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대떡은 절대 떡이 아니다"
빈대떡을 먹을 때마다 나홀로 중얼거리는 말이다.
사전에도 나온다, 떡은 분명히 쪄서 만드는 음식이라고.
그런데 빈대떡은 부침개처럼 기름에 부쳐먹는 음식이다.
빈대떡은 그 유래에 대해서는 참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음식이다.
가난한 자의 음식인 '빈자(貧者)떡'이 유래라는 사람도 있고,
빈대가 유달리 많은 정동에서 주로 만들어 팔다보니 '빈대떡'이 되었다고도 하고,
중국 음식 병자떡(餠子餠)을 우리 말과 섞었다는 학설도 있으며,
(나는 굳이 '떡'으로 표현한 이유를 근거로 이 학설에 한 표를 행사하는 편)
'빈대'라는 말을 '콩비지'의 '비지'와 같은 어원으로 추축해서
'비지떡'에서 음운 변화를 일으켰다고 보는 학자
(서정범著, 국어 어원사전 p,330참조)도 있다.
아무튼 우리의 영원한 막걸리 친구,
그녀에게 혹은 그이로부터 심하게 바람 맞은 날,
특별히 그 바람 속에 비까지 섞여서 맞았다면 목숨을 걸고라도 먹어야하는 필수 먹거리,
고소한 빈대떡을 찾아간다.
거기다 알큰한 명태머리찜은 덤이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부산의 동래시장,
있는 것은 전부 다 있고 없는 것은 때려 죽인다 해도 없는 만물 재래시장이다.
동래 인근의 부산 사람은 다 안다.
부산의 전통 재래 시장인 동래 시장은...
다양하게,저렴하게, 재미있게, 사고, 먹고, 놀다갈 수 있는 이웃 같은 곳이라는 것을.
그 중에서도 오늘 우리가 발품 팔아가며 에둘러 찾아 간 곳은
예로부터 동래 시장의 자랑,먹자 골목,
한마디로 '다 있다'
탕, 밥, 찜, 술, 전, 회...
구이,볶음,튀김,무침,찌개,..
소주, 막걸리, 맥주, 동동주, 포도주...
하나로 연결된 목로 의자는 초면부지의 이웃과 엉덩이도 나누고,
테이블에서는 본의 아니게 옆 사람들과 대화도 나눠 들어야 하는
그야말로 공유의 공간, 엄청나게 열린 소통의 공간이다.
우리 일행은 세 사람.
입 소문을 따라 머나먼 여기 까지 온 이유는
세사람 중에서 두 사람의 간택을 받은 빈대떡,
그리고 나머지 한 친구의 러브콜을 받은 명태머리찜,
그 두가지로 인해 인근에 제법 자랑질에 여념이 없다는 이 곳.
우리가 찾은 시간은 평일대의 꽤 늦은 시간,
이 곳의 영업 마감 시간은 저녁 09;30분, 재래시장의 마감은 의외로 빠르다.
남은 시간까지는 불과 한 시간 삼십 분 남짓,
재빨리 흡입하고 트림하고 그리고 현금 계산하고
각자 제 갈 곳으로 반드시 당일 날짜 이내에 가야 한다.
시간이 없다.
들은 대로 빈대떡, 명태머리찜, 게다가 의외의 소주 복병인 돼지 껍데기까지...
이렇게 서민 영양안주 3단 콤보가 한이불을 덮고 있는 경우가 드문데...
그래, 두고 보자...
위대(胃大)한 이들을 위한 양과 입맛 까탈스러운 이들을 위한 질,
그리고 깃털처럼 가벼운 지갑을 가진 이들을 위한 가격을...
그런데...
위 쪽에는 술안주 메뉴를 걸어 놓고 아래 쪽에서는 반찬 가게를?
주로 토끼띠 초식 동물들을 위한 반찬류가 대부분이다.
묵은지, 겉저리, 나물류, 산과 바다 그리고 들에서 건진 것들로 이루어진.
잘 못 온 거 아냐?
미처 윗쪽 메뉴판 바꿀 겨를도 없이 후다닥 반찬가게로 바꾼거 아냐?
바로 찾아 왔단다.
낮에는 이렇게 부페식으로 밥을 팔고,
밤에 술 손님들에게는 곁접시로 이렇게 입맛에 맞게 반찬을 골라 마음껏 드시란다.
식사를 주문할 때는 국과 밥, 그리고 특정 요리만 그 때 그 때 별도로 나간단다.
아깝다,
식사를 하러 왔더라면,
큼직한 양푼이에 참기름 듬뿍 둘러 더운 밥 풍덩 빠뜨리고
각종 나물, 겉저리에 고추장 살짝 걸쳐 젓가락으로 쓱쓱싹싹!
오른쪽으로 돌리고 왼쪽으로 돌리고~
채소도 양념도 입 맛 따라 취향따라 고염도든 저염도든 소량이건 대량이건...
머리 참 잘 썼다.
그렇다면 내 입맛에는?
딱 그맛이다, 할머니의 고향 시골 맛, 집에서 먹는 엄마의 손 맛...
오늘의 주인공 빈대떡을 맞이하기 위해 고추냉이도 옷고름을 풀었고
자태 고운 양파도 다소곳 속살을 드러내고...
취향따라 입맛따라...
반찬도, 양념도, 야채도, 소스도, 심지어 술의 종류마저도
제각각 서둘러 진설되었다.
시간이 없을 땐 굳이 질서와 모양새를 따질 필요가 없다.
젓가락의 사정거리에 있으면 그게 모범이다.
주인공의 화려한 등장, 떡 아닌 떡이 안주가 되는 절묘한 반전.
세계 시장에 내 놓아도 어느 누구도 거부하지 않는 매혹의 체향.
빈대떡의 크기가 내 얼굴보다도 더 크다.
두께는 웬만한 피자를 능가한다.
스멀거리는 향기는 성급하게 입보다 식도를 먼저 불러낸다.
바로 뒤따라 등장했다.
침샘을 무책임하게 자극하는 불후의 명태머리찜...
명태의 재발견, 명태의 재활용,명태의 화려한 변신,
어두일미(魚頭 一味)의 재확인...
안주가 술을 부르고 술이 친구를 부르고 친구가 나를 부른다.
빈대떡의 느끼함이 항상 끝맛을 잡았는데 겉절이가 해결해준다.
친구가 찾아준 재래 시장의 토속 음식,
큰 기대 없이 찾았기에 놀라움이었고 그래서 감동이었다.
구석진 곳에 이런 훈장도 달고 있다.
아는 사람은 일찌기 인정하면서 많이들 먹고 갔다고.
샹들리에 화려하게 달고 이태리 대리석 곱게 깐 품격있는 레스토랑에서
때깔곱게 프랑스산 에르메스 접시에 담아낸다고해서
굳이 명품 요리가 아니다.
정말 잘 먹었다. 맛있게...
셋이 충분히 과음 과식을 하고도 남았다.
빈대떡 한 장, 명태머리찜 1/3은 새단장으로 재포장 되어 친구의 가방속에 자리잡고.
그냥 남기고 가는 사람보다 남긴 음식 싸가는 사람 보면 많이 이름답다고,
내 음식 먹고 가면서 잘 먹었다고 인사하는 사람이 아름답다고,
10년 동안 즐겁게 이 장사 할 수 있었던 것도
날마다 그런 사람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함박 웃음 머금은 얼굴은 숨기지 않아도
주름지고 물기 마를 새 없는 두 손은 애써 뒤로 숨기시는
님이 더욱 아름답습니다...^^
"이런 거 잘 안 물어 보는데....
여기 가격대는 어떻게 형성되어 있나요오?"
얼굴너비의 빈대떡 3장 한 접시에 1만원,
얼굴높이의 명태머리 찜 3더미 한 접시에 1만원,
진정한 의미의 1인분을 확인하는 날이었다는...
사실 빈대떡은 떡이 아니다.
하지만
막붙이라고 부르건(함경도) 녹두지짐이로 부르건(평안도) 빈대떡이라고 부르건
이젠 그냥 떡이라고 인정하기로 했다.
맛있고 아름답고 착한 우리떡,
더 이상 빈대떡을 먹을 때 마다 하던 떡에 대한 의혹을 떨쳐버리기로 했다.
옛날 당신들의 시절부터...
마당에 화톳불 밝혀놓고 소댕(가마솥 두껑)걸어 장작열 가득 받아,
불린 녹두 곱게 갈아 숙주나물, 고사리 나물, 김치, 돼지고기 듬뿍 넣어서
돼지 기름 둘러 노릇 노릇 재작재작 감질나게 부쳐내면 사방 십리에서
군침 삼키는 소리가 진동을 했다는 아리도록 기특한 우리의 떡.
빈대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