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본고장 제주에서 온몸으로 바람과 맞서가며 걸었던 올레길 20, 21코스.
아무리 아름다운 길이었지만, 30km에 가까운 길을 걸었으니, 내 몸을 많이 혹사시켰다.
이럴 땐 조금 고급스런 잠자리에서 내 몸을 힐링하는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
그래서 하루 정도는 서귀포 유명 호텔에 묵기로 했다.
서귀포의 전망 좋은 이 호텔은 이국적 정취를 만날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울창한 야자수를 보고 있노라면
정말 남태평양의 어느 휴양지에 도착한 듯한 기분.
까슬까슬하면서도 폭신한 이불을 마주하니,
몸은 빨리 쉬게 해달라고 아우성이다.
이틀에 걸친 걷기 여정, 내가 내 몸에 베풀 수 있는 최소한의 아량,
열심히 걸은 자 이제부터는 푹 쉬어도 좋다~!
하지만 그저 휴식만 찾기엔 이곳 풍경이 나를 그냥 내버려두지 않는다.
이토록 절묘한 풍경을 그냥 내버려 둔다면 그것은
제주에 대한 모욕이고 결례이다.
베란다로 나가 바라본 남태평양 바다!
그리고 호텔 앞 잔디 광장!
제주가 우리 땅이라서, 언제든 부르면 달려와서 볼 수 있는 곳이라서
우리 땅, 제주는 정말 고마운 섬이다.
그런데 잔디 광장 끝에 캠핑촌이 보인다.
저곳은 이 호텔에서 야심차게 기획한,
야외에서 캠핑 분위기를 느끼며 바베큐를 즐길 수 있는 곳이라고 하는데...
이른바 캠핑 존~!
날씨는 차가웠지만,
그래서 "캠핑" 이라는 단어가 더 큰 설렘으로 다가왔다.
친구와 합의하여 결정후 예약을 끝냈다.
"그래, 멋진 추억이 될거야!!"
바베큐장이 오픈하기까지는 한시간 정도 기다려야 한다고...
그래서 기다리는 시간동안 친구와 함께 이곳 호텔 정원을 산책해보기로...
산책로 옆으로는 털머위꽃이 지천이다.
뭍에서는 이미 다 져버린 꽃인데 여기는 확실한 남쪽 나라임을 외치고 있다.
오늘도 세상을 밝게 비추는데 혼신의 힘을 다한 태양도
이제 쉴 준비를 하고...
바톤을 이어받은 달이 동쪽 하늘 위에서 빙긋 웃고 있다.
캠핑에 대한 설렘으로 조금 일찍 캠핑장으로 갔더니,
아직 준비가 안된 상태!!
날씨만 따뜻하면 이런 곳에서 밤새 캠핑을 해도 좋으련만,
날씨가 쌀쌀한 오늘 같은 날은
저~기 따뜻한 나의 보금자리가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든든한지...
잠시후 텐트가 하나둘 열리고.
그릴에 불들이 밝혀져 간절한 식탐을 해소하기 위한 준비가 진행중이다.
하지만 심하게 허기진 나그네는 일각이 여삼추다.
텐트 안은 테이블이 세팅되고,
그릴에는 숯이 채워지고...
이렇게 캠핑을 하며 바베큐를 즐기는데 드는 비용은?
1인분 가격이다.
두 명만 되어도 10만원이 훌쩍 넘어가는 금액!
다소 살 떨리는 가격이지만,
평생 한번인데 뭐..하며 스스로 위로를...
그런데,
눈치 없는 친구!
죽어도 꽃등심을 먹어야 한다고 해서 눈물을 머금고 B 세트를 주문했다.
제주의 하늘에 환상적인 낙조가 내리고 있다.
시린 바람과 옷깃을 여미고 들어오는 냉기를 제외한다면
여기는 남국의 별천지가 틀림없다.
지극히 한국적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지극히 이국적인 호수 풍경에 잠시 넋을 놓았다.
날이 많이 어두워졌는데 이젠 준비가 완료 됐겠지?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캠핑 시작~!
하루 종일 고생한 팔다리를 대신하여
입과 코가 호강을 할 차례~!
주문한 세트 메뉴의 음식들이 아이스박스에 담긴 채로 진설되어 있다.
호텔 프로그램이라고 해도 직원이 와서 고기 구워주고 서빙해주고...
그런 걸 기대하면 안된다.
이제부턴 자급자족, 이른바 각개전투!!
날씨가 추우니 따뜻한 불가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좋다.
몸이 스르르 녹는 느낌!
올레길을 걷느라 엄청나게 소진되고 방전된 육신에 화색이 돌기 시작한다.
하긴 이 시간에 뭘 먹은들 맛이 없으랴!
고기 굽는데 일가견이 있는 굽기 전문가인 친구야!
얼른 흑돼지 오겹살부터 구워 줄래~?
친구가 아이스박스 안에서 얼른 때깔도 고운 오겹살을 찾아 내놓는다.
더불어 오징어, 전복, 새우 등 각종 해산물과 소세지, 가래떡까지!!
뭘 먼저 먹어야 할지 순위를 가리기 힘들어 한번에 몽땅 올렸다.
선홍색 농염한 자태, 황홀하지 않은가~!
지글지글 익어가는 오겹살의 소리와 먹음직한 비쥬얼!!
입보다 먼저 눈과 귀가 그 맛을 본다.
뱃속에서는 성질 급한 목구멍이 버선발로 마중을 나오고...
두툼한 오겹살은 식감도 좋고 육즙도 풍부하다.
성격 급한 친구가 얼른 쌈 하나를 쌌는데...
이 허전함은 뭐지?
아하~ 소주가 빠졌구나.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나 부르라고 테이블마다 무전기가 하나씩 놓여있다.
치직~ 칙~
"저희 소주 한병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저...그런데 소주 한 병에 얼마죠?"
"네, 8000원 입니다."
"허~얼~"
순간 친구와 눈이 마주쳤는데,
우린 잠시 무언의 대화를 나눴다.
'소주 없이 고기를 먹는건?'
'절대 불가!'
우리를 위한 힐링 축제!
이런 날은 소주가 8천원이 아닌 8만원이라 해도 먹어야 한다.
세팅되어 있는 테이블에 앉을 틈도 없이
그릴 앞에서 바로 흡입 모드~!!
쉬임 없이 구워내는 친구의 손놀림이
나의 거침없는 흡수력을 이겨내지 못하고.
굽기만 할 뿐 먹지도 못하는 불쌍한 내 친구~!
오동통한 새우의 유혹...
세상에서 가장 고혹적인 자태로 누웠다.
그래, 내가 너를 어떻게 못 본척 하겠니?
"이 쯤에선 꽃등심도 구워줘야 하지 않겠니?"
하며 간절한 눈빛을 보내는 친구!
두 말할 필요도 없이...
"Okay~"
살짝 익혀 먹으니 입에서 살살 녹는다.
마파람을 안고 먼 길을 걸어와서 맞이한 풍성한 식탁,
여독은 이미 태평양 너머로 말끔히 사라진 듯.
호일에 싸여있는 것은
숯불에 구워먹으면 맛이 기가 막히다는 감자와 고구마다!
배는 부르지만......맛을 봐야하지 않겠니?
노릇노릇 맛있게 익은 감자까지 먹고 나니,
더이상 아무것도 먹을 수가 없을 것 같다.
그 때 직원이 와서 살며시 건네는 말!
"이제 식사 드릴까요?"
"밥까지 먹으라구요?"
"볶음밥과 된장찌개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궁금하니 맛은 봐야할 듯~
"주세요!!!!!!!"
잠시 후 배달된 볶음밥!
밥이 좀 질어서인지 맛이 별로다.
아마도 배가 너무 부른 탓이리라.
된장찌개는 먹을만했는데,
보글보글 끓으면서 왔던 것이 순식간에 차가운 냉국이 되어 버렸다.
그래서 된장국은 그릴 위에서 다시 데워지고.
테이블 위엔 컵라면도 두개가 있었는데,
차마 그것까지는...
컵라면까지도 음식 값에 다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확인한 친구는
주섬 주섬 컵라면을 챙긴다.
"우리 오늘 너무 무리했으니, 내일부턴 라면만 먹어야 할 거야!!"
지금 이 순간을 더욱 맹렬히 즐겨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테이블마다 커피포트와 캠핑용 컵도 있어,
따뜻한 차 한잔의 여유도 허락되었다.
안쪽으로는 들어가 쉴 수 있는 별도의 텐트가 쳐져 있었는데,
날씨가 너무 추우니,
바닥에 깔아놓은 전기장판도 무용지물이었다.
올레길 두 코스를 힘들게 완주하고,
내가 나에게 준 선물!
비용은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날카로운 바람 속에서
아름답게 만들어낸 힐링의 추억!
그걸로 족하다.
항상 길이 끝나는 곳에서 차려내는 우리들의 만찬,
그리고 아늑하고 따뜻한 잠자리...
이 밤이 밝으면 내일...
또 다시 새로운 발걸음으로 새 길을 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