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에 받아든 조간 신문은 '신문(新聞)이지만
내일이 되면 그것은 한 묶음의 종이로 신분 전락한 '신문지'에 불과하다.
사람들이 '신문'에는 금전이라는 정당한 댓가를 지불하지만
종이로 전락한 '신문지'에 지불하는 댓가는 극히 미미하다.
하지만
그 종이에도 많은 세월의 더께가 내려 앉고 연륜의 나이테를 더히게 되면
그 종이의 가치는 급격하게 달라진다.
'골동품(骨董品)'에서 '골동(骨董)'은
'분류가 되지 않은 옛 물건을 통틀어 말하는 것'으로 고전은 말하고 있다.
아울러 '골동'의 어휘는 음식에서부터 먼저 사용되어
오늘날 비빔밥의 또 다른 이름인 '골동반(骨董飯)'에 그 흔적을 남기고 있기도 하다.
<필자의 '비빔밥 포스팅'인 '90년 비벼온 골동반을 아시나요'-2013.10,09 참조>
아무튼 낡고 오래되고 퇴색해야 대접을 받는 유일한 물건 골동품.
신문도 신상도 새 것은 애시당초 발 붙일 수 없는 곳.
자카르타의 수라바야 골동품 거리에서
분류가 잘 되지 않는 오래된 물건들과 함께
그들이 만들어내는 또 다른 풍경과 사람들을 만난다.
좁고 협소한 공간들로 가게들이 나열되어 있지만 나름대로 질서를 갖췄다.
이른 오전 시간, 저마다 부여받은 공간에 오와 열을 맞춰
오늘 하루 찾아올 손님들의 시선 주변에 진열을 서두르고 있다.
때 빼고 광 내고,
경우에 따라서는 오염도 더 묻히고, 있는 광도 죽이고,
여인의 화장처럼 군인의 덧칠처럼,
그들도 그렇게 단장을 하고 있다.
누군가가 한 때 신상으로 사용하던 각종 가방들이 한데 모였다.
주인 손을 떠나온 사연들은 제각각 다르겠지만
여기서는 다 같은 희망과 목적으로 앉았을 터,
좋은 가격으로 좋은 새주인을 만나겠다는 일념일 것이다.
그 중엔 손 때가 적당히 더해져 더 고급스러워 보이는 가죽 가방이 있는가 하면
한눈에도 품격이 느껴지는 명품 반열의 제품도 있고,
제 값을 받기에는 무리라고 여겨지는 폐품급 제품도 보인다.
용도에 맞춰,
지갑의 수준에 맞춰,
그리고 자신의 눈높이에 맞춰,
선택하고 지불하고 소유권을 넘기면 되는 지극히 당사자간의 문제일 뿐.
그 어떤 유혹도 느끼지 못하는 나그네는 그저 관심만 끌 뿐이다.
대놓고 유명 브랜드를 달고 있는 당당한 가방들도 있다.
이 자리에서 그 브랜드의 진위 여부를 따지는 것은 논외로...
아기 자기한 소품들도 나름대로 매력과 효능을 더했다.
구매자는 얼마를 지불할 것인가와
어느 방에 두고 어떤 용도로 사용할 것인지만 결정하면 된다.
우리집 구피 어항에 넣어줄 긴뿔 소라 화석 두어개 확보!
화석인 관계로 그 무게가 상당하다.
항상 염두에 두고 있는 현명한 나그네의 소비 패턴,
부피 작고 가벼우며 실용적이고
나아가 반드시 저렴해야 한다는...
나의 구매 취향을 단번에 파악해 버린 주변 상인들이
우후죽순으로 들이미는 동종의 유사 해산물 아이템들,
아예 갑각류 화석 세트까지 들이민다.
기발한 아이디어의 토속 목제품들,
단순히 원수민들의 장난끼 가득한 소일품들이 아니다.
그들의 미학과 형이상학이 묻어있는 차원 높은 미술품들이다.
언제 누가 어디에 어떤 목적으로 그 위치를 정하느냐에 따라
그 값어치가 결정될 것이다.
위 아래 위위 아래가 따로 없는 발칙한 가면들.
물이 언제나 위에서 아래로만 흐른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면
이 세상에 분수는 태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순리의 파격과 고정관념의 파괴에서 새로운 세상이 나타나는 법.
예나 지금이나 그 역할은 예술인의 몫이다.
인간적으로 늘씬함과 유연함이 넘 부럽다.
원목의 결과 색감을 잘 살린듯.
고풍스러움으로 한껏 무장한 악기와 장식품들.
좌측에 옛날 죽간(竹簡)처럼 늘어져 있는 것은
무슬림들이 사용하는 회교력을 표시한 달력이다.
대나무로 만든듯한 이 악기는 관광지에도 많이 팔고 있었는데...
인도네시아의 전통악기 앙클룽(Angklung).
만드는 소재는 주로 대나무이지만,
때론 목재나 금속으로 만든 것도 있다.
앙클룽으로만 구성된 연주단이 있을 정도로 인도네시아인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으며,
동남아시아 대부분의 나라에 동일한 악기가 전파되어 있다.
흔히들 인도네시아의 전통음악을 일러 '가믈란(Gamulan)' 음악이라고 하는데,
'가믈란'은 '두드린다'라는 뜻의 순다어이지만
악기만을 지칭할 때는 위 사진 좌측의 실로폰 축소형처럼 생긴 악기를 말하고,
음악으로 말하면 여러 종류의 타악기로 구성된 합주를 의미한다.
다양한 크키의 젬베와 썬드 드림 등이 저마다의 치장을 한 채
문지방을 넘어 달려나와 구매자를 기다리고 있다.
내가 새로운 수집을 시작한다면 다양한 나라의 전통악기를 수집하고 싶은데,
그런 의미에서 인도네시아는 최고의 악기 백화점이다.
다양한 악기들에 넋을 놓고 있는 나그네를 본 옆가게 아저씨,
갑자기 4분의 2박자의 원초적 리듬을 장착하고
길거리 악사를 자청하고 나섰다.
타악기, 취주악기 뿐만 아니라
수만가지 현악기, 관악기들도 알뜰하게 완비되어 있음을 강변이라도 하듯.
옆집 아저씨도 자기가 파는 악기를 들고 와서 연주한다.
여기 수라바야 거리는 종합 예술인 거리이다.
조각, 음악, 회화, 조소, 목공, 도예....
이 곳에서 예술을 잘못 건드렸다가는 치도곤을 당할 수도 있다.
천장에 주렁주렁 달려 있는 청명조의 자기 제품들.
공중에 매달려 있으니 비행접시라고 해야 하나?
주지하다시피 차이나를 대문자로 쓰면(China), 고유명사로 중국이라는 국가명이 되지만,
소문자로 쓰면(china) 도자기를 의미하는 보통명사가 된다.
예로부터 네덜란드를 포함한 유럽의 열강들은
아프리카의 노예를 부리며 중국 도자기로 된 그릇에 음식을 담아야
진정한 귀족 대접을 받았다고 하니,
여기 있는 대부분의 도자기 식기류들은
인도네시아를 식민지로 다스리다 물러간 네덜란드인들이 버리고 간 제품이거나,
대륙에서 화교들이 가지고 온 대륙의 제품들일터.
찬합들도 천장에 주렁주렁.
탈색되고 이빨 빠지고 때묻은 식기들을
이렇게 대대적으로 광고하며 팔고 있다니...
하지만 예리한 시각과 매서운 안목을 지니고 있다면
드물지만 뜻밖의 보물을 발견할 수도 있다고.
다양한 용도로 쓰일 국자들.
나는 왜 이런 용기를 보며 막걸리를 생각하고 있는지...
궁궐에서나 썼을 법한 포크와 숟가락.
우리집에 가져가면 식탁이 아닌 벽에 걸려야 할 것 같다.
써 본 사람들은 잘 알지만
이런 류의 식기나 수저들은 시도 때도 없이 수세미로 주구장창 닦아야 한다.
가정 주부들이 직접 설거지를 한다면 절대로 쓸 수 없는 제품.
인도네시아처럼 가정부가 보편화되어 있는 곳에서나 가능.
앙증맞고 고급진 이 통의 용도는 뭔가 했더니...
통 후추를 분쇄하는 용기.
서구의 열강들이 인도네시아에 대해 오랜 세월 군침을 흘린 까닭은
바로 후추나 정향 같은 향료의 산지였기 때문.
그 애환의 한가운데에 있는 것이 후추이다.
잘란 수라바야 (Jalan Surabaya).
약 500m에 달하는, 그야말로 골동품 거리.
하나의 점포를 지나가면 다음 가게에서 바로 마중을 나온다.
가게마다 다른 듯 하면서도 비슷하고,
비슷한듯하면서도 엄밀히 보면 전혀 다른 가게들.
홍콩(캣스트리트)에도, 북경(류리창 문화거리)에도 있었고,
그 외에도 골동품 거리는 세계 곳곳에 상존하지만
나는 처음 봤다.
대포를 파는 가게!
그것도 한 두 가게가 아니다.
심지어 실제 전투에 사용했던 실전용 대포란다.
지금도 화약 밀어넣고 포탄 밀어넣어 불붙이면
우렁차게 발포가 가능하단다.
하나 장만해 가는게 어떠냐고 하도 유혹을 해서,
한국에서는 법규상 '총포류는 수입금지'라고 했더니
돈만 내면 수량에 관계없이 우리 집까지 배달해주겠단다.
가격도 저렴하게 할인을 해주겠단다. ㅎㅎ
우리 나라에서 조선조에 사용했던 대포인
천자총통이나 지자총통보다 포신이나 포경이 훨씬 크고 정밀하다.
옆에 있던 친구가 갑자기 나서서 하는 말,
"이건 까페를 하거나 대폿집을 하는 사람에게 최고의 인테리어감이겠다!!"
친구의 설명에 나도 갈채를 보냈는데,
이야기인즉슨,
술은 누가 쏘든 쏘는 맛에 먹는 것이며
예로부터 '대포'는 발음상 술의 상징이었으니,
가게 입구에 두어개 마주보게 진열해두면
이보다 더 좋은 광고 효과가 어디 있겠느냐는 것!
특히 유사한 대포를 국가 보물급으로 추앙하는 우리나라에서는
가히 최고의 상징성을 갖고 광고효과도 톡톡히 누릴 듯.
인도네시아 국민들이 사랑하는 국민 연극의 다양한 소품들도 즐비하다.
와양 꿀릿 (그림자 연극), 와양 골렉 (나무 인형극),
와양 또삥 (가면극), 와양 오랑 (무용극)...
주로 인도의 대사서시를 주제로 하고 있지만,
인도네시아인들의 와양 사랑은 대통령부터 각별하다.
인도네시아의 다양한 캐릭터 상품들에도
이들 주인공들 개개인의 캐릭터를 활용하고 있단다.
그런데 낯선 얼굴들 속에 낯익은 얼굴이 있는데...
오바마 미국 대통령.
오바마가 한 때 인도네시아 국적으로 자카르타에 살았다는 이유로
이곳 사람들은 오바마를 자국의 지도자보다 더 좋아하는 듯 하다.
도처에 오바마 대통령의 모습이 눈에 띄는데,
시골 세탁소에서 남의 옷 빌려 입은 듯한 어색함.
미국 대통령이 여기 수라바야 거리에서 고생이 많다.
손에 동전을 올려놓으면 입으로 가져가 넣는 이 저금통이
원주민인가 오바마인가를 두고는 친구와 열띤 논쟁을 벌여야 했다.
갑론을박을 거듭하다가
오바마 대통령은 왼손잡이라는 친구의 강력한 태클에 걸려 결국 나의 패배.
내가 점심 사는 걸로 일단락.
그런데, 왼손잡이가 오른 손으로 동전을 삼키는게
왼손 안 쓰는 이슬람 국가에서 뭐가 이상한 거지? 쩝~
이건 바틱 무늬를 찍는 문양틀이다.
인도네시아가 세계적으로 자랑하는 식물성 염료 바틱.
바틱은 순수 식물성 염료이면서도
그 어떤 화학 염료보다도 견뢰도가 뛰어나고 색감이 아름답다.
인도네시아는 인근 말레이시아와 더불어
바틱 염색 제품을 중요한 국가 수입 사업으로 육성 중이라고.
기계 염색 바틱은 그런대로 대중화되어 있어서 가격이 비교적 저렴하지만
한 획 한 선 오로지 수작업으로 정교하게 제작한 수바틱은
그 가격이 상상을 초월한다.
체스판과 마작판.
인도네시아는 국민의 89%가 이슬람 교인인데,
이슬람에서 도박과 음주는 엄격히 단죄하게 되어 있다.
하지만 그것은 인도네시아 부의 대부분을 가지고 있는
돈 많은 화교들에게는 남의 이야기.
태생적으로 도박을 즐기는 중국계 시민들은
암암리에 도박과 음주를 즐긴다고...
하긴 여기 오래 상주하는 우리 교민들도
국민 오락인 고스톱 게임을 일부 인도네시아 원주민들에게 전파했다고 하니...
이런 멋스럽고도 아이디어 상큼한 자물쇠는 탐이 많이 났던 아이템이다.
무엇을 잠그고 여는 시근 장치로서가 아니라 실내 인테리어용으로...
그 외에도 섬세하고도 아기자기한 기발한 소품들이 가득 했는데,
아무리 상품이 흥미롭더라도
용처가 불분명하면 그것은 결국 충동구매!
지갑을 지켜내고 외화를 아낀 내 자신이 여간 기특한게 아니다.
이 곳 골동품 거리에서는 오래 되었다는 이유로 돌도 판다.
수많은 종류의 화석들과 문양석들이 상품이 된다.
며칠 전, 청계천 8가 근처에 볼 일이 있어 들렀다가
겸사겸사 예전부터 우리나라 골동품 거리로 제법 유명세를 탔던
황학동 도깨비 시장을 둘러보았다.
이제는 이름만 남아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우리나라 골동품 거리의 참담한 현주소.
'**당' 등의 이름으로 가게문을 열고 있는 곳이 겨우 십여 곳.
물론 IMF 외환 위기로, 청계천 재개발이라는 이름으로
된서리를 맞은 탓도 있지만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성업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그 명맥이라도 유지하여 외래인들이 기꺼이 찾아와
우리의 속살을 보고 갈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우리가 살아오면서 만지고 남기고 흘렸던 그 흔적이야말로
진정한 우리의 참모습이며 우리가 보여줄 수 있는 생생한 역사임을.
또한 그런 대물림적 가게야말로 허울만 좋은 말의 성찬이 아닌
진정한 창조경제의 핵심이라는 생각이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인도네시아 골동품 거리, 잘란 수라바야에서
일부나마 배울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나저나
'다음'으로 미루고 사지 않은 대포 몇 문은
혹여 누가 매점매석하진 않을지 이제부터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