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항상 유토피아적 삶을 꿈꾸듯
제주인들은 수천년 동안 상상 속의 섬 이어도를 꿈꾸어 왔다.
제주를 지켜온 이 땅의 토박이들은,
그 꿈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일상적 삶에 절약, 성실, 절제, 인내, 양보가 보태져야 함을
행동으로 내게 가르쳐 주었다.
꿈은 그냥 이루어지는 것이 결코 아니다.
아무리 세상이 변하고 발전한다 하더라도
나(제주)다움을 지켜내지 못한다면 꿈은,
영원히 꿈에 머문다.
제주인들처럼 먼저 행동으로 실천할 때
이어도의 꿈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김영갑-
제주 사진을 대표하는 이름, 김영갑!
제주를 대표하는 명소, 두모악!
그곳,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을 찾았다.
입구에서 "외진 곳까지 찾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라고 인사 건네는 안내 인형에 괜히 뭉클하다.
이곳에서 영면에 든 김영갑 작가가 직접 건네는 인사 같았기 때문이다.
20년간 오롯이 제주와 사랑에 빠졌던 사진 작가.
그는 섬 곳곳을 누비며 제주도의 들과 구름, 산과 바다,
나무와 억새 등의 자연 풍경 사진 20만장을 남겼는데...
그가 사진과 함께 남기고 간 것이 바로 이곳 갤러리이다.
폐교인 삼달분교를 개조해 개인작업실이자 갤러리에
한라산의 옛이름인 '두모악'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개관한게 2002년.
근육이 수축되는 루게릭병을 앓으며 마지막 셔터를 누르고 눈을 감았던게 2005년.
그의 유골은 갤러리 앞 감나무 아래에 뿌려졌다고 하는데...
김영갑이 이 곳에 머물렀던 시간은 불과 3년 남짓이지만
그를 추모하며 그의 작품을 보고자 10년 넘게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으니,
그는 죽어서도 참 행복한 사람이다.
20만점이나 되는 작품을 한번에 전시할 순 없으니
작품도 로테이션 해서 전시한다고 하는데,
현재 전시되고 작품들의 주제는 <오름>.
80년대 중후반 제주 오름의 풍경들.
이 때 찍은 사진들은 김영갑이 흑백으로 찍고 직접 인화한 사진들이란다.
그리고 90년대 후반부터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작업했던
1:3 파노라마 사진들!
그 사진들을 하나 하나 보고 있노라면
사진 속 제주는 내가 머물고 있는 현실의 섬이 아닌
상상 속 유토피아인듯 느껴진다.
머리 속에 그리는 이미지를 담기 위해 오랜 시간을 기다린다고 했던 작가.
같은 오름을 앞에 두고도 시간을 초월해
다양한 모습을 담아냈던 그의 작품 세계를 일부 엿볼 수도 있다.
건물 뒷편으로 나가니 소담스런 공간 하나가 눈에 띄는데...
무인 찻집?
김영갑 작가가 직접 만든 것이라고 하는데...
아쉽게도 폐점 시간이라 관리인이 와서 정리중이다.
30분만 더 일찍 올 걸...뒤늦은 후회!
내부 촬영을 허락 받고 들어가 짧은 시간이나마 실내를 돌아봤는데...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저 창!
창의 형태가 김영갑의 파노라마 사진 비율을 닮아
창밖 풍경이 또 하나의 사진 작품처럼 느껴진다.
은은한 커피향의 여운을 느끼며
아쉽게 발걸음을 돌렸다.
뒷뜰에 놓인 장독들은 내게 가장 큰 감흥으로 다가왔는데,
채워져 있어야 할 독들이
모든 것을 비우고 엎어져 있는 모습이
이곳을 만들어놓고 떠난 이를 닮아 있었기 때문이다.
나에게 내일은 없다.
그러니 나는 오늘을 치열하게 살 뿐이다.
-김영갑-
먼 길 달려가 잠시 머물렀다 왔지만
두모악의 여운은 생각보다 오래 갈 것 같다.