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타고 떠난 꽃한송이

<인도네시아여행-14> 반둥 도마스 화산 분화구에서 삶은...?

작성일 작성자 김작가


여행이 일상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는 요즘,

인도네시아가 여행지의 목록에서 소외되어 있다는 것은

심각한 아이러니이다.


고작 신혼 여행지로서 자바섬 동쪽에 있는 발리와 롬복 정도가

우리나라 여행사에서 내 놓은 인도네시아 여행 프로그램이다.


인도네시아는

광대한 국토와 인종 전시장보다도 더 다양한 민족,

그리고 그들이 만들어낸 특색있는 문화와 유적,

그리고 세계 어느 곳에 내놔도 수려한 자연경관을 자랑하는데...


그 중에서도 인도네시아는 크고 작은 수많은 화산보유국으로서 유명세를 자랑한다.

그 화산들이 지축을 흔들며 불을 뿜을 때는 현지인들에게 재앙을 초래하기도 하지만

숨을 고르고 평화를 유지할 때는 소중한 자산이 되기도 한다.


그 화산들 중에서

반둥의 땅꾸반 쁘라후 화산 (2,084m-Gunung Tanguban Perahu)을 둘러봤는데,

내려오는 하산길에도 대단한 볼거리가 있었으니...



까와 도마스 (Kawah Domas),

'화산의 입구' 라는 뜻으로 땅꾸반 쁘라후 화산의 1,400m 중턱에 위치한다.


땅꾸반 쁘라후 화산은 분출 기록을 남긴 1829년 이후

불규칙적인 간격(7년~41년)으로 여섯번의 폭발 기록을 남겼는데,

마지막 폭발인 1926년 이후 꾸준히 화산 활동이 증가하고 있다고.


이 말은 머지 않아 그동안 축적된 에너지를 모아

거대한 폭발을 일으킬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말인데...

그날이 제발 오늘은 아니길...



여기도 입장료 폭탄이다.

한 팀당 300,000 Rp.

 우리돈으로 대략 3만원.


가이드 대동비 명목으로 3만원을 무조건 내란다.

우리 지인의 나와바리라 가이드가 필요없다고 악을 썼지만 

들은 척도 안 한다.

수십번도 더 다녀서 두 눈 감고도 찾아갈 수 있다고 피를 토했지만

자기네들의 법이란다.


칼만 안 들었다.



하늘을 찌를 듯한 나무 위로 먼저 원숭이들이 우리를 반긴다.

온갖 새들도 덩달아 노래하고

낯선 숲향은 나그네의 코끝을 희롱한다.


여기가 말로만 듣던 열대 우림의 밀림 속.

하지만 숲 속의 체감 온도는 한없이 쾌적했다.

당연히 발걸음도 가볍고.



울울창창, 하늘을 가린 나무들의 키높이.

왜 인도네시아가 '적도의 에매랄드 목걸이' 라는 별명으로 불리는지,

왜 인도네시아가 삼림자원의 보물창고라고 불리는지

비로소 체감할 수 있는 길.



단 한마디의 말도 없는 300.000 루피아 짜리 우리의 가이드.

심지어 우리 뒤를 쫄래쫄래 따라오며

누가 가이드인지 헷갈리게 했던 그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이게 뭔지 알아요?"



"안다, 이놈아!! 야생 생강이잖아!!"


우리의 해박하신 인도네시아 지인의 한마디에

그는 다시 입에 지퍼를 채우고

그저 말없이 우리를 뒤따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끝까지 말이 없었다는...



맑았던 하늘이 갑자기 돌변,

우렁차게 물을 쏟아낸다.


딱 그 시간에 맞춰 나타난 간이 휴게소와

딱 비올 때를 맞춰 등장한 비옷 장수들!


그들은 그렇게 절묘했다.

하지만 우리는 절정기의 비만 잠시 휴게소에서 피하고

열대성 스콜도 여행의 일부라 빡빡 우기며

빗속의 밀림길을 그냥 걸었다.

비 맞은 스님처럼 무언가를 열심히 중얼거리며...



그렇게 우리는 우중의 청승을 낭만이라고 끝까지 우기며

우산도 없이 빗속의 숲 길 걷기를 무려 30여분!

드디어 그곳이 나타났다.



땅꾸반 쁘라후 화산에 있는 분화구는 10여개.

그 중에서 가장 접근성이 용이해 출입이 허용된 곳은 3개의 분화구.


해발 1,800m에 위치한 까와 라투(Kawah Ratu), 까와 우빠스(Kawah Upas),

그리고 여기, 까와 도마스(Kawah Domas).



이곳의 명물은 계란과 족욕.


여기까지 와서 계란을 먹지 않고 간다면

로또를 꿈꾸지 말 것이며

여기까지 와서 족욕을 하지 않고 간다면

십리도 못 가서 발병이 난다는데...


믿거나 말거나~ ^^



누가 삶은 고통이라고 했던가!

누가 삶은 머나먼 여행이라고 했던가!


삶은...계란이다.


그래서 우리도 그 삶은 무언인가를 느껴보고자 무려 10개를 구입했다.

참고로 나는 평소에 삶은 계란을 2개 이상 먹어본 일이 없다.

내 친구는 한 술 더 떠서 삶은 계란 자체를 안 먹는단다.

이유는 껍질 까기 귀찮아서...



계란이 삶은 계란으로 승화되기 위해서는 제법 열을 받아야 하는데,

그 열을 받기 위해서는 꽤 발품을 팔아야 한다.



끓는다.

석유 한 방울 때지 않고도, 전기 한 톨 쓰지 않고도 마냥 끓는다.


들어가지 말라고 줄까지 쳐놨다.

굳이 그러지 않아도 절대로 들어갈 일이 없을텐데...


미쳤나? 거길 들어가게?

물 온도가 대략 98℃라는데...



순전히 지구가 열받아서 끓는 중이다.

저 물밑에는 언제 토할지 모르는 불덩이가 도사리고 있다.


언제 마음 먹고 땅꾸반 쁘라후 산신령께서 기지개라도 한 번 켜는 날이면

삶은 계란은 고사하고

우리가 삶은 거시기가 될 판!

열 많이 받더라도 제발 오늘은 참아주소서!!



우리의 계란도 나그네의 삶이 되기 위해 살포시 좌욕에 들어갔다.

끓는 한가운데 들어가면 맛이 없단다. 너무 익어서...


그런데 과연 삶아지기는 할까,

거품만 거창하지 끓는 시늉도 안 하는데...




거대한 불신의 늪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나그네는

결국 참지 못하고 물 가까이로 접근을 시도해보는데...



왜 사람들은 조용히 가르쳐주면 믿지 못할까.

책에 적혀 있는대로 그게 진리라고 왜 믿지 못하는 것일까.



앗~! 뜨뜨뜨거~~~


결국 뜨거운 맛을 보고야 말았으니...

그 시간 이후로

친구가 휴대하고 있던 일회용 밴드가

살포시 나의 손등에 내려앉았다는...




단 일각도 쉬지 않고 쏟아져 나오는 화산수!

만일 이런게 우리 한국에 있었다면...불보듯 뻔하다.

우후죽순으로 세워질 호텔과 위락 시설.

칠팔월 쉬파리 끓듯 모여들 부동산 중개소.

그리고 치솟는 땅값과 쫓겨나는 원주민.

이런걸 보면서도 나그네는 고단한 삶을 상상한다.



물 속에 잠긴 계란의 안녕을 추구하며 열탕에서 일단 후퇴!

더 서성댔다가는 이번에는 일회용 밴드가 아니라

온 몸에 붕대를 휘감는 불상사를 초래할지도!!


온천수~

무서워요!!



주변이 온통 열기 분출구이다.

지표를 뜷고 올라오는 증기의 온도가 상상을 넘는다.

지구가 내뿜는 숨소리도 날카롭다.


지구가 만든 고성능 천연 스팀 보일러가 지천이다.

돌 위에 계란을 풀면 영락없는 계란 프라이,

개념 없이 저 위에 앉기라도 하는 날이면

삼겹살 타는 냄새가 온 천지에 진동할지도...



돌틈 사이로 물기 하나 없는 마른 열풍도 쉬임없이 올라오고

우리가 밟고 있는 지표면 역시 열덩어리.

이곳 원주민들의 신발 바닥이 죄다 두꺼운 나무로 되어 있는 것도

다 이유가 있다.



언젠가 백두산에서 보았던 자연 온천 분출구는

출입이 금지되어 있어 멀리서만 구경했는데,

여기는 모두가 자유 체험 현장들!!



온천수에서 빚어낸 유황 성분 그윽한 진흙.

즉석에서 이름 짓기를 스파머드.

아토피를 비롯한 피부 미용에는 즉효란다.


가성비도 훌륭하고 그 효험도 탁월하다는 바람에

몹시 갈등을 빚었으나

짐을 늘리지 않는다는 대의명분 앞에서 체념! 



현장에서 실제로 머드팩을 체험할 수도 있다.

남자는 남자 마사지사가, 여자는 여자 마사지사가.

손님은 마사지 시간을 주문하는 만큼 받을 수 있다지만

이 역시 동참을 거부하는 피부 엄청 고운 친구의 저항으로 체념!



확실히 피부에 좋긴 좋은가보다.

머드팩 마사지를 받는 여행자보다

마사지를 해 주는 현지 여인의 피부가 훨씬 고우니...


원래 반둥은 피부 고운 미인이 많다고 해서

미인의 도시로 소문나 있던데

혹시 이 머드팩 때문??



우리보다 더 멀리서 왔음직한 남자 여행객도 피부 정화에 나섰다.

한 덩치하는 관계로 통나무 같은 남자의 다리를 주무르는

현지인의 이마엔 땀방울이 송알송알~


]


남자는 반팔 티셔츠에 핫팬츠 같은 반바지에

거의 반라에 가까운 모습으로 바깥 공기를 완벽히 즐기는데,



그 옆에 있는 아내는

긴 소매도 모자라 니캅으로 완전무장을 했다.

인도네시아 여인은 히잡으로 간단히 머리와 목만 가리는데...


이들은 그야말로 은행이라도 털 기세.

여기는 그나마 산중이라 시원하기라도 하지,

내려가면 얼마나 더울까...


평소 이 여인처럼 니캅을 쓰거나 

아예 눈도 망사로 가리는 부르카를 쓰는 여인들은

바깥에서 어떻게 뭘 먹을까 매우 궁금했는데...



이렇게 니캅을 살짝 들어올리고 그 공간 속으로 운반해서 먹더라는...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지만 난생 처음 봐서 신기.


원체 사진 찍히기를 싫어하는 무슬림 여인들이라

몰래 도촬하는 바람에 부끄럽게도 사진에 지진이 났다.


귀한 장면인데 아깝다~



너 쬐끔 잘 생겼는데 사진 한 장 찍어도 되냐는 말에

남자는 입이 헤블쭉 귀에 걸렸다.


이어서 우리가 한국인이라는 말에

엄지 손가락이 하늘로 올라간다.


넌 어디서 왔니?

유~창한 영어로 물었더니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단체로 가족 여행 왔단다.

그러고보니 주변에 복면 강도들이 득시글~



한국인의 기개를 되살려 중동을 평정하고 있는 가운데,

바지단을 우아하게 무릎까지 걷어 올린 아저씨가

꽃무늬 우산을 받쳐들고 우리의 삶은 계란을 모셔왔다.



여기서는 온천수보다 더 귀한 찬물에 다시 한번 입수,

그렇게 간단한 냉수욕의 침례 의례를 마친 후...



격식과 형식까지 두루 갖춘 접시 위에 다소곳이 좌정하는데...

에누리도 덤도 없이 정확히 열 개!


그런데 우리 일행은 세 사람.

도저히 계산이 안 나온다.


이 때 우리의 현명하신 지인님,

자기는 한개면 충분하시단다.


올커니,

그렇다면 친구 너는 네개 먹고, 내가 다섯개!

어때? 이만하면 황금 분할이지? ㅋㅋ



평소 경춘선 열차나 타면 사이다 섞어 한 두개 먹는 게 고작인데,

어쩌다 천리 객지에서 삶은 계란에 식탐을...

산을 좀 탄 탓에 배가 많이 고팠던 게야~!



삶은 계란이 거기서 거기지.

제깢게 화산수에 삶았다고 계란이 오리알이라도 되나?


이 때, 시야에 들어오는 매우 불편한 진실.

람부탄 까느라 손톱 밑에 가득 들어찬 흑색 그림자.

청결해야 할 여인의 손톱이 어쩌다 이 지경까지...



우째 이런 일이!!

계란에서 어떻게 이런 맛이 날 수 있담?



소금 살짝 찍었을 뿐인데,

점심 시간 조금 넘겼을 뿐인데,

화산 온천수에 그냥 삶았을 뿐인데,

이건 분명코 그런 계란이 아니었다.



이렇게 하여, 땅꾸반 쁘라후 화산에서 닭이 될 열마리의 계란은

걸신 들린 나그네들에 의해 산산히 분해되고 말았다.



이 무렵, 테이블 맞은 편에서 

나의 계란 먹는 우아한 모습을 한참동안 넋놓고 바라보던 사우디 아라비아에서 온 아이가

인도네시아산 용기면 하나를 받아들었는데...



흡사 전쟁 치는 태세로 폭풍 흡입 시작.

이번에는 그 모습에 내가 넋을 놓는다.



고국의 살림살이가 거덜나지 않을 정도라면...

객지에서 참을 수 없는 허기를 느낄 정도라면...

남이 먹는 것을 보고 대책없이 군침이 날 정도라면...


그래서 외쳤다.

여기, 라면 하나 냉큼 추가요!!



첨단 과학의 시대를 살아가면서

왜, 아직도 개선되지 않을까?

라면에 스프 넣고 무려 3분이라는 어마어마한 시간을

목놓아 기다려야 하는 이 불편한 현실은...



인도네시아 컵라면에는 젓가락이 없다.

대신 가소로운 이단 접이용 포크를 준다.


그냥 무더기로 흡입하는 데는 많이 불편하다.

한 젓가락 퍼 올리면 몽땅 딸려 올라오는 젓가락이야말로

라면 흡입엔 최적인데...


그런 불편함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물 한 방울 안 남기고

최선을 다해 다 먹었다.




누군가 말했다.

산행은 결코 스포츠가 아니라고.


그는 등산을 이렇게 표현했다.

삶의 방법이라고.


생전 처음 맛보는 듯이 탐식했던 삶은 계란도,

장마철처럼 길게 이어지는 산중의 이 빗줄기도,

내가 산에서 찾아가는 내 삶의 일부라는 생각이다.


그리하여

이렇게 사소하고 이렇게 새삼스로운 기억들이

하나씩 나의 기억 속에 모이고 축적되면

언젠가는 농익은 추억이 되고

뼈가 되고 살이 되어

결국은

내 삶이 될 터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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