까지 맑은 공기로 정화되는 기분이다.
그런데 이게 뭔가!!
전국의 명산에 가면 어김없이 볼 수 있는 일제의 잔재!
일제 말기 일본군이 한국인을 강제로 동원해서
군수물자인 항공기 연료로 사용하기 위해 송진을 채취한 자국!
깊은 상처를 안고도 지금껏 잘 살아주고 있는 소나무가 기특하고 고맙다.
어디서 날아온 씨앗 하나가 이곳에 정착을 했을까...
모진 세파의 흔적 옆엔
새생명이 자라고 있다.상처난 소나무로 인해 아팠던 마음이
작은 줄기 하나에 치유가 된다.
샛길로 난 흙길이 나를 유혹하지만,
일단 눈을 감기로...
무엇보다 석남사를 만나는 것이 우선이므로...
아쉽지만, 딱딱한 블록길로 계속 오르는 걸로...
마음 속 시계가 9분이 지났다고 알람을 울릴 때쯤
석남사가 얼핏 보이기 시작한다.
그런데, 그 앞에 넓게 펼쳐진 계곡에 더 눈이 간다.
깊은 계곡으로 둘러 싸여 있는 절!
천혜의 명당이다.
계곡을 가로지르는 다리너머 드디어 석남사의 전경이 보인다.
신라시대 (824)년 도의국사에 의해 창건된 절.
무려 1200년이나 된 절이다.
석남사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이 이 3층사리탑인데,
신라 헌덕왕 16년에 도의국사가 호국의 염원을 빌기 위해 세운 15층 대탑이었는데,
임진왜란 때 손실된 것을 1973년에 3층탑으로 복원하고,
스리랑카 사타티싸 스님이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셔다가
이곳 석탑 안에 봉안했다고 한다.
경내를 둘러보다 보니,
어디선가 향긋한 내음이 밀려온다.
향기를 추적해 찾아가보니...
범인은 만리향이었다.
강한 향기는 흡사 향수의 향기를 능가한다.
문득 이해인님의 시가 생각난다.
만리향 -이해인-
그
달콤한 향기는
오랜 세월 가꾸어 온
우정의 향기를 닮았어요.
만리를 뛰어넘어
마음 먼저 달려오는
친구의 목소리가
바람을 타고
꽃가루로 흩어져요.
고요하게
다정하게
어려서 친구와 같이 먹던
별꽃 별과자 모양으로
자꾸만 흩어져요.
꽃은 흩어지고
그리움은 모이고
우정은 영원하기를...
대웅전 뒤로 돌아가보면 엄나무 구유가 있는데,
옛날에 사찰 내에서 공양을 지을 때 쌀을 씻어 담아두거나
밥을 퍼담아 두던 그릇이라고 한다.
길이 6.3m
폭 72cm
높이 62cm
이는 500년 전 간월사에서 옮겨온 것이라고...
석남사에는 또 하나의 3층석탑이 있는데,
원래 대웅전 앞에 있던 이 석탑은
1973년 현재 세워져 있는 사리탑에 그 자리를 내어주고
이곳으로 옮겨왔다는데... 모서리의 각을 둥글게 처리한 것이 전형적인 통일신라시대 양식이다.
석남사의 담장은 마치 산성을 연상케 한다.
출구는 돌담길을 따라 돌아나오도록 되어 있는데,
길에 운치가 있다.
시원하게 흐르는 계곡물에 발이라도 담그고 싶지만,
이젠 물이 제법 차가울 것 같다.
청운교를 지나오니, 청운각이 보인다.
이곳은 차를 한잔 마시며 잠시 쉬어가는 곳!
야외에 있는 나무 의자와 탁자에서 자연을 거스르지 않으려는 노력이 엿보인다.
차와 함께 간단한 다과를 먹으며
새들의 노랫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으니
무릉도원이 이곳이라,
천국이 따로없다.
비구니 선원이라 그랬을까...
유독 마음이 편했던 절!
석남사를 나오는 길은
들어갈 때와 확실히 달랐다.
내 몸과 마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