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여전히 여행 중이다.
나의 여행은 언제나 현재 진행형이며 따라서 더러 쉼표가 있을 뿐 마침표가 없다.
종착역이 아닌 항상 간이역을 서성이는 나의 여정은 그래서 가끔 피곤하기도 하다.
"마흔 살이 될 때까지 어리석으면 진짜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해서
요즘 많은 시간을 할애해서 어리석지 않으려 발악하고,
바보는 방황을 하고 현명한 사람은 여행을 한다고 해서
항시 괴나리 봇짐을 머리맡에 챙겨둔다.
여행을 그칠 줄 모르는 나는 현명한 사람일까 일까, 아니면 바보일까...
성현들은 그랬다.
좋은 경치는 결코 먼 곳에 있는 게 아니라고...
하지만 세상이 바뀐 만큼 이제는 바꿔야 한다.
여행이라는 이름을 빌어 바다를 건너고 산을 넘어 비행기를 타고 온 장가계...
거기서 나는 또 하나의 엄청난 추억 하나를 더한다.
하늘을 날 수 있다면...
창문하나 열 수 없는 밀폐된 공간에서 음속으로 하는 그런 비행(飛行)이 아니라
날고 있는 높이 만큼의 바람과 온도를 피부로 체감 할 수 있는 그런 비상(飛翔).
지금까지 겪어 본 비행의 경험과는 전혀 다른 느낌으로 하늘을 날았다.
지상과 천상을 구분 짓는 구름 위로 올라가 구름 아래 펼쳐져 있는 세상을 내려다보았으니,
이러한 풍경을 담을 수 있는 곳,
중국 장가계(張家界) 천문산(天門山)!!
천문산(天門山, 1,519m)은 장가계를 대표하는 산이며 중국이 자랑하는 명산 중의 명산이다.
온전한 두 다리를 빌려 이 산을 오르려고 한다면 하루 온종일로도 시간이 부족하다.
그래서 중국 정부에서 결단을 내렸단다.
케이블카를 설치하기로...
그 결정적인 동기는 물밀듯이 밀려오는 한국 관광객들의 편의(?)를 위해서.
이러한 특별하고도 전설적인 유래로 인해
장가계의 특별함 중 하나는 한국관광객을 꽤 대우해준다는 점!
줄을 길게 서서 기다려야하는 불편함 대신~
한국 관광객이 들어가는 입구가 따로 있었다.
물론 그 입구로 들어가면 중국관광객들 앞을 가로질러 우리가 먼저 입장하게 된다.
당연히 중국 관광객들은 그들의 모국어로 심각한 불만을 토로하는 것 같은데,
중국인들도 잘 모르는 외진 땅 장가계를 세계적인 여행지로 만들어준 이들이 한국관광객들이라 하니,
중국인들에겐 미안하지만, 이해해 주시길~
처음에 이 케이블카를 설치할 때만 해도 이 지역은 발달이 덜 된 곳이었는데,
이후 케이블카 승강장 근처에 버스 정류장도 들어서고,
숙박시설, 관광상품 판매소 등이 건설되면서
이른바 신흥 관광도시로 비약적인 발전이 진행되고 있다.
게다가 기차역까지 들어와 어느덧 천문산케이블카 승강장 근처는 장가계시의 최대 번화가가 되고 말았으니,
조만간 케이블카 승강장을 다른 곳으로 옮길 예정이라고 한다.
다른 대부분의 케이블카들은 관광지 내에 승강장을 두는데 비해,
여기 천문산 케이블카는 시내 한 가운데 위치해 있어서 접근성이 좋다.
재미있는 것은 처음 케이블카를 만들 때부터 이 집들은 있었다는 것!
자기 집 지붕 위를 아슬아슬하게 통과하는 케이블카가
이 집에 사는 사람들 입장에선 반가울 리가 없는데...
그래도 케이블카 설치가 가능했던 이유는 중국이 "공산국가"라는 점!
국가에서 하는 사업에 그 어떤 반대도 할 수 없는 주민들!
우리나라로선 꿈도 못 꿀 일!!
토지 소유권을 국가가 갖고 일정 기간의 건물 소유권만 개인에게 인정하는
중국식 사회주의 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동안 케이블카를 꽤 많이 타봤지만,
일반 주택의 지붕 위로 날아가는 것은 첫 경험이라,
천문산 케이블카는 시작부터 신선했다!
저 멀리 도심을 뒤로하고 케이블카는 산을 향해 가는 중이다.
바야흐로 도회의 인간이 산을 넘어 신선이 되는 중이다.
저 앞에 병풍처럼 펼쳐져 있는 것이 천문산!
1,500m급 준령들이 죄다 구름을 뚫고 그들만의 웅장함을 자랑한다.
신선의 산, 장가계의 혼(魂)이라 불리는 천문산!
시내에서 천문산 전망대까지 케이블카를 타고 오르는 거리는 총 7,450m!
명실상부하게 세계 최장 길이를 자랑한다.
통영이 자랑하는 우리나라 최장의 케이블카인 통영 미륵산 케이블카는 1,975m,
이에 비하면 천문산 케이블카는 약 4배의 길이다.
케이블카가 당도하는 전망대의 해발고도는 1,277m,
장가계 시내에서 승차한 인간이 하늘에 올라 신선이 되는데 걸리는 시간은
35분. 청도맥주 한 병에 육포 한 봉지 먹는 시간이면 족하다.
케이블카의 수는 98대! 승선 정원은 8명, 속도는 초속 6m,
케이블카간 거리는 108m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숫자 108은 여기에도 적용이 되었다.
이 케이블카는 2005년, 독일, 프랑스, 스위스의 기술을 도입하여 건설되었다고.
이렇게 긴 케이블카를 만든 이유?
길을 만드는 것보다 케이블카 건설비가 더 싸다는 후문!!
정상부에 구멍이 뻥 뚫려 있는 저곳이 천문산의 명물 <천문동>!
하늘로 들어가는 입구란다.
살아서 갈 수 있는 하늘입구가 흔치 않으니 반드시 가보고야 말텨~!
기다려~!!
계곡 아랫부분에 설치된 저 세트장이
세계 최대의 야외극장인 장예모감독이 연출한 <천문산쇼> 공연장!
봉우리마다 계곡마다 조명이 숨어 있고 보조 설비가 장착되어 있다.
역시 대륙의 스케일, 이럴 때는 입을 다물지 말아야 한다.
나그네들이여, 그 입들 다물지 말라~!
인간을 태운 바구니는 구름을 헤치고 하늘로 비상(飛上)한다.
속세를 떠나가고 있다.
모두들 신선이 될 각오와 기대에 흥분을 더하고 있다.
별유천지 비인간(非人間)이 아니라, 별유천지에는 재신선(在神仙)이라야 맞다.
세상이 사라진다.
미혹(迷惑)과 불신(不信) 탐진치(貪瞋癡)가 사라지고 있다.
때때로 가까운 곳을 밀쳐두고 먼 곳을 탐했기에 가능한 절경이다.
*탐진치(貪瞋癡) : 불교에서 말하는 수행인을 해롭게 하는 세가지 독(毒).
욕심, 성냄, 어리석음
하긴 천문산은 늘 구름과 안개가 덮고 있어 "운몽산"이라는 별명까지 갖고 있다하니,
지금 눈 앞을 가리고 있는 이 안개를 탓할 바가 못된다.
천문산 산신령의 연출력이 나그네들의 상상력을 희롱한다.
창졸간에 모았다가 순식간에 흩었다가...
세상에서 가장 크고 높은 무대를 바탕으로 펼쳐지는 신들의 장난에
철 없고 명 짧은 속세의 나그네들은 한바탕 비명을 지른다.
불현듯 운산(雲山)의 찬 기운이 발밑의 고도를 높이는가 했더니
운해(雲海)의 부드러움이 천상에 들어서서 이제막 비인간(非人間)이 된
나그네들의 심장을 감싸고 돈다.
완만한 경사면을 감미롭게 끌어 올리기도 하고
때에 따라서는 수직에 가까운 상승으로 명치 끝을 흔들기도 한다.
이럴 때 35분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었으니...
저 멀리 절벽으로 떨어지는 폭포가 아찔하다.
이 곳에서 폭포의 낙폭(落幅)이 몇 미터인지 가늠하는 것은 자연에 대한 결례이다.
거의 90도 경사로 떨어지는 폭포!
여름이라 비가 많이 온 덕에 폭포의 수량과 힘찬 물소리가 간담을 서늘케 한다.
열려진 창문 밖으로 계곡의 습한 공기도 송두리째 들이 마시고
물소리 새소리, 낯선 곳의 숲향조차도 감미롭게 폐부에 담는다.
하늘 두레박에 명줄을 건 나그네들은 한시도 한가할 틈이 없다.
놀랍고,통쾌하고,기막히고,그리고 귀막히고...
그리고 천문산 케이블카를 타고 가면서 보게 되는 하일라이트!
일명 99개의 굽은 도로라 불리는 <통천대로(通天大路)>!
통천천로(通天天路), 천문대로(天門大路),
어떻게 부르건 모두들 하늘로 가는 길이다.
심장 약한 사람들에겐 저승으로 가는 길일지도 모른다.
미끌림과 낙석 지반 붕괴의 위험이 도처에 깔렸다.
(나중에 이 길을 차로 내려 가면서 최소한 3년 6개월은 수명단축을 했으니...)
이름 그대로 하늘로 통하는 길이다!
구절양장이란 진정 이런 곳에다 붙여야 한다.
정말 살 제대로 떨리는 케이블카, 살 엄청 떨리는 절벽 도로...
여기가 대륙이라는 사실을 잊고있었다.
180도씩 휙휙 굽어 있는 길이 여간 아찔한게 아닌데,
기아자동차 K9 광고 촬영을 한 곳이 바로 이곳 <통천대로>이다.
수직으로 깎아지른 계곡의 양사면에 수평으로 길을 내고자
엄청난 발상을 낸 이들은 과연 누구였을까...
산 아래에서 인간이었을 시절에 하늘 높이 우러러 보던 안개와
바야흐로 지금 신선이 되어서 발아래로 내려다 보는 안개는 그 성분조차 다르다.
태산만한 무게의 하늘이었던 안개가 이제는 입김 한 번 불면
한 방에 훅 하고 날려가버릴 것만 같은 솜털 같이 가벼운...
결국 속세를 온전히 떨치지 못한 이 인간의 간사함이여~
어느덧 내 시야는 구름과 눈높이를 같이 하고 있다.
이승과 저승도 이제 한 시야에서 공존하고 있다.
그래, 저승과 이승은 결코 다른 공간이 아닌게야...
곧이어 구름보다 높은 곳, 신선들이 사는 세상을 만났다.
지상세계와 천상세계가 동시에 시야에 들어오는 이 기묘한 느낌!!
어두운 곳은 이승이고 태양빛 고운 저 곳은 저승일까?
어둠과 밝음을 구분 짓는 저 구름은 또 어떤 존재일까?
확실히 인간의 세상은 어렵다.
그럴수록 쉽게 살아야 한다.
바보거나 바보가 아니거나...
이쯤 되면 정말 신선이나 선녀를 찾아봐야 하는 건 아닌지 혼란스럽다.
인간에게 하늘을 날고 싶다는 욕망을 갖게 한 것은 조물주의 탓이다.
애초에 인간 군상들에게 날개를 달았더라면 그런 욕망조차 없었을텐데
조물주가 게을러 인간에게 날개를 생략한 탓에
영악하지 못한 인간들은 이런 쓸데없는 욕심들을 누더기처럼 입에 물고 산다.
한바탕 휘몰아친 꿈이었을까...
인간에게 날개를 달아주지 못한 조물주가 현몽하여
훠이~훠이~ 하늘을 나는 꿈을 꾸도록 해준 조물주의 발칙한 장난이 아니었을까.
오색 창연했던 35분의 꿈이 끝났다.
꿈길도, 이승도, 저승도 베갯머리에 침물처럼 그득한데 그저 꿈만 끝나버렸다.
언제 다시 꿀 수있을지 알 수 없기에 그 꿈은 더욱 감질난다.
철 지난 바닷가...
막 내린 연극 무대...
그 곳은 그저 공간일 뿐이다.
나그네의 발자국이 당도하기 전에도 그 곳은 당연히 거기에 있었고
사람이 길을 만들기 전에도 골은 그 곳에서 물길을 가꾸고 있었다.
그 곳은 공간이었고 그 곳은 자연이었다.
찰나를 사는 인간과 영원을 사는 그 곳의 차이일 뿐이다.
생경했으므로 감탄했고 놀라왔으므로 행복했다.
"내가 죽어갈 때도 이게, 이런 모습들이
잔상(殘像)으로 내 머리속에 남아 있을 것 같아..."
<케이블 방송의 어느 오락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할배의 대사중에서>
<이 글이 다음 메인에 떴네요. ^^ (2014. 8.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