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여행객의 머리는 분주하고 복잡하다.
특히 먼 길을 달려온 나그네에게 그 여행지는 더 각별하고 더 애틋하다.
멀면 멀수록 다시 다가가기 이려우므로 더 많이 담고
더 많이 파헤쳐서 더 많은 감동으로 보따리에 싸야하기 때문이다.
드디어 족자카르타의 첫 여행지를 결정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슬람 국가에서 찾아 뵙는 부처님의 족적들,
왜 바다에 가면 산이 그립고
계곡에 들면 푸른 파도가 눈에 밟히는 그런 날이 있지 않던가,
오늘은 그런 날이다.
세계 최대의 회교국에서 낯선 모습의 부처를 만난다.
먼둣 사원(짠디 먼둣/Candi Mendut).
짠디 먼둣은 '대나무 숲에 있는 절'이라는 뜻이란다.
보로부두르 사원에서 동쪽으로 2.9km 떨어져 있는 예배용 불교 사원이다.
몇 년전부터 회교국 인도네시아에서도 부처님 오신 날을 국가 공휴일로 지정했는데,
그 날이 오면 연등 행렬이 시작 되는 인도네시아 불교의 성지이다.
주변에 불교 관련 소품들을 많이 팔고 있는 것이, 이곳이 불교 사원임을 말해주고 있는데...
판매하고 있는 불교 관련 기념품들은 남방, 북방을 가리지 않지만
여기 불교 문화의 유적들은 인근 동남아의 그것과 달리 대승 불교와 연관이 높다.
더구나 이 사원을 둘러봐야할 값어치가 높은 이유는,
바로 인도네시아 유일의 삼존석불이 있다는 것이다.
그것도 세상에서 유례를 찾아 보기 힘든 교묘한 자태로...
여기도 소정의 입장료를 지불해야 한다.
요즘 인도네시아의 대부분 유적지 및 명승지는 울타리만 둘렀다면 지감을 열어야 한다.
울타리가 애시당초 없었던 곳은 구태여 울타리를 만들어서라도 돈을 긁는다.
인도네시아가 우리나라보다 더 혹독한 IMF를 겪은 후의 달라진 모습이란다.
여기는 그나마 가격이 착하기도 하지만 물가 수준에 비해 대부분 입장료는 혀를 내두르게 한다.
먼둣사원은 족자카르타를 대표하는 불교 사원으로,
건립연대는 오히려 인근의 보로부드르 사원보다 더 오래 되었다.
서기 824년 샤일랜드라(Syailerdra)왕조의 인드라(Indra)왕의 지시로 건립 되었는데.
당시 샤일랜드라 왕조는 철저한 대승불교(大乘佛敎)를 바탕으로하는 불교국가 였다.
사원의 규모는 그렇게 크지 않은 편.
전체 규모는 110mx 50m 정도, 탑의 제원도 28mx 24m에, 높이는 15m내외다.
먼둣 사원은 대부분의 세월을 땅속에서 허물어진 모습으로 폐허속에 있었다.
그러다가 오랜동안 인도네시아를 식민지로 다스리던 네덜란드가
이 유적의 값어치를 알아보고 1897년부터 1904년까지
복원과 단장을 마치고 세상 속으로 불러냈다.
하지만 허술하고 무책임한 복원과 이후 계속된 지진의 여파로
복원의 상태는 다소 조악한 편이다.
마카라상(Makara 像)이 전실의 입구를 삼엄하게 지키고 있다.
마카라는 인도의 호수에 산다는 전설의 물고기.
코끼리, 악어, 사슴 등의 외관을 골고루 닮고 물개 혹은 새의 꼬리를 가졌다는.
먼둣 사원을 형성하고 있는 각종 암석은 화산암의 일종인 안산암,
족자카르타의 대부분의 사원 유적들은 안산암으로 이루어져 있다.
널판지 처럼 일정한 결이 있어 건축재로 널리 쓰이는 암석이다.
전실(殿室)로 들어가는 입구는 협소하다.
폐소 공포증이 있는 사람이라면 들어가기 전에 심호흡이라도 한 번 크게 하고
내부에 사람들이 많지 않을 때를 노려야 한다.
하지만 이날 우리는 사원 전체를 온전히 독점하고 있었으니...
세상에나!
다리를 쩍 벌리고 앉아 있는 부처님이 계시다니.
어쩌다 이렇게 민망하고도 황송한 일이...
부처님은 대한 민국 지하철은 못 타시겠어요~
석실 내부에 삼존석불이 모셔져 있는데,
세 분 다 민망한 쩍벌 부처님을 연출하고 계신다.
가운데 부처님은 양발 쩍벌 모드로, 양쪽의 두 분 부처님은 반쯤 쩍벌 모드로.
그것도 작정을 하고 좌우 대칭의 자세를 취하셨다.
부처님들, 어쩌다가 그렇게 굳으셨어요?
가운데 본존 부처님으로 앉으신 부처는 비로자나불이시다.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Vairocana)은 대일여래불로 법신불(法身佛)이다.
시방제불(十方諸佛)을 전체적으로 포괄하시는 부처님,
산스크리트어 '바이로카나(Vairocana)'는 '빛나는 것(원래는 태양을 의미)'존재이다.
법신은 형태도 색채도 없이 우주만물의 진리를 의미한다.
광대한 우주의 만물을 연화장(蓮華藏)세계라 부르는데 그 세상의 주인이시고
경전상으로는 화엄경의 교주.
이분을 봉안한 전각을 일러 대적광전(大寂光殿)혹은 대광명전(大光明殿)이라 부른다.
비로전(毘盧殿), 화엄전(華嚴殿)의 주인도 당연히 이 분이시다.
천장은 위로 올라가면서 좁아지는 건축 양식인 궁융형(穹隆形).
여기서 비로자나부처는 드야니 부처(Dhyani Buddha-오방승불)의 한 분으로 설정된 듯하다.
원래 드야니 부처는 다섯 분으로 형성되어 있는데,
비로자나불(Vairocana)을 축으로 아축불(Aksobhy),남방 보생불(Ratnasambhava),
아미타불(Amitabha), 불공성취불(Amogasidddhi)의 다섯분이시다.
불교 미술의 전문가들은 이 곳의 부처님 상(像)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불상 가운데 하나라며 감탄했다고 하는데,
난 왜 그 앉은 자세에서부터 민망한 불편함이 느껴지는지...
본존불(비로자나불)의 오른쪽에는 관세음보살이 앉으셨다.
왼발은 가부좌를, 오른발은 쩍벌 자세로 대단한 불편을 도모하고 계신다.
관세음(Avalokitesvara)은 Ava(아래로)+lokita(보는 것)+isvara(지배자)로
세상을 응시하는 지배자라는 뜻이다. 관자재보살로, 관음보살로 통칭된다.
우리나라에서는 불교의 대주주이신 석가모니 부처보다도
정토신앙의 교주격이신 아미타 부처보다도 더 많이 찾는 기원 발복의 부처님.
대체로 왼 손에 연꽃이나 감로수병을 들고 나타나시는.
또한 우리나라에서는 관세음보살을 주불로 모실 때는 원통전(圓通殿)으로,
본존 부처를 따로(대웅전 등으로) 두는 경우에는 관음전(觀音殿)으로 구분지었다.
적도 지방의 회교국에서 반나의 모습으로
흡사 목로주막에서 한잔 하시는 듯한 자태로 만나는 관음 보살은 다소 낯설다.
여기서 팁하나,
일본의 저명한 카메라 제조업체의 대표 브랜드인 캐논.
그 캐논의 상표 기원도 불교와 관련이 있다.
바로 관음보살에서 '관음(觀音)'의 일본식 발음 '콴논'을 영어로 표기했을때
'Canon'
그 의미도 '크게 본다'는 관음의 뜻을 살렸다는...
비로자나불 좌측에 앉은 분은 바로 금강보살(Vajrapani)이시다.
이 번에는 오른발을 의자에 그리고 왼발을 땅에 두고 맞은 편 관세음 보살과 대칭을 이루었다.
산스크리트어가 의미 하듯이 '번갯불<Vajra>을 가진<pani> 신'이며 대승불교 초창기의 보살로,
석가모니 부처를 경호하며 부처의 힘을 상징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북방 불교에서는 대부분의 경우 아미타불이나 문수보살 혹은 연화수보살과 동행하기 마련인데,
여기서는 관세음보살과 더불어 드야니 붓다인 비로자나불을 협시(脇侍)하는 모양새.
일본이나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사찰의 수문장인 금강역사(金剛力士)로 등장하여
사찰문의 오른쪽에서는 밀적금강(密迹金剛)으로 왼쪽에서는 나라연금강(那羅延金剛)으로 나타난다.
아마 여기서의 역할도 금강보살 본연의 기능대로
경호를 주 업무로 하고 있는 듯하다.
감실(龕室)을 지키고 있어야할 호위 보살들께서는 일찌기 출타하시고
먼길 온 나그네들에게는 세월의 더께만 털어내고 있고.
여기 계시던 분들, 언제 제자리로 돌아 오실 날들이 오기나 할까,
얼마 전의 외신 보도처럼 서구 강대국의 경매시장에 여기서 길잃은 불보살들께서
장물의 명찰을 달고 버젓이 오르내리지는 않을지 지켜볼 일이다.
외부 벽면에는 다양한 우화(愚話)와 불교 이야기들이 사방을 둘렀다.
귀자모(鬼子母/Hariti/하리티)상이 그의 남편 야차(夜叉)와 같이 조신하게 아이를 안고
마치 한없이 인자한 어머니의 모습으로 앉았다.
일찌기 부처의 교화를 받지 않았더라면 어쩌면 아직도 아이를 잡아먹는
귀신의 모습으로 살고 있었을 그들.
그런 류의 불교 이야기가 사방 벽면을 채우고 있다.
1,200여년 전, 강도 높은 철기 제품도 귀하다고 배운 시절인데,
두부 다듬듯, 진흙이라도 빚어내듯 질감과 음영까지 살려서 돌을 깎아 불심을 불러냈다.
어느 역사학자의 말처럼, 사상과 문명은
항상 한 쪽 방향으로만 발전하는 것은 아니라는 가설에 동감한다.
천계수 아래에는 여덟 불보살도 먼둣 사원의 불심을 위해 찬조 출연을 하셨다.
그리고 왕과 그의 자녀들의 교육을 위해 탄트리(Tantri-힌두교의 경전으로 신화나 전설 모음집)와
그리고 판짜탄트라(Pancatantra-고대 인도의 설화집)등에서 발췌한 31편의 우화들도
깜찍한 삽화들과 함께 외벽면에 돋을새김으로 각인되어있다.
먼둣 사원은 작은 사원이라고 하여 내용까지 작은 그런 곳이 아니다.
하나하나 속내를 들여다보고 이야기들을 불러내면 하루 해도 짧다.
백여년 전, 남의 나라 유물을 영혼 없이 복원한 식민지 위정자들,
처삼촌 무덤에 벌초하듯, 산넘어 사돈 논에 논매기 하듯...
그렇게 복원하고 마무리한 흔적이 곳곳에 눈에 밟힌다.
정작 있어야할 곳에 있지 못하는 부처님의 머리...
불두(佛頭)는 어디다 모셔두고 영혼없는 몸체만 마굿간 담벼락 마냥 저렇게 서 있을까,
잘못 짜맞춘 유물 퍼즐은 인륜적 범죄와 같다.
다음에 어느 누가 와도 그 퍼즐은 맞출 수 없다.
잘못 끼워지고 뒤집어지고 망실되고 소실되고...
어쩌면 그들의 탓이 아니다.
자신의 땅을 식민지로 내어주고 자신의 보물을 지키지 못한 주인이 죄인이다.
어느 누구에게 책임을 묻고 힐책을 하겠는가.
어떤 무한 가치의 역사적 보물도 지키려는 의지가 있는 자의 것이고,
혼신의 노력으로 그것을 결연히 지켜낸 자의 몫이다.
문득 우리 땅을 벗어나서 세계 방방곡을 떠도는 우리의 유물들이 생각난다.
그렇다면 나도 여기서 저들의 안타까운 오류의 현실을 비난할 자격이 없다.
누구에게 얼마나 많은 약탈과 유실을 당했는지,
그래서 어떻게 원대복구 시킬 것이지,
그것마저도 탁상공론으로 더듬고 있는 우리는
남을 탓할 자격이 없다.
많이 불편하다.
지금 내가 두 발을 밟고 있는 너희 나라나 조만간 내 침실을 찾아 가야하는 우리나라나,
많이 안타깝고 많이 서글프다.
이럴 때 여기서 의지하고 찾을 수 있는 이는 부처님 뿐이다.
부처님 두 나라를 부디 굽어살펴 주소서...
사원 한 쪽에는 아직도 제 자리를 찾지 못한 불두며 불상들이 한가득이다.
차라리 컴퓨터가 제 몫을 하는 요즘에 새로이 해체후 재복원을 하면
훨씬 정확히 복원을 할 수 있을텐데...
내 나라 보물도 못지키는 주제에 별 변죽을 다 울리고 있다.
사원 바로 옆에는 굉장하고 대단한 나무 한그루(?)가 버티고 있는데...
바로 반얀트리(Banyan tree/뱅골보리수).
반얀(Banyan)은 지혜를 말하는 불교 용어인 반야(般若)에서 왔다.
(혹은 반얀은 인도 북부의 구자라티의 방언으로 상인들을 뜻하며
잡상인들이 이 나무 밑에서 주로 장사를 하는데서 비롯 되었다는 설도 있음)
반얀트리는 뽕나무과 무화과 속이다.
현지인들은 흔히들'쁘링긴(Beringin)'으로 부른다.
비슷한 생태를 가진 피팔나무(Bo tree pipal)도 있지만
반얀트리는 잎의 끝부분이 약간 둥글고 피팔나무는 뾰쪽하다는 차이가 있다.
반얀트리라는 다분히 불교적인 이름을 달고 있지만,
반얀트리의 속성은 그렇게 자비롭지 못하다고.
주변의 모든 나무를 감고 올라가 결국은 햇볕을 못보게 해 고사시키기도 하고,
이 나무의 그늘 속에 들어 오는 모든 식물은 살아남지를 못하여
'목매어 죽이는 무화과(Strangler fig)'라고 불리기도 하고,
공기뿌리가 커튼처럼 늘어져 커튼 피그트리(Curtain pig tree)라는 별칭도 갖고 있다.
내 한 몸 살기에는 너무나 안락한 공간,
추위 느낄 일은 없혀 없는 천혜의 적도성 기후,
하늘에 비만 막으면 해먹 하나만으로도 평생을 살 수 있는 공간,
갑자기 이 나무가 사랑스러워지기 시작했다.
가지에서 공기뿌리(氣根)가 땅으로 내려와 그대로 뿌리가 되는 묘한 형태이다.
영화 '아바타'에 나오는 홈트리(Hometree)의 모델이 이 나무였다는 설도.
세계에서 면적이 가장 큰 나무로 왕관을 쓰고 있는
인도 캘커타 수목원의 나무도 이와 같은 수종이라고.
이와 유사하게 공기뿌리를 내려서 영역을 확대하는 식물류로는,
열대 피나무, 팔피나무, 보리자 나무, 염주 나무등이 있다.
이렇듯 공기뿌리가 가지에서 내려와 땅에 닿게 되면,
그 뿌리는 줄기가 되고 또 다른 독립된 하나의 나무로 생명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본 나무와의 공생 괸계를 형성한다.
종이 다양하다보니 참으로 기묘하게 종을 번식시키는 종류도 다 본다.
불교에서는 하나의 나무가 자라나면 다시 가지에서 생명의 뿌리를 내려
새로운 하나의 생명을 펼치는 나무의 특성을 보고 지혜의 상징으로 여겨
불교 사찰에 이 나무를 많이 식재했다고 한다.
여행에서 역사 유물을 접한다는 것은 감미로운 일이다.
그 곳에서 그 곳 사람들의 족적을 살핀다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남의 문화 속에서 남이 살아온 흔적 속에서 우리의 모습을 찾는다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다.
오늘, 이슬람 대국에서 발견한 이질적인 불교 유산,
그 유산을 온전히 지켜내지 못한 상흔들,
그리고 우리가 우리 세대에서 의무로 감당해야할 일들,
그래서 더욱 생각이 많은 하루였다.
내일은 더욱 웅장하고 더욱 대단한 그 곳으로 간다.
보.로.부.두.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