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타고 떠난 꽃한송이

[실크로드여행] 22부-불꽃 속에서 키워낸 포도송이<화염산/포도구>

작성일 작성자 김작가

 

바야흐로

포도의 계절이 왔다.

 

까마득한 인간 저편의 시대에는 포도는 신의 과일이었다.

반신 반인의 존재였던 디오니소스(바쿠스)에 의해

비로소 인간에게 전수되었던 신들의 과일, 포도.

 

그 역사는 무려 8000년을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이집트에서 유럽으로, 인도로, 그리고 중국으로 포도의 씨앗이 대륙을 건너가던 길목,

그 길목에 떨어져 싹을 틔운 게 바로 투루판의 명물 포도로

오늘날 화려한 명성을 높이고 있다.

 

우리나라에 전래된 고려시대의 포도 역시

여기에서 그 씨앗이 만들어져서 천만리 머나먼 길을 왔을 테다.

 

대륙을 넘다 불현듯 떨어져 새로운 세상을 만든

포도의 고향,

그 곳을 간다.

 

달콤한 포도에 취하기 전에

꾸~욱!

 

 

 

쿠무타크 사막의 뜨거운 맛을 보지 못한 나그네들은

그 서운함(?)을 뒤로하고 다시 길을 나선다.

창 밖엔 전혀 예상치 못했던 빗줄기가 여전히 나그네의 뒤통수를 때리고 있다.

 

 

앞에 벽돌을 잔뜩 싣고 가는 트럭...

그 위에 얹힌 거대한 바위돌은 뭐지??

 

 

트럭이 살짝 옆으로 비키자 거대한 돌의 실체가 드러난다.

 

 

옆을 지나가며 재빨리 세어보았더니 저런 거대한 대리석이 20개가 넘는다.

한 눈에 봐도 돌 하나에 10톤은 넘어 보이는데...

이곳 트럭들은 220톤까지 싣고 다닌다는 말이 헛소문이 아니었음을 눈으로 확인한 순간!!

 

 

또다시 고속도로로 진입!

이제 본격적으로 투루판으로 들어간다.

여기도 역시 위구르 족들이 대세인지라 위구르어(위구르어는 아랍어를 차용하여 병기함)가

중국어와 함께 적혀있다.

 

 

그런데 톨게이트를 통과해 나와서는 대부분 이렇게 검문을 받는다.

우리처럼 여행온 사람들은 기사와 가이드가 미리 출입허가증 같은 것을 받아서

갖고 있는 터라 쉽게 통과가 되지만,

일반 차량들은 그 검문이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닌 모양이다.

분리 독립을 위한 모의를 사전에 차단하려는 강력한 경고!!

 

 

투루판!

실크로드에서 지나가기가 가장 어려운 타클라마칸 사막으로 발을 들여놓은 뒤

만나게 되는 첫번째 오아시스 도시이다.

이곳에는 많은 실크로드의 유적들이 흩어져 있다.

 

천산 산맥이 남북으로 갈라진 틈새에 자리 잡은 이곳은

세계에서는 이스라엘의 사해(死海) 다음으로 낮은 지역이다.

이곳에는 해면보다 낮은 해발 -154m의 아이딩호가 있어, 중국에서는 가장 낮은 곳으로 알려져 있다

가장 덥고 건조한 곳이라 옛날부터 '불의 땅(火州)'이라 불렸다.

 

 

쿠무타크 사막의 경우 이렇게 비가 오지 않았다면

55℃의 기온에 지면온도는 92℃나 되는 뜨거움을 맛봐야 했을 거란다.

심지어 모래 속에 계란을 묻어두면 노른자까지는 안 익지만 흰자는 완벽히 익는다고...

그런 뜨거움을 맛보지 않은 것은 다행인지,

그런 뜨거움을 맛보지 못한 것이 불행인지...

그 답은 남겨두기로 했다.

 

원래 여행은 "남김"이라고 하지 않던가,

그래야 다시 올 수 있는 명분을 만들 수 있으니...

 

 

처음엔 저게 뭐야~ 했지만,

이젠 너무나 많이 봐서 친숙해진 포도 건조장!

 

 

하밀에선 "하미과"가 주인공이었다면,

투루판에서의 스포트라이트는 "포도"에 맞춰진다. 

세계에서 가장 당도가 높은 포도를 생산하는 곳이 이 곳 투루판이다.

 

 

나무 한그루  없는 산정조차 포도 건조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어지간한 체력으로는 수송조차 힘들텐데...

역시 대륙다운 발상이다.

 

 

우리를 따라오던 허허벌판의 풍경은 어느새 붉은 산으로 탈바꿈을 했다.

 그런데 이런 황무지도 대부분 사유지란다.

지금 중국의 신흥부자들의 재테크 1순위는 부동산,

그 중에서도 변방의 황무지 구입.

헐값에 사뒀다가 지하자원 특히 석유라도 나는 날엔 그야말로 일확 천금을 만난다고.

 

 

길 옆으로 펼쳐진 이 붉은산이 바로 그 유명한 "화염산"이다.

화염(火焰)은 말 그대로 '불꽃'을 의미한다.

 

 

 화염산이 친숙한 이유는 <서유기>에 등장하기 때문!

손오공이 삼장법사와 함께 인도로 경전을 구하러 가던 중 고생 끝에 이곳에 도착했는데,

산이 불타고 있어 도저히 넘을 수가 없었다.

결국 친선 공주라는 나선녀의 도움을 받아 파초선(파초 잎으로 만든 부채)으로 신통을 부려

비를 내리게 해서 화염산을 식혀 산을 넘는다는 이야기로

우리에겐 어릴 때 부터 익숙한 지명.

 

 

그 크기는 동서로 98km, 남북으로 9km!

지구상에서 두번째로 넓은 투루판 분지(동서 120km, 남북 60km)는

이 화염산을 빼놓고는 설명이 안된다.

화염산의 풀 한포기 없는 척박함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도로변에는 아름드리 백양나무들이 배를 뒤집고 나그네들을 조롱한다.

 

 

투루판의 별명인 화주(火州)에 걸맞는 풍광이다.

비가 많고 습한 지역이라면 지금쯤 거의 깎여 나가서 높이조차 없을 토질인데...

저런 황무지를 누가 올라갈까봐 알뜰하게 울타리를 치고 있다.

사유지라는 강력한 알림이다.

 

 

산의 색깔이 점점 더 붉게 변한다.

산에서 나오는 열기가 심해 보이는데,

연강 강우량이 겨우 16mm로 극히 메마른 지역,

평균 기온이 38℃, 최고 기온은 50℃에 육박한다고...

화염산 암석의 표면은 무려 80℃가 넘어 접근 불가!

 

 

화염산에도 계곡에는 물이 흐르고 있음이 새삼 신기하고 반갑다.

멀리 천산 산맥의 눈 녹은 물이 흘러 내려와 사막 속에 오아시스를 만든 것이라고.

 

 

보고 있는 눈이 뜨끈뜨끈해지는 기분이다.

이렇게 무언가를 보는 것만으로도 찜질이 되는구나!!

 

 

설마 이 화염산에 관광단지라도 건설중?

아마 달이나 화성에다 인간의 거주공간을 만든다면 저런 형태가 아닐까?

 

 

차가 잠시 정차했다.

그나마 그늘진 곳에 내려주어 얼마나 다행인지.

 

 

화염산의 가장 높은 봉우리는 북한산보다 4m 낮은 832m이고,

산의 평균 높이는 500m!

하지만 해발 이하의 분지에 있기 때문에 훨씬 높게 느껴진다.

저기도 누군가가 어떤 특별한 목적으로 올라가는 모양이다.

목제 사다리로 계단길을 만들어 둔 것을 보면.

 

 

불과 몇 시간 전, 쿠무타크 사막에서 봤던 것과는 전혀 다른 하늘이다.

화염산은 이렇게 불길을 토하는데 그 불꽃을 잠재우기라도 할듯

하늘은 깔끔한 푸른 물빛이다.

 

 

 그런데, 까마득한 절벽 아래로 내려다보니,

그곳엔 전혀 다른 별천지가 펼쳐져 있다.

나무 한그루 없는 이곳에 우거진 수풀이 만들어져 있는 것이 아닌가!

 절벽에 신기루라도 떴나~?

 

 

그것은 신기루가 아니었다.

여기는 "포도구(葡萄溝)"라는 수목원!

수풀처럼 우거진 포도나무가 500m 폭으로 약 8km 정도,

화염산 계곡의 수로를 따라 길게 조성되어 있다.

 이런 불모지 같은 곳에 포도나무 숲이 있다니!!

민가도 몇 채 숲속에 숨어 있고.

 

 

2천여년 전,

실크로드를 따라 지중해에서 포도 품종이 들어왔는데,

이곳의 따사로운 햇볕과 자연의 은혜라고 할 수 있는 지하수로를 이용해

포도 농사가 발달하게 된 것이라고 한다.

 

에매랄드 물빛이 보석처럼 곱다.

고독한 인간을 위로해줄 가축들도 만년설이 키워낸 푸른 영양을 맘껏 섭취하고 있다.

 

 

마침 한 쪽에서 포도를 팔고 있는데,

한눈에 봐도 이곳 원주민인 위구르족인듯!

만면에 화색이 가득하다.

그들에게 최대의 관심은 나그네들의 지갑이 언제 열리느냐이다.

 

 

포도의 향기가 얼마나 진한지, 포도향이 사방을 휘감고 있다.

우리나라에선 쉽게 맛볼 수 없는 알이 굵은 청포도!

농약도 안치고 키운 유기농 포도란다.

공해가 없어서 씻을 필요도 없단다.

 

 

맛을 보라며 조그마한 송이를 건네준다.

청포도라 신맛이 강할 것 같았는데,

웬걸?

꿀을 섞었나보다, 향기와 단맛이 예술이다.

이 지역의 포도를 "중국의 녹색 진주"라 부르는 이유를 알 것 같다.

 

 

도저히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위구르 여인,

남자의 아내인지, 딸인지 분간이 힘든 그 여인은,

 

"그렇게 맛있으면 좀 사는게 어때?

버티지 말고 물건너온 지갑좀 활짝 열지?"

 

하는 눈짓을 내게 계속 보낸다. ㅎㅎㅎ

 

 

화염산 불길도 사막의 낙타에겐 위협이 아니다.

지구상에서 가장 편안한 자세로 쉬고 있는 낙타들.

나그네들에게 하늘의 폭염과 화염산의 불길은 견디기 힘든 곤욕이다.

하지만 모두들 스스로 선택한 고통이고 알고 덤벼든 무식함의 소치인 것을.

돈을 주고 시키면 절대로 하지 않을 짓,

그게 바로 여행이다.

 

오늘(9월 14일)부터 영월에서는 포도 축제를 연다고 한다. 

김삿갓 포도 축제~!

 

아무도 오라고 부르는 사람도 없지만,

가도 아무도 반갑게 안아 줄 이도 없지만,

비록 내 돈 들여 가야하는 소비의 길이기는 하지만,

 

아무도 시키는 이가 없다는 까닭으로

오늘 또

대문 밖을 나선다.

 

그래서 여행이라고 당당하게 써 놓고

몰래 가출이라고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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