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타고 떠난 꽃한송이

<인도네시아여행-27> 그 대단한 사원에서 미모가 필요하세요, 여기는 재물까지 덤이랍니다.<쁘람바난 힌두사원>

작성일 작성자 김작가

 

현생 인류에게 있어서 종교는 과연 무엇일까?

종교는 인간이 만든 것일까, 아니면 신이 스스로 만든 것일까?

기획 논문 수 천 편을 끌여들여도 답을 내리기 힘든 명제일 것이다.

 

영어권에서 종교의 의미는 라틴어 '다시 묶는다(re-ligio)'에 뿌리를 둔다.

신에게 원죄의 죄를 짓고 쫓겨난 인간이 용서를 구하고자

다시 신의 품으로 돌아온다는 의미의 Religion이라는 단어가

불교 국가인 일본인들의 번역을 통해 '최고의 진리를 찾는(종/宗) 가르침의 유형(교/敎)'이라는

정통 불교용어로 교묘하게 합성되여 오늘날 우리땅에 '종교(宗敎)'라는 어휘로 정착된다.

 

아무튼 자연 앞에 무한히 나약할 수 밖에 없었던 현생 인류가

의지의 대상과 구원의 대상으로 창조해낸 인류 최대의 작품인 종교는

오늘날 세상의 인종 보다도 더 많은 형태로 이 땅에 존재한다.

그 중에서도 오늘날 세계 4대 종교라고 자리 매김하는 힌두교,

 

그 현장으로 간다.

인도네시아 족자카르타 쁘람바난 사원.

(Indonesia Jogjakarka Candi Prambanan)

 

 

쁘람바난(Prambanan)시원...

 화산암인 안산암에 치밀하게 조각된 조각미와 유려한 균형미는

자바(Java) 뿐만아니라 인도네시아 전체를 통해서도 힌두교 건축의 백미로 대접 받는다.

족자카르타에서 동쪽으로 17km 거리에 위치하고

일찌기 인근 불교 사원인 보로부두르 사원과 더불어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 되고(1991년) 건립 년도는 천 년도 더 된 9세기 무렵.

 

 

인도네시아의 대부분 유적지가 그렇듯 여기도 여행자는 지갑을 열어야 한다.

천 만리 머나먼 길,비행기 타고 산 넘고 바다 건너 멀리 왔다는 제명으로

여기서도 불쌍한 나그네는 내국인의 무려 열 배의 입장료를 강탈 당해야 한다.

인근 보로부두르의 입장료와 거의 비슷한 수준이다.

 

외국인은 우리 돈 무려 22,000원/1인당(Rp.225,000)

내국인은 우리 돈 달랑 3,000원/1인당(Rp.30,000)

 

 

여기도 비싼 입장료를 내는 외국인들은 별도의 통로로 특별(?)입장을 하는데,

그곳엔 약간의 커피와 인도네시아가 세계에 자랑하는 자바 티(Vawa tea)인

일명 '고양이 수염차(Teh Kumis Kucing)'를 마시며 비싼 입장료로 상한 속을 달래란다.

 

 

입구 들머리에서 가이드를 해주겠다고 발 벗고 나서는 아저씨들...

당연히 공짜가 아니며 당연히 영어가 서툴며 당연히 우리말을 모른다.

 

하지만 우리에겐 가이드 그 이상의 지식과 그 이상의 친절을 장착하고도

심지어 친근한 경상도 사투리까지 겸비하신 인도네시아 지인님이 계신

관계로 가볍고도 미련없이 패스~!

 

 

인도에서 발현된 힌두교가 동진을 거듭하다 대륙에서는

중국의 불교에 막혀 세력의 정체를 겪고 있었지만

인도네시아에서는 왕성한 동진을 계속하게되고,

마침내 여기 중서부 자바에 이르러 동진하던 힌두교 국가인 마따람 왕국은

당시 불교 국가를 자임하던 이 곳 토착 세력인 샤일란드라 국가와 정략 결혼을 통해

중서부 자바에 힌두교 교두보를 만들게 된다.

 

불교와 힌두교의 절묘한 동거,

9세기에 있어서 중서부 자바의 종교는 이처럼 불교에서 세계의 불가사의와

힌두교에 있어서 석탑 문화의 대단한 꽃을 피워냈다.

 

 

빠람바난 사원은...

단일 규모 면에서만 양보하면 보로부두드르 사원에 비해서 전혀 손색이 없다.

오히려 정교함과 치밀함은 훨씬 앞서고 보다 아름답다.

 

전설에 의하면 9세기 건립 당신에는 이런 석탑이 무려 1,000개가 있었으며,

문헌 상으로도 240여 개의 석탑이 도시 곳곳을 수놓으며

이른바 힌두교가 모시는 무려 3억 3천이 넘는 신들을 품고 있었단다.

 

 

 

그 이후, 16세기에 발생한 주변의 화산 폭발과 지진으로 거의 폐허상태로

200여년 간을 방치해온 끝에 20세기에 들어와서 복원과 중단을 거듭하다

아직도 미완성의 복원으로 현재 18개만 신전의 모습을 대충 갖췄다.

신전 주변의 곳곳에는 원래의 신전으로 돌아가지 못한 부분석들과 파편들이

신전의 질량과 부피보다 훨씬 많은 면적을 차지하고 널부러져있다.

 

 

문화유적이라는 것은, 더욱이 그 것이 종교 유적이라면,

그 시절의 모습과 영화를 온전히 보전하기는 애시당초 불가능하다.

설사 자연과 세월이 천재 일우의 도움으로 보우하더라도

인간이라는 존재가 원래 모습으로 존재하는 것을 용서하지 않기 때문에.

 

나와 다른 종교, 내가 선택하지 않은 종교 유물,

그 유물은 반달리즘(Vandalism)이라는 만행으로

지금도 세계 곳에서 파괴되고 있으니...

 

쁘람빠난 사원은 자연재해 뿐만아니라

그 이후에 이 땅에 들어온 이교도에 의해서도

철저한 방치와 의도적인 파괴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으니.

 

곳곳에 산재한 그 옛날의 화려했던 신전이었던 석재들,

멀리서 달려온 나그네의 마음도 변치않다.

 

 

사원 중앙에는 힌두교의 주신인 3대 신을 모시고 있는 신전이 위치한다.

힌두교는 원래 인도에서 형성된 다민족 다문화 종교로서,

외래 북방민족인 아리안족의 토속 신앙과 브라만교가 혼합하여 형성된

혼성 종교의 뿌리를 갖다보니 다신교의 특성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힌두교에서 거론하는 신은 무려 3억 3천이 넘는다.

 

하지만 이처럼 수많은 신들을 관리하고 조종하는 주신(主神)은 3명의 신이다.

 

힌두교 최고의 신이며 창조의 신인 브라마(Brahma).

이 세상을 유지하고 평화를 지키는 비슈누(Wisnu),

그리고 세상을 파괴하는 공포의 신 시바(Siwa).

힌두교는...

이렇게 3명의 신이 우주를 구성하고 유지하는 기초가 된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 3명의 신 또한 셋이 아니라 인간에게 나타날 때는

하나가 된다는 이른바 삼신일체(三身一體/트리무르티/Trimurti)의 신으로 이는,

유대교나 기독교에서 말하는 삼위일체(三位一體/트리니티/Trinity)와도 유사성이있다.

 

 

중앙에는 시바 신전이 위치한다.

시바神은 힌두교에서 공포의 신이며 파괴의 신이며 상징은 황소.

세상의 모든 것을 파괴하며 무차별 응징하는 관용이 없는 신이다.

 

 

시바 신전, 47m의 거대한 높이를 자랑한다.

 

시바 신전에는 4개의 석실이 있어 누구나 배알이 가능한데,

동쪽 석실엔 본인인 시바(Siwa)상이, 북쪽에는 시바신의 아내인 두루가(Durga)상이,

서쪽 석실엔 아들 가네샤(Ganesya)상이 그리고 남쪽 석실엔

시바신의 스승인 아가스뜨아( Syuri Agastya)상이 각각 모셔져 있다.

 

 

동쪽 석실에 있는 시바상...

시바신은 힌두교의 근간을 이루는 3명의 주신 중에서도 가장 가혹하고

가장 포학하며 모든 창조를 절멸시키는 비정의 신 임에도 불구하고

힌두교도들이 가장 많이 숭배하는 신이기도 한데.

이는 힌두교의 기본 교리하고도 깊은 연관이 있다.

 

힌두교는 불교나 기독교처럼 살아생전에 절대자에게 구원을 받을 수 없는 종교이다.

기독교가 예수에 의해, 유대교가 메시아에 의해, 이슬람교가 알라에 의해

그리고 불교가 부처에 의해 현세및 내세를 구원받을 수 있다고 믿는데 비해,

힌두교는 그 어떤 절대자의 도움없이 스스로 고행하고 금욕하고 선행하며 묵상하고

그리하여 자신이 행한 결과로 인한 업(카르마)에 따라 다시 윤회하는

그야말로 욕심없이 무념 무상의 일념으로 해탈하는 종교이지만

결국 자신의 굴레를 벗을 수 없는 체념적 종교이다.

 

참고로 위에서는 유대교와 이슬람과 같이 동일하게 언급했지만

불교는 세계 4대 종교 중에서 신의 개념이 존재하지않는 종교이다.

불교는 붓다라고 하는 '최고 경지의 깨우친 사람'으로하여금,

힌두교가 추구하는 사회 계급제도와 운명을 거부할 수 없는 체념적 교리에

항거해 스스로의 노력을 통해 내세와 극락을 추구하는 탈힌두교적 종교이다.

 

즉, 힌두교에서는 한 인간이 태어나는 순간부터 부여받은 숙명은

그 어떤 노력이나 구원으로도 그 굴레를 벗어날 수 없으며

현실 속에서 그 어떤 것을 바라고자 하는 욕구는 어떤 의미도 없을 뿐만아니라,

이는 지금까지 힌두교 국가인 인도를 지배하는 계급사회(카스트제도)를

지탱하는 근본이며 체념의 국민성으로 지금까지 남아서 국가 발전의 저해소요로 작용,

나아가 상층 지배 층의 하층 지배 논리로 수천 년을 작용하고 있다.

이러한 인간의 숙명적인 연결고리를 파괴하고 생을 절멸시키는 유일한 신,

그리하여 현세의 부단한 고통을 파괴시킬 수 있는

단절의 신이 바로 시바 신이다.

 

 

북쪽 석실엔 시바의 아리따운 부인인 두르가상이...

 

샤카티, 칼리, 파라비티, 두르가 등의 이름으로 불리며,

칼리(Kali)는 항상 피에 굶주려 있으며 언제나 세상에 많은 폐허를 남기고,

파라비티(Paraviti)는 이 세상의 가장 아름다운 신부의 모습으로 선과 악의 두 얼굴을 가진,

두르가는 지금도 인도 남부 지방의 많은 인들이 숭배하는 여신으로 군림.

 

그녀의 왼 쪽에 서 있는 것은 아마도 원숭이 신,

인간을 위해 제 몸에 불이 붙는 것도 모르고 헌신하는

하얀 원숭이 하누만(Hanuman) 인듯...

 

 

두루가상은...

 

만지면 예쁘진다는 속설 아닌 굳건한 믿음이 확실히 전해오는 탓에...

그 후유증으로 석상에 시커멓게 사람들의 손때가 묻어 있는데,

특히 가슴 부위가 광택이 나도록 반질반질~

그런데...

이렇듯 손때가 켜켜히 앉도록 숱한 사람들이 만지고 갔는데...

그 사람들은 모두가 참배 전에 비해 현저하게 예뻐졌을까?

뜻밖에도 전혀 그렇지 않았더라는 후문,

그 까닭은 바로, 두르가 상을 만지는 방법이 잘 못되었기 때문!

 

바른 방법은 석상을 만질 때는 손을 깨끗이 하고

반드시 어느 공주의 이름을 마음으로 생각해야 한다는 것!

바로 비운의 이 여인,...

이렇게 웅장하고 아름다운 사원에 애틋한 전설 하나 없다는 것도 무미건조한 일.

그래서, 때는 1,200년도 더 된 고고한 시절, 예상대로 보석같이 아름다운 공주가 있었고

역시 예상대로 그녀를 끔찍이 사랑하는 당연히 멋진 왕자가 있었는데,

아뿔싸, 이를 어쩌나...

그 왕자는 공주의 아버지를 죽인 불구대천의 원수였으니...

 

왕자의 청혼을 거절하고자 공주는 절대로 불가능하다고 판단되는 숙제를 왕자에게 내는데,

즉,아름답고 웅장한 1,000개의 석탑을 그것도 하룻밤 사이에 완성하면

비로소 왕자의 청혼을 받아드리겠다는 언약을 하게 되는데...

그런데, 그런데... 그 왕자는 세상의 악마를 마음대로 부리는 재주가 있었으니...

 

악마를 있는대로 동원한 왕자는 하루 만에 천개의 석탑을 완성해가고,

이를 지켜 본 공주는 기지를 발휘하여 밥짓는 불로 연기를 피워

악마들로 하여금 새벽이 온 것으로 착각토록하여

결국 후세의 독자들의 예상대로 천 개의 석탑을 못채우고

정확히 999개의 석탑으로 상황 종료...

이렇게 왕자의 미인 공주 획득 프로젝트는 실패로 끝나고...

하여 화가난 왕자는 예상대로 공주를 절대로 그냥 두지 않았으니...

왕자는 공주를 죽여(혹자는 돌로 만들어) 마침내 1,000개의 석탑으로 만들고,

죽은 공주의 모습을 두르가상으로 변형하여 이 곳 석실에 가두었다는 이야기,

그렇게 목숨을 잃은 불쌍한 공주의 이름은,

라라 종그랑(Lara Jonggrang),

그래서 두르가상을 만질 때는 반드시 그녀의 이름을 마음속으로 불러줘야 한다는...

종그랑 종그랑...

나는 그렇게 경건하게 손을 깨끗이 하고

그녀의 이름을 정확히 부르며 그녀 앞에 오랫동안 서 있었다는...

라라 종그랑... 종그랑...

 

 

서쪽 석실엔 시바신의 아들인 코끼리 머리를 가진 가네샤상...

 

가네샤는 시바신의 둘째 아들이다.

재주가 많아 지혜를 담당하고 군대를 통솔했다.

 

 

가네샤는 태어날 때 사라스와티 여신으로부터 책을 선물받았다.

그래서 가네샤는 독서와 지혜의 신으로 군림한다.

사라스와티 여신이 누구던가, 바로 '유지'의 신인

비슈누의 아내이며 학문의 여신이 아니던가....

그리고 항상 손에는 밥그릇을 들고 있으므로 재복의 신으로 추앙 받는다.

 

그래서 가네샤상의 머리를 세번 어루만지고

코를 세번 만져주면 재물이 넘친다는 근거있는 믿음이...

 

두자리 수의 저능한 지능지수도 갑자기 두 배 이상으로 올라간다는

숱한 체험 사례가 카터라 통신계 분야에 보고된 바 있는 바...

지금도 충분히 똑똑하지만 더욱 더 총명한 머리를 가지기 위해

성실이 손을 내 밀어 쓰담쓰담~

 

똑똑한 두의 김작가와 더불어 재물은 덤으로...

 

 

아울러 가네샤상의 두 다리를 또한 세번 만지면 두 발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엄청 건강해진다기에 두 다리에 윤기가 나도록 오랜동안

정성스레 또 쓰담쓰담~

나는 영원히 다리 떨릴 일이 없으일찌니....

옆에서 친구가 시덥잖은 눈초리로 쏘아보며 하는 말,

"많이 튼실해질 거야~

코끼리의 두 다리처럼 크기만큼~!"

 

 

남쪽 석실엔 시바신의 하늘같은 스승인 슈리 아가스뜨야(Syuri Agastya)상...

그는 인도 남부의 위대한 예언자이며 약초의 전문가였으며,

그의 예언서는 아직도 야자수잎에 자세하게 기록되어

현세 인류의 당면의 문제까지 정확하게 적중시키고 있다고.

풍성한 뱃살과 흘러내릴 것같은 허리살이 해학적이다 못해

오히려 인간적이다.

 

 

시바 신전을 돌아 나오면 북쪽에는 브라마(Brahma)신전이 위용을 나타낸다.

 

브라마신은 전거한대로 창조의 신이자 탄생의 신이다.

아이러니하게도 힌두교에 있어서 창조의 신은 크게 비중과 의미가 없다.

현대 힌두교에서도 창조의 신 브라마는 대중의 숭배에서 벗어나

심지어 신전조차 없다고 하는데.(혹자의 전언으로는 딱 한군데 있다는...

이 역시 힌두교 교리에 그 연유가 있는데...

태어남(창조)과 동시에 족쇄처럼 채워진 신분의 굴레를 가져다 주는

탄생의 그 주신이 바로 창조의 신인 브라마 신인데

현생이건 내세이건 누가 반기고 숭배하겠는가하는 반감의 영향 탓일 터.

 

 

브라마 신전을 돌아 나오면 남쪽에 위치한 비슈누 신전...

비슈누 신은 이 우주 만물을 평화롭게 유지 시키는 신이다.

 

비슈누 신은 사라스와티 여신(학문의 신)을 아내로 두고

이 모든 세상의 질서를 지혜롭게 유지하고자 노심초사했던 신으로,

끊임없이 새로온 아바타르(환생이라는 의미로 영화 아바타와는 같은 말)로

환생을 거듭해서 우주 만물의 유지에 힘쓴 신이다.

비슈누 신이 환생했던 아바타르 중의 한 신이

바로 힌두교에서 분가해 나온 부처인 붓타(Buddha).

 

힌두교 역시 개념은 다르지만 이슬람의 시아파와 수니파 같이

크게 두 개파로 분류하는데...

바로...

시바파와 비슈누파,

비슈뉴파는 바로 지금 현재의 신분과 권력을 유지하고자 하는 지배 계급으로

대부분 카스트 계급의 상층부인 브라만, 크사트리아 계급에 속하고,

현재 인도에서는 북부 인도의 힌두교도들이 대부분 여기에 분포한다.

반면 시바파는 카스트의 하층 피지배 계급인 바이샤, 수드라 계급으로,

대부분 드라비다족과 불가촉 천민인 이른바 하리잔이 많이 거주하는

남인도쪽에서 시바파 교인들이 많다.

 

 

쁘람빠난 사원은 정교한 조각미가 압권이다.

견고한 안산암을 점토 공예하듯 오밀조밀하게 버무려

세인의 상식을 뛰어넘을 정도로 섬세하게 마무리 했다.

 

 

도들새김으로 하나하나 구성한 스토리 텔링은 허투루 마감한 것이 없다.

인도의 고대 대서사시인 '라마야나 이야기가'신전에 부조로 새겨져있다.

그 서사시에 내용을 숙지하고 신전 외벽을 제대로 보려면

가까운 마을에 장기방을 하나 마련해야 할 판,

 

이런 때는 주마간산의 나그네가 될 수 밖에...

 

 

쁘람빠난 사원의 신전 들은 힌두교 기본 3대 신이 거주하는 우주의 중심,

'메루산'의 모습을 형상화 하고 있어

시간에 따라 음영을 이루는 조화로운 풍경이 신비롭다는데...

오늘은 다음의 소중한 재회를 위해 낮 풍경만 완상하기로...

 

신전의 모습을 누구는 종을 닮았다고도하고 혹자는 옥수수를 닮았다는데.

나는 먹음직한 아이스크림을 닮았다고 했다가

친구에게 아프게 한 대 맞았다...ㅜㅜ

 

 

누가 슬며시 다가와 풍문으로 전한다.

여기 쁘람바난 사원은 일몰 무렵의 포토 포커스가 환상적이며,

밝은 건기 철의 밤이면 야외 상설 무대에서 천상의 공연

'라마야나' 이벤트가 아름답게 수 놓아지는데...

 

특히 음력 보름달이 오르는 밤이면 결코 놓칠 수 없는

천상의 기막힌 장관을 연출한다고...

 

아쉽게도 우리가 찾은 날은 음력 초순이었으니...

다음에 반드시 보름 맞춰 다시 찾을 명분을 만들며...

 

 

신전 하나 하나가 같은 것이 없다.

제 나름대로 이야기가 다르며 들려주고 싶은 사연이 다르기 때문이다.

1,200년도 더 된 옛날의 이야기이고,

1,200년도 더 된 그 시절의 기술이고 과학이다.

 

돌 틈 하나에 바늘 하나 찔러넣을 틈도 없다.

나그네의 내장된 지능지수는 이럴 때 추리가 불가능하다.

 

 

전설에는...

심지어 쁘람바난의 240개(1,000개라는 전설도 있음)의 신전을 쌓는데

걸린 시간은 단 하루면 족했다는 설도 있다.

지금 눈 앞에 펼쳐지는 장면이 우리의 상식으로 믿기지 않는다면

그런 전설조차도 가볍게 전설로만 흘려 듣지 말아야 할 것이다.

세상의 수많은 석조 건물들이, 성벽이, 불상들이, 돌탑들이...

때로는 창공을 날라서, 저절로 움직여서...

하룻 밤 하루 낮에 만들어진 경우를 우리는 무수히 듣고 기억하고 있으므로...

 

 

각 신전들의 정면에는 신들의 타고 다니는 자가용 신전들이 포진히고 있다.

마치 집 정면에 차고가 있듯이...

시바신의 상징인 황소(Nandi),

브라마신의 상징인 백조(Angsa),

비슈누신의 상징인 독수리(Garuda),

그들의 신전은 아무래도 주신의 그것 보다는 작고 협소하지만

그것 마저 경외로울 정도로 정교하고 대단하다.

 

 

신전에 따라 보로부두르의 그것 처럼 참배로가 마련되어 었는데,

불교의 그것 처럼 우요(右繞-오른 쪽으로 돌면서 참배하는 것)을 하도록 되어있다.

 

 

외벽의 정교한 석조 부조엔 그저 감탄사만...

피부 촉감과 그들 의복의 질감까지 그 시절 착용했던 각종 패물과 악세사리 까지...

심지어 볼륨감 그다지 혐오스럽지 않은 살짝 나온 아래 뱃살의 후덕함까지...

그 시절 그들의 인간성까지 오롯이 묻어나온다.

 

  

어차피 그 뿌리를 같이 하는 힌두교와 불교,

여기 돌을새김에서 우리네 불상들의 염화시중 같은 미소가 떠올려지는 것은

비단 나만의 상상일까.

 

 

인근 보로부두르 사원은 불교 사원이다.

이곳 쁘람빠난 사원은 힌두교 사원이다.

건립된 연도도 불과 50여년 거웃이다.

그 시절 이 곳 중부 족자카르타 일대는 흡사 서로 경쟁이라도 하듯

불교 사원과 힌두교 사원이 우후 죽순처럼 생겨난다.

 

겉으로 드러나는 외양에서 그 둘의 명백한 차이를 찾기는 쉽지않다.

결국 그 뿌리가 어쩔 수 없이 하나라는 말이다.

 

 

일견 똑 같아 보이는 스투파(탑)도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하나 같이 다르다.

인간 세상의 대동소이를 깨알같이 섞었다.

흡사 우리네 인간이 멀리서 보면 하나같이 같아 보이지만

가까이서 동공을 넓히고 말을 섞으면 비로소 각각 다른 사람들이 되듯이.

 

 

도무지 머리로는 이해가 안되는 대단한 석조 건물,

하나 깎아서 퍼즐처럼 끼우고 어떤 것은 세우고 때로는 빈 공간으로,

대단한 감독이 일목요연하게 인출하고 구성하고 기획했을 역작,

 

 

비슈뉴 신의 전용 이동수단인 독수리(Garuda)의 신전,

이슬람 국가인 인도네시아의 상징 새이며 국영 항공사의 심볼 마크인 가루다.

 

 

또 어느 누가 다가와 귓속 말을 건넨다.

당신은 참으로 대단한 행운아라고...

 

불의 고리(Ring of Fire)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는 화산과 지진의 나라,

그런 인도네시아에서 내일이라도 화산재에 묻히고 지진에 파괴되면

살아생전에 이 대단한 인공 조형물을 두번 다시 볼 수 있겠느냐고...

 

맞은 말이다.

나는 대단한 행운아임이 틀림없다.

나는 족자카르타에서 일찌기 보로부두르을, 쁘람바난을 보았으므로...

 

 

 

 

이렇게 대단하고 정교하게 종교 유물을 남긴 마따람 힌두 왕국,

전설처럼 등장했다 사라진 바리퉁마하 삼부王,

그 왕국은, 그 왕은 이런 신전을 남기고 어디로 홀연히 갔을까?

 

그리고 그 시절의 대단한 기술을 보유한 석공들은 또 어디로 갔을까,

왕국도 주민도 어디로 갔는지 학자들도 모른단다.

그들은 학자라는 명패만 걸었지 그들이 보유한 지식은

해운대 백사장의 모래알 반 톨에도 못미친다.

 

 

그들은 강단에 서서 태연히 말한다.

화산이 터져서, 지진이 일어나서 왕도 왕국도 몰락했을 것이라고.

그래서 그 많은 원주민들과 석공들도 화산재에 묻혀서 스러져 갔을거라고,

그렇게 '추정'할 뿐이라고....

 

우리네 지식인들은 '추정'이라는 어휘가 없었더라면

아무래도 절반 정도는 직업을 잃고 굶어 죽었을 것이 틀림없다.

 

 

그런대로 복원이라는 과정을 이수한 건물은 겨우 18개소,

나머지 240개(혹은 1,000개 이거나)의 신전은 이렇듯 잔해로 누웠다.

 

 

어쩌면 우리는 웅장한 높이로 자태를 뽐내고 있는 신전 근처에서

배회할 것이 아니라 그들보다 더 많은 부피와 질량으로 누워있는

이 곳에서 더 의미를 찾고 더 감회를 구해야할 지도 모른다.

 

어쨌건 18개의 신전은 세인의 주목을 받고 있지만

그 보다 최소 수십 배 더 많은 그 시절의 신전들이 주변에 세월처럼 있다.

이미 분실되고 훼손되어 복구자체가 어렵다고 한다니 안타까울 뿐이다.

 

 

쁘람바난 인근 돌무더기에 굴러다니는 안산암 파편 하나....

똑 같은 화산에서 나온 똑 같은 화산암인데...

어떤 돌은 신전을 이루어 떡하니 제 역할을 다하고있고,

또 어떤 돌은 원래의 위치를 벗어나서 누추한 몰골로 폐허처럼 누웠고

어떤 돌 부서러기 하나는 나그네의 호주머니에 묻혀 지금 이역만리 내 책상 위에 놓였다.

돌에도 정해진 팔자와 운명이 따로 있을까?

 

 

지질학에는 윌슨 사이클(Wilson Cicycle)이라는 게 있다.

이를테면 하나의 육지가 바다로 변하고 바다가 지각 변동을 해서 육지가 되는 주기를 말한다.

적게는 수천 만년에서 수억년이 걸리는 장구한 세월이다.

그 세월은 인간이 감내할 수 있는 수치가 아니다.

 

그에 비하면 1,200년은 그야말로 별안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200년 역시 우리네 인간의 셈법으로 논할 수 없는 성상이다.

그 세월을 지나온 인간의 구조물이 온전할 것이라는 맏음도 어불성설.

무너지고 부서지고 소멸되고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힌두교의 논리로는 파괴와 망실은 시바신의 당연한 섭리다.

불과 백 년도 못살고 가면서 천년의 세월을 논하고

영생을 사는 신앞에 감히 인생을 논하는 것 자체가 가소롭다.

하룻 강아지가 범을 향해 짓는다고 말할 자격이 있는가 말이다.

오늘...

두르가상의 탁월한 효험으로 미모를 하사 받고

가네샤상에서 총명함을 점지받아 유난히 똑똑해진 김작가...

멀리 남의 나라 이슬람 국가에서

천년 세월에 무너져 가는 힌두교 사원, 그 곳에서...

부처를, 예수를, 알라를 그리고 가소로운 인생을 대입해 본다.

그리고 뜬금없이 종교에게 대차대조표를 구해 본다.

그리고 또 하루를 까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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