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제주도 가면 14-1코스는 꼭 걸어보기~~~!!"
벗들과 제주 여행을 도모하면서,
딱 하나 계획을 세운 게 있다면 바로 "올레 14-1코스 걷기" 였다.
1코스부터 21코스까지 아름다운 해안길도 많은데,
해안에서 떨어진 내륙코스를 잡은데는 이유가 있다.
제주는 혼자 와도 얼마든지 즐길 수 있다.
하지만 누군가와 꼭 함께 가야하는 곳이 있는데,
바로 "곶자왈!"
올레 14-1코스는 곶자왈을 통과해야 하는 코스이기에,
함께 갈 누군가가 꼭 필요한 길이다.
이런 길을 싱거운 말 한마디에도 까르르 웃을 수 있는 유쾌한 벗들과 함께 간다면 금상첨화!
혼자서는 절대 갈 수 없는 길!
올레 14-1코스로 들어가기 전에
일단 꾸욱~
올레 14-1코스는
저지리 사무소에서 출발
강정동산(2.8kmk)을 지나
문도지 오름(5.1km)을 오르고
저지 곶자왈(7.1km)을 통과해
오설록 뮤지엄(9.6)km을 만난다.
그리고 다시 무릉 곶자왈 (12.2km)을 통과해
인향마을 (16.4km)을 지나
제주 자연 생태 문화체험골 (18.8)km에 이르는
총거리 18.8km의 난이도 "상" 코스이다.
예상 소요시간은 7~8시간!
저지 마을회관에서 출발한 게 12시경이었으니, 아무래도 완주는 힘들듯!!
일단은 어두워지기 전까지 최대한 가는 것을 목표로 start!!
코스설명에 강을 건너야 한다는 말은 없었는데?
초반부터 난코스를 만났다.
전날 비가 온 탓에 길이 여간 질퍽한게 아니다.
돌담길을 끼고 걸을 땐 제주의 운치가 제대로 느껴진다.
금빛 억새는 제대로 물이 올라,
농촌의 스산한 겨울풍경에 생기를 불어 넣어준다.
저지마을 회관에서 출발할 땐 안 보였던 "저지오름"이
비로소 보이기 시작한다.
가끔 나오는 대책없는 물웅덩이만 빼면
초반 길은 대체로 평탄한 편!
남은 거리 18.8km 에서 시작했는데,
이렇게 쑥쑥~ 카운트 다운 되는 걸 보면 발걸음엔 더욱 힘이 더해진다.
제주의 초겨울은 온통 귤천지다.
그저 저 주황빛을 눈에 담는 것만으로도
몸 속에 비타민 C가 감도는 느낌!! ^^
올해 처음 만나는 동백꽃!
추운 날씨에도 굴하지 않고 당당히 민낯을 드러내는 그 용기는 어디에서 오는건지?
전날, 큰엉에서 반지 만들어 끼고 사진 찍으며 놀게 했던
돈나무 열매는 이곳 14-1코스까지 따라와 있다.
찬 겨울, 꽃을 떠나 보내고,
씨앗만으로도 꽃보다 더한 아름다움을 풍기는 넌,
이름이 뭐니?
잊을만하면 나오는 물웅덩이~
처음엔 우리를 많이 당황케 했던 웅덩이가,
이젠 이 길 위의 작은 액센트가 되어 있다.
두 팔을 활짝 펴 중심을 잡다보면,
추위에 움츠러 있던 몸이 저절로 펴지니,
움츠리지 말고 어깨 활짝 펴고 걸으라는
올레길이 전하는 무언의 조언이 아닌지...
4km쯤 왔을까?
우리 눈앞에 보이는 건 저 멋드러진 나무가 아니다.
그 아래에 펼쳐져 있는 평상!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그 마음을 알 것 같다.
저리 너른 평상이 펼쳐져 있는데,
어떤 강심장이 그냥 지나칠까?
"잠시만요~ 배낭 좀 가볍게 하고 가실게요~!!"
이렇게 겁없는 세 낭자는
문도지 오름을 오르기도 전에,
저지 곶자왈에 들어서기도 전에,
전체 18.8km 중 고작 '4분의 1' 밖에 안 와서,
그저 배낭을 가볍게 하겠다는 일념 하나로,
그 추운 날씨 속에,
막걸리를 들이키고야 말았으니...
ㅋㅋㅋ
한쪽에 붙어 있는 콜택시 번호가 반갑다.
저지마을회관에 차를 세워둔터라,
이 길 위 어딘가에선 택시를 불러야 하리니...
반가운 마음에 택시 번호를 적는데...
어찌 번호가 좀...ㅋ
벗어두었던 등산화 끈을 매느라 잠시 지체한 동안,
저 앞에 가고 있는 벗의 뒷모습이 너무나 그림 같아 한컷 담았는데...
손이 막걸리를 기억하고 있었다.
왜 이렇게 대책없이 흔들린거지? ㅜㅜ
드디어 처음 만나는 오르막!
"문도지 오름"에 오르는 길이다.
다소 거칠게 세워져 있는 울타리. 막혀 있는듯하지만 돌아서 들어가게끔 뚫려 있다. 그렇다면 이곳에...?
역시!! 말조심!!!
그래서 우리는 말없이 걸었다.
조금 더 오르자 얌전히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말!!
갑오년인 2014년의 주인공!!
아무리 반가워도 우리에게 달려올 건 아니지?
조심스럽게 살금살금~ 그 앞을 지나간다.
그 때 우리 눈앞에 펼쳐진 것은...
푸르른 숲으로 뒤덮힌 곶자왈!!
지구의 허파가 아마존이라면,
제주의 허파는 이곳 곶자왈이리라.
누군가 그랬다.
곶자왈이 없으면 제주엔 사람이 살 수 없을 거라고.
현무암으로 이루어져 물이 귀한 제주!
그 물의 저장고가 바로 이 곶자왈이라고!
곶자왈 지대는 토양의 발달이 빈약하고 크고 작은 암괴들이 매우 두껍게 쌓여 있어
아무리 많은 비가 올 지라도 빗물이 그대로 지하로 유입되어
맑고 깨끗한 제주의 생명수인 지하수를 함양한다는 점에서
마치 ‘스펀지'와도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그래서 사방이 탁 트인 문도지 오름에 오르면
갸냘픈 여인의 가슴으로도 제주를 모두 품을 수 있다.
섬바람이 매섭다.
주위에 바람을 막아주는 것도,
바람을 피할 곳도 없다.
지금 우리는 삼다도 제주를 온몸으로 느끼고 있다.
저 멀리 바닷가엔 오묘한 빛내림 현상마저...
올레길 14-1코스의 백미라 할 수 있는 문도지 오름!
날이 좋을 땐 저 멀리 한라산도 보인다고 하는데,
날씨가 흐려 한라산은 보이지 않았지만,
사방이 탁 트여 제주 어느 곳에서도 쉽게 만나지 못하는 귀한 경치를 선사했다.
문도지 오름에서 내려오니 남은 거리는 13km로 줄어 있다.
그런데 문도지 오름에서 너무 추위에 떨었던 탓일까?
온몸을 휘감는 한기가 좀처럼 떨쳐지지 않는다.
세 여인의 눈빛이 간절히 뭔가를 원하고 있었다.
말로 하지 않아도 서로가 뭘 원하고 있는지 알고 있다.
짜잔~ 이 묘한 빛깔의 액체!
집에서 담근 복.분.자.주!!
확실히 추운 날씨엔 조금 독한 술이 제격이다.
복분자주 한모금에 한기가 스르르 녹는다.
얼었던 입도 녹아
조잘 조잘~ 수다 떨며
까르르르~ 웃으며
평탄하게 뻗어 있는 길을 걸어갔는데...
드디어 마주하게 된 곶자왈!!
곶자왈(Gotjawal)이란
"화산분출시 점성이 높은 용암이 크고 작은 암괴로 쪼개지면서 분출되어
요철(凹凸)지형을 이루며 쌓여있기 때문에
지하수 함양은 물론, 보온·보습효과를 일으켜
열대식물이 북쪽 한계지점에 자라는 북방한계 식물과
한대식물이 남쪽 한계지점에 자라는 남방한계 식물이 공존하는
세계 유일의 독특한 숲"을 말한다.
하지만 숲이 우거져 있는 관계로 어둡고 한적하기에
곶자왈 입구엔 유난히 주의를 알리는 표지판이 많다.
실제로 곶자왈 안에서 보게 된 천남성!
예쁜 빛깔에 혹해서 만져서도, 먹어서도 안된다.
그 옛날, 사약의 재료로 쓰였던 것이 이 천남성이었다고 하니...
확실히 곶자왈은 여느 길과는 다른 분위기가 느껴졌다.
동화책에서 마녀나 악당이 살고 있는 것으로 묘사되는 음침한 숲!
화살표와 올레리본이 없으면 길을 잃기 딱 십상이다.
그야말로 사람의 손을 타지 않은 초자연의 느낌!
올레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14-1코스는 절대 혼자서는 가지 말라는 경고문이 있다.
이곳에 와보니 비로서 그 경고문의 의미를 알 것 같다.
앞에 가는 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것이 이렇게 든든한 적이 없었다.
앞에 가는 두 사람의 대화를 살짝 엿들어보니,
"만약 100만원을 줄테니 이 길을 혼자 걸으라고 하면?"
"에이~"
"만약 1000만원을 줄테니 이 길을 혼자 걸으라고 하면?"
"음..."
그러면서 발걸음이 무진장 빨라지는 그녀들!
아악~ 같이 가!!!
난 1억을 준다 해도 이 길을 혼자 걷고 싶진 않다.
곶자왈의 끝에서 만난 지난 가을의 흔적들!
밤하늘의 그 수많은 별들이 낮에는 어디 숨어 있나 했더니, 비로소 알게 됐다.
어기서 쉬고 있다는 것을.
어두운 곶자왈을 벗어나 비로소 밝은 세상을 만났는데,
화살표는 또다시 숲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저 화살표를 못본척 하며 밝은 길로 가버리는 나의 벗들!!
화살표 앞에서 서성이고 있는 내게 벗들은 자신있게 외친다.
"이 길로 가도 만날거야~ 이제 숲은 싫어~!!!"
그런데 1분도 안되어 다시 올레길과 만나
어쩔 수 없이 다시 숲길을 가야 하는 운명이라니~!!
그런데, 그 숲은 우리를 녹차밭으로 안내하고 있었는데...
드넓게 펼쳐진 녹차밭이 반가웠다기 보다는,
이제는 길을 잃을 염려도 없고,
날이 어두워져도 두렵지 않다는 안도감이 더 컸단 것 같다.
아쉽지만 14-1코스는 이 곳 녹차밭에서 마무리를 해야할 듯!
여기가 그 유명한 오설록 뮤지엄!
박물관은 문을 닫고, 찻집만 성황을 이루고 있었다.
추위에 떨었음에도 따뜻한 녹차보다는 시원한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었다.
그래서 한컵에 무려 4500원이나 하는 녹차 아이스크림을 주문했는데...
한 숟갈 먹고는 눈이 휘둥그레~
이런 녹차 아이스크림 맛은 처음이야~!
입안 가득 진하게 퍼지는 녹차향이 남다르다.
비싸다고 투덜거렸는데, 절대 비싸지 않게 느껴지는 이 느낌은 뭐지?
녹차를 먹고 1818번의 한경택시를 불러 저지마을 회관으로 돌아왔는데...
저지 곶자왈을 걸었다 했더니 택시 기사 아저씨 왈~
"곶자왈을 걸었으면 제주는 다 본거예요!"
다소 과장이 섞여 있는 줄 알지만,
그 멘트에 세 여인의 어깨는 한없이 올라간다.
그리고 마음으로 말한다.
마침표를 찍고 싶지 않은 마음에,
우리는 14-1 코스의 절반길을 남겨두고 가는거라고...ㅎㅎㅎ
<이 글이 블로그 메인에 떴네요.^^ (2013.1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