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떠나며 우리는 길 위에 선다.
그리고 여정을 즐기며 길 위를 달린다.
어쩌면 여행과 가장 어울리는 말이 "길" 인지도 모르겠다.
중국 사람들은 오래된 이야기를 할 때면 흔히들,
"반고가 천지를 개벽할 때..."라는 말로 서두를 꺼낸다.
반고(盤古)는 중국에서 천지를 창조한 시조신이다.
그 시조신인 반고가 천지를 창조하고 죽으면서 ,
호흡은 바람과 구름이 되고 목소리는 천둥으로, 왼쪽 눈은 태양으로 오른 쪽 눈은 달이 된다.
몸체는 산과 들이 되고 피는 강으로 변하며
머리카락과 수염, 피부는 각각 하늘의 달과 풀 그리고 나무가 된다.
이때 신기한 것은 동물과 사람이 다님으로써 가장 나중에 만들어져야 하는 "길"이
반고의 핏줄에서 일찌기 천지만물과 함께 만들어진다는 사실이다.
중국에서 "길"은 태초로부터 존재했던 자연의 일부이다.
나는 길이 좋다.
내가 향하는 목적지는 영화가 끝나고 올라가는 엔딩 크레딧일뿐,
나는 차창이라는 스크린을 통해 장편 다큐멘터라를 감상한다.
흔들리는 차 안에서
멀미 나기 전에
일단 꾸욱~^^
하밀시를 벗어날 즈음
도로변에 서 있는 맨발의 가족을 만났다.
말은 안 통하지만,
엄마, 아빠, 딸임을 분명하다.
이들이 팔고 있는건 하미과??
다시는 쉽게 만나지 못할 하밀의 하미과!
우리 비록 하밀을 떠나지만 하미과의 여운은 좀 더 오래 누려보고 싶다는 마음은 같았던 듯!
버스를 잠시 세우고 다들 하미과 득템에 나섰다.
맛뵈기용 하미과를 한쪽씩 나눠주는 아저씨!
저 하미과 한 조각을 입에 넣는 순간 조건반사가 일어난다.
당연히 그래야 한다는 듯 다들 하미과 한덩이씩을 집어든다.
부부로 오신 분 중에는 이렇게 네 덩이나 산 사람도 있었다는~
네 덩이의 무게가 11kg,
1kg 당 가격이 2위안 (360원)
11kg은 22위안 (4000원 정도)
세상에서 제일 달콤한 과일이 한덩이에 1000원 밖에 안 하니...
아무리 생각해도 이곳은 과일 천국이다.
원할 때면 언제든 하미과를 먹을 수 있는 네가 부럽구나~
아이는 우리 하미과 가져가지 마세요~ 라고 말하고 싶은 듯 내내 울상이다.
다들 하미과 몇 덩이씩 안고 진정 하밀과 작별 인사를 한다.
하밀을 떠난다.
투루판으로 향한다.
오늘 달려야 할 길은 무려 300km라고 하는데,
그 여정에선 자는 사람도 있고,
멍하니 창밖만 바라보는 사람도 있고,
나처럼 쉼없이 셔터를 눌러대는 사람도 있다.
이 도로는 그 유명한 "중국의 312번 도로".
이름하여, 사막공로(沙漠公路), 1996년에 개통했다.
이 도로는 중국에서 뿐만 아니라 세계에서도 가장 긴 사막도로이기 때문!
중국의 동쪽 끝인 상해와 서쪽 끝인 카자흐스탄 국경을 연결하는 이 도로는
그 길이가 무려 5700km에 이른다.
중국이 이토록 긴 동서 횡단 도로를 놓은 이유는
지배권 확보를 위한 서북공정과
자원개발을 위한 목적이 크다.
실제로 이 도로 옆으로는 석유 탐사 작업이 한창이었다.
도로 옆의 네자리 숫자가 뭔가 했더니,
1km 마다 1씩 늘어나는 걸로 봐선
이 도로의 지점을 나타내는 듯 하다.
즉 상해에서 시작되는 도로지점을 0으로 봤을때,
이곳은 3196~3197km 지점!
거리를 나타내는 것에 네 자리 수를 보는 것은 매우 낯선 상황이다.
중국의 광활한 영토를 간접적으로나 확인하는 순간이다.
출구(IC) 번호도 세자리 수는 처음 본다.
312번 도로의 끝까지 가면 400번대의 출구번호를 만나게 될지도...
도로는 한산함 그 자체!!
도로들도 시원하게 쭉쭉 뻗어 있어서
가끔 좌우로 굽은 도로가 나오지 않으면 졸음 운전하기 딱 좋은 길!!
편안한 좌석에 앉아서 차창밖 사막을 느긋하게 바라보는
지금의 나그네는 이렇게 길을 가지만,
그 옛날 서역을 왕래했던 당나라의 고승 현장법사는 이 길을 가면서 이렇게 썼다.
"사람은 물론 날짐승조차 없는 황막한 천지로 밤에는 요사한 도깨비 불이
별처럼 환하고 낮에는 모래바람이 소나기처럼 퍼 붓는데,
닷새동안 물 한방울 마시지 못해 입과 배가 말라붙어 숨이 끊어질 것 같다"
"정말 고속도로 맞아?"
하는 의심을 들만큼 한산하다.
가끔 톨게이트가 나오는 걸 보니 고속도로가 맞긴 한듯!!
이색적인 건,
이정표나 표지판에 한자와 이슬람어가 공존하고 있다는 사실!!
중국의 신강성 지역은 이슬람교가 대세이니 어쩌면 당연한 일!
그런데 톨게이트를 지나면 꼭 차를 세워야 한다.
중국 공안에게 검문을 받기 때문.
우리처럼 여행 온 사람들은 기사가 여행사 확인증만 보여주면 일일이 검문을 하진 않지만,
중국인들은 도시 하나 넘어가기가 쉽지 않아보인다.
2009년 7월, 신강 위구르 자치구의 수도인 우루무치에서
위구르인들이 중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요구하는 유혈 시위가 있었던 이후
이 지역의 검문검색이 더욱 강화되었다고...
사막 지역답게 신기루가 생겼다 사라지곤 한다.
도로 위에 안개처럼 피어오르는 저 황색빛 연기의 정체는?
모래이다.
사막에서 날아온 모래!
그만큼 밖에는 바람이 많이 불고 있다는 증거!
며칠만 도로를 관리하지 않으면 고속도로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고.
횡풍을 주의하라는 표지판이 있을 정도!
얼마나 바람이 많으면 풍력발전기가 쉼없이 돌아간다.
석유나 석탄이 나지 않는 곳은 이렇게 바람을 캐는 나라,
바로 중국이다.
주의를 요하는 표지판이 가끔 등장하는데,
요것은 낙석 주의??
이건 창밖으로 쓰레기를 던지지 말라는 경고일터!!
이렇게 주의 사항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쓰레기를 투기하는 사람도 많다는 증거.
글을 모르고 말이 통하지 않는다고 여행을 망설일 필요는 없다.
궁하면 통하게 되어 있으니...
광활한 대지를 보면서 가는건 좋은데,
한 가지 아쉬움이 있다.
나무!
연초록, 진초록, 청록...
그런 초록 빛깔은 언제쯤 볼 수 있는걸까.
중국 정부에서는 오랜 연구를 통해,
사막을 녹화시킬 수 있는 방풍림으로 수종 네 류를 찾아 냈는데,
전설의 3천년 나무인 호양(胡楊)나무, 뿌리가 십여 미터나 된다는 홍류(紅柳)나무,
야생대추나무인 사괴조(沙拐棗), 그리고 키가 20cm에 불과하지만 무리를 지어 자라는
사사(梭梭)나무들을 부지런히 식재하고 있다고.
무채색의 풍경만 내내 보면서 왔더니,
가이드가 내면 샛노란 살구가 눈부시다.
강렬한 햇살을 받으며 단단하게 익은 열매는
달콤함이란 이런 것이라는 걸 가르쳐주고 있다.
삭막해도 너~무 삭막하다.
산은 산이로되 나무가 없도다!!
이곳은 비가 오지 않기 때문에 나무가 자랄 수 없다는 가이드의 말!
모두가 끄덕끄덕 수긍을 하고 있을 즈음~
갑자기 버스 유리창을 토독토독 때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비가 온다.
가이드 급 당황!!
"앗! 여기가 이렇게 비가 오는 곳이 아닌데~"
다행히 비는 금세 그쳤다.
그런데 실크로드 여행을 떠나온 이후,
이처럼 흐린 날씨를 보는건 처음이다.
사실 가이드는 우리가 가게 되는 투루판이 가장 뜨거운 지역이라고 잔뜩 겁을 준 상태였다.
우루무치까지는 296km!
투루판까지는 110km!
그리고 우리가 점심을 먹고 쿠무타크 사막에 가기 위해 중간에 들를 선선까지는 이제 15km 남았다.
이쪽 지역으로 넘어오니 포도밭이 많이 보인다.
포도 농가들은 출하할 포도 포장에 무척 분주한듯~
도로 옆에 종종 등장하는 구멍 숭숭 뚫린 저 건물은
다름 아닌 "포도 저장 창고"라고...
익숙한 지명이 보인다.
누란 (樓蘭)!
우루무치 박물관에서 봤던 누란왕국의 공주 미이라가 떠올랐다.
누란은 이 지역에 있었던 고대 국가였는데,
약 1600년전 누란국은 멸망하고, 옛 성터의 유적만 남아 있다.
옆으로 지나다니는 차를 보니
이 지역민들의 생활 모습이 정겹다.
넓은 도로 위 중앙선을 넘나들며 질주하는 경운기!
여기도 다른 지역처럼 급속한 발전을 이루고 있는 듯!
여기는 선선!
기후도 선선하다.
우리에게 뜨거운 맛을 보게 될거라며 으름장을 놓았던 가이드는 어느 순간부터 입을 다물고 있다.
선선은 신강 위구르자치구 투루판 지구에 있는 현으로
중국 타림분지 남동쪽에 있는 인구 20만의 도시이다.
평범한 도시 같지만,
이곳은 사실 사막으로 유명한 도시이기도 하다.
쿠무타크 사막!
이 도시 어딘가에 숨어있을 쿠무타크 사막은 우리에게 어떤 느낌으로 다가올지...
무척이나 설레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