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부시게 아름다웠던 지난 계절...
그토록 질펀한 꽃의 향연을 지나오면서도 막상 그 꽃들의 소중함을 놓치고 있었다.
어느 꽃 하나 소중하지 않은 꽃이 없고 귀하지 않은 이가 없는데
그저 계절이 다가 오면 당연히 꽃은 우리에게 오는 것이고
찬 바람이 옷깃을 스치면 또한 꽃은 우리로부터
그렇게 스러져 가는 것으로만 알았는데...
그에게 눈 길 한 번 주지 않았는데도
그 꽃은 우리 곁에 언제나 수줍게 와 있었다.
아무도 그 이름을 불러 주지 않았는데도...
아빠하고 나~하고 만든 꽃밭에~♪
채송화도 봉숭아도 한창입니다
아빠가 매어 놓은 새끼줄 따라
나팔꽃도 어울리게 피었습니다
언제나 부르지 않아도 당연히 우리곁에 있었던 것 같은
우리의 원형질이 시작할 때 부터 원래 우리 꽃이었던 것 같은.
동요 속의 꽃, 꽃 밭 속에 꽃, 하지만 꽃밭 속에는 심지않은 꽃,
고향의 꽃, 전봇대 돌담길에 피어있던 꽃,
이 가을 들머리에 서서
그 꽃들의 이야기를 들어 본다.
미국나팔꽃...
이젠 그 이름이 오히려 낯설게 느껴지는,
그래서 '미국'이라는 접두사를 떼 줘야할 것 같은 우리 꽃 나팔꽃이다.
잎이 세부분으로 갈라져 다른 종류와 차별화 된다.
백색, 붉은색, 자주색 등의 화사한 꽃을 자랑한다.
둥근잎나팔꽃.
이름대로 잎이 둥글고 심장 모양을 닮았다.
역시 꽃은 흰색, 주황색 등 다양하다.
그 외에도 우리나라의 나팔꽃의 종류는 다양하다.
대체로 16세기 무렵 약재로 이 땅에 들어와서 토착화 된 초본류.
우리 한방에서는 견우자(牽牛子)라고하여 신우염, 관절염에 썼다.
중국에서는 견우화(牽牛花)라 하여 소를 모는 목동의 꽃으로,
일본에서는 아침의 미인(아사가오->朝顔)으로 미화하고
영어권에서는 아침의 영광(Moring-glory)으로 의미를 부여했다.
♪~♬
내일이면 잊으리 꼭 잊으리
립스틱 짙게 바르고
사랑이란 길지가 않더라
영원하지도 않더라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지고마는
나팔꽃 보다 짧은 사랑아...
<립스틱 짙게 바르고/임주리>
어쨌건 이 노랫말은 틀렸다.
아침에 피어났다 저녁에 진다는 나팔꽃을 발견한다면 학계에 보고감이다.
아니면 이 노래가 너무나 유명한 관계로 아침에 피어 저녁까지 개화기를
유지하도록 연장할 수 있는 신품종을 개발해 볼 일이다.
이름하여 임주리의 나팔꽃.
또 하나...
나팔꽃은 새벽에 피어 해뜨면 지는
너무나 짧은 사랑을 하지만 절대로 속설없는 사랑은 하지 않는다는...
나팔꽃은 그 짧은 사랑 임에도 불구하고 예외없이
튼실한 사랑의 결실을 이루어낸다는 것...
행여 나팔꽃의 사랑을 가소롭게 평가절하 했다면
이제라도 작사자와 해당 가수는 나서서 사죄해야 마땅하다.
메꽃이다...
수많은 사람들을 나팔꽃과 헷갈리도록 하는 녀석이다.
하지만 잎을 보면 금방 구분이 간다.
그도 아니라면 대낮에 피어있는 녀석은 메꽃이며
벌건 대낮에 머리숙이고 목하 묵념 삼매경에 빠져있으면 대부분 나팔꽃이다.
메꽃의 꽃말은 '깊숙한 사랑'이다.
그 만큼 뿌리가 땅속에 깊이 박혀서 자양분을 섭취한다.
고구마꽃...
같은 줄기 식물로 나팔꽃과 구분이 쉽지 않은 것은 고구마꽃도 있다.
똑같은 메꽃과의 식물이다.
물론 우리나라와 같은 고위도 국가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꽃이지만
요즘은 이른바 지구 온난화라는 이름으로 드물게 발견된다.
(사진의 고구마꽃은 필자가 여수 앞바다의 하화도에서 촬영)
이 녀석도 명색이 나팔꽃이다.
이름하여 '천사의 나팔꽃(Engel's Trumpet)'...
밤에 피는 자태가 더 아름답고 향기는 더 감미롭지만 겸허하게도
천사가 사는 하늘을 피해 고개 숙여 땅으로 나팔을 분다고하여
이런 거창한 이름을 얻었다,
하지만 천사라는 이름에 어울리지 않게 식물 전체에 독성이 있다.
함부로 만지거나 입에 들어가면 생명을 담보할 수 없다.
여기도 나팔꽃이다.
이 번에는 천사가 아니라 '악마의 나팔꽃(Devel's Trumpet)'이다.
향기도 비슷하고 섭생도 비슷하지만 이 녀석은 건방지게
천사가 거주하는 하늘을 향해 나팔을 분다는 불경죄로 '악마'를 이름으로 얻었다.
우리나라에도 하늘을 향해 삿대질을 하면 벼락을 맞는다나뭐라나...
흰독말풀, 다투라 등의 이름으로도 불리는 악마의 나팔꽃은
일년생 초본류인 풀이지만 천사의 나팔꽃은 목본류인 낙엽 관목의 차이.
역시 이녀석도 식물 전체에 독을 품고 있다.
특히 어린이들이 출입하는 곳은 식재를 금해야 한다.
악마의 나팔꽃이 꽃을 개화하기 전의 모습,
흡사 접이식 우산을 반듯하게 접은 모습.
그들은 그들이 악마의 이름을 붙이고 있던 천사의 이름을 달고 있던
작년에 있던 그 자리에서 똑 같은 모습으로 자태를 자랑한다.
그들이 함유한 독성물질 마저도 그들의 필요에 의해
스스로 장착했으니 인간 너희들은 전혀 관여할 일이 아니라는 의미와 함께...
이제는 누가 뭐라고 해도 영원한 우리 꽃 나팔꽃,
해 뜨기 전에 피어나서 워가 그렇게 수줍어 하루 해도 못 넘기고
해만 뜨면 서둘러 꽃의 삶을 내려놓는 '그리움'의 꽃.
아침 산책 길에서 발견한 나팔꽃의 다양한 항변과
그리고 그들이 만들어가는 이 가을의 분주한 계절걷이.
그들이 오롯이 아름답고 그들의 이야기가 흐뭇하다.
가을은 어떻게 바라봐도 언제나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