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투루판(吐魯番)을 떠난다.
명절에 고향 집을 다녀가는 실향민의 마음이 이럴까,
수십년 만에 고국 땅을 밟아보고 떠나는 해외 동포들의 마음이 이럴까,
불과 사흘 남짓 머물렀을 뿐인데 투루판은 이미 남의 땅이 아니다.
우리의 오랜 원형질 속에 감춰진 까마득한 시절의 선조들의 흔적들이
기시감(旣視感)으로 되살아나 나그네의 발걸음을 마냥 무겁게 한다.
언제 다시 찾을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다시 실크로드 사막길을 도모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투루판은 또 다시 나의 머스터 해브(Must have)여행지에 오를 것이다.
그리고 투루판을 아직 가보지 않은 나그네에게는
강력히 권하고 싶은 곳이다.
투루판을 떠나기 전에
일단 꾸욱~
나그네의 무거운 발걸음을 잡는 것은 또 있다.
애기야~!
네가 무얼 안다고...
아침 저녁으로 눈길 몇번 나누고 머리 두어 번 쓰다듬어 주었을 뿐인데,
아침 댓바람에 맨발로 따라 나섰다.
철든 사람은 이미 이별이 익숙한 탓으로 웃고 있는데...
이별이 서툰 너는 진정으로 슬퍼하고 있구나.
인생은 그런 거란다.
세상속의 만남은 항상 이별을 감추고 있는 것,
너도 머지않아 깨우치게 될텐데...
그 깨우침에는 얼마나 많은 눈물이 필요한지도...
훗날 우리가 다시 만나게되면 서로 알아볼 수 있을까?
애기야, 부디 건강하렴~
이별의 슬픔은 항상 뒤꼭지를 바라보는 사람의 몫이다.
앞만 보고 가는 나그네는 다시 길위에 선다.
그리고 이젠 습관처럼 대륙의 사막을 달린다.
이젠 사막 끝의 신기루를 보고도 아무도 감탄사를 뱉지 않는다.
감탄은 항상 처음이거나 오랜만에야 터지는 것이기에.
2,300km밖에 있어야할 바다가 시도 때도 없이
사막의 끄트머리에 나타나서 검푸른 파도를 넘실대고,
때때로 섬그림자까지 구체적으로 대동하고 나타나서 나그네를 희롱하더니.
이젠 캘리포니아 평원의 바람개비까지 신기루로 나타났다.
아니었다, 신기루가 아니라 실제의 모습이었다.
투루판은 3주(州)로 불린다.
너무 더워서 화주(火州), 사막의 도시라서 사주(沙州), 그리고 바람이 많아서 풍주(風州).
화주의 열기는 중국 최대의 태양광 발전소로 그 명성을 살렸고,
사주는 세계 최대의 희토류(稀土流)금속 생산지로 이미 일본등의 명줄을 쥐고 있으며,
풍주의 바람은 이렇듯 풍력 발전의 메카로 풍성하게 활용되고 있다.
좌우 사방으로 끝을 둘러봐도 세상은 온통 바람개비 뿐이다.
사막이 불모지고 쓸모없는 황무지라는 말은 이미 옛말이다.
여기서는 어느 한 곳도 쓸모없는 땅이 없다.
희귀 금속의 보고로, 석탄의 무한 창고로, 석유의 광대한 바다로,
허공조차 태양빛을 받아내는 무공해 에너지로,...
바야흐로 바람까지 13억 인구의 밤을 밝히기 위해 나섰다.
볼수록, 다닐수록 중국은 무서운 나라이다.
잠시동안 잊고 있었던 명칭이 새삼 반갑다.
우루무치(烏魯木齊),
어느 재야 학자는 '우루무치'의 어휘를 우리말 '오르막'과 같은 뿌리라고 하던데.
하긴 우루무치는 천산산맥을 오르는 오르막에 위치해 있는 도시이기는 하다.
또한 세종이 한글을 창제할 때 '위구르어'도 많은 참고사항으로 일익을 했다고 하니
국문학자들의 보다 구체적인 논거가 필요할 듯.
이곳 신강성에는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절묘하게 맞아 떨어지는 우리와의 인연들이 도처에 도사리고 있었다.
기회가 주어진다면 조금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해서
우연과 기연으로 얽혀 있는 '우리'의 흔적을 발굴해 보고싶지만....
주말의 중국 고속도로 휴게소...
가족들이 자신들의 승용차로 여행을 하는 모습도 이젠 흔한 모습이다.
수박도 싣고 온갖 과자도 싸고...
그런데 십리도 못가서 자동차가 발병이 났다.
이럴 때 우리나라에서는 보험회사를 부를텐데,
여기는 가장이 발병난 자동차를 고쳐야 한다.
어딜가나 가장의 어깨는 무겁고 피곤하다.
문득 미국의 어느 TV방송의 껌 광고가 생각난다.
'우리집에서 아무도 열지 못하는 피클병을 열 수 있는 유일한 사람,
혼자 지하실에 내려가는 것을 무서워하지 않는 사람,
비가 오면 대문 앞에 차를 가져다 주는 사람,
많은 사진을 찍어 주지만 정작 그 사진들 속에는 없는 사람...'
바로 오늘날의 '아빠'라는 존재이다.
새나라(新疆)의 건설에는 휴일도 없다.
새나라의 건설에는 과적차량도 용서가 된다.
적재중량 200톤은 기본, 낮에는 고속도로 공안(경찰)에게 단속이 두려워
이렇게 낮잠으로 단속을 피하고 밤에 비로소 운행에 나선다.
레일도 없는 도로위에 기차가 간다.
중국에서는 이런 트럭을 기차(汽車)라고 부른다.
적재 중량이 적어도 300톤은 되어 보인다.
우리가 말하는 레일 위를 달리는 기차는 중국에서 화차(火車)라고 부른다.
고속도로가 새로이 깔리기 전까지 신강의 동맥 역할을 했던 국도,
바람에 도로가 매몰되는 것을 피해 높은 벼랑에 위치하고 있다.
단속이 덜한 국도 위에도 예외없이 과적 차량이 질주한다.
모처럼 펼쳐진 초원 위로 만년설을 이고 있는 천산산맥이 병풍을 둘렀다.
온통 모래의 수평선에 익숙해 있다가 모처럼 바라보는 육중한 굴곡,
그리고 푸른 수목들, 새하얀 눈빛, 칠년 대한에 만난 단비를 보는 것 같다.
5,000m 급 준봉들이 키워낸 푸르름,
그 푸르름을 먹고 사는 신강성의 모든 생명들,
자연과 생명의 역학 관계를 가장 절실히 느낀 사막길의 여행,
나그네는 이제 왔던 그 길을 많은 생각을 짊어진채 되돌아 가고 있는 중이다,
중국이 자랑하는 동서 횡단도로, 312번 공로(公路),
동으로는 상하이에서 서쪽 끝점은 카자흐스탄 국경도시인 코르카츠까지,
만리장성보다 더 긴 장장 5,700km의,
신강성의 모든 자원을 내륙으로 실어나르고 서역을 실효지배하려는
중국정부의 강력한 의지를 담고 있는 대동맥이다.
투루판을 향할 때는 11시간의 밤열차를 이용했지만
우루무치로의 귀환은 이렇듯 줄기차게 312번 도로를 탄다.
지금 신강성의 자원 개발은 최고점에 이르고 있다.
석유, 석탄, 희토류 금속에 풍력, 태양력에 이르기 까지...
이는 어느정도 중국 정부의 의도가 깔려 있다고.
신강성은 지금도 분리 독립의 의지를 여전히 꺾지 않고 있다.
거의 천만 명에 달하는 위구르인, 그들의 국가였던 동투르키스탄의 국토인
신강성은 많은 우여곡절 끝에 지난 세기에야 중국령이 되었다.
신강성은 자원의 보물창고에 다름이 없다. 캐내고 뽑아내도 끊임이 없이 쏟아지는 화수분 같은...
그런 보물의 땅을 중국 정부에서 분리 독립하도록
절대로 용납하지 않겠지만, 만에 하나...
그럴 일이 생길 것을 염려하여 부지런히 자원을 미리 챙겨두려는 것.
시가지마다 역마다 그토록 많은 군인과 공안을 배치하고
신강성에만 30만명이나 되는 군인들을 상주시켜두고 있는 까닭이 이해가 된다.
현장에서 여행자는 가슴과 눈으로 끝내야 한다.
멀리 떨어져서 나그네는 느낌과 기록으로만 마무리해야 한다.
저 천산의 순백,
그리고 살아 있다는 강력한 의미의 푸르름.
사막위에서 탈진한 나그네는 비로소 폐부의 먼지를 털어내고
동공에 어지럽게 흩어진 실핏줄을 가라앉힌다.
수천 만년 전, 이곳은 절대로 건조하지 않은 바다속이었다고
소리 높여 외치는 소금밭.
그 많던 물은 2,300km밖으로 아스라히 물러나고
천산을 닮은 또 다른 백색의 형체로 지금은 주민들의 식탁을 훔쳐보고 있다.
광활한 소금밭도 이제는 금을 긋고 토막을 내어 그 주인이 다르다고 영역 표시를 했다. 지금 중국의 신흥부자들의 재테크 1순위는 변방의 황무지 구입이란다. 석유라도, 석탄이라도, 희토류 금속이라도 발견되면 그야말로 불모지가 노다지로 변한다고. 그리고 이렇게 소금 밭이라도 있으면 황금알을 낳는단다.
산유국임에도 중국 정부 시책상 에너지 가격이 만만치 않다.
그리고 중국의 기름 가격은 전국적으로 동일한 일괄 가격을 적용한다.
우리나라로 치면 울릉도 휘발유와 서울의 휘발유 가격이 같다는 의미,
불현듯 울릉도의 휘발유 가격에 경악했던 기억이 새롭다.
우루무치에 당도했다.
실크로드 여행을 시작했던 곳, 그 끝도 여기서 하란다.
사람의 인연도 그렇게 법제화 하면 어떨까,
만난 자리에서 이별도...
많은 사람들, 귀한 시간에 모아놓고 결혼을 했으니,
갈라설 때도 그 사람들 그 자리에 다시 모아놓고 이혼도 하라고...
뜬금 없다~ㅜㅜ
여행에 지쳐가다보니 정신줄을 놓은 탓이다.
차량이 정체되고 있다.
여기는 도시라는 말이다.
공감을 의미하는 영어 'Compathy'의 어원은 고통을 뜻하는 'Pathos'에서 왔다.
사람과 자연, 그 속에 얽히고 설켜서 만들어낸 '그곳'의 이야기
수천년 동안 그들이 엮어낸 그들만의 이야기를
어설픈 보폭과 가소로운 시간만으로 따라다니는 것은
엄청난 무리라는 것을 비로소 실감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보일듯 보일듯 감춰진 그들의 속살과
우리의 먼 이웃으로 이어진 그들의 진실을 온전히 드러내지 못한 것은
공감뒤에 어김없이 따라오는 아린 고통이었다.
더 볼 수 있을텐데, 더 느낄 수 있었는데,
조금 더 시간을 부어넣고 조금 더 예리한 칼날을 들이대면
충분히 그들의 가슴을 열어 볼 수 있을텐데.
분명히 그들은 아직도 하지 못한 말들이 많을텐데...
아니면...
그들은 이미 충분히 말하고 있는데
길눈 서툰 나그네가 말귀를 알아 듣지 못하거나,
그들을 좀 더 처절히 실감하지 못해서 나그네는 여전히 아프다...
얼마나 더 아파야 비로소 공감을 이룰까...
남은 여정 두어군데
그나마 나중에 심각하게 아프지 않도록 귀와 눈을
더욱 크게 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