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타고 떠난 꽃한송이

[실크로드여행] 29부-이건 인간이 만들 수 있는게 아니야~!<5,500km카레즈 지하수로>

작성일 작성자 김작가

 

여행을 하다보면 목적지를 추구하는 포커스가 전혀 다른 경우를 발견한다. 

 

이를테면,

숲을 보고 주마간산으로 지나가도 되는 여행지가 있고,

발품을 팔아 숲으로 들어가서 초목까지 세세히 관찰해야하는 여행지도 있는가 하면,

때로는,

호미와 곡괭이를 들고 그 곳의 땅 까지 파고 들어가

그 땅의 살냄새와 실핏줄까지 꺼내봐야하는

그런 여행지도 있다.

 

망원경을 들고 갈 것인가,

색안경을 쓰고 볼 것인가,

아니면 현미경을 장착하고 갈 것인가,

그것은 오롯이 여행자가 결정해야할 몫이다.

 

하지만 지금 가고자하는 이 곳은....

단언컨대,

망원경도, 색안경도, 현미경도 아닌

 

내시경이 필요한 곳이다.

 

중국 3대 불가사의, 3대 위대한 공정의 하나,

 

카레즈 지하 수로를 간다.

 

사막 여행에서

유일하게 어둡고 습한 곳입니다.

하지만 여기에도 사막인들의 눈물겨운 애환이 있으니

그들의 명복을 비는 마음으로

일단 <꾸욱~>

 

 

 

투루판 카레즈 박물관(吐魯番 坎兒井 博物館)

 

실제 존재하고 사용하는 케레즈의 모습들을 참고로 만든 박물관이다.

1988년 등소평이 방문한 이후 새로이 단장하여 외래객을 받고 있다.

 

 

투루판은 북으로는 5000km에 달하는 천산산맥이 병풍처럼 버티고 있고

남으로는 한 번 들어가면 결코 살아서는 나올 수 없다는

타클라마칸 사막이 죽음의 바다처럼 펼쳐져 있다.

뿐만아니라 여기에는 생명의 기본값인 물도 없다.

게다가 겨울과 여름의 기온차이가 섭씨 80도에 이르는 그야말로 대륙성 건조기후,

이름하여 극한의 땅!

 

 

 살기 위해서 아니 살아 남기 위해서

이 곳의 인간들은 엄청난 피와 땀,

심지어 그들의 생명까지 희생양으로 바쳐야만 했다.

 

학자들의 가벼운 논리와 말초적인 학설로서는 결코 설명할 수 없는

그러나 2000년이 넘도록 실존하는 기적의 현실,

이 곳의 모습을 나는 감히

살아남기 위한 인간의 극한이 만든 최상, 최고의 현장으로 지목하고 싶다.

 

 

카레즈(坎兒井-Karez)

만리장성, 남북운하(북경-항주를 잇는 3,200km길이의 운하)와 더불어

중국 3대 불가사의,혹은 중국 3대 위대공정으로 지정하여

국가차원의 집중 관리를 하고 있다.

 

 

카레즈는 2000여년 전,한나라 시대부터 시작되었다고 말하지만 확실하지 않다.

중국 정부는 한사코 고대 중국이 시작했고

중국의 고대 토목 기술로 완성한 유산이라고 강력히 주장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학자들은 고대 페르시아(이란)를 카레즈의 기원으로 보고있다.

 

지금도 이란에서는 "카나트"라고 하는 고대 지하수로가 실제로 있으며,

아프가니스탄에도 역시 "카레즈"라는 지하수로가 있고,

북아프리카(특히 이집트)에도 "포가라"라 불리는 지하수로가 있다.

 

투루판에서 카레즈에 대한 국제 학술대회까지 열면서

 그 기원과 유래를 밝히려 했지만 아직도 연구 과제로 남아 있다고.

 

아무래도 지하수로의 토목 공법은 이슬람지역이 기원일 가능성이 높다.

 

 

카레즈는...

약 20~30m의 간격을 유지한 채 수직으로 땅을 파내려가고

그 수직갱을 수평으로 다시 갱을 파서 연결하는,

그래서 수십개에서 많으면 수백개의 우물이 수평으로 연결되면

비로소 총길이가 5~30km가 되는 한갈래의 카레즈가 된다.

 

그렇게 연결된 한갈래의 카레즈,

이 곳 투루판에는 1,000여개의 카레즈가,

하밀에 100여개, 그래서 신강성에만 1,600여개의 카레즈가 있단다.

그 총연장의 길이가 무려 5,500km.

만리 장성의 길이와 맞먹고, 경항 대운하(3,200km)보다 길다.

 

 

여기 보이는 지하수로는 실제로 있는 지하수로를 바탕으로하여

관람객이 다닐 수 있는 인도만 보강한 수천 년 전의 그 카레즈이다.

 

실제의 지하수로는 대체로 폭 60cm 높이 90cm에 불과하기에

지금처럼 외부인이 서서 관람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말쑥하게 차려입은 여행객들에게 높이 90cm의 진흙밭에서

낮은 포복을 시킬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90cm X 60cm의 좁은 공간...

물이 흘러 가는데는 전혀 문제가 없지만

어떻게 사람이 들어가서 그 공간을 만들었을까.

 

 

카레즈는 보통 4개 부분으로 나뉘는데,

수직으로 파내려간 일반적인 우물구조가 "수정(水井)",

수정은 공사시에는 인부들의 숨구멍이 되고 완공 후에는 우물이 된다.

우물과 우물을 수평으로 연결한 지하수로를 "암거(暗渠)",

위의 사진처럼 지상으로 노출 된 것을 "명거(明渠)"

그리고 수로를 통해 흘러서 물이 모이는 저수지인 "노패"가 그것이다.

 

 

이렇게 명거와 노패가 있는 곳은 당연히 마을이 있었고

어김없이 포도밭이 조성되었다.

 

 

이 곳 역시 울타리와 벽화가 더해졌지만 지금도 사용하는 물길이다.

여전히 생활용수이며 농수로이고 또한 식용 상수원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눈 녹은물들이 그렇듯 물색은 고운 에매랄드 빛,

수십 킬로미터의 천산 지맥을 뚫고 달려온

언제 내린 눈인지는 알 수 없으나 귀하고 기특한 물!

 

 

지금은 모든 카레즈가 중국 정부의 관리하에 있지만,

당시에 카레즈는 개인들의 소유였고 부의 근원이었다.

 

얼마나 많은 카레즈를 가지고 얼마나 많은 수량(水量)을 확보하고 있느냐에 따라

와 권력의 바탕이 되었으니

오늘날 수많은 갈래의 카레즈가 생긴 동력이 되었던 것.

 

 

수천미터의 고산에서부터 물길을 뚫어야만 가능했던 지하수로,

그 깊이가 적게는 수십미터부터 더 깊게는 100m가 넘는 우물도 있다.

2000여년 전의 굴착장비는 구태여 설명을 않아도 상상이 되는데...

 

 

한 개의 수직 우물과 한개의 암거를 굴착하는데 조직된 구성원은 4~5명 정도,

불과 반경 1m도 되지 않는 수직갱과 수평갱을 완성하는데는

수개월에서 수년이 걸린다고.

 

햇빛하나 들지 않는 깜깜한 갱도에서,

엎드릴 수도 없는 좁은 공간에서,

오로지 눕거나 기어서,

열악한 도구를 사용해서,

아마도 그 모습은 사람의 모습이 아니었을 터.

 

중간에 암반이라도 만나는 날이면 대책없이 둘러가야하는,

취약 지반이라도 만나면 바로 그 자리가 무덤이 되는...

 

 

측량이 잘못되어 수직갱과 수평 암거가 만나지 못해

처음부터 다시 갱도를 뚫어야하는 일도 비일비재 했다고.

 

 

수직 갱도는 파낸 흙을 반출하는 배출구 이면서

지하에 비참한 몰골로 누워 두더지 공법을 시공하는 인부들의 숨구멍이기도.

이 구멍이 붕괴되면 지하에 있는 사람은 바로 고인이 된다.

 

 

파낸 잔토를 들어 올리는 도르래.

그 흙들은 수로가 완공된 이후 이 우물에 야생동물이나

혹은 이물질이 들어갈 수 없도록 우물에 담장을 쌓는데 재활용된다.

 

 

카레즈를 만들 때 우물의 깊이와 진행할 방향측정은 매우 중요하다.

측량 기술이 발달하지 않았을 그 당시를 생각한다면,

평지도 아닌 급격하게 비탈진 산기슭을 따라

물길의 연결접점을 찾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측량기사가 약간이라도 오측을 하게되면,

지하에서는 통곡을 해야한다.

 

오욕과 착취의 인류학적 대명사에 속하는 만리장성보다

더 많은 인명이 이 곳 카레즈 공사에서 죽어갔다는 것도 무리가 아닌 듯.

 

 

밑으로 파내려 가고, 그것들을 다시 수평으로 연결하여 설산의 만년설 녹은 물을 끌어들이고

그 물을 엄청난 일조량으로 버무려서

이윽고 세계 최고 당도를 자랑하는 투루판의 포도로 수박으로, 하밀의 하미과로 승화시킨,

그 원동력은,

결국, 힘없고 불쌍한 그 시절의 백성들이었다.

 

꿀이 흐르는 투루판의 포도, 수박의 그 찰진 과즙은

천산의 백설이 아니라

땅속에서 지렁이처럼, 땅강아지처럼 진흙을 잔뜩 뒤집어쓰고,

때론 기면서 때론 누워서 물길을 만들다 진흙처럼 스러져 간 그 시절 그 분들의

 피와 땀이었던 것이다.

 

 

카레즈는 투루판의 실핏줄이요 대동맥이다.

 

투루판의 살아 있는 모든 것에는 천산산맥에 휘몰아치던 폭설이 들어있고

천산산맥을 꿰뚫고 내려온 천산의 영양소가 들어 있다.

 

고대 인류 문명의 대부분은 물 많고 비옥한 지역에서 발전했다.

문명 사회의 대부분에서는 우리에게 그렇게 가르친다.

황하 강변이, 메소포타미아 강변이, 티그리스 강변이, 그리고 인더스 강변이,

마치 규칙처럼 그렇게들 문명이라는 이름으로 태동했다고 믿는다.

 

과연 그럴까, 그게 규칙일까.

 

그렇다면 아즈텍은, 마야는, 잉카는, 절해고도의 이스트는...

그리고 여기 사막위에 시대를 초월해서 융성했던 그 시절의 흔적들은?

아무래도 그들 강단 사학자들의 논리로는 설명이 불가능하다.

단언컨대 역사에는 규칙이 없는 것 같다.

 

있다면 어떠한 열악한 환경에서도 살아 남아야 한다는

필연이 있을 뿐이다.

즉, "죽지 않으려면"이라는 가정으로 "선택의 여지 없이" 이어 온

그 처절하고도 적나라한 삶의 궤적을 엮어서

거기다 약간의 현학적인 사탕발림을 섞어서

역사라고 불러야 한다.

 

투루판의 카레즈는

살아 남아야하는

인간이 극한의 발버둥으로 남긴

처절하지만 아름다운 역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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